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3 합동 실습 평가 (2)
「암벽 (바위 속성, ★4)」
「풍벽 (바람 속성, ★4)」
「염벽 (불 속성, ★4)」
「빙벽 (얼음 속성, ★4)」
드드드드득────!!
휘우우우우────!!
화르르르륵────!!
“아니?!”
“미친 새끼야!!”
“이거 반칙 아니야?!”
“응, 아니야~.”
합동 실습 평가에서 학생들끼리의 전투는 금지사항이다. 그러니 초반엔 원소 마법을 구사하며 진로를 차단하는 선택지를 고르는 게 부지기수.
학생들은 온갖 원소 마법을 구사하며 원소 벽들을 부수고 나아갔으나, 그럴 때마다 새로운 원소 벽이 나타나 진로를 차단했다.
‘이쯤이야.’
나는 자리에서 멈춰 선 뒤 손으로 지면을 턱 짚었다.
내 손바닥에 연갈빛 마나가 흘러나왔다.
「바위 생성 (바위 속성, ★1)」
드르르르르륵────!
지면에서 바위가 무서운 기세로 길쭉하게 솟구치며 내 몸을 밀어냈다.
포물선을 그리는 바위 기둥. 온갖 원소 벽들 위에서, 나는 손과 발을 바위로 고정시킨 채 정면을 향해 공기를 가로질렀다.
바위를 늘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중간에 다른 바위 기둥을 솟구치게 하고, 펄쩍 뛰어올라 새로운 기둥에 착지하고 나아가길 반복했다.
진로를 방해하는 원소 벽들을 전부 지나치고 나서, 나는 지면에 떨어져 가뿐히 착지했다.
“뭐야, 저거?”
“쟤, 마법학부 맞아? 운동신경 뭐야…?”
학생들은 내 마법보다는 운동신경 쪽에 감탄한 분위기였다.
드드드드득───!!
바위나 얼음 같은 고체형 원소 속성인 학생들이 나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으아악! 나 좀 내려줘!”
“무서워!!”
제대로 해내지 못 하는 녀석들이 속출했다. 겁은 많은 주제에 어설픈 실력으로 흉내내려니 그렇다.
적절한 마력 컨트롤과 운동신경이 없다면 방금 전에 내가 펼친 기교를 따라하진 못할 것이었다. 지 무덤을 지가 판 꼴이었다.
‘뭐하냐.’
안쓰러운 광경이었다.
이윽고 나타난 첫 번째 분기점.
물로 첨벙대는 골짜기를 내달리다 보니 갈림길에 이르렀다. 이정표가 있기에 명확히 구분할 수 있었다.
협곡을 그대로 이어 달리느냐, 동굴로 들어가느냐, 협곡 위로 이어지는 계단을 타고 가느냐.
여기서 망설임 없이 길을 결정하는 학생들, 발을 멈추고 선택 장애에 걸린 학생들로 나뉜다. 당연히 나는 전자 쪽이었다.
‘이쪽이었지.’
내 선택지는 계단 쪽이었다. 이쪽으로 가야 개구리 마족을 만날 수 있으니까.
아래에서 올려다 보면, 협곡 위쪽 진로에 아찔한 다리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탓에 계단 쪽을 선택하는 학생들은 드물었다. 무섭잖아.
‘고소공포증 없어서 다행이네.’
높은 곳에서 삐걱대고 있는 다리를 타고 가는 스릴 정도야 뭐, 즐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몇몇 용감한 녀석들도 계단 쪽을 택했다. 나는 그들 틈에 섞여 계단을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개구리 마족은 오후 4시가 되면 자리를 떠날 것이다. 그 전에 녀석에게 이르러야 했다. 내게 허락된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드드드드드드──!!
어느 정도 계단을 오르자, 절벽에 바위를 만든 뒤 그 위에 펄쩍 뛰어 착지했다.
그대로 바위가 위로 뻗어나가며 빠른 속도로 내 몸을 절벽 위로 밀어내었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선 조금만 늦어져도, 어느 어그로꾼이 다리를 박살 내 버리는 욕 나오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리 되면 다른 진로를 선택하는 수밖에 없게 된다.
협곡 위를 내달리자 다른 협곡과 이어지는 기다란 다리가 나타났다. 역시 현실이라 그런지 경치가 장관이구나.
