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113화 (113/334)

EP.113 부유섬 토벌전 - 막간 (2)

도로시 게일은 새하얀 억새풀이 가득한 밭을 가로질렀다.

황금빛 햇볕이 그녀의 피부를 온화하게 감쌌고.

따뜻한 미풍이 흐를 때마다 억새풀 무리가 부드럽게 흔들렸다.

그 어린 소녀가 시야마저 가리는 억새풀 밭을 망설이지 않고 헤쳐 나갈 수 있었던 건, 하늘에 무지개가 떠 있기 때문이었다.

저 높이,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

자장가에서 들어 본 곳이 있었다.

그곳에 외숙모와 외삼촌, 토토, 그리고 도로시가 살았던 시골 마을 사람들이 살고 있으리라 믿으며, 그 어린 소녀는 쉬지 않고 달려 나갔다.

억새풀 밭을 지나쳐, 마침내 도로시는 붉은 판잣집이 있는 무지개 너머 세상에 이르렀고.

그곳에 있던 외숙모 품에 껴안기며 환한 미소를 지어냈다.

그 장면을 끝으로, 도로시는 부유섬을 길동무 삼아 잿가루조차 남지 않는 최후를 맞이한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 두 번째 에피소드, 「비하인드 스토리 -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에게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살아나가면서도 이 세상에 그 어떤 미련도 갖지 않도록, 후회하지 않도록, 서서히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작이 나타났다.

그는 도로시에게 많은 미련을 안겨 주었다.

기숙사 방, 장롱에 감춰 놓았던 곰 인형을 꺼내 들게 만들었고.

가고 싶었던 곳, 하고 싶었던 것들을 마음속에 새겨 나가게 만들었고.

모든 걸 내려 놓으리라던 다짐을 허무하게 무산시켜 버렸다.

그리고 구해주겠다고 했다.

찾아와서, 돌아가자고 했다.

도로시는 아이작에게서 입술을 떼어내고, 그에게 씌운 마녀 모자의 챙 아래에서 벗어났다.

이미 그는 정신을 잃은 채였다.

멀쩡한 척하는 것 정도야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그토록 무리했으니 당연한 일이지.

초점조차 맞지 않는 눈을 보고서, 도로시는 아이작이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억지로 눈을 떠서 의식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이제 쉬라는 의미로 눈을 감으라고 했던 것이었다.

이미 한계에 내몰려 있었는지, 그는 눈을 감자마자 잠에 빠져들었다.

아이작의 몸은 튼튼하다. 하물며 그의 심지에 흐르고 있는 초월적인 얼음 마력은 아까부터 조금씩 그의 마나 회로를 견고하게 보강해주고 있었다.

푹 자고 일어나면, 그는 다시 건강한 모습이 돼 있을 터.

정말이지, 괴물 같은 남자였다.

물끄러미 아이작을 바라보며, 도로시는 엷은 미소를 흘렸다.

도로시에겐 사람의 감정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자신을 바라보던 아이작에게선 언제나 애정의 감정이 엿보였다. 그것은 외숙모나 외삼촌, 강아지 토토에게서 줄곧 보이던 형태였다.

─ ‘회장은 내가 좋구나?’

그 감정을 시험해볼 때가 여러 번 있었다. 그래서 사실, 조금 얄궂은 농담도 자주 던졌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매번 똑같았다. 변함없이 도로시를 아껴주고, 걱정해주고, 애정을 품어 주었다.

이해타산 따위 없는, 그저 순수한 마음.

풀벌레의 찌르르, 거리는 울음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빠르고 규칙적인 박동 소리만이 도로시의 귓가를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잘 자, 아이작.”

도로시는 싱긋 웃고서 아이작을 벽에 편안히 기대게 하고.

그의 어깨에 기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첫눈이 마저 내린다.

서서히, 겨울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 * *

[ 상 태 ]

이름 : 아이작

Lv : 102

성별 : 남

학년 : 1

칭호 : 열혈 1학년

마력량 : [ ※ 마력 고갈 상태입니다 ]

- 마력 회복 속도(B+)

- 체력(A-)

- 근력(A-)

- 지력(B)

- 정신력(A+)

[ 전투 능력 ]

원소 계열 1 : 얼음

- 원소 화력(A-)

- 원소 효율(A-)

- 원소 시너지(A)

원소 계열 2 : 바위

- 원소 화력(B)

- 원소 효율(B)

- 원소 시너지(B-)

[ 잠재력 ]

보유 스탯 : 0

◆ 성장 속도

- 신체 단련 효율(S) : 100/100

- 마법 단련 효율(S) : 100/100

- 학습 효율(A+) : 84/100

보유 스킬 <<상세>>

[잠재력 [신체 단련 효율]과 [마법 단련 효율]이 모두 최대치가 되었습니다!]

