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32화 (32/334)

EP.32 대련 - 막간

계획은 다행히 성공적이었다.

나는 페르난도 교수를 업고 옥상 출입구로 들어선 후.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를 다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다음 마법 위장복을 벗어서 마법 주머니에 넣은 뒤, 그를 다시 등에 업고 계단을 내려갔다.

어느 정도 대련장에 가까워졌다 싶을 때, 그를 복도에 조심히 눕혀 놓았고.

마법 주머니에서 ‘폭죽’을 꺼냈다. 나는 정체를 숨기고 다녀야 하는 처지라, 타인의 관심을 돌리게 할 만한 도구를 미리 쟁여두고 있었다.

그리고 [불 생성] 주문서로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폭죽을 근처에 놔두었다. 폭죽이 터지면 그 소리를 들은 시험 감독관이나 경비가 눈치채고 달려들 테니.

그리 준비를 마친 뒤, 복도를 내달려 창문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지옥의 PT 성과 덕분일까. 나는 스턴트맨처럼 창문을 뛰어넘으며 빠르게 도망쳤다. 폭죽 소리를 못 들었을 정도면 말 다 했지.

그대로 1층 대련장까지 전력 질주.

통로가 뻥 뚫려 있는 곳이라, 자연스럽게 들어가 학생들 사이에 섞여 들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페르난도 교수가 실려 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계획이 성공했음을 알아챘다.

대련이 중단되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페르난도 교수는 아마 부교수에게 이렇게 지시 내렸겠지. ‘자신이 일정 시간 동안 돌아오지 않는다면 대련 평가를 중단하고 전투 병력을 대동해 옥상으로 올라가라’. 아까 추측성으로 해본 생각이었는데 맞았나 보다. 그냥 옥상에 두고 왔어도 괜찮았겠구나.

그래도 선택의 여지는 없긴 했다. 확증이 없는 이상 추측은 추측일 뿐이었으니까.

아무튼 결과만 생각하자. 내 생각대로 일이 잘 풀렸잖아?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대련 평가는 이번 사건의 진상이 확실히 밝혀진 후 재개될 예정이라고 공지가 내려왔다.

며칠 뒤.

마법학부 건물인 오르핀관 중앙홀 게시판엔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결과가 걸렸다.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사건 관계자의 진술, 마나 잔흔 등을 조사한 결과.

마족이 출현했다가 처치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활약한 자는 반 배정 평가 때 나타났다던 거수자. 검은 괴물. 바로 나.

자세한 조사 내용은 비밀리에 부쳐져서 사건 관계자가 누구인지,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아이작’에 관한 내용이 없는 건 천만다행이었다.

‘이제 슬슬 분위기 안 좋아지네.’

학사 분위기가 시종 가라앉을 만했다. 일생에 한번 볼까 말까 한 자연재해쯤으로 여겨지는 마족이 단기간에 수차례나 등장했으니.

학생들은 마족이 왜 이리 자주 출현하는지를 주제로 많은 토론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냥 운이 안 좋았을 뿐이다, 마력량이 높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마족들을 자극하는 것이다 등등의 의견이 오갔다.

참고로 이번에도 학사 측은 마족 출현 건을 수습하기 위해 된통 구를 예정이다.

하지만 뇌신조 토벌전 이후로는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결국엔 황실 기사단까지 나서서 사건 조사에 착수할 것이다.

지금도 힘들겠지만, 앞으로 더욱 힘들어질 교수진, 행정직 사람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아, 그런 일도 있었지.’

갑자기 카야가 충격 먹은 얼굴로 나한테 와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이작 님! 반 배정 평가 때도, 이번에도 나타났다던 그 검은 괴물 말입니다···!”

“왜?”

“설마 마족을 배반한 또 다른 마족 아닙니까?!”

물론 걔는 바보니까 그냥 넘어갔다.

