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4 합동 실습 평가 (3)
두 번째 관문도 순조롭게 클리어.
커다란 마법 기둥에 흐르고 있는 마나 회로를 간파하고, 마나의 흐름이 원활한 부위에 마력을 쏟아부어 기둥을 발광체로 만드는 시험이었다.
전술했듯, 나는 <메르헨의 마법 기사> 고인물. 굳이 마나 회로를 간파할 필요 없이 기둥 문양만 보고도 정답을 쉽게 판별할 수 있었다.
세 번째 관문은 마물 대전. 아무 마물이나 10마리 잡으면 통과인 시험이다.
여전히 숲속이었다.
이제 슬슬 동료를 모집해야 했다. 무조건 싸움을 잘하는 놈으로.
개구리 마족을 잡으러 가려면 네 번째 관문을 통과해야 하고, 거기서 문지기와 싸워 이겨야 한다.
대부분의 학생이 네 번째 관문에서 탈락한다. 나도 혼자서는 문지기를 이길 수 없겠지.
‘계획대로 됐으면 속 편하게 갔는데.’
플랜 A대로 됐다면 굳이 동료에 목맬 필요는 없었을 터.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생긴 탓에 플랜 B, 동료 포섭에 돌입하는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선 매 회차마다 주요 캐릭터들이 있는 곳이 달랐기에, 내가 가는 길에 누굴 만나게 될지 확신할 순 없었다.
───「암석 붕괴 (바위 속성, ★4)」
구드드드드───!! 쾅! 쾅!!
[꾸에에엑!!]
“시시하긴.”
때마침 사나운 바위 마법 소리와 함께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왠지 나와 같은 길을 택했을 것 같더라니, 역시.
오렌지색 머리칼을 뒤로 묶은 포니테일 스타일, 금안을 지닌 여학생. 리제타 라이온하트였다. 합동 실습 평가를 시작하기 전, 나와 같은 출발선에 있었지.
오늘은 어째선지 교복 셔츠 단추를 모두 풀진 않았으나, 교복 재킷을 허리에 둘러 묶은 채였다. 그러고 보니 저거, 교복 멀쩡하게 입은 모습을 단 한 번도 못 봤네.
리제타는 바위 마법으로 밀가루 반죽 두들기듯 줘팬 송곳 하마를 바라보며, 손에 쥐고 있는 마법 방망이 록타를 어깨에 걸쳤다.
‘목표를 포착했다.’
어쨌건, 먹잇감 발견.
수렵 평가 때도 리제타와 동료가 되려고 했었지. 그 바람을 여기서 이루게 생겼다.
[꾸에에엑!!]
그때, 길쭉한 송곳니가 달린 흉포한 보라색 하마가 내 쪽으로 돌진해 오기 시작했다. 녀석도 나를 먹잇감으로 삼은 모양이었다.
마물, 송곳 하마다. 네 발로 서 있는 주제에 체고가 내 키보다 컸다.
“……?”
송곳 하마의 울음소리를 듣고, 리제타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돌연 두 눈이 휘둥그레지는 그녀.
“너 새끼가, 왜 여기에…?”
인사하기 전에 일단 송곳 하마부터 잡아야겠지.
나는 잔야의 지팡이를 꺼내 들고 송곳 하마 쪽으로 지팡이의 머리 부분을 슬쩍 내밀었다.
그 후, 얼음 마나를 흘려보냈다.
「얼음 창 (얼음 속성, ★4)」
푸슉! 처억──!
[꾸에엑….]
내 머리 위로 구현된 얼음의 창이 삽시간에 공기를 꿰뚫고, 송곳 하마를 관통했다.
그 한 방으로 놈은 가볍게 쓰러졌다.
수렵 평가 땐 경계할 수밖에 없는 마물이었는데…, 이제는 거뜬히 해치울 수 있게 됐다.
‘뿌듯.’
[얼음 창]에 꿰뚫린 송곳 하마는 잠시간 경련하더니, 투박한 인형의 형태로 변모했다.
삑─.
팔찌에 숫자 ‘1’이 새겨졌다. 세 번째 관문 마물을 한 마리씩 잡을 때마다 1씩 늘어나고, 10이 되면 관문 통과라고 뜰 것이었다.
그제야 나는 리제타 쪽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움찔, 하고 어깨를 떨었다.
[ 리제타 라이온하트 ]
심리 : [ 당신이 무서워 긴장하고 있습니다. ]
공포로 이루어진 상하관계는 동료 관계로 영 적합하지 않다. 설령 일회성 동료라고 해도.
