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95화 (95/334)

EP.95 합동 실습 평가 (4)

합동 실습 평가가 시작되기 전.

협곡 인근, 바위 뒤편에서 카야를 몰래 불러내 상황을 전달했다.

상당한 마력량을 지닌 자들이 시험장 곳곳에 대기하고 있으며, 어느 지점 너머에 마족이 있다고.

혹시 모르니 최대한 빨리 시험을 진행해, 마족에게로 이어지는 어느 장소를 선점해 달라고 부탁했다. 출발선에서 바로 보이는 높은 위치라 가리키는 건 쉬웠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카야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네 다른 힘이 필요할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아이작 님. 그건….”

다만, 변수가 있었다.

악식의 인격이 카야의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 버렸다는 점.

아이작 님께 인정받을 수 있도록 시험은 알아서 치르라는 게 어젯밤, 악식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고 한다.

‘왜?’

당연히 악식이 나서줄 줄 알았는데…. 카야의 성장을 위해서 빠진 건가?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이런 적은 없었는데?

불길했다. 악식의 변화는 사소한 것이라도 필시 카야에게 영향을 미칠 터. 나는 그녀의 신체를 이리저리 살폈다.

내게 몸 구석구석이 훑어지는 게 부끄러운지 카야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채 딱딱하게 굳어 버렸으나, 그런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카야, 너 요새 평소랑 달라진 거 없어?”

“어어어어, 없습니다…! 아, 요새 조금 식욕이 많아진 것 같은 기분은 드는데…. 뭘 먹어도 뭔가 해소되는 기분이 안 듭니다.”

“…….”

“…혹시 저, 조금 후덕해졌습니까? 그래서 그런 질문을…?”

“그냥 몸에 이상 없는지 확인해본 거야.”

애당초 카야와 악식은 기억도, 감정도, 감각도 공유되는 사이. 그냥 서로가 자기 자신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악식이 무슨 생각으로 숨은 건지 카야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부터 의문이었다.

…고민해봤자 달라질 건 없었다. 합동 실습 평가가 임박했으니. 우선 풀리지 않는 의문은 뒤로 미뤄두고, 당장에 해결해야 할 과제에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본래의 카야만 데리고 가선 네 번째 관문을 통과하기 어렵다. 그래서 동료를 데리고 오는 수밖에 없었으나….

‘분위기 조졌네.’

현재.

네 번째 관문으로 이어지는 석회암 절벽 정상에서, 카야는 도끼눈을 뜨고 리제타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어째서 리제타를 공주님 안기로 들고 있었는지 해명하긴 했다. 빠르게 절벽을 타고 올라오느라 어쩔 수 없이 그랬다고. 그러나 카야는 여전히 못마땅한 눈치였다.

이내, 리제타에게서 내 쪽으로 눈길을 돌리는 카야. 평소에 강아지처럼 말똥말똥한 눈망울이 내게 아쉬움이 담긴 눈빛을 쏟아냈다.

[ 카야 아스트레앙 ]

심리 : [ 당신에게 공주님 안기를 받고 싶어 합니다. ]

…다음에 적절한 타이밍이 오면 해줘야겠다.

“야.”

별안간 리제타는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얼굴을 확 붉히고서 당황하는 카야. “저, 저기! 가깝잖습니까!”하고 허공에 양손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우리를 만류하려 들었다.

그리 안절부절못하고 발을 굴러대면서, 막상 내게 실례가 될까 봐 마음껏 끼어들지도 못했다. 귀여운 얼굴로 으르렁거리는 게 전부.

리제타는 무시하고 말을 이어갔다.

“너 수석이랑 사귀는 거 아니었냐?”

“안 사겨, 멍청아.”

“말하는 거 진짜, 개 때리고 싶네…. 그럼 뭔데? 아무 여자나 다 꼬시고 다닌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냐? 그러고 보니까, 어떻게 된 게 그 소문에 나도 끼어있을 정도냐?”

“내가 뭐라고 설마 그랬겠냐….”

