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85화 (85/334)

EP.85 아이작 쟁탈전 (3) (수정된 회차)

루체가 뇌신조를 소환하기 전, 아틀라홀.

의자에 앉아 있던 안경잡이 여학생, 에바 하일로버는 아틀라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졌다. 아이작에 관한 이상한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그가 난봉꾼? 아무 여자한테나 막 들이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마족을 상대했다고요, 마족을!’

왜 아무도 모르는 건데?

모르겠다. 애당초 엄청난 수준에 이른 마법사들은 상식을 가볍게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니까. 그들을 이해하려는 건 바다를 손에 쥐려는 행위와 같다는 말도 있잖은가.

아이작이 건드렸다던 여자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카야 아스트레앙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분홍색 단발머리, 케리드나 화이트클락은 ‘아이작 씨가 저한테 왔었다고요? …왜 저만 모르고 있죠? 당신들이 본 걸 저한테도 보이세요.’라고 하는 걸 보니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왜 다급해 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오렌지색 포니테일 머리, 리제타 라이온하트는 여전히 게걸스럽게 고기를 뜯어먹고 있었다. 역시나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 그나저나 몇 인분째 먹고 있는지 모르겠다.

온몸이 덜덜 떨린다. 아이작, 그 사람은…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지켜온 걸까.

건드려선 안 될 사람을 건드렸다. 그 사실에, 에바는 주위 사람들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머리를 싸맸다. 죽을 맛이었다.

[왜 그러고 있어?]

“……!!”

돌연 낯익은 아가씨 목소리가 에바의 귓가에 울렸다.

들어선 안 될 걸 듣기라도 한 것처럼, 에바는 그대로 뻣뻣하게 굳어 버리고 말았다.

꼬리에 분홍색 리본을 달고 다니는 하얀 고양이, 엘라. 도로시 하트노바의 사역마.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그 목소리였기에.

[오랜만이네, 친구야?]

“아, 아….”

[혹시 전에 내가 말했던 건 기억 나니? 네가 알게 된 건 비밀로 하라던.]

“죄, 죄송합니…!”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려는 에바에게, 엘라에게 심어져 있던 도로시의 마나가 들이닥쳤다.

쿠우우우─.

“흐극!”

[잠깐 가만히 있어 줄래?]

강제력이 에바의 허벅지를 짓누른다. 그녀는 꼼짝할 수 없었다.

에바는 겁에 질린 얼굴로 옆에 서 있는 하얀 고양이를 쳐다보았다.

[보니까 여기,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졌던 것 같네? 다들 말하는 게 다 다른 거 보니까. 그런데 너는… 어째 멀쩡해 보인다.]

“사사, 살려주세요….”

허벅지를 짓누르는 힘이 거세다. 도저히 밀어낼 수 없는 무거운 것을 오로지 다리로만 받치고 있는 기분.

에바는 눈물을 애써 삼키며 엘라에게 나지막이 애원했다.

[걱정하지 마. 사람을 해칠 생각은 없으니까. 그것보다, 도로시가 궁금해하는 게 있거든.]

“전,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요….”

[흐음?]

엘라가 이곳에 찾아온 건, 혹시라도 아이작의 정보가 팔리지 않았는지 확인해 달라는 도로시의 명령 때문이었다.

그리고 학생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서 엘라는 아이작이 아틀라홀에 왔었음을 짐작했고.

그들 중 유일하게 멀쩡해 보이는 에바에게 찾아온 것이었다.

학생들은 모두 기억이 꾸며지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 앞뒤가 맞지 않고 있었던 반면에, 에바는 겁에 질린 채로 조용히 의자에 앉아 있었으니까.

오히려 이런 상황에선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에바가 가장 멀쩡해 보일 따름이었다.

상황을 유추해 보건대, 이 아틀라홀에선 의문의 현상이 벌어진 듯했다. 아이작은 그 현상에 개입했던 모양.

그리고 에바에게 입막음까지 시킨 걸 보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표면 위로 드러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 아이작의 뜻인 듯했다.

[오히려… 아이작은 자기 정보가 팔릴 걸 알고 있었고, 그걸 역이용한 건가….]

엘라는 에바에게조차 들리지 않도록 나지막이 독백했다.

믿기지 않는 얘기지만, 도로시는 그 순하고 약해 보이는 아이작이 자기보다 훨씬 강하다고 했다.

[천라만상]의 힘으로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도로시다. 그녀의 눈은 틀리지 않는다.

즉, 도로시보다 높은 경지에 오른 남자가 일반인의 사고 위에서 노는 것도 그리 이상할 건 없다는 얘기다.

에바의 다리를 짓누르고 있던 강제력이 사그라졌다.

에바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안도했으나, 엘라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자마자 반사적으로 숨을 집어삼켰다.

[아이작을 방해할 생각은 없으니까, 넘어갈게.]

“아….”

[그래도 친구야, 만용은 부리지 말자?]

엘라는 마나의 형태가 되어 사라졌고.

한동안 에바는 몸의 떨림을 주체하지 못했다.

* * *

‘상황을 정리해 보자.’

더럽게 어수선한 밤이었다.

뚜껑 없는 전투기를 탄다면 이런 느낌일까. 나는 거센 바람 저항의 피부 마사지를 만끽하며 생각에 잠겼다.

아카데미 상공. 현재 나는 악식의 카야 손에 잡힌 채 바람 마법의 힘으로 허공을 빠른 속도로 가로지르고 있었고.

뒤쪽에선 뇌신조-갈리아와 루체가 우릴 쫓아오고 있었다.

카야는 말록이 처치되면서 기억이 가공된 상태. 아마도 카야의 기억 속, 나는 낯부끄러운 호감 표현 따위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나와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내겠다고 루체에게서 나를 데려온 것이었다.

