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59화 (59/334)

EP.59 마부 (1)

[차기 빙제 후보가 정해졌단 말인가.]

북부 지역, 화이트클락 공작령.

화이트클락 가문에는 제르베르 황국을 발칵 뒤집을 수 있는 비밀이 여럿 있었다. 가계 마법 [시야 동화]가 그 대표적인 예이나, 이조차도 티끌 수준에 불과했다.

요주인물은 에이첼 화이트클락. 화이트클락 공작 가문의 장녀이자 차기 가주. 두터운 지지 세력도 갖추었기에 그녀의 입지는 공고한 편이었다.

실제로는, 그 표면적인 입지조차도 그녀를 재단할 수 없었으니.

화이트클락 저택 지하실엔 원탁 회의실이 하나 있었다.

호화롭게 꾸며진 외관이 무색하게도, 벽면에 설치된 발광 램프만이 미약한 불빛을 흩뿌리고 있는 탓에 공간은 시종 어두운 편이었다.

그곳에서 에이첼은 원탁 끝부분에 다소곳이 선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호화로운 좌석 중 하나가 유독 밝게 빛나고 있었다. 번개 마나로 이루어진 성인 남자의 형상이 앉아 있는 까닭이었다.

고상한 자태. 그는 팔걸이에 팔꿈치를 올리고, 살짝 쥔 주먹으로 턱을 괴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번개의 원왕이시여.”

에이첼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렸다. 그녀는 아직 채 다 낫지 못한 오른쪽 눈가에 안대를 낀 채였다.

번개 마나로 이루어진 형상은 대마법사이자 번개의 원왕.

‘번개의 신’의 위치에 있다고 하여 ‘뇌제(雷帝)’라 칭해지는 어느 남자의 것. 마치 원격조종용 인형과도 같았다.

각 원소 속성의 제왕, 일명 원왕은 한 사람 한 사람 자체가 하나의 국가이자 군대, 법도나 다름없다.

저마다 나라를 일구어내 다스리고 있으며, 순수한 무력만으로 전세계를 뒤흔들 수 있는 굳센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제르베르 황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때문에 수 세기가 넘는 역사 속, 제르베르 황국은 원왕의 존재가 출현하면 되도록 친선 관계를 맺으려는 태도를 취해왔다.

역사 속 갖은 갈등도 있었으나, 현재로썬 완전히 고착화된 전통이었다.

[서신을 보고 아리송했다만…. 다른 원왕들의 반응은?]

“차후 원왕 회의의 안건 정도로만 여기고 계신 듯합니다. 단순히 얼음 속성이면서 마법적 재능이 출중한 인간이 나타난 줄로만 알고,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그리고 만약, 원왕들이 3년에 한 번씩 모여 원탁회의를 갖는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황국을 넘어 전세계가 식겁하리라.

원왕은 마법사 계열의 정점. 이 세계에서 마법사로선 가장 강한 존재이다.

황국 내에서도 치외법권으로 취급되는 대마법사란 존재.

그중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각 원소 속성의 아인들과 괴수들이 주인으로 섬기는 인물은 자연스레 원왕이라 불리게 되며, 나라를 건국하게 되는 것이다.

원왕이란 그 정도로 위대하고 위험한 존재인 탓에 그들은 화합을 도모하자는 명목으로, 실제론 서로를 견제하기 위한 회의를 주기적으로 열기로 합의했다.

그 진행자로서 중립의 입장에 설 수 있는 제르베르 황국 내 화이트클락 가문의 차기 가주, 에이첼이 발탁되었다.

에이첼은 유능하며, 지지 세력도 출중하며, 귀족으로서의 지위도 드높으며, 차기 황국의 북부대공녀가 될 유망전도한 인재이니. 무엇보다도 평화를 사랑한다는 점이 원왕들의 의사를 합치시켰다.

[나도 처음엔 같은 생각이었다만, 갑자기 호기심이 짙어지더군. 천 년간 공석이었던 ‘빙제’가 될 새로운 후보…. 그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그대가 모르진 않을 터이니.]