그러니 최대한 편하게 대해주어 그녀를 안심시켜 주는 편이 좋겠지.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가식으로 점철된 신사적인 미소를 만면에 담고.
나는 리제타에게 다가가며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다.
“왜, 왜 친한 척이냐?! 소름 돋게…!”
식은땀을 삐질 흘리며 뒷걸음질 치는 리제타. 날 따까리처럼 부리려던 수렵 평가 때의 모습과는 몹시 대조적이었다.
기껏 살갑게 대했건만, 반응이 이 모양이니 서글퍼진다.
됐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너, 내 동료가 돼라.”
“헛소리 하지 마라.”
이 대사를 치면 동료가 되는 게 국룰일 텐데, 리제타는 즉각적으로 쌀쌀맞게 대답했다.
뭐,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리제타.”
나는 리제타 옆에 달라붙어서 그녀의 어깨에 팔을 휘감아 얹었다. 친근감을 표하기 위한 어깨동무였다.
리제타는 고개를 흠칫 떨었다. 애써 강한 척 자신을 포장하고 있지만 미세한 몸의 떨림을 주체하지 못했다. 금빛 눈동자는 은근한 공포심으로 젖어 있기까지 했다.
애당초 내 팔을 뿌리치지 못하는 걸 보니, 나에게 저항할 용기조차 내지 못하는 모양.
이 정도로 겁 먹을 줄은 몰랐는데…. 어서 빨리 긴장을 풀어 줄 필요가 있겠다.
“내 생각인데, 네 번째 관문 꽤 어려울 것 같다. 서로 돕자. 내가 전력이 되면 너한테도 이득 아니냐? 우리 비밀도 공유한 사이잖아.”
“아아, 네 번째 관문 어렵단 건 어떻게 알았냐? 그 대마법사의 마나 감지력 뭐시기로 알아낸 거냐? 진짜, 이 새끼….”
“나한테 붙을 거야 말 거야?”
쓸데없는 소리는 바로 잘라냈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데? 넌 시험 같은 거 적당히 치면 되는 거 아니었어?”
“중요한 일이 있어.”
능청스럽게 얘기하는 건 관두기로 했다. 나는 진중한 어조로 속삭였다.
눈살을 찌푸리는 리제타. 그녀의 금안이 내 눈을 향했다.
“이번에도 위험한 놈 튀어나오냐?”
“저번처럼 위험하진 않아.”
“하, 미친…. 또냐.”
리제타는 자기 이마를 턱 짚으며 한숨을 푹 내뱉었다.
이윽고, 그녀는 날이 선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난 네가 싫다.”
“그러냐. 난 네가 친구 같아서 좋은데.”
“뭐?”
“저번에 사교회 때 날 도와준 건 정말 고마웠고.”
진심이었다. 엘트 섬에서 무상의 엘페르트 몸을 휘젓고 다녔을 땐 무척 거슬렸으나, 사교회 때 갑작스레 내 편을 들어준 건 은근한 감동을 주었다.
뭐, 미운 정 고운 정 들면서 친구 되는 게 아니겠나. 로제 년은 예외니까 빼고.
“너 위한 거 아니었으니까 착각하지 마라. 기분 나쁘니까.”
리제타는 짜증스럽게 투덜대며 팔찌가 채워진 왼손을 들어 올렸다.
“…그럼 네 번째 관문까지만이다.”
[ 리제타 라이온하트 ]
심리 : [ 학생들에게 위험한 일이 벌어지지 않길 바라고 있습니다. ]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자주 봐 왔지.
호전적이고 불량스러워 보여도, 타인을 걱정하고 지키려고 하는 속내를 몰래 감추고 살아가고 있는 전형적인 양아치 츤데레. 그것이 리제타였다.
“잘 부탁한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그녀와 팔찌를 맞댔다.
띠링─♪
나와 리제타 팔찌에 자그마한 푸른 불빛이 내비치기 시작했다. 동료가 되었다는 표시였다.
‘예쓰!’
든든한 전력이 생겼다!
“크! 가자, 리제타!”
“으악! 머리 쓰다듬지 마, 징그러워!”
기쁜 마음에 머리 좀 쓰다듬어줬더니, 리제타는 해충이라도 맞닿은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라며 내게서 재빨리 떨어졌다. 무슨 취급이냐.
그러한들 어떠하랴. 좋은 전력이 생겼는데.