‘구속은 면하긴 했는데.’

카야가 없었으면 내 손목엔 지금도 루체의 구속구가 채워진 채였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별달리 큰 문제는 없었겠지. 단지 루체와 조금 놀다가 구속은 풀어졌을 터. 내가 그녀의 구속을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던 까닭이 그것이다.

물론 구속이 괜찮다는 얘기는 아니다.

엘트 섬 사건 이후, 나는 루체에게 ‘신체의 자유를 억압하는 건 잘못된 짓이야’라는 아주 윤리적인 얘기를 꺼냈었다. 선생님이 학생을 타이르듯 친절하게 설명했으나, 저 녀석은 내 말귀를 귓등으로도 쳐듣지 않은 모양이었다.

‘말보단 행동으로 보여 줘야 하나.’

아무래도 조만간 루체에게 역지사지가 뭔지 가르쳐 줘야겠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차라리 내가 루체를 구속해 버린다면 구속당하고 싶지 않은 내 심정을 헤아려주지 않을까.

‘…그건 좀 오반가.’

뭐, 꼭 그렇게까지 하진 않더라도.

루체는 아직 새장 엔딩 단계에 이르렀다고 볼 만한 극단적인 상태도 아니고,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도 엔딩 이후 그녀가 플레이어를 잡아들이는 일은 없었으니…. 교육의 여지는 충분하리라고 믿어보자.

‘어쨌든.’

현재 상황으로 돌아가서.

막상 이해관계를 깊숙이 따지고 들자면, 그다지 심각할 건 없었다.

카야와 루체 둘 다 자기감정에 따라 과잉행동을 취하고 있는 것뿐.

그러니 일단 이 뒤질 것 같은 상황부터 모면하고, 이 둘과 잘 얘기해볼 기회를 만들어내자.

‘우선 카야의 오해부터 푼다.’

높다란 시계탑에 이르렀다. 주위론 여러 건물이 즐비해 있었다.

시계탑을 지난 직후, 뇌신조의 시야각에서 우리 모습이 잠시 가려졌을 때.

‘떨어질 때야.’

「얼음 생성 (얼음 속성, ★1)」

타이밍을 재고 있던 나는 남은 손을 아래로 뻗고서, 손에 손잡이 형태의 얼음을 만들어 꽉 쥐었다.

그대로, 그 손잡이로부터 얼음을 덧대어 단숨에 묵직한 빙괴를 생성해냈다.

이 정도면 적당하겠다.

“흐악!”

카야의 비명 소리. 내가 쥐고 있는 무거운 빙괴에 무게가 쏠린 탓에 나와 카야는 그대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바람 마법으로 몸을 띄우는 건 고도의 마력 컨트롤이 요구된다.

그러니 바람 마법을 유지하며 날아가던 와중, 대뜸 무거운 무게추 따위가 달렸다고 쳐보자.

무게를 고려해 바람을 일으키던 카야로선 당연히 마력 컨트롤이 단번에 꼬여 버릴 수밖에 없다.

이어, 나는 빙괴를 없앤 후 팔을 위쪽으로 뻗어 푸른 냉기 화염을 거센 기세로 방사했다.

「서리불꽃 (얼음 속성, ★4)」

부아아아아아───!!

“아이작 니임?!”

[서리불꽃]은 부스터처럼 쓸 수도 있다. 예전에도 수 차례 이 방식을 써먹었지.

그렇게 나와 카야는 무서운 속도로 지면을 향해 떨어졌다.

악식 당황한 거 귀엽네. 의도치 않게 그녀에게 복수하는 식이 돼 버렸다.

확실히, 끌려 다니는 쪽보다 끌고 다니는 쪽이 되는 게 기분이 훨씬 낫네.

“……!”

갑자기 우리 모습이 사라지자 뇌신조와 루체는 당황했다. 뇌신조는 거센 날갯짓으로 돌풍을 일으키며 허공에 멈춰 섰다.

2, 3초만 주위를 둘러봐도 우리가 수직 낙하하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을 테지만.

시계탑 주위론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뇌신조의 거체로 비집고 들어올 틈은 없을 테고, 그렇다고 건물을 부수는 극단적인 선택도 하지 않겠지.

루체가 뇌신조를 집어넣고 쫓아올 동안, 나는 카야를 데리고 시계탑 안으로 도망칠 셈이었다.

“카야, 착지 맡긴다!”

“앗, 네에!”

「바람 생성 (바람 속성, ★1)」

휘우우우우──!

지면에 이르렀다. 곧바로 [서리불꽃]을 잠재우고, 카야의 바람에 몸을 맡겨 느린 속도로 지면에 안전하게 착지했다.

“깜짝 놀랐습니다….”

“됐고, 따라와!”

“예?! 앗!”

뇌신조에 탑승한 채로 수직낙하하는 루체.

그녀가 우릴 향해 쫓아오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는 카야의 손목을 잡고 내달려 시계탑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원하는 건 카야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 그녀의 오해를 풀어준 다음 루체와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아.’

마음이 다급해져서 깜박했다. 나는 힘이 꽤 세고 달리기도 빠르다. 카야의 손목을 세게 잡고 줄행랑치는 건 그녀에게 고통을 줄 우려가 있었다.

손에 살짝 힘을 풀고, 뒤로 고개를 돌려 내게 이끌리고 있는 카야 쪽을 쳐다보았다.

“카야, 미안! 괜찮아?!”

“괜찮진 않고, 행복합니다!”

“응?!”

[ 카야 아스트레앙 ]

심리 : [ 당신에게 강제로 끌려가고 있다는 생각에 무척 설레고 있습니다. ]

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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