……

[ 상 태 ]

이름 : 아이작

Lv : 56

성별 : 남

학년 : 1

칭호 : 신입생

마력량 : 1100 / 1300

- 마력 회복 속도(C)

- 체력(C+)

- 근력(C+)

- 지력(C)

- 정신력(B+)

잠재력 <<상세>>

[ 전투 능력 ]

원소 계열 1 : 얼음

- 원소 화력(B-)

- 원소 효율(B-)

- 원소 시너지(B-)

원소 계열 2 (잠김)

[ 보유 스킬 ]

액티브

- (★1) 얼음 생성(B-) / (★5) 흑빙(B-)

- (★2) 얼음 장막(C+)

- (★1) 냉기 발산(B-)

- (★1) 기초 보호 마법(D)

- (★4) 서리불꽃(C-)

- (★4) 빙벽(C-)

- (★5) 빙결 폭발(D)

- (★2) 싸락눈(C-)

패시브

- (★7) 심리 간파

- (★5) 마족 감지

- (★9) 빙제

스킬 트리 <<상세>>

[ 고유 특성 ]

- 멸악자

고요한 밤, 나비 정원 구석. 나는 단련을 위해 오늘도 그곳에 와 있었다.

상태창을 확인했다. 얼음 속성의 끝판왕, 9성급 패시브 스킬 [빙제]는 여전히 내 스킬 목록에 남아 있었다.

[멸악자] 효과와는 별개로 습득 조건을 충족해서 습득한 덕분이었다.

‘완전 대박.’

어마어마한 수확이었다.

허상의 리파를 처치한 날, 상태창에 [빙제]가 남아 있는 거 보고 섀도우 복싱으로 아주 야단법석을 떨어댔지.

[빙제]를 제대로 다룰 수만 있다면 내 전력은 비약적으로 상승할 테니 말이다.

‘벌써 원소 팔찌도 생겼고.’

원소 팔찌는, 손목에 끼고 있으면 빛과 어둠 속성을 제외한 어느 하나의 원소 속성 저항력을 크게 높일 수 있는 마도구다.

당장에 2성급 주문서로 시험해 봤는데, 아무래도 주문서 쪽이 영 시원찮아서 정확한 실험이 어려웠다.

대련 평가가 끝나면 <메르헨의 마법 기사> 「3막 2장, 사역마」 파트다. 그때 내 사역마가 생기면 마법을 써달라고 부탁해서 제대로 실험해 보는 편이 좋겠지.

새로 얻은 스탯은 [신체 단련 효율]에 10, [학습 효율]에 10씩 투자했다. 각각 B+, C+급으로 상승했다.

이제 체력이나 근력이 발달되는 속도는 웬만한 헬창 기사학부 학생들보다 높을 것이다.

“후우.”

깊이 심호흡하고 감정을 가라앉혔다.

최근에 시험해 본 [빙제]를 재시험해볼 차례였다.

긴장되네···.

저번에 [빙제]의 힘을 꺼내 봤다가 염라대왕과 하이 파이브 할 뻔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계속 시험해 보고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겠지. 특히나 얼음 속성 최종 버프 스킬인 [빙제]라면 더더욱.

‘집중.’

몸속 심지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차가운 무언가를 건드린다. 내 속에서 잠잠한 상태로 유지 중이던 [빙제]의 힘을 끌어내기 위한 트리거였다.

0%로 가라앉혀놨던 [빙제]의 힘을 어림짐작으로 약 1% 정도만 끌어올렸다.

동시에.

“우으윽!!”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바늘로 찔리는 듯한 격렬한 통증이 전신에 일었다.

“끄아악, 으그극···.”

곧바로 [빙제]의 힘을 0%로 잠재웠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통증이 사그라졌으나,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잔디밭에 쓰러진 채 신음성을 토해내고 있었다. 아주 잠깐 정신을 잃었나 보다.

‘으아, PTSD 생길 것 같아···.’

너무 아팠어···.

역시 아직 멀었다. 지금의 나로선 [빙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평범한 아이작의 몸으론 갈 길이 멀어도 한참 멀었다.

아무래도 [멸악자] 상태가 됐을 때 다시 한번 제대로 시도해 보는 편이 좋겠다.

