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118화 (118/334)

EP.118 Monologue (1)

[ 사역마 ]

이든 (Lv : 101)

등급 : ★5

종족 : 마수

속성 : 바위

친밀도 : 100

융화력 : 100

소환시 소모 마력량 : 1100

보유 스킬 <<상세>>

빙설룡-힐드 (Lv : 183)

등급 : ★8

종족 : 마수

속성 : 얼음

친밀도 : 65

융화력 : 5

소환시 소모 마력량 : 26000

보유 스킬 <<상세>>

[주인, 드디어 나도 평상시에 물리법칙을 적용 받을 수 있게 됐구나!]

아침 햇볕이 커튼을 뚫고 방 안에 스며들고 있었다.

메르헨 아카데미 중하위권 기숙사, 브릭스관.

활동복으로 갈아입던 중, 내 책상 위를 뒹굴고 있는 작은 백룡을 쳐다보았다. 아가씨 같은 아름다운 목소리엔 평소보다 들뜬 기색이 역력했다.

빙설룡-힐드 축소판. 드디어 녀석을 아기용 형태로나마 소환하는 게 가능해졌다.

반딧불이나 작은 불꽃 같은 형태가 아닌, 분명한 실체를 갖추게 된 것이었다.

내가 부유섬을 처치하면서 눈에 띄게 강해진 덕분이었다.

“거기서 좀 더 크게 소환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나한테 부담이 좀 크다.”

[이 정도도 감지덕지니라! 흠흠, 그보다… 이제 예의 그것도 가능하다만.]

“아.”

무슨 말인지 금방 알아챘다. 빙설룡이 은근슬쩍 티 내길 반복하면서 벼르고 벼르던 거니까.

나는 책상 쪽으로 다가가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녀석은 눈을 감고 웃으면서 내 손길을 즐겼다.

비늘의 감촉. 영락없는 파충류.

다만, 빙설룡의 SD판 같은 느낌이라 녀석은 상당히 귀여운 외관을 자랑했다.

[히힛.]

할머니, 기뻐하신다.

목소리는 무척 고아하지만 나이로만 따지면 이 녀석은 천 살배기 할머니가 맞다.

내 사역마, 이든과 빙설룡-힐드는 부유섬을 해치운 공로로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했다.

그 이후로도 꾸준히 레벨을 올린 결과, 현재 이든은 레벨 101이 되어 5성급 마수로 취급되고 있었다.

그 탓에 소모 마력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말았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빙설룡-힐드도 레벨이 오르면서 소환에 쓰이는 소모 마력량이 이든과는 비교도 안 되게 증가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만전의 빙설룡을 소환하는 데 들이는 비용일 뿐.

지금의 나라면 빙설룡을 내 몸체 크기로 소환해 다룰 수 있을 것이었다.

‘몇 분 못 가겠지만.’

물론 소환 유지에 들이는 마력량까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힐드 소환 상태라도 유지해 놔야지.’

사역마를 다루면 다룰 수록 [융화력]이 올라간다.

이전까지의 빙설룡은 실체조차 갖추지 못했던 수준이라 [융화력]이 티끌만큼 올랐지만.

이제는 실체를 갖추었으니 [융화력] 증가 속도가 이전보다 훨씬 나아지겠지.

[융화력] 최대치를 찍으면 부분 소환이 가능해지고, 빙설룡의 힘을 내 육체에 써먹을 수 있게 된다.

이든 부분 소환으로 바위 건틀릿을 만들어내듯이.

빙설룡의 힘 또한 효율적으로 써먹을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그건 그렇고….

‘귀엽네….’

얘 너무 귀여워진 거 아니냐.

내 손길로 즐거워하는 빙설룡을 보니, 나도 덩달아 즐거워졌다.

……

사암의 시련을 받으려면 암제의 흔적 4개를 모아야 한다.

빙제의 흔적처럼 연갈빛 마석이 네 조각으로 나뉜 것이었다.

‘아으, 오래 걸리네.’

단련과 병행하면서 차근차근 암제의 흔적을 찾다 보니, 어느새 2주가 흘렀다.

메르헨 아카데미 부지는 몹시 넓은 편.

이 세계는 게임과는 달리 현실에 걸맞은 맵 크기를 자랑한다.

즉, 암제의 흔적 4개의 세세한 위치를 전부 알아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거기다 각 태초의 원왕들은 제 흔적을 눈에 안 띄는 곳에 보물처럼 숨겨 놨는데, 그중에서도 태초의 암제 쪽은 특히 악랄한 편이었다.

‘호수 안에 숨겨둔 건 무슨 심보냐.’

고인이지만 죽빵이 마려웠다. 빙제가 선녀였지.

