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5 뇌신조 토벌전 (3)
「낙뢰 (번개 속성, ★4)」
콰광──!!
나는 사역의 베라를 쫓아 뛰어오르려 했으나, 순간 번개 하나가 코앞에서 떨어져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재빨리 뒤로 빠졌다.
[흐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
베라는 충혈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섬뜩한 웃음소리를 흘리기 시작했다. 나보다 자신이 훨씬 약하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텐데도.
왜냐, 사역의 베라가 가진 진정한 힘은 사역마를 다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강함이나 약함은 그녀 자신이 아니라 사역마로 결정되는 것이다.
새까만 어둠 마나가 먹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르며 넓게 퍼져나간다.
어둠 마나는 짙은 안개처럼 하늘을 뒤덮고, 그 안에서 셀 수없이 많은 사역마가 모습을 드러낸다.
무너진 천장 너머.
어둠 마나와 원소 마나를 머금은 여러 동물 형태의 사역마 군세가 하늘을 뒤덮는다.
──────── [캬하하하하하하학──!!!!]
사악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사역마 군세조차도 압도할 만큼 거체의 사역마가 막대한 구체형 어둠 마나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갑피로 감싸진 근육질 몸체. 날개 세 쌍엔 기이한 눈망울이 꿈틀댔고, 바다거북을 닮은 얼굴은 기괴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마족이 되어 버린 7성급 사역마, 하킬이었다.
[ 하킬 ]
Lv : 140
종족 : 마족
속성 : 번개
위험도 : 상
심리 : [ 당신의 사지를 뜯고 싶어 합니다. ]
[끼헤헤헤헤헤헤헤!!! 아이귀여운 것들, 이 엄마를 지켜 주러 온 거니? 네에에에~.]
사역의 베라는 날개에 새까만 어둠 마나와 연녹빛 바람을 머금은 익룡 사역마 위에 올라타더니, 위로 날아올랐다.
연극하듯 과한 제스처를 취해가며 혼자 질문하고 혼자 대답하는 그녀.
익룡 사역마는 날갯짓하며 끼익끼익, 하고 입에서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장하다, 장해! 우리 귀염둥이들! 저 찢어쳐죽일새끼제압해서내장을야금야금씹어먹은다음사지를정성스레분리합시다아아아! 알았죠? 네에에~.]
베라가 지시를 내리자, 사역마 군세는 나를 향해 포효했다. 울먹임이 담겨있는 애절한 포효였다.
군단을 이룬 사역마들은 어둠 마나에 깊이 잠식당해 버려, 이제는 베라가 죽더라도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는 어둠의 마수가 되어 있었다. 저들의 원통함이 울음소리로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하킬이 깔깔 웃어대며 하늘을 향해 팔을 뻗었다. 아슬아슬하게 뇌신조의 결계와 맞닿지 않는 위치에서 거대한 보랏빛 마법진이 궤적을 그려 나갔다.
동시에 형형색색의 마법진들이 눈이 부실 정도로 허공에 도열되었다. 오로지 나만을 표적으로, 나만을 해치우기 위해서. 나를 죽이기 위한 마법만 아니었다면 몹시 아름다운 광경이었을 터다.
콰아앙──!
지면을 지르밟았다. 내 발길질 한 번에 카를리관 꼭대기 층에 균열이 일었다.
손에 얼음 마나를 흘려보내고 전투 태세를 갖췄다.
대규모의 마법진이 내 시야를 뒤덮은 가운데.
외벽이 반파된 건물 안에서 연푸른빛 마법진 하나가 홀로 고독히 빛을 발했다.
────────── [캬하하하하하하하──!!!!]
하킬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사역마 군세의 마법진이 일제히 마법을 토해낸다.
화르르르르르르르륵───────!!!!
콰아아아아아아아───────!!!!
콰가가가가가강───────!!!
드르르르르르륵────── !!!!
번개가 수십 갈래로 뻗어 나온다. 화염과 냉기가 폭풍처럼 들이닥친다. 얼음으로 이루어진 창이 날아들고. 바위가 나를 압사시키려고 한다.
몰려드는 원소 마법은 소나기처럼 피할 곳 없이 나를 덮쳐들었다.
그 모든 공격이, 단 한 순간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멈춰버린다.
