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124화 (124/334)

EP.124 Monologue (7) (재업로드)

※ 모놀로그 5편, 6편 내용이 수정되었습니다.

해당 재업로드 편은 수정된 이후의 내용입니다.

6편 초반부에 5편 수정된 내용을 요약해 놓았으니 6편부터 보셔도 무방합니다.

도로시의 개입으로 시련이 재조정되며, 숨겨져 있던 진실이 드러났다.

2회차였다.

내가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 빙의되어 보냈던 1학년 생활은 처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초기화되면서 기억 마저 잃어버렸던 것.

잊고 있던 진실의 문턱에 이르자, 잇달아 이 세계에서 느꼈던 후회가 고스란히 내 마음을 집어삼켰다.

모든 기억이 떠오르지는 않았으나 나를 무너뜨렸던 큼지막한 기억 만큼은 하나하나 되살아나고 있었다.

나는 도로시를 구해 내지 못했다. 그녀는 내게 고맙다는 말 한 마디를 남기고서, 부유섬과 함께 최후를 맞이했다.

메르헨 아카데미에 세워진 도로시 동상을 바라보며 멍을 때렸던 기억이 난다. 무력감에 사무쳐서 견딜 수 없는 회환이 밀려왔었지.

황녀도, 무녀도, 카야도 지켜내지 못했다.

지옥 난이도에서 모든 걸 지켜내겠다는 생각부터 말이 안 됐던 것이다.

‘지옥 난이도?’

지옥 난이도…. 별안간 그 표현에서 격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게슈탈트 붕괴라도 일어난 것처럼, 머릿속에서 자음과 모음이 따로따로 흩어져 낄낄 대고 웃어댔다.

애당초 난이도 따위는 상관 없었다. 이 세계는 그저 이 세계였다.

꽈배기처럼 뒤틀리는 심정을 가다듬기 위해 조용히 심호흡했다.

보잘것없는 깨달음이나 얻으면서 스스로 성장했다는 개지랄을 떨었던 기억도 훑었다. 뭐, 그럴 수록 내 정신력이 더욱 견고해져 가는 효과는 있었지.

적어도 앞으로 나아갈 수는 있었어.

그리 묵묵하게 적들을 해치워 나가며, 마침내 나는 시나리오의 끄트머리에 이르렀고.

끝내 악신 네피드에게 패배한 것이었다.

그리고.

‘악신의 마법이 ‘모든 세계’에 종언을 고했다고 시스템 창에 떴었지.’

그것이 내가 살았던 세상, 즉 지구도 포함된 것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거대한 비밀이, 내가 이 세계에 빙의한 뒷배경에 숨어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들춰낼 수는 없으리라.

다만 그 비밀을 나 따위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어마어마한 부담감이… 바위처럼 나를 짓눌렀다.

“아쉽네….”

그때, 루체의 나지막한 탄식이 귓전을 울렸다.

“아이작이랑 결혼하고 싶었는데.”

“…뭐?”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

내 신경이 루체에게 쏠렸다.

“그런 상상을 했었어. 너랑 오순도순… 행복하게 지내는 상상.”

[심리 간파]를 써봐도 시련의 한복판이라 그런지 심리가 읽히지 않았다.

다만, 3학년인 루체는 이미 내가 검은 괴물이란 걸 알고 있는 처지. 그녀가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건 충분하리만치 잘 알고 있었다.

“들어볼래?”

루체는 나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내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는지, 그녀는 자그마한 미소를 지으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스베리카라고 알아? 마법과 학문의 도시. 메르헨 아카데미 졸업장 들고 거기 가면 마법사 인생은 탄탄대로거든. 졸업하면 같이 아스베리카에 가서 집 하나 장만하고…. 나는 마탑에서 열심히 실무를 연마하는 거야. 너도 길드 같은 데서 마법사 일 하고. 그렇게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내가 너한테 뽀뽀해주겠지. ‘오늘도 수고했어, 아이작’하고, 안아 주면서 속삭여주기도 했을 거야. 넌 내 목소리에 그렇게 약하잖아, 헤헤.”

루체의 손가락이 힘없이 꼼지락거리며 내 손등을 툭툭 건드렸다.

