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69화 (69/334)

EP.69 땅속 거인 (3)

“왜 그랬지, 진짜아….”

아스트레앙 공작령에 위치한 드넓은 초목은 수채화로 아로새긴 듯 눈을 뗄 수 없는 전경을 뽐내고 있다. 화록청의 요정 ‘실피아’의 마나가 은은하게 흐르고 있기에.

그 전경을 감상하며 나아갈 수 있는 넓은 포장길은 막힘없이 쭉 뻗어 있다. 이는 아스트레앙 공작령이 무역의 요충지라고 불리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때는 여름 방학. 카야 아스트레앙은 아스트레앙 대저택에 귀가했다.

기세등등하게 메르헨 아카데미로 떠났던 때와는 달리.

저택에 돌아온 카야는 피폐해진 모습으로 사용인들을 놀라게 했다. 달리는 마차 안에서 자기 실수를 곱씹었던 까닭이었다.

한동안 카야는 입맛이 생기지 않아 식사는 거의 거르듯이 했고.

걸을 땐 비치적거렸으며.

밤마다 침대 위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채 깊은 탄식을 내뱉기도 했다.

어쩔 수 없었다. 돌아버리겠는걸.

방학식 때, 치솟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급발진해서 아이작 님 뺨에 키스해 버렸잖아.

그에게 부담감을 주지 않았을까. 줬겠지. 분명 그랬을 거야.

그날 이후 ‘대체 왜 그랬지?’란 말을 얼마나 많이 반복했을까.

후회의 늪에서 자맥질하길 며칠째. 고민조차도 입에 담을 수 없었다.

카야가 누군가를 연모하고 있다는 사실이 저택 내에 퍼진다면.

그녀의 아버지, 제랄드 아스트레앙이 불같이 노할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는 고지식하고 보수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

카야에게는 훗날 아카데미를 졸업해 공작 신분에 걸맞은 인물을 만날 때까지 연애는커녕 연심을 품는 일조차 금지라고 엄포해 둔 상황이었다.

그나마 마음 편하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화록청의 요정 실피아는 어째선지 숲에 가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으니…. 카야로선 미칠 노릇이었다.

밤. 잠들 시각.

어두운 방 안, 카야는 침대에서 뒤척이고 있었다.

“왜 그랬어어…, 왜애. 흐흑.”

카야는 학기말 평가 때 아이작이 줬던 마도무기, 아르마나의 완드를 소중히 껴안은 채 울먹였다.

며칠째 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마다 반복하고 있는 패턴이었다.

“…….”

물론 방학식 날의 후회스러웠던 기억만 남아 있진 않았다.

달빛이 창문을 뚫고 스며들고 있었다. 카야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밝은, 초승달.

메르헨 아카데미 부지, 탄타크 지하동굴에 갔던 날에도 저런 초승달이 하늘에 걸려 있었다. 달의 형태까지 기억날 정도로 그날은 카야에게 몹시 인상적인 날이었다.

아이작과 캠핑했을 때였다. 그날 심장이 터질 만큼 긴장했던 까닭인지, 아직까지도 기억이 생생했다.

자기 담요를 덮어 주셨지. 예쁘다고도 해주셨고.

품에 안고 있는 완드의 매끄러운 감촉은 학기말 평가 때의 기억을 되살렸다.

너는 내가 인정한 사람이라고 단호하게 말씀해주셨지. 그 한 마디를 곱씹을 때마다 얼마나 기쁜지 그분은 모르실 거야.

“…보고 싶다, 아이작 님.”

새삼스레 느끼지만.

어느새 아이작이란 존재는 카야에게 달빛처럼 은은히 스며들어 있었다.

* * *

[주인, 저 아이는…? 카야가 아니더냐? 네가 줄곧 얘기했던.]

“봐주지 마라.”

빙설룡-힐드가 묻자 걸리적거리는 위장막을 벗어던지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무리 시나리오가 꼬였다고 한들, 결국 카야를 구해낼 방법은 그녀를 쓰러뜨리는 것뿐이었으니.

귀걸이 형태의 기생충이 된 무상의 엘페르트는 카야와 피를 공유한다.