나는 마음을 추스른 후,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평소처럼 다른 마법들을 단련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뭐 연습해?”

“······!”

대뜸 뒤에서 누가 내 허리를 콕 찌른 탓에 화들짝 놀라버렸다.

재빨리 뒤를 돌아보니, 마녀 모자를 쓰고 있는 한 여학생이 입을 가리고 웃음을 참고 있는 광경이 눈에 비쳤다.

이내, 키득키득 웃기 시작한 그녀.

“느흐흐흐흐···! 아, 반응 뭐야아. 회장 귀여워.”

······.

약 오르지만 얼굴 보고 참는다.

“어쩐 일이에요? 이런 밤중에.”

“오늘은 별이 너무 예뻐서 말이지, 구경하다가 갑자기 네 생각나서 보러 왔어! 지금도 단련하고 있나, 하고.”

하늘엔 아름다운 별들이 수놓인 채였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씨라 유난히 별이 많아 보였다.

“역시나. 우리 회장 성실해~.”

장난스럽게 도끼눈을 뜨고 능청맞은 미소를 흘리는 도로시.

어째 위화감이 들었다.

명확한 근거는 없었지만, 숱한 <메르헨의 마법 기사> 플레이 경험이 내게 일러 주고 있었다.

이 녀석, 갑자기 내가 생각났다는 이유로 찾아온 게 아닌 것 같은데?

“···선배, 저한테 뭐 할 말 있죠?”

그래서 한번 찔러보았다.

도로시의 심리는 별빛 마나의 보호를 받고 있어서 읽을 수 없으니까, 이렇게 떠보는 것 말곤 방법이 없었다.

여전히 미소를 유지하고 있는 도로시. 하지만 그녀가 미소 지은 상태로 침묵하는 상황은, 내 말을 긍정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제야 나는 위화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도로시의 항상 자연스러워 보이는 가식적인 미소에, 보여선 안 될 가식이 보였던 것이다. 이는 그녀의 심리가 조금 흐트러져 있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왜 그렇게 생각해?”

네가 최애캐인 날 얕보지 마라.

“그냥 그래 보여서요.”

도로시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윽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예리하네, 회장. 우리 서로 알게 된 지 이제 막 2주 지났는데, 날 되게 잘 알아. 꼭 옛날부터 알고 지냈던 것처럼.”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많이 봤으니까.

물론 진짜로 그리 대답할 순 없었기에 침묵을 지켰다.

지금 내 감정이 어떻게 비쳐지고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도로시는 미심쩍어하는 눈치였다.

“물어봐도 돼?”

“얼마든지요.”

“대답해 줄 거야?”

“웬만한 거는요.”

“니히히, 알았어.”

휙.

도로시는 돌연 내 쪽으로 상체를 숙이고는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가 시도 때도 없이 얼굴을 가까이 내미는 행위는 벌써 익숙해진 상태.

나는 고개를 뒤로 빼지 않고 그녀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이내, 그녀가 물었다.

“회장은 왜 그렇게 열심히 해?”

“······?”

이건 또 뭔 소리냐?

“뭔가, 그렇게까지 죽어라 단련해야 할 이유라도 있는 거야?”

…확실히 죽어라 단련하고 있긴 하지.

그러니 마법적 재능이 특출 난 도로시한테 나 같은 놈은 희귀종일지도 모르겠다.

내 목적은 악신 네피드를 쓰러뜨리는 것. 지옥 난이도의 네피드가 얼마나 강력한지 알고 있는 이상 단련을 게을리할 수 없었다.

기절 전문가인 이안 페어리테일한테 모든 일을 맡길 수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물론 도로시 하트노바 같은 먼치킨한테 악신 네피드가 부활할 거라고 털어놓고 부탁해볼 수도 있을 터다. 그게 겉보기엔 합리적이기도하고.

하지만.

‘말 못 해.’

도로시는, 앞으로 1년 안에 죽을 저주받은 몸이다.

게다가 ‘태생’이 마족인 존재와 가까워지거나, 놈에게 자기 마법이 닿거나, 놈의 공격을 맞으면 저주는 촉진돼 버린다.

