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56화 (56/334)

EP.56 Prologue (6)

“……?”

시간 역행 현상이 끝났을 때, 나는 투박하고 좁은 방 안에 가만히 서 있는 채였다.

은은한 나무 냄새. 열린 창틈으로 흘러 들어오는 흙냄새. 조금 전에 비가 그친 듯했다.

창밖을 들여다 보면, 드넓은 초목 너머 먹구름을 개고 있는 하늘의 전경이 눈에 비쳤다. 무지개가 세상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정겨운 풍경. 정겨운 냄새.

처음 와 보는 곳임에도, 나는 향수에 젖은 사람처럼 마음이 점점 편안해지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일까. 그 의문의 답을 나는 본능적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집이구나. 아이작의 집.’

가속되었던 시간 만큼 내 시간도 역행한 탓에, 나는 2년이 훌쩍 넘는 과거로 넘어온 것이었다.

나는 볼품없는 연갈색 셔츠 차림이었다. 밑단을 들어 올리자 이미 얼어 있는 복부가 눈에 비쳤다.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는 터널로 돌아가지 못한 걸 보면 나는 시련을 통과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직은.’

아직, 아직은.

이곳이 시련이 끝나는 장소임을 직감했다. 시간 가속화와 시간 역행, 그리고 아이작의 과거. 이 일련의 흐름 자체가 시련을 통과하기 위한 정답일 터였다.

악신의 부활을 저지하는 일은 단순히 이 최종 관문에 이르기 위한 과정에 불과했던 것이리라.

문득 책상에 놓여 있는 쪽지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네 누나를 미워하지 말렴’이라는, 누군가의 부탁이 적혀 있었다.

이 글씨체가 누구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무척 그리운 느낌이 났다.

나는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폭이 좁은 복도. 벽면에 청은발을 늘어뜨린 앳된 여성이 벽에 기댄 채 서 있었다.

적안. 내 것과 닮았다.

“준비됐으면 가봐. 난 볼 면목 없으니까.”

가라앉은 목소리. 그녀가 누구인지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는 감각이 들었다.

아이작의 친누나인가.

그녀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 한 마디만 내뱉고서 더는 나와 말을 섞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정확한 사연은 모르겠으나, 나는 그녀의 의사를 존중하고 혼자서 복도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나무판자로 이루어진 바닥은 발을 내디딜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를 냈다. 상당히 오래된 집이었다.

─ ‘내가 뭘 할 줄 안다고….’

한 남자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흐릿하게 뇌리를 스쳤다. 동시에 계단 쪽으로 이끌림이 느껴졌다.

걸어 나갔다. 한두 번 부서진 적이 있는지 보수된 흔적이 있는 나무 계단을 밟으며 위로 올라갔다.

─ ‘버러지 같은 놈이라고, 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으나 익숙한 목소리가 간헐적으로 머릿속을 울려대고 있었다.

─ ‘나 같은 놈의 어디가 엄마의 자랑이란 건데?’

2층으로 올라오자 다락방이 나오고.

─ ‘난 무능한 놈이야, 엄마. 무능한, 무능한… 아무런 재능도 없는, 촌극의 엑스트라 같은 놈….’

초가을 바람에 하얀 실크 커튼이 나부끼고 있었다.

그 앞에, 낡고 닳아버린 침대에.

청은발의 중년 여인이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며 시체처럼 누워 있었다.

몸을 덮은 이불 위에 올라와 있는 앙상한 두 팔.

수척하다. 삐쩍 마른 여인의 몸에선 아무런 생기도, 생명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 ‘미안해, 엄마. 미안해…. 고작 이런 놈이라서 미안해….’

“아이작 왔니…?”

가슴속이 울컥거렸다. 내 감정이 아니라 아이작 본연의 감정인 것 같았다. 이 몸에 남아 있는 강렬한 후회의 기억이 그 한 마디에 반응한 것이었다.

청은발의 여인은 내 쪽을 바라보며 겨우 힘을 내 웃었다. 이리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살가죽이 뼈에 달라붙어 있는 빼빼 마른 손.

천천히 그녀에게로 걸어갔다. 침대 옆에는 누군가가 언제든 앉기 위해 마련해 둔 호두나무 의자가 놓여 있었다.

“불러서 미안하구나…. 뭐해, 안 앉고…?”

여인의 목소리는 수분기 하나 없는 마른 논밭처럼 쩍쩍 갈라졌다.

여인이 나를 불렀을 때로 시간을 거슬러 온 것이었나. 그리 생각하며 나는 의자에 앉았다.

내 눈앞에 보이는 여인이 누구인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청은발, 적안. 아이작은 자기 엄마를 쏙 빼닮은 거였구나.