콰가강───!
콰드드드──!
나와 리제타는 마물들을 가뿐히 해치우고 할당량을 채운 뒤, 세 번째 관문을 통과했다.
팔찌에서 마나 알갱이가 흘러나와 다음 관문이 있는 장소를 방향표 모양으로 가리켰다. 방향표가 많았다. 그중 붉은색 마나 알갱이가 ‘세모’ 표시를 새겨둔 방향표도 있었는데, 이는 다른 학생이 이미 그 장소에 있다는 의미였다.
나는 그 세모 표시가 있는 방향표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야, 그 표시가 뭔지 까먹었냐?”
“괜찮으니까 따라와.”
다른 학생들이 이 길을 선택하지 않게 내가 미리 손써둔 거니까.
숲을 빠져나가자 눈 부신 햇볕이 쏟아졌다. 손차양으로 눈가에 그늘을 만들었다. 저 너머, 손바닥만 한 파란 하늘이 고개를 내밀었다.
여전히 협곡 위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절벽이었다.
정면에는 울퉁불퉁하고 급격하게 경사진 높은 석회암 절벽과,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었다. 정상에 이르면 네 번째 관문을 진행할 수 있을 터.
“이 길을 택하는 게 아니었는데….”
리제타의 독백엔 깊은 후회가 담겨 있었다.
계단이 높아봤자지. 이렇게 탁 트인 곳에서 절벽을 오르기란 내게는 무척 간단했다.
나는 리제타에게 등을 보이고서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업혀.”
“미쳤냐? 차라리 토끼걸음으로 올라가라 해라.”
“후, 그럴 줄 알았다.”
“…어? 뭐, 뭐 하려고? 자, 잠깐만! 아악!”
배려는 한 번이면 족하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나는 리제타에게 다가가, 강제로 그녀를 공주님 안기로 들어 올렸다.
리제타도 나름 운동한 몸이라지만, 순수한 힘은 내 쪽이 압도적으로 강하니 문제없었다.
[ 리제타 라이온하트 ]
심리 : [ 굉장히 당황하고 있습니다. ]
“너, 이이이게 무슨…?!”
“움직이지 마.”
나는 단호한 목소리를 내뱉고서, 발밑에 바위 마나를 흘려보냈다.
「바위 생성 (바위 속성, ★1)」
드드드드득───!!
“으아아아악!”
내 발밑에서 단숨에 바위기둥이 솟구쳤다. 우리 몸이 똑같이 위로 솟아올랐다.
바위를 뽑아내는 데 한계치에 이르면, 도중에 절벽에서 새로운 바위기둥을 뽑아내고.
그 바위로 갈아 타 다시 위로 뻗어나가길 반복했다.
마력 운용력과 균형감각, 운동신경을 깨나 요하는 작업이었다. 아슬아슬하고 위험천만하긴 하나, 내게는 그다지 무리가 아니었다.
“미미, 미쳤어?!”
“이편이 훨씬 빠르잖아.”
“하아, 이 새끼 진짜…!”
그 말을 끝으로 리제타는 한숨만 푹 내뱉을 뿐,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드드드드득───!
이윽고, 타고 있던 바위기둥이 절벽 끝에 이르자 가볍게 폴짝 뛰어 정상에 착지했다.
주위로 단풍잎이 빙빙 에워싸고 있는 평평한 지면 한가운데에, 작은 석회 동굴 입구가 있었다. 지하 동굴로 이어지는 출입구였다.
“리제타, 괜찮냐?”
“하아아….”
리제타는 깊은 탄성을 토해내며 축 늘어졌다. 혼이 나갔네, 얘.
“아이작 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단풍나무에 기대고 있던 담녹색 양갈래 머리칼의 여학생이 내 쪽으로 달려오며 반갑게 소리쳤다.
마법학부 1학년 차석, 카야 아스트레앙이었다.
눈동자는 비취색. 본래의 그녀다.
“차석?”
리제타는 대뜸 카야가 튀어나와 당황했고.
“기다리고 있었…!”
돌연 카야는 멈칫했다. 마치 혼자서만 시간이 정지한 듯한 모습.
이내, 복잡한 감정의 파도가 그녀의 눈동자에 들이닥쳤다.
[ 카야 아스트레앙 ]
심리 : [ 당신에게 공주님 안기로 들려 있는 리제타 라이온하트에게 질투심과 부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
일단.
좋은 상황이 아니란 건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