나는 망설임 없이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삐걱, 삐거억─!
‘으악!’
뜻밖의 디스코팡팡이었다.
바람이 쌩쌩 불어대는 탓에 다리가 이리저리 웨이브 댄스를 춰댔다. 좌우로 흔들리는 정도만 생각했건만, 위아래로까지 흔들리면 어쩌자고.
아무래도 이 주변에 흐르는 자연의 바람 마나 기세가 꽤 격한 모양이었다.
손잡이를 꽉 잡고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다. 방심했다간 내 몸이 날아가게 생겼다.
“으아악!”
“이게 뭐야! 이게 뭐야!”
“살려줘!!”
내 뒤를 따라 다리를 건너는 학생들의 절규 소리가 뒤통수 너머로 들려왔다.
저럴 거면 여긴 왜 온 거냐.
“아오!”
진짜 더럽게 흔들리네!
나아가기 힘들었다. 안 되겠다. 내 뒤에 있는 녀석들도 잠깐 도와주는 꼴이 되겠지만, 일단 내가 나아갈 필요가 있었다.
나는 아래쪽으로 팔을 뻗고 얼음 마나를 흘려보냈다. 잔야의 지팡이로 버프를 받은 [얼음 생성]을 발동했다.
「얼음 생성 (얼음 속성, ★1)」
차라라락──.
얼음을 얇고 넓게 펼쳐나간다. 그렇게 다리는 얼음장이 되어 굳혀졌다.
됐다. 이제 다리는 장어처럼 사정없이 구불거리지 못할 터였다.
“저 녀석!”
“으악! 미끄러워!”
“그래도 덜 흔들린다! 고맙다, 친구!”
감사를 표해주는 신사가 있었기에, 나는 팔을 옆으로 뻗어 엄지를 치켜세웠다.
‘[바위 생성].’
발을 뒤꿈치만 다리에 닿게 하고, [바위 생성]을 사용해 신발 밑창에 날카로운 바위를 덧대었다. 얼음 다리와의 접촉 면적을 줄이고 가볍게 미끄러지기 위해서였다.
그대로 오른팔을 뒤로 뻗는다. 마나 회로에 흐르는 얼음 마나를 뭉치고, 그것을 폭발적으로 터뜨려 거센 압력과 냉기 화염을 방출했다.
「서리불꽃 (얼음 속성, ★4)」
화아아아아────!!
부스터였다.
“오오!!”
[서리불꽃]을 추진력 삼아 부우웅, 하고 내 몸은 빠른 속도로 얼음 다리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속 시원한 질주. 내 청은발이 거칠게 나부꼈다. 절로 경탄성이 터져 나왔다.
상당한 마력 운용력과 숙련도가 요구되는 [서리불꽃]의 응용판이었다.
아직 아○언맨처럼 균형을 잡으며 날아다닐 수 있는 수준은 못 되지만, 적어도 [서리불꽃]을 부스터 용도로 사용하는 건 가능했다.
다만 마력을 모아 압력을 쏟아부어야 하는 탓에 소모 마력량이 높고 마력 효율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숙련도를 더욱 높이기 전까지 남발할 순 없는 것이다.
단숨에 내 몸은 미끄러지듯 다리를 지나 협곡에 이르렀고.
곧바로 신발 밑창에 덧댄 바위 칼날과, 협곡과 협곡 사이를 잇고 있는 다리를 얼렸던 얼음을 풀었다. 내 원소 마법은 형형한 빛을 흩뿌리는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다시 사납게 흔들리기 시작하는 다리. 학생들은 비명을 내질렀다.
“아니?! 줬다 뺏는 게 어딨어?!”
“으악! 누구 얼음 속성 없어?! 빨리 다시 얼려 봐!”
“윽! 어려워! 이 상황에서 어떻게 저런 컨트롤이 가능한 건데?!”
무시하자.
나는 잔야의 지팡이를 등 뒤로 넘겨, 상체에 사선으로 둘러멘 벨트에 고정시키고 다시 내달렸다.
삑, 삑─.
협곡 위를 지나던 중 단풍 숲이 나타났다. 주위가 온통 새빨간 단풍잎으로 가득했다.
동시에 왼쪽 손목에 착용하고 있던 시험용 팔찌에서 불빛이 나타나며 알람이 울렸다.
첫 번째 관문에 들어섰구나.