창밖, 적당히 크기를 키운 단풍나무가 눈에 비쳤다. 바람에 흔들거리는 단풍잎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손을 잡아주겠니…?”

나는 여인의 마른 손을 감싸쥐었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불렀단다….”

여인은 눈 한 번의 깜박임조차 사치라는 듯, 찰나의 순간순간마저 아껴가면서 내 얼굴을 눈에 담으려 했다.

“아이작이 8살 때였겠구나….”

기억을 되새김질하는 그녀. 소중한 기억을 곱씹는 얼굴이었다.

“그때 엄마가 농담 하나 했었지. 만약 엄마가 엄청난 마법사나 훌륭한 기사 같은 게 돼 버려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멀리 떠나버리면 어떡할 거냐고….”

여인은 피식 웃었다.

“활기찬 아이였으니까, 넌…. 분명 말도 안 된다면서 웃어 줄 줄 알았어. 근데 그때, 네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니…?”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냥… 눈물만 글썽이고 있었지.”

해맑게 웃는 여인. 모자람 없이 행복해하는 얼굴이었다.

“그때, 나는 정말 복 많이 받은 여자라고 생각했어….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들이 내 곁에 와주다니….”

여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태어나줘서 고맙구나, 아이작. 나한테 너는, 무척이나 자랑스러운 아들이었어….”

“…….”

삐걱대는 복도를 걸으면서, 계단을 오르면서 머릿속을 울려댔던 목소리가 다시금 떠오른다.

아이작의 목소리였다.

방금 전 여인의 말에, 아이작은 자신을 깎아내리며 울기만 했었다. 이제 떠나려는 여인에게, 엄마에게 조금도 자랑스럽지 못한 아들이라며,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기억 속, 여인은 아이작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서 웃는 얼굴로 고개를 가로젓기만 했었다.

아이작이 뭐라 하든, 여인에게 그는 누구보다도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아들이었으니.

비 맞은 진흙처럼 덕지덕지 달라 붙어있던 아이작의 후회, 트라우마. 이 시련의 마지막 관문은, 그 가슴에 사무치도록 후회스러웠던 한때를 뒤엎는 것이리라.

떠나가는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 자기 비하라니.

그 사실이 아이작은 참을 수 없이 한스러웠던 것이다.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까. 그리 고민할 것도 없었다.

왜냐하면 아이작이 줄곧 이랬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던 단어들이 내 머릿속에서 나열되기 시작했기에. 나는 그대로를 읊어 주면 되었다.

나는 여인의 손을 감싸쥔 채로, 은은한 미소를 흘리면서.

조곤조곤 입술을 달싹이기 시작했다.

“그러게, 참 복도 많이 받았다 엄마는. 나 같은 잘난 아들도 낳고.”

장난스럽게 한번씩 웃어 주고.

“내가 이 얘기 했던가. 나, 이 나라 최고의 명문 아카데미 마법학부에 들어가려고 하거든. 잘난 사람들만 모이는 곳. 거기서 마법을 연마하고 갈고 닦아서 언젠간 대마법사가 되려고 해. 황국도 감히 날 못 건드릴 거야.”

“…….”

“그런 나를 낳아줬으니까, 엄마는 정말로 굉장한 사람이지.”

나는 환하게 웃었다.

“나한텐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사람이었어. 낳아줘서 고마워, 엄마.”

여인의 눈가. 차오르는 눈물이 그녀의 생기 없던 눈동자를 반짝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환하게 웃자, 눈가에 맺혀 있던 투명한 눈물이 뺨을 타고 매끄럽게 흘러내렸다.

조금도 걱정할 게 없겠다는 표정.

초가을 바람 소리, 커튼이 나부끼는 소리.

적막.

창밖 단풍나무의 단풍잎 하나가 흘러가는 바람에 자연히 떨어져 내린다. 자연의 이치란 그런 것이니.

<메르헨의 마법 기사>. 극 중 조명받지 못한 평범한 엑스트라의 최후란 한낱 낙엽이 떨어지는 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그 어떤 감명도 주지 못 하는.

보잘것없는, 아무것도 아닌.

주역이 아닌 삶.

그러나 극의 조명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라도,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었다.

아이작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새겨진다.

모친이 별세하기 전에 슬피 울면서 자신을 비하했던 아이작은, 의지를 가다듬고 메르헨 아카데미를 노리기 시작했다.

마법에는 영 소질이 없었으니, 이론 공부를 죽어라 파헤쳐 이론 우수자 전형을 노렸던 것.

그렇게 아이작은 선택과 집중을 한 끝에 메르헨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는 하나의 요행에 불과했을 뿐. 아카데미에 와서 한계에 부딪히고, 학생들의 비아냥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실감하고서.

같은 마력량 E급이었던 이안의 뛰어난 성장 속도를 바라보며 더욱 좌절하면서.

