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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애 옆에 예쁜 애-113화 (113/148)

예쁜 애 옆에 예쁜 애 113화

* * *

시내로 나가는 마차 안에서, 테런과 로제타는 토토에 관한 이야기를 짧게 나누었다.

“토토의 무덤에 작은 비석을 하나 세워 줬습니다.”

“아…….”

로제타의 입술이 느릿하게 벌어졌다가 이내 다물렸다.

“잘하셨어요. 안 그래도 그게 무척 마음에 걸렸는데.”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상심이…… 크시죠?”

“마음 한구석이 허탈하긴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녀석이 가는 길, 발이 무겁지 않도록 웃으며 최대한 빨리 일상을 되찾는 것이 중요하지요.”

“맞는 말씀이긴 합니다만 걱정이 되어서요.”

“어떤 종류의 걱정일까요?”

“소중한 존재를 충분히 애도하지 못하면 분명 이후에 강한 감정의 폭풍을 맞닥트릴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부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대응하셨으면 좋겠어요.”

테런은 로제타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그러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는 조용히, 그리고 차분하게 다음 말을 이었다.

“이번에 많이 깨달았거든요.”

로제타가 빤히 그를 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나만 남겨 두고 먼저 떠난 존재가 안타깝고, 아쉽고, 속상합니다. 하지만 계속 그 감정에 사로잡혀 있으면 아직 내 곁에 남아 있는…… 나를 걱정하는 다른 존재들에게 큰 근심을 안겨 주고 걱정을 끼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로제타는 깨달았다.

테런이 비단 토토에 국한된 이야기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랬기에 로제타는 더더욱 그에게 무슨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몰랐다.

테런이 그녀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당신이 내게 힘이 되어 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저 역시 상심한 당신에게 적잖은 위로가 되고 싶고요.”

“충분히 그러고 계세요. 존재만으로도 든든하시니까요.”

토토의 죽음은 분명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일상을 살아 내야 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때로는 숨이 막힐 듯 가슴이 아파 오고 눈물이 나겠지만, 계속 슬픔에 잠겨 살 수는 없었다.

그런다고 토토가 살아 돌아오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 자연스럽게 극복해 가요.”

두 사람은 가끔 그 아이가 생각나면 함께 울고, 서로를 위로해 주며 그렇게 견뎌 가자고 약속했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언젠가는 토토와의 추억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귀족 지구의 마차 보관소에 다다랐다.

마차에서 내린 뒤, 로제타는 테런이 예전처럼 에스코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팔뚝 위에 얹을 생각으로 손을 올렸는데, 위로 들기 무섭게 그녀의 손이 금세 무엇인가에 단단히 사로잡혀 도로 아래로 끌어 내려졌다.

로제타가 놀라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 쪽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테런의 큰 손 안에 잡힌 자신의 손이 보였다.

그는 자연스러웠고, 로제타는 자연스럽지 못했다.

로제타는 조금 당황한 눈으로 멀거니 잡혀 있는 손만 내려다보았다.

도통 걸음을 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어서 테런이 살짝 앞으로 손을 끈 뒤에야 뒤늦게 움직였다.

서로 장갑을 끼고 있긴 했지만 맞닿은 피부가 한껏 뜨겁다는 것은 잘 알 수 있었다.

수차례 그의 옆에 서 봤고, 그에게 허리도 잡혀 보았으며, 에스코트도 많이 받아 봤다.

하지만 손을 잡는다는 것은 색다른 기분이었다.

로제타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테런이 그런 로제타를 힐끗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어깨를 움츠리고 걷습니까? 에스코트를 처음 해 드리는 것도 아닌데.”

“손을 잡는 건 처음이잖아요.”

로제타는 누가 들을까 무섭다는 듯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뿐만 아니라 로제타는 주위의 눈치를 보듯이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실제로 거리에 귀족들이 많이 나와 있었고, 두 사람을 알아본 뒤 자기들끼리 소곤거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테런은 그런 그녀의 행동이 못마땅하다는 듯 잠시 눈매를 찌푸리다가, 또 슬금슬금 제 손안에서 빠져나가려는 로제타의 움직임을 읽고 더욱 강하게 손을 쥐었다.

두 사람의 주변에는 이미 산책하고 있는 사람들이 제법 되었는데, 테런과 로제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상당했다.

“누가 봐요.”

“보면 좀 어때서요?”