나는 4번째 암제의 흔적을 찾기 위해 겨울 호수 안을 뒤지고 있었다. 이러다 내가 뒤질 것 같았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호수 안을 뒤질 땐 별 감흥이 없었는데, 직접 해 보니 기분이 무척 엿 같았다.

‘오오!’

하늘이 어둑하게 물든 때.

빙설룡-힐드를 작은 마력체로 소환해 플래시 용도로 사용하면서 호수 내부를 살피던 중, 드디어 희미하게 연갈빛을 반짝이고 있는 마석 조각을 발견했다.

드디어…!

[축하합니다! [암제의 흔적 4]를 찾아냈습니다!]

나는 그것을 집고서 곧장 수면 위로 올라갔다.

“후와! 끝났다, 암제 개새끼야!”

탄타크 지하 동굴 인근 호숫가.

내가 깨부순 얼음 조각들이 둥둥 떠다니는 그곳에서, 나는 감정이 폭발해 웃음소리를 내질렀다.

희열과 분노가 담겨 있는 내 수준 높은 욕설이 협곡에 메아리쳤다.

진짜, 번거로워 미치는 줄 알았다….

연이어 불꽃처럼 일렁이는 하얀 마력체, 빙설룡-힐드와 작은 골렘 사역마, 이든이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이든은 양팔에 얇게 펼친 바위를 덧붙여 수영하고 있었다. 대충 나는 스위밍 폼 이든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든, 힐드! 끝났어!! 다 찾았다고!!”

[해냈구나!]

[꾸우우우!!]

내가 암제의 흔적을 내보이자, 빙설룡-힐드는 기쁜 듯이 소리쳤고.

작은 골렘 사역마 이든은 습관적으로 만세하며 호응해주었다.

[꾸우우르르룩…!]

그러자 이든의 몸이 다시 수면 아래로 허무하게 가라앉았다.

나는 이든과 함께 호숫가에서 나와 돌바닥에 나앉았다. 빙설룡-힐드는 내가 마력을 좀 더 불어 넣어 주니, 작은 용의 형태가 되어 내 어깨 위에 안착했다.

고개를 들면 군청색으로 만연한 저녁 하늘이 시야에 담겼다.

서리의 시련을 거쳤던 덕분인지 제법 추위에 강해진 기분.

차가운 호수 안에 수 시간 동안 머물렀는데도 몸이 멀쩡했다.

마치 일정 수준 이상으로 체온이 떨어지면 내 냉기가 알아서 몸을 지켜 주는 느낌이랄까.

물론 따뜻한 게 더 좋으니 불이나 지피기로 했다.

‘옷도 말려야 하고.’

나는 불 속성 주문서를 발동하고, 미리 준비해 두었던 장작더미를 태워 모닥불을 만들었다.

타닥대는 소리. 웃통을 벗어둔 채라 모닥불의 온기가 피부를 온전히 감쌌다.

“이든, 고생했다.”

[꾸우!]

이든은 한쪽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

“힐드, 너도.”

[주인의 명령이라면 뭐든 복종할 뿐. 뭐어, 정 고맙다면 내 몸을 쓰다듬어 줘도 상관없다만. …히힛.]

내 어깨 위에 있는 빙설룡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녀석은 순수한 소녀라도 된 것처럼 밝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약 천 년 만에 주인의 손길을 즐길 수 있게 된 까닭인지 아무리 만져 줘도 질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암제의 흔적인가…. 그립구나. 그는 바위처럼 굳건한 신념을 지닌 사내였지….]

“응, 관심 없어.”

[…기껏 옛이야기 좀 풀려고 했더니만.]

이미 천 년 전에 고인 되신 분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서 뭐 하랴.

빙설룡-힐드는 내 단호한 대답에 삐친 기색을 내비쳤으나, 턱을 살살 쓰다듬어 주니 ‘히힛’하고 곧바로 감정이 누그러진 듯 보였다.

참 쉬워.

그렇게 나는 한 손에 [서리불꽃]을 피워 [원소 효율]을 단련하면서, 입은 바지가 마를 때까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이든이 혼자서 뒹굴며 장난치고, 빙설룡이 내 옆에서 가만히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는 때.

[주인, 괜찮겠느냐?]

빙설룡이 잔잔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죽을지도 모른다. 나도 한때 시련을 내렸던 입장이니 이런 말을 할 처지인지는 모르겠지만…. 두렵지 않은 것이냐?]

“…두렵지.”

안 두려울 리가. 무서워 뒤질 것 같았다.

사암의 시련을 받을 땐 몸이 돌로 변해간다.

[바위 속성 원소 저항력]이 높을수록 돌이 되어가는 속도가 늦춰지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천장 자체가 천천히 내려오기 때문에 일정 시간이 지나면 압사당하고 만다.

‘그런 걸 직접 겪으려니까 되게 살벌한데….’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음에도 여전히 그런 위기를 겪는 건 두려웠다.