예를 들어, 내가 며칠 전에 싸웠던 ‘허구 피조물’ 같은 마족이 만들어 낸 잡몹이나.

학기말 평가 날 마족이 되는 ‘뇌신조-갈리아’ 같은 녀석이랑 싸우는 건 괜찮다.

하지만 태생이 마족인 ‘사역의 베라’와 싸우게 된다면, 그녀는 얼마 안 가 생명을 잃고 말 것이다.

다른 천연 마족들도 예외는 아니다.

‘말했다간 분명히 아카데미 지키려고 목숨 걸 텐데. 그건 내가 싫다.’

어차피 자신은 죽을 목숨이라며, 자기 목숨을 소모품처럼 취급하고 말겠지.

“이유랄 건 없는데요.”

일부러 거짓말했다.

도로시는 내가 거짓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곧바로 간파했을 것이다.

“그냥 강해지면 좋으니까 그런 거죠.”

“흐음.”

영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도로시.

그러나 그녀는 굳이 내 대답을 파고들지 않고 피식 웃기만 했다.

“재미없네, 회장.”

입가에 웃음기를 띠고 있으나 실망한 눈치였다. 상관없었다. 내가 널 위험에 빠뜨리기 싫은 걸 어쩌냐.

어차피 나는 최애캐인 널 구해낼 거다. 그 이후엔 네가 알아서 날 도와주면 되는 거고.

곧 도로시는 등을 휙 돌리더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선배, 가요?”

도로시는 대답 없이 손만 흔들어줄 뿐이었다.

이윽고 그녀가 나무들 사이로 자취를 감추자,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 기분 묘하네.’

은근히 찝찝한 기분. 딱히 잘못한 건 없지만, 마치 말실수했을 때 느껴지는 미약한 죄책감 같은 게 느껴졌다.

…단련에나 집중하자.

나는 손바닥으로 양 뺨을 세게 때려 잡념을 몰아낸 뒤, 양손에 마나를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 * *

메르헨 아카데미 최상위권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 샤를관.

어둑한 방 안엔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달빛만이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잠옷 차림의 도로시는 침대에 드러눕고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고요 속에서, 바닥을 비추고 있는 달빛만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

아이작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다.

그렇게 강하면서 본래의 힘을 안 쓰고 약한 척, 열심히 단련하는 이유가 뭔지.

정체를 숨겨 가면서 마족을 적대하는 이유가 뭔지.

그는 이미 대마법사라고 봐도 손색없을 정도로 강인하다. 그렇기에, 그의 기행을 도로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엄청난 고수가 기초의 극예를 갈고닦는다’ 같은 느낌도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왜 그런 감정을···.’

아까 아이작은 거짓말했다. 그렇게 죽어라 단련하는 진짜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거짓말하는 그에게서 ‘걱정’과 ‘애정’의 감정이 보였던 걸까.

[감정 간파]가 잘못될 리 없었다. 아이작은 분명히 그녀를 걱정하고 있었다.

‘거짓말한 게, 나를 위해서···?’

아이작의 거짓말과 도로시를 향한 걱정 사이에 무슨 연관성이 있단 말인가.

‘거기다 내가 걱정 받을 만한 사람은 아닌데···.’

애초에 메르헨 아카데미에서 최대 전력이라고 불리는 자신이 걱정이나 받는 처지라니.

우스운 얘기였다.

[도로시. 안 자고 뭐 해?]

우아한 목소리가 도로시 머리맡에 울렸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꼬리에 분홍색 리본을 달고 있는 하얀 고양이가 눈에 비쳤다.

그녀의 5성급 사역마, ‘엘라’였다.

[아까부터 계속 뒤척이기만 하고···. 어머, 설마 사랑이라도 시작한 거니?]

“폭죽 먹은 거 아직도 소화 안 됐어?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릴.”

[너, 내가 폭죽 얘기하지 말랬지? 생각만 해도 속이 울렁거린다구···!]