───────────── 「엄동의 파란 (얼음 속성, ★6)」
휘이이이이이이────!!!!
차라라라라라락─────!!!
팔을 한 번 거세게 휘두르는 것으로, 내가 만들어낸 마법진은 격한 한파를 삽시간에 퍼뜨렸다.
연푸른빛 냉기 격풍과 굵직한 싸락눈이 모든 원소 공격을 집어삼키고, 사방으로 뻗어 나가 사역마 군세를 단단히 얼려 버렸다.
허무한 최후를 맞이한 사역마 군세는 수직으로 낙하하기 시작.
내장까지 얼어 버린 몸체는 바닥에 부딪힐 때마다 유리 깨지는 소리를 내가며 무력하게 산산조각이 났다.
[하, 하아아아…?]
익룡 사역마를 타고 멀리서 활강하고 있던 사역의 베라는 경악한 얼굴이었다.
7성급 사역마, 하킬은 멀리서 날린 [엄동의 파란] 따위로 별 영향을 받지 않은 듯했다. 원소 저항력이 높은 모양이었다.
나는 무릎을 굽히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지면을 박차고 하킬을 향해 전력으로 뛰어올랐다.
쿠우우우우웅───!!
대포알 발사하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은 매섭게 허공을 가로질렀다.
후드가 격하게 펄럭이는 소리만이 잠시간 귓가를 맴돌았다.
나는 단숨에 하킬에게 맞닿았고, 놈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 [끼에에에에에엑!!!!]
───────── [그오오오오오옥!!!!]
하킬의 비명 소리와 내 버서커 울음소리가 교차했다.
하킬은 나를 떨어뜨리기 위해 몸을 뒤흔들며 사방에 자색 마법진을 구현해냈고.
마법진이 따라다니는 왼손으로 나를 겨냥했다.
───────── 「우레탄 (번개 속성, ★5)」
파지지지지직───!!
콰카카가가강────!!!!!
나를 노리고 있던 마법진들이 일제히 구체형 전격을 쏘아 댔다.
굉음과 함께 자색 전류가 수십 갈래로 뻗어 나와 내 몸을 감전시키려 든다.
초고온의 열기로 나를 태우려 든다.
그렇게 강한 파괴력을 지닌 [우레탄]이 내 몸에 명중했으나.
────── 「얼음 장막 (얼음 속성, ★2)」
내 몸을 지키는 건 기초 원소 마법 [얼음 장막] 하나면 충분했다.
얼음 속성 마법으로 만들어낸 얼음은 번개 속성과 부딪쳤을 때 전류가 흐르지 못한다. 따라서 번개 마법으로 얼음 마법을 뚫으려면 오로지 파괴력에만 의존해야 한다.
거기다 나는 ‘원소 팔찌’를 착용하고 있기까지 하다. 이번 <메르헨의 마법 기사> 3막 4장에 대비하기 위해 번개 원소 저항력을 올려 둔 상태였다.
게다가 내 기본적인 원소 저항력들 중 번개 원소 저항력은 상대적으로 높은 편. 하물며 내 레벨은 하킬보다 18이나 더 높다.
녀석의 공격 따위는 정전기처럼 약간 따끔거릴 뿐이었다.
“내 차례다.” (그으으오오오─!)
나는 오른손에 얼음 마나를 흘려보내 응축시켰다. 곧이어 연푸른빛 마법진이 그 앞에 구현되었다.
하킬이 거칠게 몸을 뒤흔들며 나를 떨어뜨리려고 저항했지만, 그럴수록 나는 놈의 목을 뜯어버릴 기세로 꽉 움켜쥐었다.
그대로, 놈을 향해 응축시킨 얼음 마나를 쏟아부었다.
────────────── 「빙결 폭발 (얼음 속성, ★5)」
콰아아아아아아아아──────────────!!!
────── [끼에에에에에에엑!!!!]
빙결이 폭발적으로 분출했다.
마나 폭발은 하킬의 내장을 박살내고, 빙결은 삽시간에 쇄도해 놈의 몸을 만신창이로 만든 채로 얼려 버린다.
단번에 빙괴를 풀었다. 그러자 연푸른빛 가루가 대량으로 허공에 흩뿌려졌다.
놈은 엉망이 된 몸으로 보라색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으나, 여전히 비명을 내지르며 저항하고 있었다.