“그렇습니다.”

[보여주겠는가? 그대가 빙제 후보라고 말한 이유를,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군.]

에이첼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인 후, 자기 이마에 손가락을 올렸다.

손가락에 마력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머릿속에 담겨 있는 영상 하나를 끄집어내는 과정이었다.

이어, 에이첼은 원탁의 한가운데로 손가락을 휘두르고.

그녀의 머릿속에 담겨 있던 영상이 번개의 원왕, 뇌제 앞에서 재생되기 시작했다.

「시야 동화─재생 (중립 속성, ★0)」

화이트클락 가문의 가계 마법 [시야 동화]를 통해 한 남자의 시야로 보았던 머릿속 영상이었다. 며칠 전, 케리드나로부터 강탈해온 것이었다.

영상 속, 시야 주인의 손에는 서리낫이 들린 채였고.

신화 속 백룡, 빙설룡-힐드는 그의 사역마가 되어 있었다.

그 광경을 본 뇌제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어 시야 주인이 신장 4m쯤으로 보이는 마족과 싸움을 벌이던 도중, [서리군주의 위광]을 발동하고.

영상은 뚝 꺼지듯 사라져 버렸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뇌제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저 자는…?]

“말씀드린 차기 빙제 후보입니다. 이름은 ‘아이작’. 청은발과 적안을 지니고 있으며, 성씨조차 없는 평민. 현재 제르베르 황국 메르헨 아카데미에 1학년으로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호오, 학생?]

뇌제의 기품이 넘쳐나는 말투엔 감탄사가 섞여 있었다.

고작 아카데미 1학년 수준의 나잇대.

아이작이란 남자는 압도적인 재능을 타고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마법적 재능을 타고난 게 뭐 대수란 말인가.

중요한 건 태초의 원왕이 다스렸던 신화 속 마수와 서리낫의 인정을 한꺼번에 받았다는 것. 이는 상정을 뛰어넘어도 한참이나 뛰어넘는 문제였다.

아이작이라는 평민이, 누구보다도 빙결의 제왕에 어울린다는 의미나 다름없다는 이야기이므로.

[메르헨 아카데미…. 최근 마족이 수 차례 출몰했었단 소식은 들었네. 정체불명의 괴물이 그 마족들을 처치하고 다닌다는 소식까지도. 제르베르 황실 기사단까지 나섰다니 모를 수가 없더군. 그 괴물이 저 아이였던 건가.]

“정보들을 취합해 본 결과, 명백한 수준입니다. 아무래도 자기 정체를 숨기고 다니는 듯합니다.”

[마법 위장복인가.]

“예, 아마도.”

메르헨 아카데미에서 벌어진 일들은 방학이 되고 황실 기사단까지 나서면서 죄다 수면 위로 올라온 상태였다.

잦은 빈도로 출몰하는 마족과, 그런 마족을 처치하고 다니는 괴물 마법사. 그리고 빛의 아이, 이안 페어리테일까지.

[목적은… 빛의 아이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인가. …이 부분은 우리끼리 왈가왈부해봤자 의미는 없겠군. 명확한 게 없으니.]

뇌제는 턱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어갔다.

[확실히, 보고 나니 흥미로운 정보일세. 저 아이는 필시 대마법사의 경지에 이를 터. 단언하지. 차기 빙제로서 ‘유력하다’란 수준을 넘어 확정이나 다름없는 수준이네.]

뇌제가 그리 말하고 있을 때, 에이첼은 우물쭈물 말을 아끼고 있었다. 뇌제는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왜 그러지, 에이첼?]

“…이번 정보의 출처는 제 여동생, 케리드나 화이트클락입니다. 그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어 보니, 차기 빙제 후보는 마력량 E급으로 책정돼서 안 좋은 의미로 유명인이라고 합니다. 이는… 최하위 수준입니다.”

[…….]

