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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애 옆에 예쁜 애-125화 (125/148)

예쁜 애 옆에 예쁜 애 125화

* * *

마차가 정차했다.

바퀴가 멈추기 전부터 일찌감치 내릴 준비를 마쳤던 클라리사와 레나가 모자를 똑바로 쓰며 로제타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럼 영애, 이따 봐요.”

“언니, 금방 오셔야 해요!”

로제타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늦지 않게 갈게요.”

에스테스 하우스에서 인형 가게가 거리상 더 가까웠기 때문에 두 사람이 먼저 내리게 되었다.

“클라리사. 레나의 손을 꼭 붙잡고 다니렴.”

“네, 언니!”

클라리사는 씩씩하게 대답하며 마차에서 내렸다.

로제타는 레나에게 잘 부탁한다는 듯 눈짓을 해 보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영애. 호위 기사님들도 함께 가는 것을요. 영애야말로 조심하세요.”

“저도 호위 기사님들과 함께 가는데요, 뭘. 이따 봐요. 레나. 클라리사를 잘 부탁해요.”

이윽고 마차에는 로제타 혼자 남게 되었다.

다시 마차 문이 닫히는 순간 호선을 그리고 있던 그녀의 입꼬리가 금세 아래로 처졌다.

그녀는 긴장을 덜려는 듯 묵직한 숨을 길게 몰아 내쉬었다.

그녀 역시 정보 길드 같은 곳을 찾는 것은 처음이기에 새삼 긴장이 되었다.

'현대의 흥신소 같은 곳이려나?'

선입견일 수도 있겠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무래도 어두침침하고 사람이 절로 위축이 들게 만드는 분위기일 것만 같았다.

로제타는 그러한 이미지를 떨치려는 듯 살짝 고개를 가로저으며 생각했다.

'와튼이 귀족들도 많이 이용한다고 했는걸.’

적어도 불량한 곳은 아니리라고 애써 생각하며 그녀는 무거운 마음을 덜어 내려는 듯 연거푸 숨을 내뱉었다.

비가 그친 주말을 이용해 장을 보거나 산책을 하려는 이들이 많았기에 광장엔 사람들이 제법 있는 터였다.

로제타가 이런저런 생각을 이어 가는 사이, 마차 밖에서 들리던 사람들의 소리가 어느덧 조용해졌다.

그리고 다시 마차가 멈춰 섰다.

곧 바깥에서 마차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한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로제타의 어깨가 살짝 위로 올라가며 목덜미가 빳빳해졌다.

숨을 고른 그녀가 이내 차분히 말했다.

“내릴게요. 문을 열어 주세요.”

마차 문이 열리고 로제타는 호위 기사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내려왔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눈앞의 건물을 살폈다.

마크 앤 홉스의 외관은 그녀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밝았고, 깔끔했다.

마차 소리를 들었는지 곧 안에서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나왔다.

그는 로제타를 향해 정중하게 허리를 굽히며 인사하는 것과 동시에 제 신분을 밝혔다.

“마크 앤 홉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공동 대표 중 한 명인 마크입니다. 귀하신 분께서 이곳까지는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

그 순간 로제타는 살짝 안도감이 들었다.

누가 들으면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는 이유겠지만, 방금 저 관리인이 자신의 이름과 신분을 묻지 않았다는 점에서 신뢰가 싹텄다.

그들은 돈을 받고 정보를 판다.

하지만 그 정보를 산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고객들이 어떤 정보를 샀는지에 대해서 판매인들이 알게 된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권력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단언컨대 이곳을 이용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약점을 잡히는 것을 원하지 않으리라.

관리인 역시 그것을 알기에 방문자의 이름과 신분보다는 이곳에 온 목적만을 묻는 것이었다.

'귀족들이 선호하는 이유가 있구나. 이러니 오래 영업할 수밖에 없겠지.'

그녀가 그린 듯한 미소를 입가에 띄웠다가 이내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의뢰를 하러 왔어요.”

“그러시군요. 자세한 이야기는 안으로 들어가서 나누시면 어떨까요?”

“그렇게 하죠.”

그녀가 먼저 한 걸음을 떼자, 호위기사들이 그녀를 쫓아 움직였다.

그때, 마크가 그들을 저지하며 말했다.