한번 더.
나는 다시 오른손에 얼음 마나를 응축시켰다. 그 앞에 [빙결 폭발]의 마법진이 생겨났다.
그대로 그 마나를, 하킬을 향해 쏟아 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끼에에에에에에엑───!!!!]
연푸른빛 빙결이 범람하고, 하킬의 신체를 완전히 박살내 버린다.
거대한 빙괴는 놈의 몸체로부터 뻗어 나가 허공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 무게를 못 견디고 하킬이 일직선으로 추락하려고 할 때.
나는 빙괴를 풀어버린 후, 놈을 향해 오른쪽 주먹을 거세게 날렸다.
퍼어엉───!!!
하킬에 비해 턱없이 작은 내 주먹이 놈의 바다거북 머리를 파고들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갑피가 부서지고 두개골이 박살 나는 섬뜩한 파열음이 들린다.
퍼져나가는 풍압. 공 차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진다. 빙결 해제로 발생한 연푸른빛 가루가 휘몰아치고, 공기에 원형 파문이 일었다.
그때 하킬은, 이미 무서운 속도로 지면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휘우우우우───!!
콰아아앙───!!!
하킬의 거체는 격한 파공음을 내지르며 떨어졌고.
카를리관의 절반을 무너뜨리며 지면에 처박혔다.
흙먼지가 폭풍처럼 몰아쳤으나 하킬의 거대한 몸체를 가릴 순 없었다.
녀석은 머리 반쪽이 움푹 파인 채 피떡이 되어 있었다. 나를 향한 무의미한 저항도 이제는 할 수 없으리라.
[내 아들딸들이…!! 아아아아아…, 꺄아아아아아악!! 아가들아, 내 아가들아아아아아아아악!!!!]
울부짖는 사역의 베라. 그녀는 자신의 사역마들이 처참하게 죽어가는 광경이 가슴 아픈지 슬피 울고 있었다. 소유욕에서 비롯된 정신적 고통일 터다.
이제 그녀를 막아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서서히 내 몸이 중력을 받아 지면으로 떨어지려 할 때.
나는 양손에 [흑빙]을 머금은 검푸른빛 냉기 화염을 휘감고서 사역의 베라를 향해 방사했다.
「서리불꽃 (얼음 속성, ★4)」 + 「흑빙 (얼음 속성, ★5)」 =
─────────────── 「혹한업화 (얼음 속성)」
화아아아아아아악──────!!!
검푸른 냉기 화염이 아카데미 부지 일대를 뒤덮을 만한 면적으로 퍼져나간다.
사역의 베라가 피할 수 없도록 대규모로 퍼뜨린 것이었다.
이내, 냉기 화염의 틈에서 사역의 베라와 그녀를 태운 익룡 사역마가 추락하는 광경이 보였다.
나는 화염을 사그라뜨리고, 중력에 몸을 맡긴 채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쿠우우웅─────!
이제는 건물이라고도 볼 수 없는 카를리관 꼭대기 층에 착지했다. 내 앞에는 사역의 베라와 익룡 사역마가 바닥에 쓰러진 채, 짓밟힌 지렁이처럼 꿈틀대고 있었다.
몸 전체가 동렬해 버린 그들은 뼛속까지 깊이 파고든 짙은 한기 탓에 덜덜 떨고 있기까지 했다.
마치 칼날 같은 눈폭풍이 몰아치는 설산을 헤매다 쓰러져 버린 조난자 같은 모습.
사역의 베라, 그녀는 사역마만 없으면 이토록 허약한 것이었다.
[우리 아가들이, 우리 아가들이…. 아아, 아아아아…! 죽어, 죽어어어어, 흐윽, 죽어어어…. 죽어, 죽어….]
사역의 베라는 손톱이 뜯겨나가도록 바닥을 미친 듯이 긁어댔다. 제 자식을 잃은 부모라도 된 것처럼 구슬프게 흐느끼면서.
이제 끝이다. 나는 마무리를 짓기 위해 베라에게 다가갔다.
──그때.
밀도 높은 번개 보호막이 그 마족에게 씌워졌다.
─────────────── [끼아아아아아악───!!]
“……!!!”
맹금류의 포효.
심장이 내려앉았다. 나는 다급히 두꺼운 얼음벽을 전개했다.