“같이 맛있는 요리를 먹고, 같은 침대에서 그날 있었던 시시콜콜한 얘기나 나누면서 잠들고…. 그러다가 아주 평범하고 소박하게, 침대에서 프러포즈하고, 교회에서 멋스럽게 차려입고 결혼하고…. 그다음에도 또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거지. 그때는, 조금 부끄럽지만 호칭이 바뀌었을 거야. ‘오늘도 수고했어, 여보’…라고.”

고개를 숙인 채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루체.

나는 잠자코 그녀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다.

“애는 한 다섯이 좋았을까. 아이작은 몸이 무척 튼튼하니까, 분명 당찬 아이가 태어났겠지. 애는 시도 때도 없이 힘차게 울었을 거고. 그건 좀 힘들었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 애들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정말 행복했을 거야. 힘겨운 시기도 분명 있었을 거야. 그래도 우리는 잘 풀어나갔겠지? 서로 의지하고, 가끔 술 한 잔 기울이면서 허심탄회하게 힘들었던 일 털어놓고, 서로를 위로해주고…. 그러다 웃을 일이 생기고. 그렇게, 그렇게 살아나가는 거야. 그런 상상을 했었어.”

그제야 나는 알 수 있었다. 악신 문제가 해결된 후, 배드 엔딩 「새장」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이유가 이거였구나.

루체는, 나와 함께 미래를 일구어 나가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아서 나는 아무런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동굴 밖에서 섬뜩한 마력이 느껴지고 있었다. 악신의 하수인인 흑염체 무리가 곧 이쪽으로 쳐들어올 것이었다.

그러니 루체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낸 거겠지.

현실적으로 얘기하자면,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리라.

“조금 슬퍼지지 않아? 나랑 결혼 못하게 됐잖아.”

이런 상황에서도 루체의 장난스러운 농담을 들으니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건 네가 원하던 거….”

철컥.

대뜸 내 손목 쪽에 금속음과 함께 마력이 일렁이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말을 멈추고 그쪽을 내려다 보았다. 루체의 마력이 담긴 구속구가 내 손목을 채운 채 벽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얘가 내 손을 건드리고 있었던 건 구속구를 채우기 위함이었나…? 기억이 아직 흐릿해서 미처 대비하지 못했다.

“방심했네.”

“…이게 무슨 짓이야?”

“걱정하지 마. 그거 시간 조금만 지나면 풀리니까.”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는 루체. 강렬한 불안감이 내 전신을 휘감았다.

“뭐 하려…?”

내 앞에 선 루체의 모습을 보고 나는 헛숨을 집어삼켰다.

오른팔이 보이지 않았다. 어두침침한 동굴임에도 그녀의 사라진 팔 한쪽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당연하다. 루체가 나를 쉽사리 구해 냈을 리 없었다. 그녀는 나를 구하기 위해 많은 걸 잃어 버렸을 터.

루체는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아 나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지근거리. 그녀의 눈밑엔 짙은 눈그늘이 져있었고, 입술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곧 죽을 사람처럼 안색은 무척이나 창백했다.

숨을 죽였다.

그녀는 남은 왼팔로 내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달빛처럼 은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말했다.

“사랑해, 아이작.”

다시는 이런 말을 하지 못하리라 확신하는 사람처럼.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었던 말을 내뱉듯이.

그리 슬픈 목소리로, 루체는 잔잔히 속삭였다.

“네가 좋아. 사랑해, 정말 사랑해….”

루체는 내 앞머리를 조심스레 쓸더니 이마에 키스했다.

시간이 정지한 사람처럼 내 피부가 전해주는 따뜻한 감촉을 핏물이 굳은 손으로, 건조해진 입술로 한껏 느끼다가.

이윽고 내게서 떨어져 고상한 미소를 내보였다.

“여기 얌전히 있어. 곧 돌아올게.”

그 말을 끝으로, 루체는 비치적비치적 동굴 밖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야, 루체? 루체!”

떠나가는 루체를 향해 달려들려 했으나, 구속구가 걸려 더는 나아갈 수 없었다.

손목에 피가 나도록 잡아당겨도 구속구는 끊어지지 않았다.

마력 고갈 상태라 제대로 된 원소 마법도 튀어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마법을 써버리면 밖에 있는 흑염체 군세가 내 마력을 감지하고 안쪽까지 쳐들어올 것이었다.

