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127화 (127/334)

EP.127 Monologue - 막간 (1)

공기가 차다.

도로시의 눈앞엔 노을빛으로 덧그려진 하늘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막상 그녀의 시야에 맴도는 건, 벤치에서 손을 맞잡고 마주 보았던 한 사내의 앳된 얼굴이었다.

아이작.

약속대로 그는 메르헨 아카데미에 돌아왔다. 아까 빙설룡을 타고 날아가는 그의 모습을 봤기에 알 수 있었다. 도로시는 깊이 안도했다.

하지만 아이작은 무슨 일이 생겼는지 급하게 어디로 향하는 듯했다. 아쉽게도, 도로시는 그를 쫓아갈 수 없었다.

“끄으응…. 꼼짝도 못하겠어….”

조세나 숲 내부, 아이작의 아지트. 도로시는 지붕 위에 드러누운 채 신음을 흘렸다.

다른 세계선에 개입한 부작용이 들이닥쳐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하늘에서 조금만 더 시간을 보냈더라면 필시 무력하게 추락했을 것이었다.

얼른 지상에 내려와서 천만다행이었다.

[무리한 거야. 그러게, 왜 그런 힘을 남용하래?]

옆에서 꼬리에 분홍색 리본을 단 하얀 고양이 사역마 엘라가 새침한 목소리로 잔소리를 늘어놓자, 도로시는 ‘부우’하고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이보게, 고양이 양반. 나도 어쩔 수 없었다구? 회장이 걱정된 걸 어떡해.”

[걱정할 상대가 따로 있지…. 그렇게 강한 녀석은 걱정해봤자 시간 낭비….]

“아니야.”

[응?]

“회장은 철인이 아니야. 사람이고, 무너질 수 있어. …맨날 그렇게, 재미없게 올곧았던 회장이 그렇게 힘들어 보인 건 처음이었어.”

다른 세계에서 아이작을 마주쳤을 때, 그의 감정은 마치 칙칙한 회색처럼 보였다. 애써 의지를 다지려고 애쓰고 있었지.

도로시는 어서 그를 구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열심히 웃어 보였던 것도, 평소보다 텐션을 높였던 것도, 모두 그를 구해주고 싶어서였다.

그가 웃어 주길 바랬으니까.

[…엄마냐.]

엘라는 한숨을 푹 내쉬며 도로시 옆에 편안히 누웠다. 더 대꾸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하아, 회장 언제 와아….”

도로시는 지루해하는 아이처럼 고개를 까딱거렸다. 얼른 아이작이 보고 싶었다.

……

아이작이 아스트레앙 공작령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

아스트레앙 휘하의 기사단은 말과 사역마를 몰고 검은 탑 마족이 있는 장소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하늘에 맞닿는 크기. 소용돌이치고 있는 검은 구름. 몹시 위험한 마족이 튀어나온 것이 틀림없었다.

카야는 수수께끼의 나무를 만들어내고, 검은 탑 마족을 상대로 치열한 마법전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밀리고 있는 듯했다.

기사단장, 샤론은 커다란 독수리 사역마를 타고 선두로 돌격했다. 몹시 급박했다. 마족을 해치워 아스트레앙 공작령을 지켜내는 것은 물론이요, 카야 아가씨 또한 지켜내는 건 그녀의 사명이나 다름없었으니.

매처럼 예리한 눈매로 전투에 임하던 검성, 제랄드 아스트레앙을 줄곧 동경해 왔다. 그랬던 그가 천재 마법사 히스토리아와 결실을 맺고, 갓 태어난 카야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던 모습을 샤론은 잊지 못한다.

섬기는 자를 지켜내지 못한다는 건 기사에게 죽음보다도 치욕스러운 것.

카야 아가씨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내리라. 샤론은 이를 악물고 그 다짐을 속으로 되새겼다.

“뭐야?”

별안간 붉은 거대수가 사라지고, 황폐하게 변해 버린 죽음의 땅 외곽에서 검붉은 화염의 벽이 치솟았다. 어둠 마력과 융합된 화염이었다.

하늘까지 맞닿는 면적. 화염의 열기는 순식간에 구름을 증발시켰고.

검은 탑 마족과의 거리가 좁혀질 수록, 기사들은 저 화염의 벽 너머에서 원초적인 공포심을 자극하는 강대한 마력을 더욱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

마족과는 별개의 마력.

아무리 마나 감지력이 낮은 이라도 분명 느꼈으리라.

“이 마력은…?”

황실 기사단에서 근무했던 때, 샤론은 대마법사가 뿜었던 엄청난 마력에 압도 당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렇기에 알았다. 저 화염의 벽 안에는 대마법사에 버금가는 무언가가 있다고.

“단장님, 이 마력….”

“뭔가 알고 있는 거냐?”

“예전에, 안틀리코에 파견 나갔을 때 느낀 적이 있습니다.”

부하의 말에 샤론은 미간을 찡그렸다.

안틀리코는 아킨스 해에 맞닿아 있는 항구 도시. 그곳에 파견 나가 이런 무시무시한 마력을 느낄 만한 사건이 최근에 있었다면.