「빙벽 (얼음 속성, ★4)」
────────────「사슬 번개 (번개 속성, ★5)」
파지지지지직────!!!
콰과과과과광─────!!!!
“끄헉!” (그어억!)
섬광.
굵직한 번개가 사슬처럼 이리저리 꺾여 오며 나를 기습했다.
[사슬 번개]는 순전히 파괴력만으로 [빙벽]을 파괴하고 내 육체를 뒤덮쳤다.
우르르르, 격한 전류가 전신을 휘감고.
내장이 타는 고통과 함께 나는 아주 잠깐, 정신을 잃었다.
1초. 내가 다시 의식을 되찾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고기 타는 냄새가 났다. 내 몸에서 나는 냄새였다. 타버린 피부에서 연기 또한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하, 미친.”
후드와 마스크 일부는 번갯불로 태워진 채였다. 버서커 위장이 풀렸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답답했던 후드 모자를 걷어냈다.
분명 죽을 만큼 아파야 할 텐데도, [멸악자]의 효과로 신체가 인간을 초월한 덕분인지 온몸이 사우나에라도 들어온 것처럼 뜨거운 기운만 감돈다.
[빙벽]이 한번 거름막이 되어 주면서 번개의 기세가 꺾인 덕분도 있을 것이다.
────「냉기 발산 (얼음 속성, ★1)」
나는 다시금 온몸으로 희뿌연 냉기를 발산하며 열기를 식히면서.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는 어둠 마나와 자색 번개 마나를 휘감은 검은 뇌조, 뇌신조-갈리아를 눈에 담았다.
차라라랑, 채애앵────!!!
─────우르르르르──── 쾅쾅쾅───!!!!!!
별빛 마법이 한 차례 뇌신조의 몸체를 스쳐 지나갔으나, [뇌공의 결계] 아래에 새겨진 자색 마법진에서 수십 갈래의 낙뢰가 토벌대를 향해 내리쳤다. 도로시에게 공격할 틈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노도의 뇌격이었다.
형형색색의 별 무리로 빛을 발하는 보호막이 토벌대를 지키는 광경이 멀리서 내 눈에 비쳤다. 뇌신조의 마법이 어디서든 토벌대를 공격할 수 있는 상황. 도로시는 섣불리 뇌신조를 쫓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로서 최선책이라고 할 만한 건, 토벌대를 보호막으로 지켜 주면서 함께 언덕을 내달려 뇌신조를 뒤쫓는 방법뿐이리라.
그리고 지금, 그 뇌신조는 나를 향해서 거대한 날개를 펼치며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 뇌신조-갈리아 ]
Lv : 175
종족 : (마족)
속성 : 번개
위험도 : 최상
심리 : [ 당신을 해치우고, 당신을, 당신을, 그 누구도 해치우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
[아아아아, 우리 귀여운…, 귀여운 아기새…. 이 엄마를 지켜 주러 왔구나아…?]
베라는 목을 짜내듯 기괴하게 고개를 꺾어가며 뇌신조-갈리아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목살이 찢어져 핏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뇌신조의 상태는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었다. 몸체 구석구석이 으스러지고 찢겨져 보라색 혈액을 줄줄 흘리고 있었으니.
HP로 따지자면… 20%대인가. 생각보다 체력이 많이 깎여 있었다. 필시 우등생들이 토벌대에 끼어 있어서 훌륭하게 도로시와 이안을 지원해준 덕분이리라.
도로시 입장에선 뇌신조의 HP를 깎는 일이 본래의 시나리오와 비교해서 좀 더 편리했겠지.
이안이 잘 활약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드문드문 빛 속성 마나 잔흔이 눈에 띄었다. 어느 정도는 공격을 먹인 듯 보였다. 그러고서 기절했을까.
─────────────[끼아아아아아───!!]
뇌신조는 나를 향해 날카로운 이빨이 고르게 나열된 부리를 쩍 벌리며 포효했다.
뇌신조 주위로 거대한 보랏빛 마법진이 궤적을 그려 나갔다. 그걸 본 순간, 나는 죽음을 직감했다.
뇌신조가 궁지에 몰렸을 때 사용하는 즉사기 패턴, 7성급 번개 마법 [만뢰]. 즉사기인 이유는 순수하게 ‘위력’이 강력해서 그런 것이다.
