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2 합동 실습 평가 (1)
“그 쌍두견 헬가를 잡았어? 그런 돌발 상황이었는데?”
“뭐~, 길드원 도움이 컸지. 쌍두견이 방심한 틈에 [얼음 창] 몇 방 날려준 것뿐이야.”
“이미 학생 수준이 아니잖아! 굉장해…!”
이브 로펜하임은 사람들이 자신을 띄워주는 것을 좋아한다.
낮. 메르헨 아카데미 부지에 위치한 하일리 베이커리 테라스 자리에서 오랜만에 만난 짧은 단발머리 친구, 알리샤의 호들갑스러운 칭찬이 이브를 들뜨게 했다.
내심 아무것도 아니라는 척 이브는 훗, 하고 웃으며 이야기를 덧붙였다.
“별거 아니야. 너도 나랑 같은 처치였으면 잘해냈을 걸?”
“그럴 리가. 이브니까 가능했던 거지.”
맞아.
이브는 앙칼진 눈매로 알리샤를 바라보며, 속으로 그렇게 맞받아쳤다.
“그런데 쌍두견은 어떻게 했어? 뿔 같은 거 돈 많이 나가지 않아? 역시 팔았겠지?”
“그건… 비밀인데, 사실 내 하수인이 됐거든.”
“오어어어?! 미친 거 아니니?!”
“쉿.”
“아, 미안. 그, 어떻게…?”
“날 따르고 싶다고 했으니까. 나랑 싸웠던 게 감명 깊었나 봐.”
이브는 어깨를 으쓱하며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세상에! 소환해볼 수 있어?!”
“그건 조금 곤란해. 아직 다루기 어려워서. 마력 소모량도 심하고….”
“하수인이니까 그럴 수 있겠다. 그래도 쌍두견이라니, 완전 멋있어…!”
“아냐, 나도 아직 갈 길이 멀어. 더 정진해야지. 나중에 길드에서 날 스카우트해갈지도 모른다고 하고….”
“스카우트까지…, 어쩜!”
헤벌쭉, 순수하게 웃는 알리샤. 그녀는 이브의 말을 단 한 마디도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멋있다, 이브…. 나도 너처럼 되고 싶어.”
동경심 어린 눈빛. 알리샤의 그 말이, 이브에게 더할 나위 없는 쾌감을 안겨 주었다.
……
중상위권 기숙사, 엘마관 여자동. 어둑한 밤.
발광 램프만이 책상 위에서 은은한 불빛을 내비치고 있었다.
공부를 위해 펼쳐 놓았던 책은 책상 구석에 박혀 있었고, 이브는 책상에 앉은 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양피지에 그림을 그려 나가고 있었다.
쌍두견 헬가. 동료들과 힘을 합쳐 그 마수와 싸우는 청은발의 미녀 마법사, 이브 로펜하임.
전투에서 그녀는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끝내 쌍두견 헬가는 고개를 조아리며 당신을 따르고 싶다고 얘기한다.
그런 그림이었다.
전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이었다.
돌발 상황으로 갑자기 쌍두견이 튀어나왔다고 알리샤에게 얘기했었지만 쌍두견은커녕, 위험한 마물이나 마수는 본 적도 없었다. 단지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했다.
애당초 실무를 체험하러 온 학생을 위험한 오지로 데리고 가는 길드원이 누가 있겠는가.
알리샤는 단순하다. 아카데미에 재학하는 동안 이브의 기분을 띄워주기 위한 도구로서 안성맞춤이었다.
알리샤 외에도 이브를 떠받들어 주는 2학년 동기는 여럿 있었다. 그녀의 외모를, 실력을, 경험을 칭찬하고, 동경한다.
눈에 보이는 것은 눈에 보이는 대로 놔두면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이브가 마음껏 주무를 수 있었다. 진실이든 거짓이든 상관없이. 그녀가 마음에 드는 이야기, 이상적인 자기 모습이 ‘진실’이 된다.
메르헨 아카데미에 입학했을 때부터, 이 약육강식의 아카데미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브는 은근한 거짓말로 자신을 이상적인 모습으로 꾸며내었고.
갈수록 학생들의 동경 어린 시선이 이브에게 쾌감을 안겨 주어, 목적은 점차 변질되어갔고.
지금 그녀는, 어린 시절의 편린까지도 전부 거짓말로 점철된 채였다.
그렇다고 해도 이브의 민낯을 알고 있는 존재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 ‘그러고 보니 이브, 너 진짜로 동생 없어?’
펜을 놀리던 이브의 손이 멈췄다.
동생. 있긴 있었다.