도로시가 도끼눈을 뜨고 놀리듯 말하자 엘라는 발끈했다.

아이작이 마족을 해치운 날.

그가 페르난도 교수를 두고 근처에 놔뒀던 폭죽은 엘라가 먹어치웠다.

아이작이 도망칠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해서였다. 만약 폭죽이 제시간에 터지고 그 소리를 들은 학사 인력들이 달려왔으면, 아이작은 도망치는 와중에 무조건 잡혔을 것이다.

학사 인력들은 바보가 아니니까.

‘걱정···.’

도로시는 엘라의 몸체를 쓰다듬었다. 엘라는 눈을 감고 그녀의 손길을 즐겼다.

‘혹시 회장은 내 저주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가?’

겉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아이작. 그러나 그는 도로시의 상정을 한참이나 뛰어넘은 강자 중의 강자다. 그렇다면 그녀가 지니고 있는 저주의 정체도 간파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만일 아이작이 거짓말한 이유와 도로시의 저주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마족’일까.

“흐으으으음.”

한동안 엘라를 쓰다듬으며 머리에 열기가 날 정도로 고민하던 도로시는.

[도로시? 도로시!]

머리가 한계에 치달아 펑 터져버린 듯, 멍을 때리기 시작했다.

머리 쓰는 건 쥐약인 그녀였다.

* * *

대련 평가가 재개되었다.

허상의 리파를 제외하곤 본래의 시나리오대로 잘 흘러 갔을 줄 알았는데.

에이미 할로웨이와 점심 식사를 같이 하면서 루체가 이안을 한 방에 K.O.시켰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왜···?’

대체 왜요?

이안은 대련 파트에서 빛 속성임을 드러내 학생들에게 깊은 인상을 안겨줘야 한다.

공식 히로인 중 한 명, 시엘 카르네다스 때문이다. 이미 실습 훈련 때 이안과 엮였던 히로인이다.

그녀는 이안의 빛 속성 마법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된다. 그녀의 가문에는 ‘천족과의 약속’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으니까.

‘빛의 아이를 발견한다면 천상 세계에 데리고 와 달라’.

그것이 시엘의 고조할아버지가 ‘천상 세계’에 가서 천족과 나눈 약속이었다.

그래서 시엘은 이후, 이안에게 접근해 이리저리 엮이게 된다. 그대로 호감도를 착착 쌓아나가다 보면 나중에 그녀가 이안에게 천상 세계, 즉 ‘천계’로 가는 방법을 알려주게 되는 것이다.

천계로 가야 빛 속성 최종 무구인 ‘창명검’을 얻을 수 있다. 아무리 기절 전문가 이안이라도, 오로지 녀석만이 활약해야 할 때가 반드시 온다. 특히 나중에 빛 속성 이외의 속성 면역 보호막을 칭칭 둘러싼 마족이 튀어나올 때, 이안이 창명검으로 [낙원추방] 싸개가 돼 주지 않으면 배드 엔딩은 기정사실이 된다.

“와 저거 뭐야?”

“나, 잘못 본 거 아니지···?”

“방금 그거···, 설마 빛 속성 마법···?”

다행히도 이안은 대련 신청자, 마테오 조르다나와의 대련에서 빛 속성 마법을 성공적으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였고.

관람 중이던 학생들 사이에선 시엘 카르네다스도 섞여있었다.

두 눈이 휘둥그레진 그녀의 반응까지 보고 나서야 나는 안심할 수 있었다.

‘십년감수했네···.’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이안은 마테오와 대련할 때 빛 속성 마법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번에 루체한테 한 방에 털리면서, ‘빛 속성 마법을 먼저 쓰지 않으면 이도 저도 안 되겠구나’라고 생각을 바꾼 듯 보였다. 물론 그 생각은 [심리 간파]로 알아냈다.

아무튼.

이번 시나리오에 문제는 없어졌다. 만세.

이제 스토리 상관없이 대련에 집중할 수 있겠다.

마테오는 예기치 못한 이안의 빛 속성 마법에 당해 패배했으나, 그가 내밀어 준 손을 잡고 훈훈한 장면을 연출했다.

