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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애 옆에 예쁜 애-133화 (133/148)

예쁜 애 옆에 예쁜 애 133화

“절 버린 건 숙모였어요.”

“숙모라면…….”

“제 아버지의 남동생인 조지 랭우드의 처, 젤다 랭우드.”

로제타는 큰 숨을 들이켜 마신 뒤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얼마 전 에스테스 하우스에서 열었던 하우스 파티에도 그녀가 왔었죠.”

“그 말은 혹시, 리스턴 후작 영애의 메이드로 따라온 그 여성을 말하는 겁니까?”

“맞아요.”

테런의 미간이 삽시간에 좁아졌다.

“아마도 염탐을 하러 온 거겠죠. 제가 15년 전의 일을 기억하고 있는지, 아닌지.”

착잡한 목소리로 조용히 말을 잇던 로제타가 시선을 떨어트려 테런이 제게 내어 준 찻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컵 표면에 닿은 피부를 통해 뜨거움이 전해져 왔다.

“그리고 숙모…… 아니, 젤다는 과거에도 그러했듯 이번에도 리스턴 후작가와 손을 잡은 것 같아요.”

테런이 한쪽 눈썹을 치켜들어 올렸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리스턴 후작가에 납치당해 지하실에 감금되었을 때, 젤다를 만났어요. 제게 지대한 앙심을 품고 있더라구요.”

그 순간 테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납치?”

로제타의 얼굴에 아차 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아. 그게…….”

테런이 큰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의 입에선 아무런 말도 흘러나오지 않았지만, 지레 긴장한 로제타가 입술을 꾹 다물고 몸에 힘을 주었다.

테런이 그녀를 보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우리 사이에 많은 이야기가 생략된 것 같은데.”

그가 테이블 위에 두 팔을 올리곤 양손을 깍지 꼈다.

“이야기를 들어 볼 필요가 있겠군요.”

로제타는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퍽 적극적인 자세로 설명할 준비를 마친 사람 같았다.

“며칠 전, 그러니까 제가 기억을 되찾기 전이죠. 사실 전 제가 랭우드의 사람이지 않을까 의심을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서 정보 길드에 좀 알아보러 나갔어요. 그런데 불이 나서…….”

“불?”

테런의 목소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높아졌다.

그가 눈매를 살짝 찌푸리며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동시에 입을 열었다.

“그걸 왜 지금 얘기합니까?”

“네?”

높아지는 그의 얼굴을 따라 로제타의 시선도 점점 위로 들렸다.

“그걸 가장 먼저 말했어야지. 그랬으면 이러고 마주 보고 앉아서 대화를 나눌 것이 아니라, 의사를 불렀을 텐데.”

그의 얼굴이 상당히 굳어져 있었다. 로제타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화가 난 듯했다.

테런이 당장이라도 방문을 벌컥 열고 밖으로 나갈 것 같은 기세였기에, 로제타는 서둘러 두 팔을 뻗어 만류하듯 그를 붙잡았다.

“아, 아뇨. 공작님. 괜찮아요. 다친 데도 없고요.”

로제타는 의사를 부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같이 지내는 동안 그의 성격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자신을 살피는 데는 둔감한 남자지만, 주변인들은 무척이나 세심하게 살핀다.

아직 자세하진 설명하지 않았지만, 로제타가 겪은 일을 아마도 자신이 그녀의 곁에 없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자책할 가능성도 컸다.

그랬기에 로제타는 지금 시점에서 자신이 괜찮다는 것을 피력하며 진료 받기를 부득불 거부하는 것보다, 우선순위를 바꾸는 것이 훨씬 더 낫다고 판단했다.

“의사는 오후에 꼭 만날게요. 그러니 다시 앉아 주세요. 진료를 보는 것보다 더 급하게, 먼저 드려야 할 말씀이 있어요. 정말 중요해요.”

로제타의 목소리에서 심각함을 읽은 테런이 마지못해 탐탁지 않은 얼굴로, 문 쪽으로 향했던 몸을 다시 돌려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로제타가 그를 향해 고맙다는 듯이 짧게 미소 지어 보이고는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리스턴 후작가가 이상해요.”

“어떤 점이?”

“제 생각엔, 리스턴 후작과 젤다가 랭우드가의 몰락을 주도한 것 같아요.”

테런은 로제타가 한 말을 제법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빠졌다.

“사고가 일어났던 당시엔 나도 어려서 아무도 내게 자세한 영문을 설명해 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커서 그때의 일에 대해서 몇 번이고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남아 있는 자료가 극히 적었어요.”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모두 없애기라도 한 것처럼.

테런은 마지막 말은 삼켰다.

그의 미간은 눈썹이 맞닿을 정도로 좁아져 있었다.

만약 로제타의 말대로 4가문 중 하나인 리스턴 후작가가 랭우드 후작가의 몰락에 일조했거나 주도했다면, 왜 자료가 거의 남지 않다시피 한 건지 한편으론 이해가 되었다.

심지어 그 사건은 4가문 중 하나인 땅의 랭우드가 피해를 보았음에도 단 사흘 만에 급격하게 진상 조사가 마무리되었다. 덮은 것이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이상한 일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왕가의 개입도 있었다는 뜻일 텐데.’

하지만 테런은 그 부분에 있어선 신중하듯 말을 아꼈다.

왕가란, 이름만으로도 왕국민에게 위압감을 주었다.