기생충 상태의 놈은 원소 저항력이 최고 수준. 거인의 외피가 외부 마력을 꼬아놓듯, 엘페르트도 마법 한 대 정도는 어떻게든 무력화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즉, 카야와 엘페르트에게 동시에 치명상을 입히면.

엘페르트는 무조건 내 공격을 버텨낸 뒤 죽을힘을 다해 숙주인 그녀를 회복시켜주리라.

그만한 그릇이 없기 때문이며, 애당초 시체와 피를 공유하면 자신도 죽음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후, 10분간 무능해진 몸으로 도망쳐 다닐 터였다.

물론 나는 놈에게 도망칠 시간을 허락해줄 생각이 없었다.

빙설룡은 거대한 붉은 코끼리를 구심점으로 지나치게 넓은 거인의 신체 내부를 빙빙 돌 듯 비행했다.

중심부. 적녹빛 바람을 휘감은 채 허공에 떠 있는 카야 아스트레앙이 나를 향해 팔을 뻗어왔다.

흥분한 얼굴로 입맛을 다시는 카야. 내가 맛있어 보이는 모양이었다. 근육을 꽤 키워 놔서 담백하긴 하겠지만, 굳이 먹히고 싶진 않았다.

이어 허공에 새겨져 가는 마법진 무리. 녹빛과 핏빛이 조화를 이룬다. 족히 8개가 넘어갔다.

그녀 뒤로는 징그러운 살덩이들이 촉수처럼 길쭉하게 솟아올라 이리저리 뒤엉키며, 핏빛 나무줄기의 형태가 되어갔고.

인간의 신체 기관으로 이루어진 나뭇잎들이 빼곡하게 피어올랐다.

탄생한 건 영롱한 핏빛을 발하는 그로테스크한 나무였다.

「광휘의 나무 (식물 속성, ★7)」 + 「악의 꽃 (피 속성, ★6)」 =

───────── 「선혈의 나무 (식물+피 속성)」

식물 속성과 피 속성을 합치면 나오는 마법을 설정집에서 흥미롭게 봤던 기억이 났다. 어차피 게임에 안 나오는 마법이라 나중에 DLC로 출시할 셈인가, 하고 생각했었지.

저 나무는 아군에게 피와 살을 제공해 신속하고도 극적인 회복을 가능케 한다. [광휘의 나무]의 상위 호환. 밸런스 붕괴 스킬이라고 대놓고 언급되어 있었다.

만약 「4막 3장, 땅속 거인」 파트에서 카야가 저 나무를 피어 올렸다면 그녀를 이길 방도는 없다는 내용까지도.

유일한 공략법은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저 나무의 기능을 상실시키는 것뿐.

[부오오오오오오오─────!!]

[부루룩, 부루룩, 부루룩────!]

[뿌끼이이이이이이익──────!!!]

[부갸갸갸갸갸갸갹──────!!!]

[뿌갸아아아악──────!!]

거인의 살덩이로 이루어진 벽면이, 날개 달린 새빨간 코끼리 마족들을 즉석에서 제조해 내보내기 시작했다. 그 하나하나가 엘페르트의 신체 기관이나 다름없었다.

개미 군단처럼 바글바글한 수. 저마다 뼛조각으로 이루어진 송곳창을 손에 든 채였다.

그들은 물을 가득 머금은 목소리로 기이하게 소리치며 내게로 날아들었다.

빙설룡은 공기를 가로지르길 멈추고 날갯짓하며 카야 쪽을 응시했다. 백룡의 거대한 날개가 허공을 내저을 때마다 새하얀 냉기 마나가 반짝이며 흩어졌다.

‘서리낫.’

나는 오른팔을 옆으로 뻗어 감각적으로 서리낫을 꺼내 들었다.

허공에 뭉치는 연푸른빛 마나. 그것은 냉기를 머금은 군청색 대낫의 형태가 되었다. 서리낫이었다.

서리낫을 쥐자, 에너지 탱크를 연 듯 얼음 마나가 추가적으로 내게 흘러들었다.

[ 상 태 ]

이름 : 아이작

Lv : (169)

성별 : 남

학년 : 1

칭호 : 학사 생활에 적응한 1학년

마력량 : (155000) / (119000) + (250000)

- 마력 회복 속도(S)

빙설룡-힐드가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소환 유지에 쓰이는 마나가 더럽게 많이 깎여나갈 터.