[고유 특성 [마법 기사의 극의]를 획득했습니다!]

[※ 고유 특성 [마법 기사의 극의]의 발동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습니다! 해당 고유 특성은 잠금 상태가 됩니다.]

아침. 나비 정원. 한밤 중에 내린 눈이 소복이 쌓여 나비 정원을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아침 조깅을 하면서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부유섬이 나타났음에도 가벼운 부상자만 속출했을 뿐, 다행히 아카데미에 큰 피해는 없었다.

루체가 막아준 덕이 컸지. 기특한 녀석.

어젯밤, 나는 도로시와 함께 바다로 추락하던 중 다시 하늘로 떠올라 구름 위로 이동했다. 내 모습이 사람들 눈에 띄어선 안 됐으니.

그리고 조세나 숲에 있는 아지트에 떨어져 휴식을 취하기로 했고.

나는 신체 감각을 모두 잃고서 곤히 잠들고 말았다.

술을 잔뜩 퍼 마신 사람처럼 기억이 아리송했다.

도로시의 모자가 내 머리에 쓰이고, 왠지 내 머리가 뒤로 밀려났던 듯한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는 듯했다.

그때 눈을 감자마자 곧바로 기절해 버렸지….

하지만 상황을 유추해 보건대 이거 참, 스스로에게 진중한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게 된다.

‘키스했나?’

내가, 도로시랑?

아무런 감각도 없었던 유사 돌하르방 상태에서?

그걸 내가 어떻게 인정한단 말인가. 인정할 수 없다…!

기껏 최애캐의 첫 키스를 받아냈건만, 아무런 감촉도 못 느꼈다는 건 너무 억울하잖아….

‘…뭐, 호들갑이지.’

됐다, 섣부르게 판단하지 말자. 어제의 나는 상태가 진짜 개판이었으니까, 억측을 하고 있는 걸 수도 있잖은가.

나중에 도로시에게 찾아가서 물어보면 될 일이었다. ‘저희 혹시 키스했나요’?

‘아니, 다짜고짜 그러면 좀…. 어째 사람이 가벼워 보이잖아.’

…그냥 나중에 적절한 타이밍이 오면 물어보자.

아무튼.

아지트에서 휴식을 취한 후, 나는 몸의 감각을 되찾았다. 도로시가 마력이 조금씩 회복될 때마다 내 몸을 치유해주었던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가까스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수준은 되었기에, 새벽이 되어서야 나는 도로시와 따로따로 움직여 아카데미 대피소에 합류할 수 있었다.

대피소엔 많은 학생이 모여 있었고.

부유섬의 하수인들과 농성전을 벌이며 다친 사람들이 수두룩했기에, 나도 별 탈 없이 내 몸 상태를 얼버무릴 수 있었다.

겉보기에 나는 마법학부 1학년 C 클래스 학생에 불과하니까.

대피소에 들어서자마자 괴물 같은 시력으로 나를 찾아낸 루체가 달려와서 껴안아 주었고, 너무 걱정됐다며 고혹적인 목소리로 내 고막을 마구 괴롭혔다.

안 그래도 다리가 후들거렸는데, 그녀의 목소리 때문에 다리에 힘이 풀려 온몸이 녹아내리는 줄 알았다.

학사측에선 부유섬을 누가 처치했는지, 처치된 게 확실히 맞는지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나야, 문제 없이 조사가 끝마쳐지길 바랄 뿐이었다.

그나저나.

푹 자고 일어나니 컨디션이 회복되어서 몸 상태는 그다지 무리가 없었다.

후유증이 제법 오래 갈 거라고 예상했는데, 이렇게 빨리 회복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신체를 부단히 단련시킨 덕분인가.

‘아니….’

그 영향도 있겠지만, 부유섬과 싸우면서 [빙제]의 온전한 힘에 발끝이라도 걸쳤던 일이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듯했다.

그 이후로 몸의 변화가 느껴졌다. 마력 자체는 방전된 느낌이지만, 마력 회로가 튼튼해졌다고 해야 할까.

‘그것도 그렇고.’

상태창을 바라보니 미소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부유섬을 처치한 것만 따져도 레벨이 무려 10이나 급증했다. 총합, 레벨 16이 고작 하룻밤 사이에 오른 것이었다.

‘오졌다….’

이곳은 <메르헨의 마법 기사> 지옥 난이도.

적들의 레벨이 높은 건 난이도 측면의 문제이고, 획득 경험치량은 다른 난이도와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나 나는 부유섬을 처치하면서 폭업을 해 버린 것. 굉장히 훌륭한 결과라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마력 고갈 상태. 전술했듯, 마력은 한번 고갈되어 바닥을 찍어 버리면 마력 회복 속도가 미친 듯이 느려진다.