“그때보다 더 마력의 농도가 짙어진 것 같습니다만, 분명합니다. ‘이름 없는 영웅’입니다…!”

검은 괴물과 부유섬이 전투를 벌였을 때 말고는 없었다.

“뭐?”

어느 날부터 메르헨 아카데미에 출현해 마족들을 처단하고 다니는 정체불명의 대마법사.

부유섬이란 거대한 마족을 단신으로 쓰러뜨린 강자 중의 강자.

‘검은 괴물’이라는 포악한 명칭으로 부르는 건 그의 발자취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세계는 그를 ‘이름 없는 영웅’으로 추앙하고 있었다.

그런 자가… 어떻게 저런 마족이 출현할 걸 알고 나타났단 말인가.

“……!!”

그때, 담녹색 양갈래 머리칼의 소녀와 두 남녀가 연녹빛 바람 마법을 타고 날아오는 광경이 샤론의 눈에 비쳤다.

위아래로 흔들리며 불안정하게 비행하는 모습은 담녹색 머리칼 소녀의 마력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샤론은 두 눈을 부릅떴다.

“카야 아가씨?!”

다행히도, 카야는 정체 모를 괴물들의 싸움에서 탈출한 모양이었다.

카야 또한 기사단을 발견하고는, 기절한 흑발의 남자, 비명을 내지르는 하얀 단발머리 여자와 함께 기사단의 진로 앞에 내려왔다.

기사단은 일제히 멈춰 섰다.

그렇게 그들은 합류했고, 카야는 기사단에게 대기 명령을 내렸다.

저 마족을 해치울 자가 나타났다며.

* * *

“어우.”

암철검을 쥔 손이 돌이 되어가는 감각이 느껴지자, 곧바로 그 무기를 내 안에 집어넣었다. 바위 마력으로 바뀌어 내게로 흡수되는 식이었다.

[멸악자]가 풀리자마자 긴장도 풀렸다. [천리안] 쓰고 이안이 이 근처를 돌아다니는 걸 봤을 땐 진짜 식겁했지….

그대로 지면에 주저앉았다. 사암의 시련을 거쳤던 탓인지 몸이 굉장히 지쳐 있었다.

조금 전까지는 그나마 [멸악자] 덕분에 잠시나마 생기발랄해졌던 것에 불과했다. 마치 졸릴 때 카페인을 듬뿍 들이마셔 각성하듯이.

어마어마한 크기의 골렘 사역마, 분쇄자-이든도 바위 마력으로 빛나다가 순식간에 크기가 줄어들어 평소의 작고 귀여운 골렘이 되었다.

녀석은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엎어진 채 [꾸우웅….]하고 침음을 흘렸다. 강력한 버프가 풀리자 그 반작용으로 크게 지쳐 버린 모양이었다.

[멸악자]가 풀린 지금, 이든의 레벨은 임시 레벨 175에서 103이 되었다. 혼탁의 바벨을 처치하면서 레벨 업 했나 보다.

스르르르──.

한국의 내 주식처럼 반 토막 난 바벨의 육체가 잿가루가 되어 사라져 갔다.

잇달아 윗부분부터 가루가 되어가는 화염의 벽. 저건 가림막 역할로 써먹고 싶어서 일부러 꺼지지 않도록 냉기를 자제했었지.

수많은 사람을 담아냈던 어둠 방울들도 점차 힘을 잃고 서서히 지면에 내려앉았다.

펑. 펑. 펑. 방울이 터져 나가며 이미 기절한 많은 사람이 지면에 축 늘어졌다. 단숨에 검게 물들어 있던 죽음의 땅에서 어둠 마력이 증발하고, 이 일대는 대형 취침소가 돼 버렸다.

악마의 기둥은 대미지를 받을 시 인질로 잡은 사람들의 생명력을 갈취해 상처 부위를 치료한다. 즉 이든 한 방, 나 한 방으로 1페이즈, 2페이즈 원 턴 킬을 내버린 건 녀석이 남의 생명력을 빼앗을 틈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저들 모두 당분간 쇠약하겠지만, 잘 먹고 잘 쉬다 보면 기력이 돌아오리라.

[ 혼탁의 바벨 ]

심리 : [ 당신이 몹시 약해져 당황하고 있습니다. ]

끼리리릭…, 거리며 애처로운 신음을 흘리는 바벨.

억울하겠구나. 알고 보니 자기보다 훨씬 약한 쩌리한테 털린 거니까.

‘어쩌겠냐. 내가 마족 한정 깡패인데.’

놈은 휘둥그레 뜬 눈으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완전한 잿가루가 되어 바람에 흩날렸다.

[축하합니다! [혼탁의 바벨(Lv 165)]을 처치하고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Level Up!! Lv이 105로 상승했습니다!]

[스탯 4를 획득합니다!]

[업적 [탑? 오르기 전에 부숴드렸습니다]를 달성했습니다! 보너스 스탯 10을 추가로 획득합니다!]