“다른 고객들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의뢰인 외의 다른 분들의 출입은 제한하고 있습니다. 호위하시는 분들은 여기서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반발이 일어난 것은 당연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여기 이분은……!”

호위 기사 중 한 명이 목소리를 높이며 로제타의 신분을 밝히려 했을 때였다.

로제타가 손을 들어 올려 그를 만류했다.

괜한 소란을 일으켜 이목을 집중시키고 싶지 않았다.

이곳을 찾아온 게 딱히 비밀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에 띄어서 좋은 일은 없었다.

오히려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며 이런저런 억측을 낳는 것에만 일조할 것이 분명했다.

로제타는 호위 기사와 한스를 돌아보며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이곳의 룰을 따르도록 하죠.”

그녀는 자신을 걱정하는 호위 기사에게 괜찮다는 듯 웃어 보이며 말했다.

“하지만 그대들에겐 새로운 임무를 내리겠어요.”

기사들의 어깨가 굳어지더니, 이내 자세를 가다듬었다.

로제타가 말했다.

“제가 이곳에서 나오기 전까지 그 누구도 이 건물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하세요.”

일부러 이름을 대어 방문 예약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만약 건물 안에 다른 고객이 있다고 한들 그들 중 로제타가 이곳을 방문한 것을 알아차릴 사람은 없었다.

“내 명을 잘 수행해 주길 바라요.”

“예, 영애!”

기합이 들어간 기사들의 대답을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듣던 로제타가 작게 숨을 삼키곤 다시 마크를 돌아보았다.

“마크. 당신도 명심하는 게 좋을 거예요.”

마크의 얼굴에 살짝 긴장감이 어렸다. 로제타가 무슨 말을 할지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신의 말대로 나 혼자 들어가겠어요. 그러니 그대는 나에 대한 안전을 반드시 책임져 주어야 해요.”

“……물론입니다.”

그래도 부담감이 상당했는지, 마크가 슬쩍 호위 기사들의 눈치를 보며 작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러분이 오시기 전까지 저는 파리만 잡고 있었을 정도로 안은 무척 조용하니까요.”

에둘러 표현했으나, 결국 마크의 말은 지금 건물 안에 다른 고객은 아무도 없다는 뜻이었다.

그 말을 알아들은 호위 기사들의 얼굴에 그제야 작은 안도가 스쳤다.

마크가 말했다.

“안내하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잠시만요.”

로제타는 호위 기사들을 돌아보며 미소 띤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의뢰만 하고 나올 거라 그리 오래 머무르진 않을 겁니다.”

“예, 영애. 저흰 이곳에서 내리신 명을 착실히 수행하겠습니다.”

“든든하네요.”

짧게 대화를 마무리한 뒤 로제타가 다시 뒤돌아 관리인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 * *

마크 앤 홉스의 건물 안에는 방이 참 많았다.

현대의 피아노 교습소 같은 모습이었다.

관리인은 로제타를 데리고 2층의 개별실로 올라갔다.

눈치를 보아하니, 이곳에서 가장 좋은 내실인 듯싶었다.

“마크. 비록 이름을 밝히진 않았지만 눈치가 있다면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선 어렵지 않게 짐작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로제타는 오늘 일부러 머리카락을 가리지 않았다.

현재 윌셔스 왕국에서 붉은 머리를 가진 여자 중 이렇게 좋은 드레스를 입고, 호위를 받으며 돌아다닐 사람은 에스테스 공작의 약혼녀 단 한 명밖에 없다.

그렇기에 로제타는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어, 정보원을 은연중에 압박하려 했다.

제가 얻고자 하는 정보를 조금 더 유리하게 얻어 내기 위함이었다.

한편 마크는 로제타 쪽에서 먼저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을 꺼낼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던지 잠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이내 아까보다 조금 더 공손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성심성의껏 조사하겠습니다. 그리고 공식적으론 이곳에서 방문객의 이름과 신분은 묻지 않으니, 비밀 보장에 대해선 전혀 우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건 아주 오래 지켜보면 알겠지요.”

마크가 마른침을 한번 삼키곤 물었다.

“차 한잔 드릴까요? 다즐링과 얼그레이, 캐모마일 차가 있습니다.”

“그럼 얼그레이로 부탁해요.”

마크는 고개를 끄덕인 뒤, 차 망에 익숙하게 찻잎을 옮겨 담았다.