“그럼 새끼야. 내가 왜 차석한테 저런 눈초리를 받아야 하냐고, 부담스럽게…!”

카야가 날 계속 좋아하겠다는데 내가 뭘 어쩌겠냐.

리제타는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며 내게서 떨어졌다.

“이래서 여복 많은 새끼란….”

“무슨 얘기하셨습니까?”

“별 얘기 안 했다.”

카야가 뾰로통한 얼굴로 노려보자, 리제타는 툭 던지듯 대답했다.

“가자, 여기서 더 시간 끌지 말고.”

“앗, 네에!”

나는 카야, 리제타를 데리고 동굴 출입구로 들어섰다.

벽면에 설치된 발광 램프만이 흐릿한 불빛을 내비치고 있다. 동굴 내부. 밑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보였다. 학사가 깎아 만든 것이다.

우리는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이다.”

리제타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동굴을 울렸다.

“네 사정은 그렇다 쳐도, 네 번째 관문이 뭐길래 차석까지 대동해도 어렵단 거냐? 이거 그냥 시험이잖냐. 차석씩이나 되는 녀석이 통과하기 어려우면 어쩌잔 건데.”

카야는 자기도 궁금하다는 듯 내 쪽으로 강아지 같은 눈길을 돌렸다.

참고로 카야에게는 리제타에게 내 비밀을 털어 놨다고 예전에 얘기해둔 상태였다. 그렇기에 카야가 리제타의 말에 의문을 표하는 일은 없었다.

“너희보다 강한 사람이 이 아래에 있으니까.”

“뭐?”

합동 실습 평가 네 번째 관문은 문지기가 지키고 있는 문을 통과하는 것.

그리고 그 문지기는 바로 ‘교수’다.

굳이 문지기를 쓰러뜨릴 필요는 없었지. 문지기가 ‘제법이었다’하고 인정만 해줘도 학생들을 보내주는 경우가 태반이었으니.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도 일정 시간 동안 버티기만 하면 네 번째 관문은 통과였다.

그러나 우리가 마주칠 교수는 다르다.

A 클래스 담당, 필립 멜트런 교수. 그는 그 어떤 학생도 쉽게 보내주려 하지 않는다.

게임에서도 필립 교수를 쓰러뜨리지 못 하는 이상 개구리 마족을 쓰러뜨리러 갈 수 없었다. 그래서 강력한 파티를 구상하는 건 필수였지.

‘고지식한 놈이었어.’

‘그 누구도 전투에서만큼은 봐주지 않는다’. 필립 멜트런 교수의 철칙이다.

설령 그가 좋아하는 귀족이나 아직 어수룩한 학생이 상대라고 하더라도.

일단 싸워야 할 적인 이상 무조건 이기려고 드는 것이다. 사실상 학생 처지에서 이 길은 꽝이나 다름없었다.

‘이것이 실제 전투였다면 자넨 죽은 목숨이었네. 탈락 정도로 다행이라 여기게’라면서 이안을 탈락시키던 게임 속 장면이 문득 떠오른다.

이딴 게… 교수? 찌질한 놈이었지, 완전.

융통성 따윈 내다 던진 듯한 강한 승부욕을 지닌 남자. 그 어떤 승부에서든지 패배를 용납하지 않는 남자. 그것이 필립 교수였다.

“카야, 리제타. 잘 들어.”

나는 그녀들과 어떤 식으로 싸울지 입을 맞추었다.

계단은 나선형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윽고 계단 끝에 이르러 좁은 통로를 지나자, 높은 천장과 탁 트인 동굴 내부 전경이 시야에 담겼다.

가운데엔 넓은 경기장이 있었고, 건너편에는 아치형으로 된 철문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치 돔형으로 이루어진 콜로세움에 입장하는 듯한 기분.

그리고 널따란 공간 한가운데, 천장에 설치된 커다란 발광 램프의 조명을 받으며.

낯익은 붉은 머리칼의 중년 남성이 의자에 앉은 채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리를 꼰 채로, 거만하게.