감정이 급격하게 일렁일 때 냉철함을 갖게 해주는 [얼어붙은 영혼] 효과가 없었으면 이미 멘탈도 여러 번 나갔겠지.

하지만.

“그래도 해 봐야지.”

고르모스의 대검은 내 전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된다.

서리낫을 꺼내면 추가적인 얼음 마력을 얻듯이.

고르모스의 대검도 마찬가지로 내게 저장된 바위 마력을 공유하는 데다, 바위 속성 마법의 위력을 크게 높여주니까.

내 전력이 배가 된다는데, 안 얻고 배길 수가 있겠나.

서리낫을 얻었을 때처럼 목숨을 걸어볼 가치가 있었다.

“돌아가자.”

바지가 다 말랐다. 이제 돌아갈 때가 됐다.

……

밝은 대낮. 나는 메르헨 아카데미 부지에 솟아 있는 작은 산맥, ‘펠크’ 산 꼭대기에 이르렀다.

절벽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소나무 아래로, 원소 마법을 이용해서 조심스럽게 내려가다 보면 절벽 어딘가에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절벽에 바위 계단을 만들어가며 조심스레 아래로 내려갔다. 스릴 죽여주네.

‘대충 이쯤일 텐데…. 찾았다.’

절벽 어느 지점. 성인 한 명분 폭으로 좁은 통로를 찾아냈다.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자 밑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보였다.

어두컴컴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 계단은 펠크 산을 꿰뚫고 있으며, 몹시 긴 편이었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를 플레이했을 땐 꽤나 으스스했던 기억이 난다.

게다가 현실이 된 이 세상은 게임에서 보았던 맵보다 훨씬 큰 편이니….

‘즉, 개무서울 예정이군.’

그러나 어둠의 공포 따위로 나를 막을 순 없으리라.

“힐드, 이든. 나와.”

왼팔을 내밀어 빙설룡 소환진을 활성화시키고, 동시에 이든을 불러왔다.

작은 백룡, 빙설룡-힐드가 내 손목에 새겨진 소환진에서 튀어나오고.

허공에는 연갈빛 마나가 뭉치더니, 작은 골렘 이든의 형태가 되었다.

[불렀느냐?]

[꾸웅!]

반가운 목소리가 좁은 통로를 울렸다.

[주인, 여긴 어디냐?]

“펠크 산. 이 밑으로 쭉 내려갈 거야. 힐드는 선두로 내려가고, 이든은 나와 동행해 줘.”

빙설룡은 [그러마.]하고, 이든은 한쪽 팔을 번쩍 들며 [알았따!]하고 대답했다.

사역마는 이러라고 있는 거지~.

먼저 아래쪽으로 내려간 빙설룡은 얼음 마력을 스멀스멀 흘려내는 하나의 불빛이 되어 주위를 밝혔다.

나는 외로움을 덜어 줄 이든과 함께 빙설룡을 뒤따라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구웅, 구우!]

“그래, 이든. 손잡고 가자.”

[꾸우?]

그렇게 20분 정도 계단을 즐겁게 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막다른 바위 벽에 도달했다. 조금도 무섭지 않은 여정이었다.

[주인, 길이 막혀 있다만?]

“다 온 거야.”

여기다.

나는 한쪽 무릎을 굽혀 앉은 뒤 마법 주머니에서 연갈빛 마석, 암제의 흔적 4조각을 꺼내 바닥에 조심히 내려놓았다.

그러자 지면에 마법진이 새겨지더니, 황빛이 은은하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꾸우?!]

[주인, 이건 어떻게 알아낸 것이냐? 나조차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거늘!]

“다 방법이 있어.”

사암의 시련을 받기 위한 마법진이 여기 있다는 정보는 <메르헨의 마법 기사>를 후반부까지 플레이해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뭐, 빙제의 환생이니. 이런 걸 알고 있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겠구나.]

“…….”

얜 또 엉뚱한 데서 뇌절 하네.

[그러면 주인, 꼭 살아 남거라.]

[구우….]

빙설룡과 이든의 목소리에서 깊은 걱정이 묻어났다.

기특한 것들.

나는 싱긋 웃고서 사역마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녀석들을 역소환시켰다.

이제, 한 번 더 목숨 걸고 스펙 업 할 때가 되었다.

“후우.”

조오올라 긴장된다….

나는 심호흡으로 감정을 추스르고, 지면에 생겨난 마법진에 손을 얹었다.

서리의 시련 때처럼 정해진 주문을 읊을 때였다.

“사암의 시련을 받겠노라.”

화아아아───.

내 한 마디가 내려앉자 마법진이 강렬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시야가 황빛으로 물들고, 동시에 부유감이 느껴졌다.

나는 두 눈을 감고 그 감각에 몸을 맡겼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