“훗, 역시 이 몸의 강, 대, 한, 마력에 손 쓸 도리가 없었나 보군!”

트리스탄 험프레이는 처음엔 의기소침해진 분위기였는데, 다른 학생들과의 대련에서 가볍게 승리를 거두면서 허세와 자존감을 충전했다.

“······.”

루체 엘타니아는 물 마법으로 가볍게 승리, 승리.

“이게 당신의 전력입니까?”

대련이 진행되는 시기 동안 조가 매번 바뀌어서 카야 아스트레앙의 대련도 보게 됐다.

그녀도 루체와 별반 다를 바 없이 바람 마법으로 상대를 가볍게 제압했으나.

적어도 상대에게 합을 주고받는 자비 정도는 베풀어 주었다.

“꺄아아악! 저, 저리 가앗─!”

에이미 할로웨이는 겁에 질려서 도망쳐 다니다가, 구석에 몰렸을 때 눈을 꾹 감고 상대에게 불 마법을 쏟아부었다.

상대 학생은 홀라당 타버린 치킨 같은 모습으로 쓰러졌고, 에이미는 크게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후훗. 고작 C 클래스인 주제에 제게 대련을 신청한 용기는 가상했는데 말이죠···. 이렇게 개처럼 헥헥 대려고 그런 거였어요? 아아, 한심해, 꼴사나워···. 그래도 용기 하나는 봐줄 만했으니. 좋아요. 당신 같은 추잡한 돼지한테, 제가 정성껏 밟아드리는 영광을 선사하죠.”

로제 레드리베라는 대련 상대인 남학생이 흥분한 얼굴로 엎드리자, ‘호호’하고 웃으면서 구두 신은 발로 꾹꾹 짓밟기 시작했다.

관람 중이던 학생들의 표정은 절로 찌푸려졌으나.

짓밟히고 있던 남학생의 표정은 몹시 행복해 보였다.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다음! D 클래스 아이작, C 클래스 도넬리 젠킨스, 앞으로!”

심판의 호명.

나는 경기장 위로 올라갔다.

내 맞은편에는 내가 대련을 신청했던 C 클래스 남학생이 올라와 있었다.

그는 B 클래스와 C 클래스 사이에 걸쳐 있는 실력자로서, 내 전투력 측정기로 딱 알맞은 상대였다.

“수단은 무제한! 1분 동안은 항복 금지다. 그럼, 상대에게 예를 갖추고 대련에 임하도록.”

카야의 반짝이는 눈빛이.

루체의 어딘가 의미심장한 눈빛이.

마테오의 긴장한 눈빛이.

에이미의 응원하는 눈빛이.

트리스탄의 열등감 어린 눈빛이.

로제의 짜증 섞인 눈빛이.

이안의 몰입한 눈빛이.

일제히 나를 향한다.

“준비···!”

최약체였으나, 마족 담당일진으로 활약하면서 나름 강해질 수 있었다.

이제 C 클래스 상위권 학생과도 비벼볼 만한 실력이겠지, 나도.

“대련 시작!”

심판의 외침과 함께 나는 양손에 [서리불꽃]을 일으켰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 3막 1장.

대련 파트가 막을 내려간다.

* * *

“이햐, 고생했다!”

“고생하셨어요, 에녹 님!”

“으하하핫! 에녹, 칼 솜씨는 여전하더만!”

어수룩한 밤. 전사 두 명, 마법사 한 명, 성직자 한 명으로 이루어진 4인 모험가 일행이 던전 탐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오늘 수확은 꽤나 짭짤했다. 할코리의 갈퀴, 데미로스의 날개, 마물들이 창고에 쟁여놓고 있었던 금은보화까지. 근력이 강한 전사 두 사람이 들고 있는 수확물 보따리는 무척이나 든든해 보였다.

길드 의뢰소에서 받은 퀘스트도 무사히 끝마쳤으니, 오늘은 자축하는 의미의 파티를 열어 술을 진탕 퍼 마셔도 좋으리라.