저 마법을 막으려면, 마법진이 구현된 순간 빛 속성 검격으로 뇌신조의 몸체에 튀어나와 있는 송곳 형태의 보랏빛 마석을 전부 쳐 내야 한다.
즉…, 나는 저 마법을 막을 수 없다.
하킬이 썼던 마법과는 비교조차 안 되는 고밀도의 마나가 느껴진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정말로, 정말로…, 최악이었다.
“…….”
플랜 B, 플랜 C, 플랜 D…. 내가 배드 엔딩을 막기 위해서, 온갖 변수에 대처하기 위해 세워놨던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나는 이안이 뇌신조의 즉사기 패턴을 겪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데 집중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내게 뇌신조가 들이닥치는 상황을 미처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실패. 실패했다.
이제까지 상대해왔던 마족들과는 차원이 다른 막대한 마나가 내 전신을 짓누르고.
웅대한 마법진의 위용이 나를 압도한다.
────우우우우.
절망적인 상황이 틀림없을 텐데도, 어째선지 세차게 박동하던 심장이 점차 차분해지고 있었다. 뇌신조의 울음소리와 함께 사정없이 포효하는 천둥소리가, [만뢰]의 마법진이 발동되는 소리가 나를 공포로 몰아넣으려 하는데도, 나는 신중하게 전황을 살피고 있었다.
그제야 잊고 있었던 설정 하나가 떠올랐다.
패시브 스킬 [빙제]의 두 번째 효과. 스토리용 설정이라 <메르헨의 마법 기사> 플레이하고는 상관없어서 잊고 있었다.
그것은, 절망할 수밖에 없는 극악의 상황이 들이닥쳤을 때 서리처럼 차가운 마음을 갖게 해주는 것이다.
[빙제]에 담겨 있는 [얼어붙은 영혼] 효과였다.
나는 실패에 적응하지 않으려 애써 왔다.
고시 생활 5년. 신림동 3평짜리 원룸에서 지내며 법학 서적을 산처럼 쌓아둔 채 공부했던 시절.
내가 가장 무서웠던 건 이 생활을 당연시 여기게 되는 것이었다.
매년 고시에 떨어져도 실패에 익숙해지지 않으려 했다. 나를 가두고 있는 그 좁은 공간은 잠깐 머무르고 가는 숙소처럼 생각하려 했다.
그렇게 매일 억지 텐션으로 공부하면서, 하루 공부를 끝마치면 보상 차원에서 <메르헨의 마법 기사>를 플레이하면서.
매년 반복되는 실패와 절망감에서 애써 시선을 돌리려 해 왔다.
사람이 심리적 가면을 쓰고 살면 그 가면이 자기 얼굴이 된다고 하던가.
이 최악의 상황에서도 절망감을 외면할 수 있다니. 어쩌면, 그 시절의 영향도 어느 정도는 개입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참…, 재미없는 이야기다.
━━━━━━━━━━━━━━━「빙제 (얼음 속성, ★9)」━━━━━━━━━━━━━━━
“커헉…!”
핏물이 역류해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빙제]의 힘을 온전히 끌어낸 탓이었다.
세포 하나하나가 바늘로 찔리는 감각이 들었으나, [멸악자] 비활성화 상태일 때보다는 견딜 만했다.
피부의 채도가 높아졌다. 내 은발은 쭈뼛쭈뼛 곤두섰고, 몸체에선 연푸른빛 냉기가 온화하게 흘러나왔다.
본능적으로, 앞으로 10초까지는 버틸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
10초라면.
‘충분하다 못해 여유 넘치지…!’
나는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러지 않으면 발이 움직이지 않을 테니까.
나는 지면을 박차고, 뇌신조를 향해 용수철처럼 도약했다. 내 뒤로 8개의 연푸른빛 마법진이 구현되어 따라붙었고, 오른손에 응축된 검푸른빛 마나 앞에는 [흑빙 폭발]의 마법진이 새겨졌다.
───────────────[끼아아아아아───!!]
찰나의 순간.
내 마법진과 뇌신조의 마법진이 강렬히 발광하며 마법을 쏟아 냈다.
──────────────────── 「만뢰 (번개 속성, ★7)」
──────────────────── 「황천 빙하 (얼음 속성, ★7)」
츠파파파파파팟─────────!!!!!