따라서 마력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에 한동안 마법 단련은 자제할 필요가 있었다. 아니, 애초에 마법 단련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지.

그래서 이 기회에 재충전하는 시간도 간간이 갖기로 했다.

‘물론 그냥 쉴 수는 없겠지만.’

1학년 2학기 학기말 평가를 앞둔 시점이다.

내 목표는, 저번 학기보다 성적 상승 폭이 가장 큰 학생에게 주어지는 ‘자기발전 우수’ 장학금. 그것이 있어야 등록금 걱정 없이 2학년 1학기를 맞이할 수 있으리라.

그러니 학기말 평가도 쉬이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시험 준비도 강해지는 데 큰 도움이 되기도 하고.’

마법을 새로 익히거나 마법 능력치를 기르는 일에는 지식이 크게 개입된다. 즉, 공부 자체도 강해지는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최대한 학기말 평가 전까지 마력이 완전히 회복되길 바란다.

그리고, 드디어 내가 원하던 고유 특성 [마법 기사의 극의]를 손에 넣었다.

다만 이 특성은 2학년이 되어야 유효하므로 잠금 상태가 되었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

[마법 기사의 극의] 효과는 마도무기의 숙련도를 빠르게 높여주는 고유 특성 [무기술사]의 효과를 전설 무기에도 적용하는 것.

그리고 단련된 신체 능력만큼 마법의 위력을 끌어올려 주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마법 기사로서는 극적인 재능이었다.

더군다나 지금의 나는 ‘안녕하세요’ 마족, 악의의 트레비옹과 싸웠을 때보다 단련된 상태이니.

앞으로 레벨 120을 찍는다면, 맨 처음 [멸악자]가 발동됐을 때보다 마력량이 더욱 높은 상태가 될 것이 분명했다.

‘착실히 세지고 있어.’

흡족.

이제 레벨 100도 넘겼으므로, [멸악자]가 발동되면 레벨 200으로 고정된다.

레벨 200은 전에도 언급했듯 능력치 EX급을 찍을 수 있는 자격이기도 하다.

따라서 악신을 쓰러뜨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서, 능력치 EX급을 찍는 것이 내 다음 장기 목표라고 볼 수 있겠다.

겨울방학엔 바위 속성 전설 무기, ‘고르모스의 대검’을 손에 넣고, 악마의 기둥 혹은 악마의 탑이라 불리는 마족을 족칠 준비를 해야 한다.

잠재력 [학습 효율]도 마저 S급으로 만들면 [대 종족 전투력]에도 스탯을 찍어야겠고.

‘2학년 1학기에 들어서면 앨리스 토벌전에 대비해야겠지.’

앨리스 캐럴. 보스 명은 하트 여왕-앨리스.

앨리스는 여느 캐릭터보다도 미스터리에 둘러싸여 있었다.

어쩌다 악신을 두둔하게 된 것인지, 애당초 악신의 부활을 어떻게 알아차린 것인지, 이안을 페어리테일 가문이라는 이유로 건드려선 안 된다는 건 어떻게 알아낸 것인지.

그 모든 이유가 게임이 끝나는 순간까지 그녀의 상냥한 미소에 가려진 채 드러나지 않았으니까.

게임사 측에 앨리스의 정체가 무엇인지 유저들의 질문이 쇄도했으나, 끝까지 공식적인 답변은 나오지 않았었다.

그러니 틈만 나면 유저들이 커뮤니티에서 앨리스의 정체를 놓고 토론을 벌이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앨리스는 게임 속에 빙의한 현대인이라는 설정이다’, ‘앨리스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회귀자다. 그래서 모든 걸 알고 있던 것이다’, ‘앨리스는 나름의 신비한 능력으로 모든 걸 알아차렸던 것뿐이고, 단순히 루체처럼 인간 혐오 사상을 가진 것에 불과해 세계 멸망을 꾸몄던 것이다’, ‘앨리스는 카와이할 뿐이다’ 등등.

물론 결론이 나지 않는 무의미한 토론이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앨리스가 회귀자란 쪽에 생각이 기울어져 있었다.

‘보통 그런 건 회귀자인 경우가 클리셰니까.’

앨리스는 수많은 회귀를 반복해서 정신이 망가지고, 어쩌다 보니 세계 멸망을 꿈꾸게 되었다…. 그런 이야기를 상상했었지.

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닌 듯했다.

앨리스가 회귀자였다면, 저번 회차와의 차이점을 빠르게 알아채고 나를 처치하러 왔을 게 분명하니까. 내가 정체를 숨기는 행위 따위가 무의미했으리라.