그렇게 한창 떠들썩한 분위기로 숲길을 걷던 중이었다.

야트막한 공터. 달빛이 찬연히 내리쬐는 그곳에서, 모험가 일행은 인기척을 느끼고 발을 멈췄다.

“잠깐.”

그 다음의 말은 필요 없었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전부 똑같았으므로.

3m의 신장을 가진 한 여인이 비치적비치적 걸어가고 있었다.

낡아빠진 원피스, 회색 피부는 보기만 해도 묵은 때가 줄줄 흘러나올 것 같았고.

하 벌린 입 속, 날카로운 이빨 수는 너무 많아서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멈칫.

여인의 발이 멈췄다. 곧, 그녀의 고개가 기이하게 꺾이며 모험가 일행을 향했다.

오한이 끼칠 만큼 소름 돋는 광경을 보고, 그들은 숨을 죽였다.

헤벌쭉. 여인의 입이 길쭉하게 찢어졌다. 기괴한 미소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여러분!]

어둑한 밤하늘 아래, 여인이 활기차게 인사말을 건넸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들리시나요? 아 귀엽죠, 귀여워요!]

과한 손동작, 과한 몸짓. 귀여운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따윈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그저 잔잔한 고요만이 주위에 가득할 뿐이었다.

모험가 일행은 범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하고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이내, 부엉이의 울음소리가 울리자.

[그래요, 이 소리! 짹짹삐약삐약꽥꽥꽥꽥꽥꽥꽥꽥꽥꽥꽥꽥꽥꽥꽥꽥꽥!!!!!!!!!!!!]

회색 피부의 여인은 오뚝이처럼 몸을 좌우로 흔들며.

빠르게 속닥거리다가, 입에서 핏물을 튀기며 오리 울음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아! 귀여운 거! 당신들한테도 귀여운 거 있구나? 귀여운 거 귀여운 거 귀여운 거어어어어억!!]

그때, 여인의 외침이 신호탄이라도 된 것처럼 모험가 일행의 사역마들이 강제로 소환되었다.

“이게 무슨…!”

“조르딕!!”

사역마들은 고통스러워하는 얼굴로 어둠 마나에 휩싸여갔다.

곧, 여인의 주위로 수많은 사역마가 소환되었다. 동물처럼 생겼거나, 흉측하게 생긴 마수 군세가 그녀의 호령 아래 있었다.

전부 한때는 누군가의 사역마였던 마수들. 어둠 마나를 스멀스멀 흘려보내고 있는 모습은 마치 의지를 잃어버린 인형처럼 보였다.

모험가 일행의 사역마들도 제 주인을 잊어버리고 여인에게로 날아들었다. 어둠 마나에 잠식당한 탓에, 그 사역마들 또한 여인의 마수 군세와 별반 다를 바 없게 되었다.

[이제부터 내가 너희들의 새 주인이란다아아…. 아아, 귀여워귀여워귀여워귀여워귀여워….]

여인은 새로 들어온 사역마 네 마리를 보듬어주고는.

그 마수들의 몸체에 새겨져 있는 각인을 눈에 담았다.

계약을 통해 주종 관계를 맺었다는 증거. 여인은 신경에 거슬렸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아아, 쓸데없는 게 있구나. 괜찮아. 이 새엄마가 너희를 자유롭게 해줄게!]

사역마 군세가 모험가 일행을 덮쳤다. 일방적인 승부였다.

앞날이 창창해 보였던 네 명의 모험가는, 그렇게 사역마들의 먹이가 되어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렸다.

여인은 사역마 군세를 역소환했다.

순식간에 사역마 군세는 어둠 마나에 휩싸이며, 형체가 사라져버렸다.

[좋은 냄새가 나아…. 귀여운 거 냄새애애애…. 빛의 아이도 귀여운 거 갖고 있을까아아아아….]

사역마에 한정해서 극한의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 마족, 사역의 베라.

그녀는 다시 메르헨 아카데미를 향해 비치적비치적 발걸음을 옮겨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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