바벨이 사라진 자리에서 잿빛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더니 두 지점에 뭉쳐 두 개의 큐브가 되었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잿빛 큐브 두 개가 지면에 툭 떨어졌다.

‘전리품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발걸음을 옮기고, 그 큐브 두 개를 집어 들었다.

[전리품 [혼탁의 먼지]를 획득했습니다!]

이 큐브 두 개는 각각 동일한 효과를 지니고 있다. 고유 스킬 하나 얻게 해주는 거다.

한 사람당 하나씩만 쓸 수 있어서, 하나가 내 차지가 되어도 하나가 더 남는다. 빛 속성인 이안에게 주는 편이 좋으리라.

간단한 얼음 마법으로 큐브 하나를 깨부쉈다. 그러자 큐브 안에 있던 잿빛 가루 뭉치가 내 마력 회로로 스며들었다.

[전리품 [혼탁의 먼지]의 기운이 당신에게 스며듭니다….]

[축하합니다! 고유 스킬 [영역 지배]를 습득했습니다!]

[영역 지배].

혼탁의 바벨이 이 일대를 죽음의 땅으로 만들었 듯, 나 또한 내 속성으로 이루어진 영역을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지배영역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 또한 스킬이기에 시전자가 강해질수록, 해당 스킬을 단련할수록 그 효과 범위와 효력이 증가하는 편이다.

나머지 큐브는 주머니에 집어넣자.

‘아, 뒤지겠다.’

개힘들다. 빨리 숙소든 어디든 가서 쉬고 싶었다.

여기서 여유롭게 휴식을 취할 때도 아니었다. 이제 곧 아스트레앙 가문 휘하의 기사단이 여기 올 테니까.

[천리안]으로 주위를 훑었다. 아직 꽤 먼 위치에 그들이 있었다.

카야와 합류해서 잠시 멈췄구나. 좋아.

그들은 이곳에 찾아와 인명 구조 작업을 진행하겠지. 물론 이 대형 취침소에서 잠에 빠진 사람들을 하나둘씩 옮기는 작업일 테지만.

어쨌든 그 전에 도망치는 게 상책일 터.

“이든, 괜찮냐?”

[꾸우우….]

이든은 오른팔만 힘없이 들며 지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전히 지면에 엎어진 채 고개조차 들어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동 셔틀 역할로도 신세 지기 어려울 듯해서 그냥 역소환 했다.

“힐드.”

왼쪽 손목에 새겨진 소환진에서 작은 용 형태의 빙설룡-힐드를 소환했다.

[불렀느냐, 주인이여.]

“[서리바람] 좀 써 줘. 사람들한테 피해 안 가는 수준으로 약하게. 적당히 마나 잔흔만 없애면 돼.”

원소 마법을 사용하면 마나 잔흔이 남는다.

그것이 무엇이냐.

원소 마법으로 창조해낸 걸 없앨 때는 보통 가루가 돼서 바람에 흩날리며 사라지는데.

하필 그게 다른 사물과 강하게 맞붙어서 곧바로 사라지지 못하고 남은 게 바로 마나 잔흔이다.

얼마 못 가 사라지는 편이긴 하다. 적당히 강한 바람이 불면 가볍게 날아가고, 그때는 평소 마법을 해제할 때처럼 금방 사라져 버린다.

도망치기 전에 증거인멸 해야지.

[명령에 따르마.]

휘우우우우──.

서리를 머금은 은빛 바람, [서리바람]이 빙설룡-힐드로부터 새어 나와 소용돌이처럼 일대를 휘감았다. 냉기도, 바람의 강도도 약했다. 마치 안개처럼 색만 짙을 뿐인 초겨울바람 느낌.

[서리바람]은 기절한 사람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그저 일대에 드문드문 흩어져 있는 마나 잔흔만 흩날렸다.

이대로 다크 히어로처럼 유유히 사라지면 그림은 완벽하리라.

‘…아, 내 마력 얼마 남았지?’

생각해 보니….

빙설룡-힐드의 강력함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그만큼 마력 효율이 씹창렬이었다. 내가 아직 종결급 사역마를 다루기엔 한없이 약한 까닭이다.

그런 빙설룡-힐드를 타고 여기까지 오느라 마력을 많이 소모해 버렸지. 거기다 [서리바람]까지 써버렸으니까…. 뭔가 내 몸의 감각도 기름 없는 차를 운행하는 느낌인데.

상태창을 켜보았다.

[ 상 태 ]

이름 : 아이작

Lv : 105

성별 : 남

학년 : (2)

칭호 : 예비 2학년

마력량 : 105 / 26000

- 마력 회복 속도(A-)

‘아니 시벌?!’

큰일이다. 마력이 바닥을 치려 하고 있었다!

곧 있으면 아스트레랑 휘하의 기사단이 찾아올 터. [서리바람]은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 어서 자리를 떠야 했다.

“힐드! 뛰어!!”

[아앗! 뭐냐, 주인! 날 두고 가지 마라!]

나는 전력질주로 [서리바람]을 가로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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