그렇기에 앨리스는 불확실성이 다분한 캐릭터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앨리스가 본심을 드러내고 토벌될 때까지 최대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뿐.

뭐…, 고민해봤자 답이 안 나오는 이야기는 제쳐두자.

앨리스 담당 일진 도로시라는 든든한 전력이 생겼으니, 웬만해선 앨리스 토벌전은 무난히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물론 내 생각대로 잘 풀렸던 일은 거의 없었지. 불안하긴 해….

‘그건 그렇고….’

원옥마수-디아칸.

설마 이 새끼가 내 속에 숨어 있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지금은 아무것도 안 느껴지고 있고, 속이 평온해서 오히려 께름칙한 기분이 들고 있었다.

[멸악자] 비활성화 상태의 나로선, 그놈이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는 경지에조차 오르지 못했단 얘기.

아마도 [멸악자]가 발동되고 [빙제]의 힘도 한껏 끌어올려야만 놈을 다룰 수 있을 듯했다. 일단, 놈은 내 하수인인 게 분명하니까.

참고로 사역마와 하수인은 엄연히 다르다.

사역마는 주인과의 언약으로 맺어진 긴밀한 관계. 마력 공유도, 마음 공유도 가능하며, 주인이 실력만 따라준다면 크기를 줄여서 소환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고 사역마는 한 사람당 최대 3마리까지 다룰 수 있다.

반면에 하수인은 그런 거 없다. 그냥 소환하고 말고가 끝이다. 제한 보유량도 없다. 주종관계로 이루어져 있느냐, 아니냐만 따질 뿐이지.

원옥마수를 소환했던 탓에 내 마력을 바닥의 바닥까지 긁어냈다는 느낌이 들었다. 껌 씹듯이 쉽게 소환이 가능했던 이든조차도 소환이 안 되고 있으니….

“회장!”

“깜짝야!”

오우, 씨. 개 놀랐네…!

뜀박질하면서 나무 옆을 지나치자, 대뜸 매복하고 있던 강도가 기습 공격을 해오듯 한 여학생이 내 쪽으로 튀어나왔다.

그 자리에서 발을 멈추고, 몰래 나무 뒤에 숨어 있었던 여학생 쪽을 돌아보았다.

내 반응이 웃긴지 그녀는 니히히, 거리며 웃고 있었다.

“선배?”

끝 부분만 묶여 있는 연보랏빛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여학생.

도로시 하트노바였다.

[ 도로시 하트노바 ]

Lv : 182

종족 : 인간

속성 : 바람, 바위, 별빛

위험도 : X

심리 : [ ★☆★☆★☆★☆★☆ ]

어젯밤엔 도로시의 마력이 거의 다 떨어진 상태였기에 [심리 간파]가 잠깐이나마 먹혔으나.

하룻밤 새에 그녀는 마력을 상당량 회복한 듯했다. 별빛 마력 탓에 [심리 간파]가 또 막혀 버리고 말았으니.

심리 안 읽히는 건 좀 아쉽네….

“단련충 답게 아침부터 단련이야? 어제 그렇게 무리해 놓구선. 회장, 그렇게 무리하면 이 누나는 가슴이 참 아프다?”

자기 가슴께에 손을 올리고 장난식으로 섭섭해 하는 표정을 짓는 도로시. 입꼬리는 올라가 있는 채였다.

“그냥 운동이에요. 선배도, 아침부터 여길 다 오시네요.”

“아, 뭐. 그냥 아침 공기가 선선해서 말이지! 우연히 회장 발견해서 겸사겸사 인사도 해야겠다, 싶었고. 그래서, 음….”

도로시는 뺨에 은근한 홍조를 띠고 있었다. 부끄러운 말이라도 하려는 걸까.

나는 아예 도로시 쪽으로 몸을 돌리고, 그녀가 내뱉으려는 말을 잠자코 기다려주었다.

그렇게 도로시는 마녀 모자의 챙을 손가락으로 몇 번 문지르더니, 겨우 나와 눈을 맞추고는.

“…아이작, 좋은 아침.”

그냥 내 이름을 불러 주면서 평범한 아침 인사를 건네왔다.

생각해 보면, 오늘은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도로시가 맞이하지 못했던 내일. 완전히 자유의 몸이 된 그녀가 처음으로 맞이하는 아침이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녀가 내 눈앞에 멀쩡하게 서 있어서 어째 영 도로시를 구해냈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저 이 상황이 자연스러웠고,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네, 선배. 좋은 아침.”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웃으면서 인사를 받아주자, 도로시는 환한 미소를 내보였다.

앙상했던 가로수가 하얀 눈꽃으로 자신을 치장한 채였다.

우리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로수가 늘어선 하얀 길을 천천히 걸어나갔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