“멈춰 봐, 야!!”

루체는 내 부름에도 멈추지 않았다. 망설임 없는 발걸음으로 터덜터덜, 동굴을 빠져나갈 뿐이었다.

금세 그녀는 내 시야에서 벗어났다. 동굴이 굽이진 형태인 까닭이었다.

루체가 떠나간 목적은 명확했다. 동굴 밖에서 느껴지는 어둠 마력. 악신의 하수인들이 이 안으로 쳐들어오기 전에 자신을 희생해 싸울 셈이리라.

내게 구속구를 채운 건, 내가 루체를 대신해 희생할까 봐 그런 것일 터.

잃어버렸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1회차 때.

초기화 로딩이 끝나기 직전, 구속구가 자동으로 풀리자마자 동굴을 빠져나가서.

루체가 검은 화염에 잡아먹혀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기억이다.

그녀가 흑염체 군세에 둘러싸인 채 기이한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도록 내버려 두었다는 죄책감이, 절망감이.

가슴이 찢어지도록 사무쳐서, 나는 최후에 이르러서도 심연에 침잠해 가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루체!! 돌아오라고!!”

초기화가 되면 말 그대로 ‘상태창’이라는 형태를 띤 초월적인 힘이 모든 것을 처음으로 되돌릴 터.

이 상태창을 만든 새끼가 누군지는 몰라도, 분명 그 신적인 놈이 어떻게든 해 줄 것이었다.

그러니 떠나지 말라고.

몇 번이고 소리를 내질러도 루체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미 내 마력은 동나 있었다. 내 안에 있는 서리낫도 힘을 다한 상태.

이 구속구를 벗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얼음 생성 (얼음 속성, ★1)」

자그마한 얼음이 생겨났다. 아무리 마력 고갈 상태라고 해도 느린 속도로 마력이 회복되곤 있었다. 적어도 [얼음 생성]이나 [바위 생성]으로 작은 덩어리를 만들어내는 건 충분히 가능했다.

흑염체 군세가 내 마력을 감지하든 말든 상관없었다. 당장 루체에게 달려가야 했다. 더는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구속구가 채워진 손에서 손가락이 점차 돌로 변해가고 있었다. 나는 [얼음 생성]으로 고밀도의 마력으로 뭉친 얼음 덩어리를 만들어, 돌로 변한 엄지를 힘껏 내려 찍었다.

콰작──!

“끄으윽…!”

엄지가 우수수 부서졌다.

아직 수근골 쪽이 멀쩡했기에 정신이 아득해질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그럼에도 구속구에서 손을 빼낼 수 없었다. 그래서 검지를 잇고 있는 중수골 부위마저 깨부쉈다.

이쯤이면 충분했다. 그대로 구속구에서 손을 빼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동굴을 뛰쳐나가려 했다.

“아!”

그러나 익숙한 감각대로 균형을 잡을 수 없어 앞으로 고꾸라져야만 했다. 내 다리를 확인하고서 알았다. 왼쪽 무릎 아래가 텅 비어 있었다.

돌이 되어 버린 탓에 감각을 못 느꼈던 것. 악신과의 싸움으로 다리를 잃어 버린 모양이었다.

한쪽 다리로 껑충껑충 뛰었다. 그러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용수철 튕기듯 뛰어나갔다.

그렇게 가까스로 동굴 출입구에 이르렀다. 출입구는 위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어느덧 한쪽 팔은 돌이 되어 있고, 그나마 석화가 덜 된 팔은 내가 얼음 덩어리로 일부를 박살 낸 상태.

손바닥은 아직 쓸만했다.

불규칙적으로 이루어진 벽면을 손바닥을 오므려 잡고, 팔을 걸치고, 이빨로 벽면에 튀어나온 돌덩이를 꽉 깨물어가며.

암벽 등반하듯 어떻게든 위로, 위로 올라갔다.

“크학, 하아…!”

그리 동굴을 빠져나오고서 지면에 엎드려 숨을 헐떡였다. 부러진 이빨들을 툭 뱉어냈다. 출입구가 그리 높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고개를 들자 바위 마력으로 뒤덮인 하늘 아래, 잿가루가 흩날리는 황폐한 땅이 시야에 펼쳐졌다.