적당히 시간이 흘러 차가 우러나자 한잔을 따른 뒤, 그가 로제타에게 내려놓았다.

그런 뒤 맞은편에 앉자 그녀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직접 의뢰를 받는군요?”

“사람을 가려 가면서 받기는 하지만요. 저는 보통 높은 분들을 상대합니다.”

분위기를 조금 더 유하게 만들 생각으로 마크가 한쪽 눈을 찡긋하며 유쾌한 톤으로 말했다.

로제타가 두 손으로 찻잔을 들어 올려 호록 찻물을 마셨다. 생각보다 맛있어 이것도 의외였다.

그녀가 찻잔을 내려놓자, 마크가 바로 질문을 건넸다.

“저희 길드에 어떤 의뢰를 하러 오셨습니까?”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어요.”

“어려울수록 비용이 비싸니 일할 맛도 나고 돈도 벌고 일석이조겠군요.”

그는 넉살 좋게 대꾸하며, 어서 말해 보라는 듯 로제타 쪽으로 상체를 살짝 기울였다.

로제타는 살그머니 입술을 벌렸다.

처음에는 아무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지만 마른침을 한번 삼키고 나니 다시 나왔다.

“내가 의뢰하고 싶은 건 15년 전에 멸문한 랭우드 후작가에 관한 것이에요.”

마크의 얼굴이 살짝 찡그려졌다.

“음, 말씀대로 살짝 까다롭고 어려운 일이 되겠군요.”

아래턱을 쓸어 만지던 그가 로제타를 흘깃 건너다보며 추가로 질문했다.

“의뢰를 조금 더 구체화해 주셨으면 합니다. 영애께서 정확히 알고 싶으신 게 어떤 것입니까? 에스테스 공작님과 랭우드 영애의 관계에 대해서? 그것도 아니면 랭우드 후작가에 실수로 불을 낸 시종에 대해서 알아봐 드리면 됩니까?”

로제타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내가 알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러면……?”

“불길이 치솟았던 그날 밤, 사라진 사람들에 대해서 알아봐 주세요.”

마크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랭우드 후작가의 핏줄을 이은 가문의 일원은 모두 그날 죽었을 텐데요.”

로제타가 고개를 저으며 조용히 정정했다.

“죽은 게 아니라, 시신을 발견할 수가 없으니 사망했다고 추정했을 뿐이죠.”

그녀가 차분하게 제 목적을 한 번 더 또박또박하게 전달했다.

“로제 안나 랭우드, 그리고 랭우드 후작의 동생인 조지 랭우드의 아내였던 젤다 랭우드에 대해서 조사해 줘요. 정말 죽은 건지, 그게 아니라면 지금 그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말이에요.”

* * *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광장 시계탑에서, 정오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그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한스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딱딱하게 굳은 그의 몸과 달리 눈동자는 무척이나 정신 사납게 움직이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정오야. 자넨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저 그 시각만 맞추도록 하게.」

머릿속에서 패트릭의 목소리가 재생되었다.

리스턴 후작가에 불려 갔던 날, 마커스가 제게 로제타를 납치해 오라고 시켰지만 그전까진 세세한 정보를 공유하길 바랐다.

그래서 그는 와튼에게서 주말에 외출 준비를 해 놓으라는 지시를 받은 날 퇴근하고 밤늦은 시각 패트릭을 만났다.

로제타의 외출 계획을 알리자 패트릭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접선할 시각을 알렸었다.

댕-.

마지막 열두 번째 종소리가 그치고 난 뒤, 한스는 심호흡을 했다.

로제타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난 이후 내내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어쩔 줄 몰라 하며 왔다 갔다 하던 행동도 딱 멎었다.

‘이제 더는 물러설 수 없어.’

그는 각오를 되새겼고, 사뭇 비장한 얼굴로 호위 기사들에게로 다가갔다.

호위 기사들은 자기들끼리 원을 그리듯 모여 서 있었다.

지레 찔리는 점이 있었던 한스는 차마 가까이 다가갈 자신이 없어 스무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멈춰 서서 개미가 기어가는 듯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저…… 저기 기사님들. 잠시 볼일을 좀 보고 돌아오겠습니다.”

한스는 기사들의 반응을 살피기라도 하려는 듯 가만히 숨죽인 채 그들 쪽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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