다만, 서리낫이 제공해주는 대량의 보너스 마나가 먼저 소모되므로 내게 별다른 타격은 없으리라.

“전부 없애.”

나는 서리낫의 머리 부분으로 카야를 가리키며 명령을 내렸다.

내 머리 위로 웅대한 연푸른빛 마법진이 궤적을 그려 나갔다. 빙설룡-힐드가 전개하는 마법진이었다.

찬란한 광채가 비춘다. 모든 걸 압사시킬 듯 묵직하게 퍼져나가는 빙설룡의 마나.

이내, 카야가 전개해 놨던 마법진들이 나와 빙설룡을 향해 일제히 마법을 토해냈다.

「산양의 노래 (바람 속성, ★7)」 + 「혈조 (피 속성, ★5)」 =

────────────── 「바포메트의 노래 (바람+피 속성)」

적녹빛 태풍이 수천 자루의 예리한 칼날처럼 날카롭게 몰아닥친다.

피아식별 없이 난무하는 칼바람. 바람에 맞닿은 코끼리 마족 군단의 전신이 거침없이 난자되어 갔다.

악식의 카야 공식 패턴 중 하나, [바포메트의 노래].

그 바람은 난도질한 생명체의 피를 빼앗아 점차 위력을 증대해가는 마법이었다.

───────── [카아아아아아아────!!!]

그에 대항해, 빙설룡-힐드는 사납게 포효하며.

마법진에서 얼음 마법을 내뿜었다.

──────────────── 「마하발특마 (얼음 속성, ★8)」

순간, 허공에 은빛 실선이 그어지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굉음과 함께, 실선은 거대한 빛줄기가 되어 극한의 냉기를 쏟아 냈다.

[마하발특마]는 [바포메트의 노래]를 집어삼키고, 맞닿은 코끼리 마족 군세를 단번에 소멸시켰다.

백옥빛으로 물든 세상. 새하얗게 덧칠된 사방경개.

찰나의 순간, 시간마저 얼어붙은 듯했다.

나는 덤덤하게, 조용히 눈을 깜박였다.

극심한 추위로 온몸이 얼어 버린 코끼리 마족 군세가 내 눈에 들어왔다. 빙설룡의 냉기 광선에 직접 닿지 않은 놈들이었다.

이는 행운이 아니었다.

꽈지직──.

쩌적───.

코끼리 마족들의 신체를 파고든 빙설룡의 냉기가 격렬하게 난동을 피운다.

이내, 꽃봉오리가 활짝 개화하듯.

그들의 살갗이 사방으로 찢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휘우우우우우───.

몰아치는 하얀 냉기 속, 섬뜩한 진홍빛 풍경.

[마하발특마]. 극심한 추위로 온몸을 얼리고 터뜨려 붉은 연꽃처럼 만들어 버리는 지옥의 명칭.

그 이름대로 나를 향해 덤벼오던 모든 것들은 낭떠러지 너머 칠흑으로 떨어지는 붉은 낙화(落花)가 되어 버렸다.

[선혈의 나무]는 꿀렁이는 살덩이로 온힘을 다해 카야를 지켜낸 후.

내부를 난잡하게 휘젓는 빙설룡의 냉기에 줄기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더니, 루비빛 가루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허무한 최후였다.

“이, 이게 무슨….”

내 [빙결 차단막]으로 지켜지고 있던 리제타는 떨리는 목소리로 감탄사를 흘렸다.

거인의 혈류 탓인지 주위 풍경이 온기를 되찾아 다시 적빛으로 물들어가고.

[…….]

굳어 버린 카야의 얼굴. 그녀는 옆으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잇달아, 거인의 살덩이로 이루어진 벽면에서 붉은 파리지옥이 대량으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파리지옥의 입에는 새하얀 이빨들이 고르게 나열되어 있었다.

「탐식 풀 (식물 속성, ★5)」 + 「흡혈 (피 속성, ★4)」 =

────────── 「살육 풀 (식물+피 속성)」

[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킥───────!!]

[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킥───────!!]

[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킥───────!!]

[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킥───────!!]

[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킥───────!!]

[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킥───────!!]

[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키킥───────!!]

어린아이 목소리로 섬뜩한 웃음소리를 흘려대는 파리지옥 군세, [살육 풀]. 내 피를 흡수하는 마법.

