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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애 옆에 예쁜 애-137화 (137/148)

예쁜 애 옆에 예쁜 애 137화

“저, 저건?”

“늑대 아닙니까?”

“세상에! 저렇게 큰 늑대가 존재한단 말이에요?”

이미 대외적으론 랭우드 후작가가 멸문했기에, 사람들은 그것이 땅의 정령인 노아스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엄청난 크기의 늑대가 나타났다는 생각에 당황하며 우왕좌왕했을 뿐이다.

그러고 있을 때, 제니스를 도와 피난 지시를 내리던 긱스가 가장 먼저 그 늑대 위에 올라타 있는 인물을 알아보았다.

상대를 자세히 보기 위해 찌푸리고 있던 미간이 서서히 펴지며, 입술 역시 벌어졌다.

“클리프 영애?”

그러자 그의 주위에 있던 시찰단 사이에 수런거림이 퍼져 나갔다.

“클리프 영애라고요?”

“에스테스 공작님의 약혼녀이신?”

하지만 그들이 품은 생각과 의문은 오래 이어 나가지 못했다.

땅은 계속해서 더 강하게 흔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마치 떠내려가듯이 댐 쪽에서 멀어졌다.

그러다 어디선가 우지끈하는 큰 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그들이 딛고 선 땅이 한쪽으로 들리며, 모두가 우당탕 넘어졌다.

“으윽!”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그때 누군가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마을 뒤편, 댐으로 가는 쪽에 있는 땅이 갈라졌어요!”

긱스는 서둘러 그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보고대로 마을 밖에 있는 땅에 금이 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미 성인 남성의 키 정도 되는 너비로 갈라지기까지 했다.

희한한 것은 마치 자를 대고 그은 것처럼 땅이 일직선으로 갈라졌다는 것이었다.

마을이 존재하는 암판은 계속해서 수평으로 밀리듯 뒤로 움직이고 있었으며, 갈라진 땅의 깊이는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그때, 저 멀리 있던 늑대가 어느샌가 마을에 진입했다.

압도적인 피지컬에 마을 사람들은 순간 겁을 집어먹었다.

하지만 늑대는 그들에겐 조금의 관심도 없다는 듯 시선 한 자락 주지 않았다.

그때, 늑대인 노아스의 위에 타고 있던 로제타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긱스 경! 최대한 사람들을 반대쪽으로 피신시키세요!”

제 할 말을 마친 로제타는 노아스를 다시 움직였다.

제 앞을 가로막고 있는 사람들을 돌아갈 시간이 없다는 듯, 땅의 정령은 단 한 번의 돋움으로 훌쩍 뛰어올랐다.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 위로 노아스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가 사라졌다.

눈꺼풀을 질끈 감은 이들이 다시 눈을 떴을 땐 노아스는 이미 반대쪽 땅을 딛고 서 있었다.

“영애! 위험합니다!”

한 박자 늦게 긱스가 목소리를 높이며 로제타를 붙잡았다.

“전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사람들을 대피시켜 주세요!”

하지만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노아스와 함께 마을에서 멀어지며 말했다.

긱스가 그녀를 붙잡기 위해서 뛰어가려고 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마을의 암판이 조금 전보다 더 빨리 미끄러졌기 때문이다.

흔들거림마저 거세어져 주민들은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각자 무엇인가를 짚고 있어야 했다.

그때였다.

무엇인가 쾅! 귀가 멀 정도로 큰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의 시선이 소란이 인 곳으로 향했다. 그와 동시에 얼굴빛이 공포로 새하얘졌다.

댐 벽을 뚫고 흘러나온 물이 막 커브를 꺾고 마을 쪽으로 쏟아지듯 맹렬한 기세로 달려오고 있었다.

물은 온갖 것들이 뒤섞여 짙은 갈색을 띠고 있었으며, 뿌리째 뽑힌 나무나 부러진 초목, 심지어 허물어진 토사에서 뽑혀 나온 커다란 바위도 떠밀려 오고 있었다.

“무, 물이 오고 있어! 빨리 피해!”