카야와 리제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왔나.”

1학기 대련 평가 때의 심사관 중 한 명이었던.

A 클래스 담당 교수이자, 평민을 무시하는 신분차별주의자.

필립 교수였다.

[ 필립 멜트런 ]

Lv : 112

종족 : 인간

속성 : 불, 바위

위험도 : X

심리 : [ 평민인 당신이 A 클래스 학생들 사이에 껴있어 불쾌해하고 있습니다. ]

“필립 교수님…?”

카야와 리제타의 놀란 표정이야 이해가 간다.

설마 자기 클래스 교수와 싸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테니.

파다다다닥─.

그때, 동굴 천장 구석에서 동그랗게 생긴 전달꾼이 날개를 파닥이며 우리에게로 날아왔다.

[어서 오세요, 학생 여러분! 네 번째 관문에 대해 설명 드리겠습니다.]

전달꾼에서 밝은 청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번째 관문 통과 조건은 간단합니다. 바로 건너편에 있는 문을 열고 이동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아카데미 교수님들께서 문지기가 되어 여러분의 앞길을 막을 거예요. 문지기를 쓰러뜨리고 지나가십시오. 그러면 네 번째 관문 통과입니다!]

교수를 쓰러뜨려라. 루체나 악식의 카야처럼 압도적인 기량을 자랑하는 녀석들 빼곤 말도 안 되는 주제다.

단지 학생들에게 ‘교수를 쓰러뜨릴 각오로 전력을 다해라’라는 의미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다만, 필립 교수 상대로는 말뜻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었다. 전술했듯, 그는 쉬이 도전자를 보내주지 않으니까.

[단, 문지기에겐 핸디캡이 주어집니다. 첫째, 원소 속성 마법은 한 가지만 사용 가능. 둘째, 마법은 최대 4성급까지만 사용 가능. 이상! 화이팅입니다!]

전달꾼은 마지막 전달 사항까지 모두 전하고서 어딘가로 날아갔다. 역시 핸디캡도 내 기억 그대로다. 내가 아는 대로라면, 필립 교수는 불 속성 마법을 사용할 것이었다.

우리는 필립 교수를 노려보았다.

전달꾼이 사라지자, 필립 교수의 입에서 점잖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카야 아스트레앙, 리제타 라이온하트. 자네들은 황국의 미래를 이끌어가기에 충분한 인재들일세. 하지만… 왜 그 사이에 자네 같은 불순물이 끼어 있는지 의문이군.”

필립 교수는 나를 노려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순물이라, 그래도 이제까지 들어왔던 호칭 중에선 나름 고급스러운 편이군.

필립 교수의 레벨은 112. 여기 있는 우리 중 누구보다도 레벨이 높다.

자신 있다. 한 대 맞고 골로 갈 자신이.

그러니, 내가 <메르헨의 마법 기사>를 플레이하면서 알게 된 필립 교수만의 성격과 특징을 이용해서 싸우는 수밖에 없다.

“자네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네. 1학기 대련 평가 때 곧바로 항복 선언을 하고, 피드백의 가치도 가볍게 무시했던… 어리석기 짝이 없던 열등생. 기백도, 의지도, 자네에게선 찾아볼 수 없었지. 이해하고는 있네. 역시 평민이기 때문이겠지.”

트리스탄이랑 대련했을 때의 얘기다.

방도가 있었겠나. 허상의 리파 잡으러 가야 했는데.

“뭐, 상대가 강했으니까요.”

나는 잔망스럽게 어깨를 으쓱했다. 별 대수로운 일도 아닌데, 뭘.

저거, 이마에 십자핏줄 돋아나는 거 봐라. 내 태도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허, 하고 짤막한 숨소리를 내뱉는 필립 교수.

“유능한 학생들 사이에 끼니 자네가 뭐라도 되는 것 같나? 카야 아스트레앙, 리제타 라이온하트. 자네들은 동료를 보는 안목을 기를 필요가….”

「바람 생성 (바람 속성, ★1)」

휘우우우우우──!