“불과 이번 1학기가 끝나기 전까지도, 그는 약해 보였다고 합니다.”

뇌제는 에이첼이 한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대번에 짐작했다.

[자기 마력량을 숨길 수 있다?]

최대 마력량 조작.

이는 세포 하나하나를 제멋대로 주무르는 일이나 마찬가지. 그만큼 말도 안 되는 일이나, 이미 인간의 범주를 초월한 뇌제와 같은 대마법사의 경지에 이른다면 어떻게든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작이란 아카데미 1학년생은 이미 그 최대 마력량 조작을 해내고 있다는 얘기였다.

현재 대륙 최고의 천재를 꼽자면 다들 입을 모아 ‘도로시 하트노바’라는 이름을 언급할 것이다.

하늘의 축복을 몰아받은 천재로 여겨지며, 별의 요정 스텔라와 계약을 맺기까지 했으니. 앞으로 10년 안에 충분히 대마법사의 경지에 이를 수 있으리라 전망되고 있었다. 이조차도 태초의 원왕 수준에 가까운 뛰어난 재능이었다.

그런데 아이작이라는 평민이… 이미 그 수준을 한참이나 앞서고 있다는 말인가?

지하실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존재 중 한 명은 자신보다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사내의 이름 ‘아이작’을 머릿속으로 곱씹으며 말없이 감탄하고 있었다.

[저 자가 빙결의 제왕이 된다면, 얼마나 강대한 얼음 제국이 형성될지 감도 안 잡히는군. 빙설룡과 서리낫이 주인으로 인정했을 정도이니, 그 흉포한 괴물들도 예외는 아닐 터….]

아이작. 훗날 그가 대마법사가 되어 원왕의 자리에 오를 것은 누가 보아도 자명했다.

그리고, 무질서 속에서 난폭하게 진화해온 수많은 얼음 아인들과 마수들이 새로운 주인을 맞이해 질서를 되찾게 되리라. 그들은 자신들을 이끌어 줄 새로운 주인만을 줄곧 기다려 왔으니.

그중 특히 경계해야 할 건.

“‘빙퇴웅-바르바토마’, ‘상귀-메르뷸’, ‘태동악-투가로스’… 말씀이십니까?”

뇌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각자 혼자서 힘을 키워오며 ‘지변(地變)’이나 ‘천변(天變)’의 반열에 오른 존재들.

빙퇴웅, 상귀, 태동악.

그 흉악하고 막강한 괴물들이 일제히 아이작을 주인으로 모시게 된다면.

안 그래도 빙설룡과 서리낫의 주인이자, 압도적인 마법적 재능을 타고난 아이작의 권위가 얼마나 드높아질지는… 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자네 생각은 어떻지?]

에이첼은 두 눈을 지그시 감고서 생각을 정리한 뒤, 다시 눈을 뜨고 자기 의견을 개진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아이작이란 남자는 메르헨 아카데미라는 장소에서 벌어질 원인불명의 잦은 마족 출몰 사태를 예측하고 입학한 것이라 추정됩니다. 아마도… 타인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영웅 같은 성향을 타고난 자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에이첼은 이죽거리는 입가를 감추지 못했다.

“저는 평화를 사랑하는 자. 자기희생 정신이 투철한 자가 그 많은 지변과 천변의 지배자가 되어 질서를 찾아줄 수 있다면.”

평화를 향한 에이첼의 광적인 집착이 뇌제의 시야에 또렷이 내비쳤다.

“저로선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

아이작이 누구인진 모른다. 그의 취미가 뭐든, 이상형이 뭐든, 좋아하는 음식이 뭐든,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에이첼은 오로지 객관적인 진실만을 살폈다.

바로 아이작이란 남자가 마족들을 처치해가며 사람들을 지켜내고 있다는 사실을.

“그러니 아이작이란 남자가 제 기대대로의 인물이라면, 훗날 빙제의 자리에 올라 지고하신 원왕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길… 개인적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천 년간 빙제의 자리는 공석이었다.