내 신체 내부, 혈류의 궤도가 뒤틀리는 감각이 느껴졌다. 가만히 있으면 내 전신에 흐르고 있는 피가 살갗을 뚫고 허공을 부유하며 [살육 풀]들의 먹이가 될 터.

저 만한 수라면 내 피는 한 방울도 남아나질 않겠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울 만큼 굉대하고도 기괴한 꽃 한 송이가 활짝 피어올랐다. 시계초와 엇비슷한 꽃잎엔 영롱한 빛깔의 혈류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꽃 중심에서 동그란 입이 허 벌려졌다.

그 널찍한 내부엔 날카로운 가시가 빼곡히 박혀 있었다. 마치 달팽이 입처럼. 이는 다른 차원의 나락으로 이어지는 통로였다.

커다란 입을 뻐끔거리는 거대 꽃. [묵시록]이었다.

「나락 화 (식물 속성, ★8)」 + 「악의 꽃 (피 속성, ★6)」 =

──────────────── 「묵시록 (식물+피 속성)」

[묵시록]. 그 꽃이 피어난 자리엔 그 어떤 생명체도 살아남을 수 없으며, 그 인근은 필시 멸망한다는 설정이 있었지.

그 파괴의 꽃을 등진 채 허공에 떠 있는 카야가 나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빙설룡-힐드의 공격을 받고 곧바로 전력을 쏟아 붓기로 결심한 듯 보였다.

“힐드, 돌진해.”

[알겠다.]

빙설룡-힐드는 카야를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 「서리군주의 위광 (얼음 속성, ★7)」

내 몸체에서 연푸른빛 광채가 찬연히 발했다. 내게 닥쳐 온 모든 마법을 튕겨 내는 마법, [서리군주의 위광].

[살육 풀]은 웃음을 멈추고서, 저마다 입에서 대량의 피를 쏟아 내며 썩어 문드러져 갔다.

이윽고, 내게서 발하던 광채가 사그라지고.

무력하게 시들어 버린 [살육 풀] 무리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곧, [묵시록]은 나를 향해 영롱한 비색과 선명한 핏빛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마법진을 전개했다.

시야에 단번에 들어오지도 않아 크기를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카야 좀 부탁한다.”

공기를 가로지르던 중, 나는 빙설룡의 등을 박차고 위로 도약했다. 서리낫을 제대로 휘두르기 위해서였다.

빠르게 펄럭이는 교복 자락. 부유감을 한껏 느끼며 서리낫을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서리낫에 스민 연푸른빛 마나가 화염처럼 강렬하게 피어오르고.

그대로 서리낫을 횡 방향으로 휘두르자, 그를 따라 카야의 복부와 [묵시록]의 몸체에 연푸른빛 실선이 그어졌다.

그리고, 실선은 급격하게 벌어지며 서리낫이 베어낸 모든 걸 집어삼켰다.

─────────────────── 「절대영도 (얼음 속성, ★7)」

차아아아아아악─────────────!!

서리낫의 고유 액티브 스킬, [절대영도].

공간의 제약 없이, 낫날이 그어낸 경로를 따라 모든 것을 차별 없이 베어내고 극한의 추위로 얼려버리는 마법이었다.

[묵시록]과, 벽면을 이루고 있던 거인의 살덩이가 꽁꽁 언 채 반으로 갈라진다. 그윽하게 파고든 서리낫의 냉기 탓에 낫날에 베인 자리조차 굳게 얼어버린다.

돌연, 카야의 귓불에서 선명한 빛깔의 핏물이 튀어나와 그녀의 전신을 에워쌌다.

단숨에 죽을 위기에 처한 카야를 회복시킨 핏물은 한 덩어리로 뭉쳐 작은 코끼리의 형태가 되었다.

도망치기 위해 카야의 몸을 박차고 벽면을 향해 도약하는 그것.

나는 상태창을 켜서 그 작은 코끼리의 정체를 확인했다.

[ 무상의 엘페르트 ]

Lv : 145

종족 : 마족

속성 : 어둠, 불, 피

위험도 : X

심리 : [ 살고 싶어 합니다. ]

응, 안 돼.

「얼음 생성 (얼음 속성, ★1)」

나는 내 도약을 감당할 만한 빙산을 허공에 만들어낸 후.