“으아아아아!”

모두가 혼비백산한 얼굴로 앞다투어 쳐들어오는 물을 등지고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멈춰 선 이들도 있었다.

로제타와 노아스였다. 그들은 갈라진 부분이 경계라도 되는 듯 멈췄다.

마치 대피하는 마을 주민들의 뒤를 지켜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로제타는 재빨리 주변을 살펴보았다.

“정말 내가 생각한 대로 벌어졌구나.”

-당연하다.

“그러면 노아스, 이 부분의 간격 말인데……. 조금 더 벌려 줄 수 있어?”

-물론.

노아스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갈라진 땅과 땅 사이가 조금 더 벌어지며 깊은 골짜기가 생겼다.

건장한 체격의 성인 남성 서른 명이 한 줄로 누워야 겨우 끝과 끝에 닿을 정도로 너비가 어마어마했다.

-이 정도면 됐나?

“충분할 것 같아. 고마워.”

일부러 간격을 벌려 놓은 것이다.

무서울 정도로 맹렬하게 밀려드는 물을 그 아래로 떨어트릴 생각이었다.

‘가속도가 붙은 물을 저지할 방법은 강한 충격과 중력밖에 없어.’

노아스를 타고 내려오는 동안 급하게 생각한 것이니만큼 예상 경로를 확인해 볼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로제타는 부디 자신이 세운 계획이 성공하길 간절히 속으로 빌었다.

지축을 흔드는 물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로제타는 크게 숨을 들이켠 뒤 전방을 주시했다.

물은 마치 흥분한 들소처럼 벽이 있는 이곳저곳에 부딪치며 사납게 마을을 향해 돌진해 오고 있었다.

로제타는 노아스의 몸에서 내려왔다.

성벽처럼 점점 더 높아지는 파고에, 그녀는 마른침을 삼켰다.

당장이라도 이 자리를 박차고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무서웠지만, 이제 와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런 로제타의 동요를 읽은 것일까.

-괜찮다, 아이야.

노아스가 따뜻한 목소리로 격려를 하듯 말을 건네왔다.

-네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이뤄질 것이다. 그러니 생각하라. 그러면, 내 힘을 보태 줄 것이다.

“……고마워, 노아스.”

로제타가 겨우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곧이다. 준비하라.

“응.”

로제타가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눈꺼풀 한번 깜빡이지 않고 앞을 바라보았다.

또 한 번 크게 숨을 들이켠 그녀가, 그대로 호흡을 멈췄다.

그런 뒤 눈을 감은 채, 어떻게 흙을 움직여 저 물을 막아 내고 싶은지, 미리 생각해 두었던 것을 떠올렸다.

발밑이 점점 흔들리며 가녀린 그녀의 몸이 아래위로 흔들렸다.

점점 더 물과 그녀와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그렇게 그녀의 몸이 가장 강하게 흔들리던 그때, 로제타가 두 눈을 번쩍 떴다.

“노아스! 흙으로 두꺼운 벽을 세워 줘!”

크게 외치자, 그녀의 발 아래에서부터 빠른 속도로 흙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빠르게 단단히 뭉쳐지던 흙이 높이 솟아오르며 거대한 벽을 만들기 시작했다.

흙벽은 금세 로제타의 키를 넘어섰고, 이내 부유한 영지의 성문만큼이나 높아졌다.

이윽고 귀가 멀 정도로 큰 쿵! 소리와 함께 강한 충격이 대지를 타고 전해졌다.

“으윽…….”

흙벽과 대지에 가해진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져 로제타는 나지막이 신음을 흘렸다.

그녀가 불러낸 흙은 기본적으로 마른 흙이었다.

하지만 부딪쳐 오는 물을 받아들이며 단단하게 뭉쳐졌다.

하지만 여기서 더 수분을 머금으면 진흙처럼 변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허물어지는 것은 순식간의 일일 것이었다.

흙벽을 세워 당장 덮쳐 올 충격은 막았기에 물의 기세가 한풀 수그러들었다.