그래서 에이첼은 [서리군주의 위광]에 당했던 날, 아이작이란 유력한 빙제 후보를 알게 되면서 빙결의 괴수들을 억제할 수단이 생겼다는 생각에 기뻐했던 것이었다.

[…자네 뜻은 알겠네.]

뇌제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좋은 정보였네. 호기심에 못 이겨 다행이었군.]

그 말을 끝으로, 뇌제를 이루고 있던 번개 마나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에이첼은 고개를 숙였다.

한편.

번개의 나라, ‘자브로크’.

웅대한 성 내부, 그랜드 홀엔 자브로크를 상징하는 색깔인 자색과 금색으로 이루어진 호화로운 하나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 의자에 앉아 있던 호리호리한 검은 로브 차림의 남성이 조용히 눈을 떴다. 앞머리가 반올림된 보랏빛 머리칼. 남자의 눈동자엔 짙은 농도의 번개 마나가 화려하게 흐르고 있었다.

“발칸.”

[예! 뇌제 님!]

남자의 기품 있는 목소리가 공기를 울리자, 왕의 의자 앞에 번개 마나가 응집되더니 몸집이 큰 군청색 고릴라의 형태가 되었다. 어깨에 상시 흐르고 있는 번개 마나. 6성급 사역마, 발칸이었다.

발칸은 한쪽 무릎을 굽히고 고개를 숙여 제 주인에게 예를 표하고 있었다.

“제르베르 황국, 메르헨 아카데미에 가겠다. 당장 수속을 밟아라.”

뇌제의 우아한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아이작. 그 사내를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자며.

뇌제는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 * *

“이든, 부디 날 ‘라이더 아이작’이라 불러 주지 않겠니?”

[꾸웅!]

은근히 기분이 들떠서 작은 골렘 사역마, 이든을 상대로 헛소리를 지껄여 봤다. 웃으면서 호응해주는 녀석이 고마웠다.

서리낫을 얻었으니 계획대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마부(魔夫)’ 일이었다.

전술했듯, 여기서의 마부는 마력으로 마차(魔車)를 운행하는 직업을 일컫는다.

그렇다고 말로 끄는 기본적인 마차(馬車)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단지 메르헨 아카데미 부지 내에선 마력을 운용하면서 끌고 다니는 마차가 애용될 뿐인 거지.

여담이지만, 방학이 끝나고 귀가한 학생들도 다들 말로 끄는 기본적인 마차를 타고 갔을 것이다. 그편이 안정적이니까.

아무튼, 나는 투박한 마부 복장을 한 채 작은 마차 하나를 빌려온 상태였다.

마부 일은 [원소 효율]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원소 효율] 자체를 늘려주는 일이기도 했다. 메르헨 아카데미 학생인 내게는 최적의 아르바이트였다.

물론 며칠간 마차 운전을 연습하고, 마부장에게 인정받아야만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식이었다. 그래서 요 며칠간 빡세게 마차를 끌어보았다. 아카데미 부지 맵은 숙지한 상태라 길 찾기는 문제없었고.

“역시 방학이라 사람이 적네.”

옆에서 이든이 ‘꾸웅’하고 맞장구 쳐줬다.

내가 있는 곳은 마차 정류소. 학기 중엔 떠들썩했던 곳이 지금은 그저 한산했다. 적은 수의 마차밖에 없었다. 방학이 되면 학생들 대부분이 아카데미를 떠나기 때문에, 마부들로서도 굳이 여기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어서 그렇다.

즉, 방학 동안 마차 서비스 공급은 매우 적은 상황.

하지만 아카데미 부지엔 여러 상업 지구가 조성되어 있고, 아카데미에 남아 있는 학생들도 상당수 있어서 마차는 필시 수요가 있을 터였다.

어째 정류소엔 손님이 찾아오지 않고 있었지만.

“음. 이든, 영업하러 가자.”

[알았따!]

내 고민은 짧았다.

본래 영업은 발로 뛰면서 하는 것.

나는 움직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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