놀라울 정도의 면적. 악신의 마법이 바다를 증발시켜 만들어 낸 풍경이리라. 내가 있었던 곳은 본래 바닷속 깊은 곳에 있었던 해저 동굴인 듯했다.

지평선 너머에선 불길한 마력을 흘리는 거대한 눈동자가 세상을 관조하고 있었다. 악신의 하수인, 앙그라 마이뉴였다.

땅 곳곳엔 검은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맞닿는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고밀도의 마력 덩어리.

그리고, 막대한 마력이 느껴지고 있는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루체가 홀로 흑염체 군세를 바라보며 버젓이 서 있었다.

그나마 동굴에서 빠져나와 밝은 데서 보니, 루체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였는지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미 너덜너덜해진 몸체는 언제 쓰러져도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루체 머리 위로 전개된 수 개의 마법진. 그녀도 여력이 거의 없는지, 마법진은 저마다 불안정하게 깜박거렸다.

그녀가 대적하는 건 검은 화염으로 이루어진 기이한 형태의 마족들.

악신이 무한정으로 생산한 어마어마한 물량의 흑염체들이 군단을 이루어 루체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었다.

상공에서 세 개의 머리를 가진 거대한 용이 기괴한 고성을 내질렀다. 파멸룡-아지 다하카였다.

화르르르르륵────!!!

이윽고, 흑염체 군세가 검은 화염을 쏟아 냈다. 화염으로 이루어진 폭풍이 몰아친다.

루체는 물 마법과 번개 마법을 퍼부어 대항했으나, 그 위력이 허약해 검은 화염에 가볍게 잡아먹혔다.

“루체!!”

[마족을 적으로 인식했습니다.]

[고유 특성 [멸악자]가 발동됩니다!]

[레벨과 능력치가 일시적으로 크게 향상됩니다!]

[스킬트리가 일시적으로 +10이 됩니다!]

[바위 생성]으로 지면에서 바위를 끌어올려 몸을 억지로 밀어냈다. 그대로 내 몸을 검은 화염의 폭풍 쪽으로 날려보냈다.

가용 가능한 마력은 조금밖에 없었다. 다만, 쓸만한 공격 한 방은 충분히 날릴 수 있으리라.

나는 남은 힘을 전부 쏟아 엉망진창인 오른손에 얼음 마력을 응축시키고, 팔을 휘둘러 [빙결 폭발]을 퍼부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

연푸른 얼음 마력의 폭발이 검은 화염을 갈랐다. 삽시간에 생겨난 빙괴는 단숨에 타올랐으나, 적어도 검은 화염 폭풍이 우리를 빗겨나가게 만들 수는 있었다.

이제 완전히 힘을 다 했다.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끔찍한 고통이 몰려오며, 내 몸이 무력하게 지면에 떨어졌다. 퍼억, 하는 섬뜩한 소리. 그리 높은 데서 떨어지지 않았어도 갈비뼈가 골절되는 감각은 피해갈 수 없었다.

고통에 신음할 여력조차 없었다. 겨우 숨만 내쉴 수 있었을 뿐.

“아이작!!”

루체가 내 쪽으로 달려와 지면에 두 무릎을 꿇고 끙끙, 거리며 내 몸을 일으켰다.

“아, 아이작…! 아이작! 미안해, 미안해…! 아아…!”

루체의 목소리가 망가졌다. 흐느끼고 있었다. 언제나 녀석이 내보이던 고고한 자태처럼 올곧았던 목소리가.

자기가 채운 구속구 탓에 내 손이 망가지고, 내가 가까스로 빠져나왔기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듯 보였다.

미안해 할 거 없는데.

더는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루체에게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마력을 남용한 까닭이었다.

루체는 나를 껴안았다. 나는 고개를 들 힘조차 나지 않아 그녀의 가냘픈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녀의 목덜미에선 피 냄새가 났다.

잿가루가 흩날린다. 흑염체 군세가 천천히 다가온다. 파멸룡의 위협적인 포효가 지상을 울린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너를 혼자 두고 싶지 않았다고.

내가 너를 애정했던 건, 그 만큼 네가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라고.

괜히 로맨스 영화처럼 그런 궁상은 떨고 싶지 않았다.

“루체.”

단지, 그녀가 내뱉었던 진심에 답해주고 싶었다.

“날 사랑해줘서 고맙다.”