벽에 부딪친 물들이 땅과 땅 사이에 갈라진 골짜기로 떨어져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녀의 시야를 흙벽이 가로막았기 때문에 남은 물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로제타의 손끝에 닿은 흙이 점점 축축해지며 조금씩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더 많은 마른 흙을 뽑아내지 않는 이상, 수분을 머금은 흙은 곤죽처럼 허물어질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한계까지 힘을 짜낸 로제타는 더 이상 흙을 불러오기가 버거웠다.

“으, 윽. 어떡하지? 물이 너무 세.”

땅을 딛고 선 로제타의 걸음이 조금씩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힘겹게 말을 뱉었다. 적어도 자신이 얼마만큼 더 버티고 있어야 하는 건지는 확인하고 싶었다.

“노아…… 스. 반대쪽에…… 도대체…… 물이 얼마나 남은 거야?”

-잠깐 기다려라. 확인하겠다.

“빨, 리…… 알아봐 줘.”

만약 리스턴이 적대 관계가 아니고, 이번 시찰에 동행했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거대한 불이 일어난다면 흙이 머금은 수분을 없애거나, 댐에서 터져 나온 물을 모조리 말려 버렸을 테니까.

하지만 현재로선 바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노아스가 대답을 해 오기 직전, 저 멀리서 ‘키이이이-’ 피르의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강한 바람이 로제타의 뒤에서부터 몰아쳤다.

그녀가 힘겹게 고개를 뒤로 돌려 위를 바라보았다.

“로제!”

간절한 목소리로 그녀를 부르는 이는 다름 아닌 테런이었다.

그는 로제타가 언덕을 떠나자마자 곧장 피르를 불러 함께 그녀를 뒤쫓아온 듯했다.

로제타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그가 훌쩍 아래로 뛰어내렸다.

“로제. 잘 버텨 주었어. 걱정 마. 이제 금세 해결될 거야.”

그녀를 안심시키듯 되도록 부드럽게 말한 그가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며 제 정령에게 외쳤다.

“피르! 물 한가운데에 바람길을 내!”

테런이 말을 꺼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피르가 길게 울며 날개를 한번 퍼덕였다.

그 날갯짓에 흰 띠를 두른 바람이 일었다.

바람은 곧 모양을 갖추었다. 끝은 송곳처럼 뾰족했으며, 흰 띠는 마치 나선형 계단처럼 바람으로 만들어진 기둥을 두르고 있었다.

피르가 날갯짓을 한 번 더 했다. 그것을 신호로 삼아, 바람의 기둥이 로제타가 만든 흙벽에 가로막혀 출렁이는 물로 향했다.

기둥은 무서운 소리를 내며 물을 뚫어 버리기라도 할 기세로 조금씩 아래로 파고들었다.

그러자 물이 비처럼 사방으로 튀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테런이 만들어 낸 바람의 기둥은 마침내 물의 한가운데에 구멍을 뚫듯이 만들었다.

그 강한 바람을 따라 돌던 물은 소용돌이치며 아까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골짜기 아래로 흘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피르의 바람이 제 할 일을 마쳤다는 듯, 허공에 흩어지며 사라졌다.

그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난 뒤에야 테런은 다시 로제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로제타는 계속해서 흙벽에 양손을 짚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손을 떼면 금방이라도 벽이 허물어지기라도 한다는 듯 필사적인 모습이었다.

테런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는 로제타의 손가락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묵묵히 제 손을 뻗어 감싸 쥐었다.

그런 뒤 천천히 로제타의 팔을 아래로 내리게 만들었다.

“다, 끝났어요?”

“그래. 다 끝났어.”

테런의 목소리에 긴장으로 가득 차 있던 로제타의 마음에 안도가 스며들었다.

“다행…… 이다.”

힘겹게 중얼거린 뒤, 그녀의 두 눈이 스르륵 감겼다.

“로제!”

힘이 다 빠진 듯 순식간에 허물어지는 그녀의 몸을 테런이 서둘러 받쳐 들었다.

제 품에 안겨 정신을 잃은 로제타의 얼굴을 바라보던 테런의 눈동자에 걱정이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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