팔찌에서 마나 알갱이들이 흘러나와 허공에 글자를 새겨나갔다.
‘첫 번째 관문, 네비루스의 구슬 찾기’.
네비루스의 구슬은 마나를 적게 발산하는 마구체(魔球體)다. 이름은 구슬이지만 구체적인 외형은 육각면체. 크기는 탁구공보다 조금 작은 수준.
발산되고 있는 마나의 출처는 형태를 자세히 알고 있을 수록 더 빨리 찾아낼 수 있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 나오는 공식 설정인데, 뭔 원리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물론, 내가 그런 구체적인 내용을 알 필요는 없었다.
“응, 클리어.”
위치를 알고 있으면 무의미하니까.
띠링─♪
어느 나무 근처, 흙바닥에서 네비루스의 구슬을 찾아내자 팔찌에서 녹색 불빛과 함께 경쾌한 효과음이 튀어나왔다.
다시 마나 알갱이들이 흘러나와 허공에 글자를 새겨나간다. ‘관문 통과’라는 글자 밑으로 방향표가 새겨져 다음 진로를 가리켰다.
나는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아직도 미행하고 있나.
바람 마법을 휘감았으면서 일부러 거리를 벌리고 있다는 게 느껴졌기에,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누군가 나를 뒤쫓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서, 교복 재킷 안주머니에 들어있는 마법 주머니에서 단조롭게 생긴 작은 손거울을 꺼내 은근슬쩍 뒤편을 살펴보길 반복했다. 날 몰래 뒤쫓고 있는 여학생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옆으로 묶은 청은색 머리. 고양이상의 앙칼진 눈매. 품에 껴안고 있는 나무 지팡이.
─ ‘준비됐으면 가 봐. 난 볼 면목 없으니까.’
서리의 시련 때,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 말을 입에 담았던 여성의 모습이 뇌리를 스친다. 아이작의 친누나다.
그녀가 메르헨 아카데미 학생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보니까 떠올랐었지.’
나는 작은 손거울을 마법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아이작과 연관돼 있다고 생각했던 <메르헨의 마법 기사> 속 여학생 NPC. 날 뒤쫓고 있던 청은발의 그녀를 보고 나니 확실히 떠올랐다.
누가 보아도 리플리 증후군이었고, 아무도 곁에 머무르지 않아 외톨이처럼 떠돌아다니던… 사연 있어 보이는 NPC였지.
날 뒤쫓아오고 있는 여학생이 바로 그녀였다. 아이작의 친누나이자, 정신병을 앓고 있던 여학생.
나는 아이작의 기억을 온전히 갖추고 있지 않았다. 그저 그의 이야기 일부만 머릿속에 담겨 있을 뿐.
그래서 저 누나가 어떤 사람인지, 무슨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방해만 하지 마라.’
지금 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개구리 마족을 처치하는 것. 그것이 우선순위다. 그러니 저 누나가 방해만 되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나는 다음 관문을 향해 내달렸다.
* * *
이브 로펜하임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어, 어떻게 저걸 바로…?’
이브 자신도 당장에 마나 감지가 안 되고 있는 네비루스의 구슬이란 걸… 아이작은 단숨에 찾아냈다. 이 얼마나 뛰어난 마나 감지력이란 말인가.
심지어 합동 실습 평가가 시작된 후로, 아이작이 무난하게 얼음과 바위 속성 마법을 구사해댔던 것도 말도 안 되는 광경이었다. 마력이라곤 쥐뿔도 없던 녀석이 어떻게…?
심지어 수준도 상당했다. 지팡이의 영향도 있겠지만, 그 마도무기를 다룬다는 사실부터 그의 실력을 입증해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언제 저렇게… 실력을 기른 거야?’
마지막으로 아이작을 봤던 때는 고작 약 2년 전. 그와 이브의 어머니가 이 세상을 뜨던 날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이작은 여전히 볼품없는 놈이었을 텐데.
약 2년 만에 이룬 성과라고 보기엔 믿을 수 없는 성장 속도였다.
아이작에겐 이브 자신도 몰랐던 무언가가 있는 듯했다. 이브는 그 정체를 확인하고 싶었다.
“앗.”
이미 아이작은 이브보다 한참 앞서고 있었다. 조금만 늦어져도 그를 놓치고 말 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던 이브는, 입술을 짓씹고서 아이작을 추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