테런이 빈손으로 로제타와 자신을 번갈아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은 약혼녀, 나는 약혼자. 손잡는 일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관계이지 않습니까?”

맞는 말이기에 로제타는 아무런 항변도 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되는 것은 여전한 모양이었던지 미묘하게 움츠러든 몸을 바로 펴지는 못했다.

“등과 목에 힘을 주고 당당하게 앞을 응시해요. 누가 감히 뭐라고 하겠습니까? 당신 옆에 내가 있는데.”

힘을 실어 주는 부드러운 조언에, 신기하게도 그녀의 마음이 평온을 되찾았다.

그가 주문한 대로 허리를 곧게 세우고 어깨를 반듯하게 펴자 신기하게도 쭈그러들었던 마음에 당당한 자신감이 찾아들었다.

“자세를 바로 하는 것만으로도 한결 낫죠?”

“신기하게도요.”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든 아무렇지 않아졌다.

로제타는 한층 밝아진 얼굴로 테런의 손을 잡은 채 걸음을 옮겼다.

시내는 곧 있을 우기 행사를 준비하느라고 바빴다.

2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국가적 행사이니만큼 모두가 들떠 보였다.

그 모습을 본 테런은 쓰게 미소 지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사실 전 이번 우기는 지나가자는 파였는데, 이렇게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그러지도 못하겠군요.”

로제타는 그가 근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는 듯 덩달아 굳힌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반이 약한 상태에서 비가 쏟아지면 피해가 막심할 텐데 걱정이에요. 폐하께서는 그 점을 고려하지 않으시던가요?”

“지반 붕괴가 일어날 위험보다 비가 내림으로써 얻게 될 긍정적인 효과가 훨씬 더 크다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로제타는 입술을 힘주어 닫았다가 다시 벌리며 우려 깊은 목소리를 꺼내었다.

“전 공작님도 걱정이 돼요.”

“음?”

“길이 워낙 좋지 않잖아요. 체이스 왕자님도 함께 가시니, 분명 호위 병력을 포함해 대규모의 인원이 함께 움직일 텐데 분명 땅에 부담이 가지 않겠어요? 이동하시다가 갑자기 길이 꺼져 다치기라도 하시면 어떡할지 눈앞이 캄캄해요.”

마치 벌써 사고라도 난 것처럼 심각한 그녀의 표정을 보며, 테런은 그만 미소 지어 버리고 말았다.

누군가 제 걱정을 해 주는 것이 그리 썩 나쁜 기분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짧은 헛기침으로 목소리와 무심코 튀어 나갈 뻔한 웃음을 고른 뒤 조용히 대꾸했다.

“조심해서 다니겠습니다.”

“걸음 내디디시기 전에 꼭 좌우를 살피시고요.”

“그렇게 할게요.

진지한 얼굴로 거듭 당부를 마친 로제타는 순순한 테런의 대답을 듣고 난 뒤에야 화제를 전환하듯 물었다.

“그런데 공작님. 대체 우리 어디로 가는 건가요? 카페에 가는 거예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무슨 말이 그러냐는 듯 로제타가 다시 올려다보니 테런이 눈을 휘었다.

“카페에 가긴 하지만, 앉진 않을 거거든요.”

“그러면요?”

“음, 그 카페에서 피크닉 세트라는 걸 판다고 그러더군요. 바구니에 포도주와 과일이나 쿠키 같은 간단한 먹을거리를 넣어 준다고 해요. 참고로 정보의 출처는 레나입니다.”

“아. 레나가 맛있고 좋은 가게들을 많이 알죠.”

“그 피크닉 세트를 주문해서 받은 뒤, 강가로 가서 나룻배를 타면 어떨까 싶어요.”

로제타가 살짝 놀라서 되물었다.

“어머. 여기도 나룻배를 탈 수 있는 곳이 있나요?”

테런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기 묻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늘은 노를 저어 주시겠죠?”

“……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싶어 멍한 표정으로 테런을 올려다보며 눈꺼풀만 깜빡이던 로제타의 머릿속에 오래전 한 약속이 떠올랐다.

에스테스 파크에서 지낼 때, 호숫가 피크닉에 초대하면서 자신이 한 말이 뒤늦게 떠올랐다.

로제타는 맑은 잔웃음을 터트리며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이에요. 드디어 오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군요.”