지금 루체가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그녀는 애써 눈물을 참고 있기라도 한 듯, 숨소리를 떨고 있을 뿐이었다.

곧, 섬뜩하고도 묵직한 마력이 전신을 짓눌렀다. 파멸룡-아지 다하카가 입에 어둠 마력으로 이루어진 화염을 머금었기에. 우리를 향해 쏟아 낼 작정이리라.

루체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아이작, 조금 웃기는 이야기지만.”

달빛처럼 온화한 목소리.

루체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만약에, 다시 태어난다면… 어떻게든 널 알아볼게.”

언제나 나긋나긋했던 목소리에선 미약한 떨림이 느껴졌다.

“다시 찾아갈게. 꼭, 다시 찾아갈게….”

문득, 1학년 1학기 때.

루체가 내게 친구가 되자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타인에게 곧잘 극적인 혐오감을 느끼고 마는 루체는, 유일하게 내게만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었지.

겉보기엔 그리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이는 내가, 그저 열심히 단련하는 모습을 봤다는 이유로. 그 모습이 계속 보고 싶어져서 맨날 지켜봤다고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였는데.

…이 순간 루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조금이나마 2회차 때로 이어졌다고 보는 건 지나치게 낭만적인 이야기인 듯했다. 그래서 그만 실소가 터져 나오고 말았다.

확실히, 웃기는 이야기네.

“또 보자.”

루체는 그리 말했다.

어째선지 나는 루체의 품 안에서 안심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내 목적은 조금도 어긋난 것이 없었으니.

머릿속이 정리된다. 언제나 나는 그러했다. 목표만 뚜렷하다면 그저 나아갈 뿐이었다.

아카데미 최약체에서, 마족을 상대로 먼치킨이 되어, 저 군세를 모조리 없애고 악신을 해치우리라고.

그리고 이 빌어먹을 이야기에 종지부를 찍어 기어이 해피 엔딩을 맞이하리라고.

이내, 파멸룡이 검은 화염을 내뿜었고.

새까만 화염 덩어리가 우리를 뒤덮었을 때.

[ 99%… ]

[ 100% ]

[ 초기화 시작. ]

[ 2회차로 넘어갑니다. ]

치이이익….

뚝.

소멸해가는 감각 속, 내 시야는 노이즈로 뒤덮이다 뚝 꺼졌다.

.

“하아.”

깊은 숨을 내뱉었다.

돌이 되어 버렸던 신체 부위가 점점 말끔히 본래의 상태로 뒤바뀌어 갔다.

연갈빛 마력이 휘몰아치는 중심부에서, 지면에 꽂혀있는 대검에 손이 맞닿은 직후부터였다.

루체와 최후를 함께한 것으로 나는 사암의 시련을 통과할 수 있었다. 신체 대부분이 돌로 변했던 탓에 부단히 기어가느라 애를 먹어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도할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바위 마력이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주위를 둥둥 떠다니던 황석 조각들이 일제히 마력의 형태가 되어 내게로 흡수되어 간다.

감각을 되찾은 다리로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손으로 대검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묵직한 그립감. 그대로 나는 대검을 지면에서 뽑아내었고.

황옥빛 바위 마력이 매섭게 휘몰아치며 새로운 주인을 맞이했다.

고르모스의 암철검.

바위 속성 전설 무기가 내 손에 쥐어졌다.

[당신은 강인한 의지와 정신력으로 사암의 시련을 통과했습니다!]

[축하합니다! 시련 보상 [고르모스의 암철검]을 획득했습니다!]

[[고르모스의 암철검] 고유 액티브 스킬 [대지 분쇄]를 습득했습니다!]

[[고르모스의 암철검] 고유 액티브 스킬 [천암격]을 습득했습니다!]

[[고르모스의 암철검] 고유 액티브 스킬 [바위군주의 옹성]을 습득했습니다!]

[[고르모스의 암철검] 고유 액티브 스킬 [쇄암식 제1형]을 습득했습니다!]

[[고르모스의 암철검] 고유 액티브 스킬 [쇄암식 제2형]을 습득했습니다!]

[[고르모스의 암철검] 고유 액티브 스킬 [쇄암식 제3형]을 습득했습니다!]

[[고르모스의 암철검] 고유 패시브 스킬 [암식]을 습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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