그것을 박차고 붉은 코끼리, 무상의 엘페르트를 향해 총알처럼 공기를 가로질렀다.

콰아앙────!!

빙괴를 박차자 풍압이 일며, 대포알 발사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리낫은 연푸른빛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내가 집어넣은 까닭이다. 대신 내 손안엔 얼음 마나가 고밀도로 응축되고 있었다.

[뿌갹?!]

빠르게 공중을 부유하며 도망치는 무상의 엘페르트에게 이르렀을 때.

나는, 놈을 향해 응집된 마나를 터뜨렸다.

─────────────── 「빙결 폭발 (얼음 속성, ★5)」

콰아아아아아아아아─────────────!!!!

빙결이 폭발적으로 범람하며 엘페르트를 집어삼켰다.

살기 위해 카야를 지켜내느라 약해질 대로 약해진 놈은, 순간적인 폭발의 충격으로 신체가 조각조각 박살난 채.

삽시간에 형성된 거대한 빙괴 안에 갇혀 버린 모양새가 되었다.

카야는 의식을 잃고 떨어지기 시작했다. 빙설룡-힐드는 빠르게 날아들어 그녀를 입으로 낚아챈 후, 내 쪽으로 돌아와 나를 등 위에 태웠다.

마지막으로, 빙설룡은 살덩이 다리 쪽으로 가서 카야를 내려놓았다.

나도 녀석의 등 위에서 내려왔다. 완벽한 착지.

쿠우우우우우────!

위압적으로 떨어지는 거대 빙괴.

나는 그 빙괴를 향해 손을 살며시 내밀었다.

샤라라락──.

빙결 해제. 거대한 빙괴는 단숨에 연푸른빛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뿌끄약….]

피를 잔뜩 쏟고 있던 무상의 엘페르트는 애처로운 울음소리를 내더니, 이내 잿빛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축하합니다! [무상의 엘페르트(Lv 145)]를 처치하고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Level Up!! Lv이 72로 상승했습니다!]

[스탯 6을 획득합니다!]

[업적 [쉘 위 댄스?]를 달성했습니다! 보너스 스탯 10을 추가로 획득합니다!]

[멸악자]가 풀리자 몸이 급격히 무거워졌다.

보상이 주는 기쁨은 이따가 누릴 것이었다. 전리품은 카야에게 남겨져 있을 테니 마찬가지로 나중에 확인하면 될 테고.

나는 얼른 카야를 등에 업기 시작했다.

[훗, 우리가 이겼구나. 함께 싸워서 기뻤다, 주──.]

소환 유지에 들이는 마나 소모량이 극심한 빙설룡-힐드는 곧바로 역소환했다.

녀석은 ‘주이잉?’하고 당황한 목소리로 말끝을 흐리며 연푸른빛 마나가 되어 사라졌다. 미안하다, 힐드. 약한 주인을 탓해라.

나는 카야를 업은 채로 질주하기 시작.

온종일 감탄만 주구장창 하고 있던 리제타를 향해 다급히 소리쳤다.

“리제타! 도망친다!!”

“뭐, 뭐?!”

쿠우우우우우웅───.

지진이 시작됐다. 리제타는 깜짝 놀랐다.

무상의 엘페르트를 처치하면 거인의 몸 또한 중심부부터 잿빛 가루가 되어 천천히 붕괴되기 시작한다.

붕괴된 자리엔 흙이나 바닷물 등, 거인이 있던 자리에 원래 있었던 것들이 되돌아오기 시작하는데.

닿으면 곧바로 배드 엔딩 「생매장」으로 이어진다.

즉, 거인의 입까지 전속력으로 도망쳐야 했다. 「4막 3장, 땅속 거인」 파트의 마지막 미션이었다.

중심부에서부터 기이한 핏빛 마나가 피어올랐다. 그 마나는 대량의 모래와 지반의 단면 형태로 뒤바뀌어갔다.

숨통을 조여 오듯 점진적으로 퍼져나가는 핏빛 마나.

‘헉, 시벌!’

막상 실제로 보니 개 무서웠다!

“뛰어어어어어!!”

나는 비명에 가까운 고성을 내지르며.

기절한 이안을 들고 있는 이든, 그리고 리제타와 함께 전력으로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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