그런데 가게에 들어가기 전, 로제타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 있었다.

카페 옆으로 길게 나 있는 어두운 골목 쪽에, 로브를 뒤집어쓴 노파가 작은 간이 테이블 하나를 두고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테이블 위에는 천이 덮여 있었고, 그 위에 수정 구슬과 손때가 묻은 듯한 타로 카드, 그리고 별자리 무늬가 그려진 귀퉁이가 해진 두꺼운 책이 한 권 놓여 있었다.

노파의 소지품을 통해 로제타는 그녀가 점사를 보는 이가 아닐까 하고 짐작했다.

“이곳에도 점 보는 사람이 있네요.”

노파의 차림은 어떻게 보아도 질이 좋다고 할 수 없었다.

몇 번 나와 보진 않았지만 그래도 대강은 알았다.

듀파 지구의 상점들은 모두 귀족이 주 고객층이었다.

그러다 보니 고급스럽고 깔끔한 곳이 많은 편이었다.

그렇게 잘 정돈된 거리에서, 노파는 여러모로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생각보다 귀족들이 저런 흥밋거리를 좋아하거든요.”

윌셔스 왕국은 생각보다 점술이나 미신을 잘 믿는 편이었다.

4가문이 다루는 정령의 힘이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어 비교적 친숙하게 느끼기 때문인 듯 보였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저택으로 초청할 수 있을 텐데……. 이렇게 거리에서 보려는 사람이 있을까요?”

“제법 될 겁니다. 막상 또 저택으로 점술사를 불러들이는 건, 너무 없어 보인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귀족이라면 귀족이지만…… 음, 어려운 심리네요.”

로제타가 살짝 미간을 좁히다가 웃어 버렸다.

두 사람의 걸음이 카페에 가까워질수록 필연적으로 점을 보는 노파와의 거리도 좁아졌다.

테런은 점술사에게 큰 흥미가 없어 보였지만, 로제타가 계속해서 그쪽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카페에 가는 것을 조금 미루기로 했다.

“관심이 있다면 한번 봐 볼까요, 우리도?”

“정말요?”

로제타가 반색하며 관심을 보이자 테런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어려운 일 아니니까요.”

“잠깐만 보고 가요, 그러면.”

두 사람의 목적지가 아주 조금 수정되었다.

따분한 표정으로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던 노파는 제 얼굴 위로 드리우는 그림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늘어진 몸을 똑바로 일으켜 세웠다.

“어서 오세요, 나리들. 어떤 점사를 봐 드릴까요?”

노파의 걸걸한 목소리는 마치 가래가 낀 것 같기도 했다.

로제타는 테런을 돌아보며 물었다.

“뭘 봐 볼까요?”

“글쎄요.”

무엇이든 딱히 상관없다는 듯 테런이 잠시 말을 고르다가 노파에게 질문을 건넸다.

“어떤 게 주력이지?”

노파는 곧바로 오른손을 뻗어 테이블 위에 올려진 물건들을 하나씩 짚으며 대답했다.

“연애운, 금전운, 미래 보기 등 뭐든 자신 있습니다. 가장 내키시는 것을 택하시죠.”

연애운이나 금전운은 그들에게 딱히 의미가 없어 보였다.

“가까운 미래 보기가 어떨까요?”

로제타의 말에 테런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말을 유의 깊게 듣고 있던 점술사는 그들의 결정이 끝나기 무섭게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나머지 물건들을 가장자리로 치웠다.

그런 뒤 수정 구슬을 한가운데로 끌어왔다.

“그럼 가까운 미래 보기 점사를 봐 드리겠습니다.”

“그리해 주게.”

로제타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점술사는 쭈글쭈글한 주름이 가득한 양 손을 구슬 위에 거리를 두고 살짝 띄웠다.

그런 뒤 큰 숨을 들이켜며 눈을 감았다.

마치 힘이라도 싣듯,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잠시 후, 신기하게도 텅 비어 있던 투명한 유리구슬 한가운데에서 자줏빛과 초록빛, 푸른빛이 한데 어우러진 실 같은 빛줄기가 일어났다.

“와…….”

로제타가 작게 감탄하고 있던 그때, 점술사가 다시 눈을 떴다.

그녀는 구슬 안에 꼭 뭐라도 있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고 노려보더니 대뜸 이런 말을 했다.

“아가씨께서는 무척이나 고귀하신 분이시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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