이브는 다시 펜대를 움직여 한 남자의 얼굴을 간단히 그려내었다. 귀여운 인상을 지닌 반곱슬 머리 남자의 얼굴.
‘걔가 여기 와 있을 리 없잖아.’
그 능력도, 재능도 없는 동생 녀석이 메르헨 아카데미에 입학했을 리 없었다. 굳이 확인 작업을 걸칠 필요도 없으리라.
뭐 어떻게든 노력해서 입학했다고 쳐도, 양이 사자 무리에 들어온 꼴이다. 이 약육강식의 아카데미에서 살아남지 못할 터였다.
이브는 그리 생각하며 쓴웃음을 흘렸다.
……
‘왜 있는 건데?’
이브의 낯빛이 시체처럼 창백해졌다.
지금 눈앞에, 그녀의 동생이 있었다.
* * *
“지금부터 합동 실습 평가를 시작하겠다.”
메르헨 아카데미는 넓은 섬 하나를 통째로 부지로 삼고 있는 만큼, 지형의 활용도도 무궁무진하다.
가령, 이 협곡처럼.
화창한 대낮. 마법학부 1, 2학년 학생들은 질서정연하게 서서, 앞에서 확성기를 들고 있는 페르난도 교수를 쳐다보고 있었다. 여느 대규모 시험을 치를 때마다 그러하듯 학생들 뒤로는 시험 감독관과 부교수나 조교, 황실 기사단 무리가 나란히 정렬해 있었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은 거대 골짜기, ‘마케아 협곡’. 게임에서 보았듯 웅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합동 실습 평가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1, 2학년 학생들은 3등분되어 각각 다른 출발선에서 교수에게 시험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을 터. 루체나 도로시가 안 보이는 걸 보니 그녀들은 나와 출발선이 다른 모양이었다.
그나마 카야가 눈에 보인다. 비취색 눈동자를 보아하니 악식이 아니었다. 아, 리제타도 있네. 사람 많아서 이제야 알아봤다.
“합동 실습 평가는 1, 2학년이 동시에 진행한다. 시험 방식은 간단하다. 각 관문을 클리어해 나가며 목적지에 도달하면 통과. 그리고 시험 시작 30분 후, 동료를 모으는 행위도 가능하다. 팔찌를 서로 맞대면 알아서 동료로 인정된다. 파티는 최대 4명까지 구성이 가능하나, D 클래스 학생은 인원 제한이 없으니 참고하도록.”
합동 실습 평가는 루체나 악식의 카야급이 아니면 솔로 플레이로 클리어하기 어려운 난이도로 설계돼 있다. 시험에 통과할 생각이라면 웬만한 학생들은 반드시 파티를 맺을 필요가 있다.
D 클래스 학생이 파티 인원 제한에 포함되지 않는 건, 아무도 그들을 받아주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 D 클래스 학생이 플러스 알파의 느낌이 된다면, 굳이 파티에선 그들을 마다할 이유가 없어진다.
“또한, 제한사항이 있다. 관문을 진행하는 중이 아닐 때 사역마나 하수인을 소환하면 부정실격이다. 유념하거라.”
사역마나 하수인은 편리한 이동 수단이 되어준다. 이번 합동 실습 평가라는 레이스의 목적과는 맞물리지 않는다.
“그리고 인형 기술을 바탕으로 한 가짜 마물들이 준비되어 있다. 마물 환상과는 달리 너희에게 실제로 피해를 입히는 것도 가능하지. 뛰어난 능력을 지닌 성직자들과 의사들이 대기하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치명상을 입을 정도의 공격을 당했다고 판단되거나 시험을 진행하기 불가능한 상태가 되면 탈락이니 염두에 두거라. 이상.”
페르난도 교수는 오른팔을 위로 들어 올리고, 치켜세운 검지 위로 원소 마탄을 형성시켰다.
“그럼 준비.”
침묵. 학생들은 모두 달리기 위한 준비 자세를 취했다. 긴장감이 팽배하게 감싸 돈다.
나는 오른손에 쥔 잔야의 지팡이를 어깨에 걸치고, 달리기 편한 자세를 취했다.
타앙─!
페르난도 교수가 원소 마탄을 발사하고.
하늘에 떠오른 그것에 염동력을 풀어, 원소를 터뜨렸다.
퍼어엉──!
“시작.”
하늘을 수놓은 얼음 결정체들.
불꽃놀이 소리와 함께 페르난도 교수의 목소리가 내려앉고.
다다다다─! 학생들은 우르르 내달리기 시작했다.
“가즈아아아!”
“비켜!”