그 무게가 상당하기에 로제타에게 괜히 말을 꺼내어, 그녀가 지레 겁부터 집어먹지 않기를 바랐다.

로제타는 최대한 조리 있게 말하고자 노력하며 재차 입을 열어 설명을 이었다.

“기억이 돌아오면서 떠오른 게 있어요. 불이 났었던 그날 밤, 제 방에 숙모인 젤다가 몰래 들어왔고, 눈이 온다며 절 데리고 나갔어요. 저택을 거의 벗어나 어떤 숲 같은 델 갔는데…….”

로제타가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는 듯 말을 흐리자, 테런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어 주었다.

“맞아. 랭우드 후작가 저택 근처에 사냥터가 있었으니까.”

“아! 그러면 거기인가 보네요. 젤다의 손을 잡고 나무가 우거진 곳으로 갔는데, 갑자기 무엇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밤을 모두 밝혀 버릴 것처럼 환한 빛이 등 뒤에서 일었던 기억이 있거든요.”

로제타는 슬그머니 아랫입술을 물었다. 엄청났던 불길을 다시금 떠올리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뒤늦게 트라우마로 작용할 수도 있는 걸까?

오히려 그 화재를 직접 목격했던 6살 땐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강렬한 기억을 여태 잊고 살았던 자신이 참 용하다 싶기도 했다.

“괜찮습니까?”

로제타의 이상을 느낀 테런이 걱정하는 낯빛으로 조심스럽게 물음을 건넸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도 모르는 사이 호흡을 멈추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로제타가 서둘러 길게 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공작님도 아시겠지만…… 불은 빨리 번질 순 있겠지만, 대저택을 한 번에 휩싸기는 쉽지 않잖아요. 그리고 그날은 눈까지 내렸어요.”

테런은 로제타의 말에 동의했다. 그녀의 의심은 무척이나 합리적이었다.

공식적으로 밝혀진 화재의 이유는 시종의 실수다.

하지만 4가문의 저택이니만큼 랭우드 후작저도 에스테스 하우스만큼 컸다.

그런 곳이 단번에 불길에 휩싸일 정도라면 분명 일반적인 불이 아닐 것이었다.

“의도적인 방화일 가능성이…….”

“농후한 거죠.”

테런의 얼굴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왜 진작 그 사고에 대해서 전면적으로 재조사를 해 볼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스스로가 머저리같이 느껴졌다.

물론 이유는 있었다. 15년간, 테런은 로제를 그리워했다. 하지만 살아 있을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거센 불이었고, 후작가는 전소되었다.

당시 가주이자 로제의 아버지였던 캐드릭 폴 랭우드도 화마를 피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는데 어린아이라고 다를 리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만약 운 좋게 살았다면 어째서 그 아이가 에스테스를…… 자신을 찾아오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다시 알아보는 것을 주저했다.

서류에 ‘소재 불명’이라고 적혀 있던 글자가 ‘사망’으로 바뀔까 봐.

그렇게 로제의 죽음이 자신에게는 진실이 될까 봐.

“내가…… 내가 조금 더 자세히 알아봤더라면.”

그랬더라면 좋았을걸.

테런이 자괴감에 채 말을 잇지 못하고 시선을 살짝 떨어트렸다.

로제타는 그런 그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그렇게 스스로를 탓하지 말아요.”

테런은 자신이 그녀를 걱정시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억지로 입꼬리를 당겨 올리고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입술을 가르고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삼키자 그의 목덜미와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납치됐던 날, 리스턴 후작이 제게 그랬어요. 제가 가진 땅의 힘으로 자신을 도와줬으면 좋겠다고요.”

로제타는 짧게, 그리고 담담하게 며칠간 제게 일어난 일들을 테런에게 털어놓았다.

“후작은 제가 랭우드의 후계라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어요. 그리고 노아스의 힘을 억지로 각성시키려 했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짚이는 데가 있습니다.”

테런이 묵묵하게 대답했다.

안 그래도 긱스와 최근 몇 달간 귀족 사회에 유통되고 있는 광물 중 제이드와 진주의 가격이 오르지 않는 점을 이상하게 여겨 주목하고 있었다.

둘 다 유색 광물이니만큼 모조품을 만들어 유통하고 있는 것이리라고 의심했다.

그러던 와중에 테런보다 먼저 로제타의 정체를 눈치챘다면 그 계획을 수정했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여러모로 들킬 가능성이 농후한 모조 보석을 만들어 팔기보다는 로제타를 각성시켜 진짜 광물을 만들게 하는 것이 안전할 것이라 여겼으리라.

힘을 각성한 그녀를 평생 감금시킨다면 엄청난 수익을 손에 거머쥘 수 있을 테니까.

대외적으로는 랭우드의 대가 끊겼으니, 광물 자원 역시 유한하게 비쳐 점점 더 그 가치가 희소해질 테니 말이다.

“후작이 제가 노아스와 계약을 맺는 순간을 똑똑히 보았으니, 저를 찾기 위해 더 혈안이 되었을 거예요.”

로제타의 그 말에 테런은 잊고 있던 한 가지 전제 사실이 떠올랐다.

지난번 아버지인 제임스에게서 들었던 말이었다.

「랭우드의 각성 방법 중 마지막 하나는…… 죽을 위기에 처하는 것이다.」

테런이 고개를 들어 로제타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셔 있었다.

“로제. 대체 그자가…… 당신에게, 너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는 마치 눈앞에 마커스가 있더라면 당장이라도 찢어발길 듯 험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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