콰가가가가가가강─────────!!!!!
콰아아아아아아아─────────!!!!!
광명이 내 시야에 비치는 모든 걸 뒤덮었다.
거대한 번갯불이 굉음을 내지르며 사방팔방으로 제 현상을 빈틈 없도록 새겨나가고.
이질적인 푸른빛의 저승 빙하가 구현되어 섬광의 속도조차 따라잡으며, 찰나에 사라져야 할 번갯불조차도 얼려 버린다.
싸락눈을 휘감아 피부를 사정없이 난자하는 차가운 격풍이 카를리관을 중점으로 휘몰아쳤다.
[빙제]의 효과로 몸체에서 흘러나오던 연푸른빛 냉기가 뇌격의 기세를 꺾는다. 그러나 전신에 전류가 와르르 흘러드는 감각을 막을 순 없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격돌 속에서, 나는 오른손에 응축시킨 검푸른빛 얼음 마나를 뇌신조에게 부딪쳤다.
콰아아아아아아아───────!!!
한번 더, 한번 더, 한번 더.
쉴 새 없이 양손에 검푸른빛 마나를 응축시키고, 양팔을 거세게 휘두르며 뇌신조에게 거침없이 [흑빙 폭발]을 쏟아부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
콰아아아아아아아───────!!!
콰아아아아아아아───────!!!
콰아아아아아아아───────!!!
콰아아아아아아아───────!!!
콰아아아아아아아───────!!!
콰아아아아아아아────……….
귀가 멀고 있다.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뇌신조가 쓰러질 때까지 마법을 퍼부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나는 전신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외면하고, 목청이 터져라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양손에 몇 번이고 얼음 마나를 응축시키고 폭발시키며, 폭발시키며, 폭발시키며.
뇌신조를 향해 [흑빙 폭발]을 퍼부어댔다.
내가 [흑빙 폭발]을 날릴 때마다 검푸른빛 빙결이 폭발적으로 범람했다가 가루가 되어 흩어지길 반복했다.
이어지는 폭발 탓에 일대를 뒤덮을 만큼 거대하게 치솟아 있던 번갯불 얼음 나무가 와르르 깨져나갔다.
검푸른빛 빙괴가 연신 솟구친다. 저승의 빙괴는 조각조각 사방으로 비산한다.
그 어떤 사고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본능적으로 빙결 해제를 써서 [황천 빙하]로 일궈낸 빙괴 조각들을 없애버렸다.
냉기가 휘몰아친다. 저승 빙괴가 사라지며 발생한 이질적인 푸른빛 마나가 난무한다.
그 틈에서 내 눈에 비친 건.
온몸이 비틀려 버린 채 거대한 빙괴 속에 갇혀 버린 검은 뇌조의 모습이었다.
빙괴 옆에 나뒹굴고 있던 사역의 베라는 어느새 몸체의 절반이 날아가 있었다. 마치 흉상 같았다. 그나마 남아 있는 일부 몸체도 동상과 동렬로 만신창이나 다름없었다.
내 얼음 마나가 폭발하고 사그라지고 폭발하길 반복하는 과정에서 그리 된 듯 보였다.
그녀는 일그러진 얼굴로 나를 쳐다보다가, 이내 잿빛 가루가 되어 허무하게 흩날렸다.
비로소 이성을 되찾았을 땐, 싸락눈과 함께 휘몰아치는 냉기 격풍 속에서.
나는 서 있었다.
그저, 서 있었다.
[축하합니다! [사역의 베라(Lv 125)]를 처치하고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Level Up!! Lv이 60으로 상승했습니다!]
[스탯 4를 획득합니다!]
[업적 [7성급 마법도 끄떡없어!]를 달성했습니다! 모든 원소 속성 저항력이 [10] 만큼 증가합니다!]
[업적 [뇌신조 격퇴]를 달성했습니다! 보너스 스탯 15를 추가로 획득합니다!]
[당신은 용맹한 기개로 나라멸망급 마수 [뇌신조-갈리아(Lv 175)]를 기절시키고 [사역의 베라(Lv 125)]를 처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승과 저승 간의 중계자가 되어 세상을 관조하고 있던 천앙의 대마녀가 당신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전설 업적 [그레텔에게]를 달성했습니다! 천앙의 대마녀로부터 선물을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