매서운 연녹빛 바람이 몰아치며 필립 교수의 말소리를 집어삼켰다.

“지금.”

내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 나가 경기장을 오르는 카야. 아르마나의 완드를 휙 꺼내들고, 필립 교수와 거리를 두고 멈춰선다.

강아지처럼 순하던 눈빛에 싸늘한 적의가 깃들었다. 카야의 담녹색 양갈래 머리칼이, 케이프숄이, 치맛자락이, 그녀의 바람에 사납게 나부꼈다.

“제 앞에서 누굴 폄하하시는 겁니까?”

살기 어린 바람이었다.

“나야, 이 새끼 욕하는 건 상관없는데.”

이어, 리제타는 목 뒤로 넘긴 마법 방망이 록타에 양손을 걸친 채 카야 옆에 이르렀다.

전의를 가다듬고, 금안으로 필립 교수를 노려보는 리제타.

“어차피 싸울 건데 뭐 이리 말이 많냐?”

이 자식들….

든든하다…!

“훌륭한 적의일세. 하지만, 분노를 표할 이유가 잘못된 것 같구나.”

필립 교수는 안쓰럽다는 눈빛으로 카야와 리제타를 바라보며, 품 안에서 갈색 완드를 꺼내 들었다.

“교육이, 필요해 보이는군.”

필립 교수의 점잖은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묵직한 긴장감이 가슴속을 꾹꾹 짓누르고, 식은땀이 한 방울 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 또한 경기장에 올라 전열을 가다듬었다.

“카야, 전위는 맡긴다.”

나는 아직 쩌리니까 말이야!

“네, 아이작 님.”

카야의 대답이 나지막이 울린다.

나는 등 뒤에 동여매고 있던 잔야의 지팡이를 꺼내고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무거운 침묵이 가라앉고.

네 번째 관문, 대 교수전이 시작되었다.

* * *

이브 로펜하임은 빠르게 마물 10마리를 해치우며 세 번째 관문을 통과했다.

멀리서 지켜보고 확인한 바, 아이작은 주황색 포니테일 머리의 여학생을 동료로 삼고 떠나버린 상황이었다.

“그 쑥맥이…?”

이브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기를 제외한 여자들한테는 낯가림이 심했던 그 소심쟁이 녀석이, 별안간 미모의 여학생 어깨를 감싸 안고 능청맞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기에.

─ ‘누나, 안아줘여.’

─ ‘응, 그래.’

─ ‘누나, 안아줘.’

─ ‘자, 안겨.’

─ ‘누나, 안고 자자…. 천둥 무서워….’

─ ‘하암…. 으응, 일루 와.’

틈만 나면 안아달라고 했던 어린 아이작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여자라고는 이브밖에 대할 줄 모르는 녀석이었다. 한때 고향에선 극성인 누나 바라기라고 불렸을 정도였는데….

정말로, 그 찐따 같던 아이작이 맞단 말인가?

마법 실력도, 버젓한 남성미도, 예쁜 여학생에게 낯가림 없이 치근대는 성격까지도… 전부 이브가 알고 있던 그와 달랐다.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이브는 아이작이 떠나간 방향으로 나아갔다. 몸에 바람 마법을 휘감고 석회암 절벽을 빠르게 오르기 시작했으나, 중간부터 마력이 거의 소진된 탓에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만 했다.

“허억, 허억….”

서늘한 바람이 불고 있음에도, 이브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들었다. 중간 부분까지 바람 마법으로 올라오지 않았다면 도중에 기진맥진했을 터.

그러나 숨을 헐떡이며, 이브는 가까스로 정상에 이르렀다.

그녀는 두 무릎을 짚고 상체를 퍽 숙인 채 숨을 가다듬었다.

“동굴….”

지하로 이어지는 작은 동굴 입구가 보였다. 아이작 일행은 저 동굴로 들어갔으리라.

호흡이 점차 안정되고.

이브는 동굴 입구로 들어가 계단을 조심조심 내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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