아이작은 결국 아카데미 방학 도중, 모친을 쫓아 이 세상으로 돌아올 수 없는 먼 여행을 떠나버렸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 중간부터 아이작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던 이유는 그가 실종된 까닭이었던 것.

엑스트라. 고작 엑스트라였던 아이작.

그러나 그에게도, 아이작이라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이 엑스트라가 아닌 주인공이 되려고 했던 아이작이 못 다한 이야기, 그 프롤로그였던 것.

여인은 웃는 얼굴로 눈을 감았다. 나는 그녀의 이마에 내 이마를 살며시 맞대고, 조용히 눈을 감은 채 온화하게 스며드는 가을 바람을 만끽했다.

나는, 마지막 여정을 떠나는 여인을 배웅했다.

.

살기 어린 차가운 삭풍이 방한복을 뚫고 내 전신을 난자하고 있었다.

그러나 피부가 칼로 난도질당하는 고통에도 아랑곳 않고 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내 시야엔 칠흑 같은 어둠과 휘몰아치고 있는 눈보라가 가득했으나.

빛줄기가 보이고 있으니, 나는 망설임 없이 그것만을 향해 나아가면 됐다.

나는 아이작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면서 시련을 통과했다. 세상은 무너졌고, 눈을 감았다 뜨니 현실로 되돌아와 있었다.

얼굴은 굳어 있었다. 입술은 새파랗게 물들었으리라. 온몸은 격렬하게 떨리고 있었으며, 서늘한 한기가 뼛속까지 그득해진 상태.

숨 넘어가는 소리밖에 낼 수 없었다. 이미 발은 무감각해졌으나, 여기서 멈춰버리면 그대로 모든 게 끝나버린다는 사실을 짐작하고 어떻게든 다리를 움직였다.

빛줄기가 점점 가까워진다. 이미 신체의 많은 부위가 감각을 상실하고 언제라도 무너지고 싶은 충동이 연신 나를 덮쳐왔으나, 목적지가 가까워져 가는 걸 보니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방향을 유지한 채로 눈을 감았다. 숨이 멎어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음에도 그리 한 발짝씩 발을 옮기고, 옮기고, 옮기고.

마침내 어둠뿐이던 세상이 환해지자, 나는 무거워진 눈꺼풀을 겨우 들어 올릴 수 있었다.

연푸른빛 마나가 공간 한가운데를 구심점으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 있는 건 허공에 떠 있는 군청색의 대낫이었다.

다리의 감각이 완전히 사라졌다. 나는 앞으로 나자빠졌다.

바득바득, 손으로 얼음 바닥을 긁어가며 앞으로 기어나갔다. 두꺼운 장갑 낀 손이 자꾸만 거슬려서, 아예 장갑을 벗어 던지고 칙칙한 빛깔이 되어 버린 손으로 바닥을 짚어가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윽고 손가락마저 감각을 상실하자, 얼굴과 이빨로 얼음 바닥을 긁어가며 나아가고, 나아가고.

마침내, 나는 냉기 마나의 근원지에 가까이 도달했다.

그 탓에 신체가 급속도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몸 상태가 된 게 지금이라 천만다행이었다.

무감각해진 팔. 그래도 팔뚝과 어깨 근육 쪽은 아직 쓸만했다.

나는 가까스로 팔을 들어 올려 서리낫을 향해 손을 뻗어나갔다.

팔이 얼어간다. 짙은 냉기가 피부를 찢어나가고, 동상과 동렬로 만신창이를 만들어간다.

그래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라고 속으로 되뇌며 팔을 뻗어 나갈 뿐이었다.

그리고. 이윽고. 내 손은.

냉기 마나를 뚫고, 서리낫에 맞닿았다.

“닿았…다…!”

극한의 추위로 머리까지 얼었는지 정확한 사고는 할 수 없었다. 얼굴 한쪽도 완전히 얼어버려 표정조차도 일그러졌으나.

단지 서리낫에 내 손이 닿았다는 생각에 나는, 나는.

무척이나 뿌듯한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당신은 강인한 의지와 정신력으로 서리의 시련을 통과했습니다!]

[축하합니다! 시련 보상 [힐드의 서리낫]을 획득했습니다!]

[[힐드의 서리낫] 고유 액티브 스킬 [천공 지배-백야]를 습득했습니다!]

[[힐드의 서리낫] 고유 액티브 스킬 [천공 지배-상야]를 습득했습니다!]

[[힐드의 서리낫] 고유 액티브 스킬 [서리군주의 위광]을 습득했습니다!]

[[힐드의 서리낫] 고유 액티브 스킬 [절대영도]를 습득했습니다!]

[[힐드의 서리낫] 고유 패시브 스킬 [급속냉각]을 습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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