“이 새끼, 벌써 반칙이냐?!”
“간다아!”
‘개판이구만.’
예상했던 그림이다. 만약 학생들끼리 전투가 허용됐다면 역대급 난장판이 펼쳐졌을 것이다.
서브 스토리, 「합동 실습 평가」 편.
메인 시나리오와의 차이점은, 결과가 어떠하든 배드 엔딩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게임 내에선 굳이 진행할 필요가 없었으나, 이 세계가 현실이 된 내게 스킵이란 선택지는 없었다.
어차피 이 서브 스토리는 진행해야 했다. 엑스트라 배드 엔딩 N.8 「개구리」를 막기 위해서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 1학년 2학기 파트에는 ‘개구리 마족’이 나타난다. 동화 「개구리 왕자」를 모티브로 한 마족이다.
여태껏 나타났던 마족들에 비할 바 못 되는 약골 마족이었다.
‘잡는 과정만 조금 기괴할 뿐이지.’
개구리 마족은 불시에, 이 드넓은 아카데미 부지에서 찾기 어려운 위치에 나타난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 매 회차마다 위치는 제각각이었다. 따라서 녀석을 찾으러 다니는 건 굉장히 비효율적.
한 가지 확실한 건 합동 실습 평가 날, 이 마케아 협곡 네 번째 관문을 통과한 이후, 어딘가에 출현한다는 사실이었다.
여태껏 등장해왔던 개판 오분 전 마족들과는 달리, 개구리 마족은 당장에는 무해하다.
그러나 한 학기가 끝날 때까지 개구리 마족을 잡아내지 못한다면.
놈은 다른 사람을 개구리로 만드는 대신 그 사람의 몸을 빼앗을 수 있는 마법의 발동 조건을 충족하게 된다.
그러면 어찌 되느냐. 이안 페어리테일의 몸을 빼앗고 그를 개구리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면 개구리 마족은 이안의 몸으로 즐거운 학사 생활을 보내기 시작하고.
이안은 온전한 개구리가 되어 엑스트라 배드 엔딩 N.8 「개구리」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하!”
「바람 생성 (바람 속성, ★1)」
휘우우우우──.
허영심 많은 금발 귀족, 트리스탄 험프레이의 기운 넘치는 짧은 웃음소리가 학생들 사이에서 울려 퍼졌다. 흡사 기합 소리에 가까웠다.
고개를 들어 트리스탄을 쳐다보았다. 녀석은 학생들 머리 위에서, 몸에 바람 마법을 휘감은 채 허공을 부유하고 있었다.
“선두는 이 몸이다!!”
크하하하!! 하고 웃으면서 누구보다도 빠르게 날아가다, 사레 들렸는지 콜록콜록 헛기침하는 트리스탄.
그를 필두로, 바람 속성인 학생들은 일제히 자기 몸에 바람을 휘감고 공중에 붕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거, 안 좋은데.’
마력 소모량이 막대하니까. 얼마 안 가 마력이 바닥나고 말 텐데.
휘웅──!!
“뭣이?! 우왁!”
돌연, 담녹색 양갈래 머리칼의 여학생이 빠른 속도로 날아들어 트리스탄을 제치고 지나갔다. 흡사 로켓에 가까운 속도. 후폭풍으로 들이닥친 강풍이 트리스탄을 확 밀어냈다.
마법학부 1학년 차석, 카야 아스트레앙. 쟤 정도는 돼야 초반 바람 부스터를 써볼 만하지.
바람 마법으로 몸을 띄우고 날아가는 행위가 효율이 좋지 않다는 건 여기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눈에 보이는 것이 가장 자극적이기 마련.
학생들은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다.
* * *
‘어떻게 네가 여기에…?’
합동 실습 평가가 시작되고, 학생들 틈에 섞여서 달려가고 있는 와중.
이브 로펜하임은 아이작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의문을 품었다.
아무런 능력도, 재능도, 재주도 없는 녀석이다. 절대로 이곳에 있을 리 없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확실했다. 아까 얼굴을 보니 아이작이 분명했다.
‘뭔가… 달라졌어.’
예전에 봤을 때보다 키가 커졌고, 체격도 옹골졌다. 한때 왜소하고 귀여운 인상이기만 했던 녀석이 이제는 어엿한 남성미를 자랑하고 있었다.
게다가 손에 쥔 지팡이. 딱 봐도 다루기 어려워 보이는 마도무기인데, 저런 걸 들고 있다는 건….
다룰 수 있다는 얘기인가? 아이작이?
이브는 품에 껴안은 나무 지팡이를 꽉 쥐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