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132화 (132/334)

EP.132 앨리스 (3)

나는 정보전에서 무조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밖에 없다.

앨리스는 학생회장이자 진상규명위원회 일원으로서 가지고 있는 정보 우위로 나를 떠보는 거겠지. 조금 전, 그녀가 언급한 건 보통의 학생이라면 알기 어려운 정보니까.

하지만.

‘내가 모를 리가.’

나는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 관한 정보들을 섭렵하고 있었다.

그 많은 정보를 머릿속에 담아두는 방법은 간단했다. 이 세계에 빙의한 직후부터 쭉, 게임 설정을 양피지에 적어가면서 하나하나 세세하게 되짚어보는 거였지.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게 어긋나지 않았는지 매 순간 주의를 기울이는 건 당연한 처사였다.

앨리스가 의도적으로 언급한 ‘네 사람밖에 없었다’라는 말은 나를 몰아세우기 위한 떡밥이리라. 물고기처럼 물어선 안 된다. 카야, 리제타, 이안을 제하면 검은 괴물 용의자는 나밖에 안 남잖아.

즉, ‘그렇다’ 혹은 ‘잘 모르겠다’ 따위의 대답으로 그 명제를 인정하고 넘어가면.

‘당시 검은 괴물로 의심될 만한 사람이 너밖에 없었구나’, ‘네가 검은 괴물이 아니냐’라고, 나를 몰아세울 여지를 손수 대령해주는 셈이 된다.

자칫 내가 앨리스의 입놀림에 놀아날 우려가 생기는 것이다. 아무리 연기를 잘하는 나라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실수할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 ‘선배가 제게 거짓말할 이유는 없을 텐데’하고 은근히 공격적인 언사를 내뱉어 앨리스의 말을 부정한 것.

이러면 앨리스의 간접적인 추궁을 받아치고, 이 화제의 맥을 단숨에 끊어 버리며, 반대로 그녀의 반응을 떠볼 수도 있을 테니.

앨리스는 떨떠름한지 미소가 옅어졌다.

“…왜 그렇게 생각하니?”

“그냥… 제가 본 사람, 들은 사람만 합쳐도 넷은 훌쩍 넘으니까요.”

음, 하고 앨리스 말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앨리스의 말에는 허점이 있었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 수렵 평가 편에서 중심부에 이르렀던 사람은 카야와 리제타, 이안 말고도 더 있었다.

‘케리드나, 시엘, 트리스탄, 아이린, 도지.’

내가 중심부에 이르렀던 사람 중 리제타와 만나게 됐던 것뿐, 나머지 애들도 별 탈 없이 땅속 거인 마족이 나타나기 전에 엘트섬 중심부에 도달할 실력은 됐었어.

단지 내가 그들을 못 본 것에 불과했다.

진상규명위원회도 조사 과정에서 그들이 중심부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내가 리제타와 수렵 평가 사건의 진술 조사 과정에서 은근슬쩍 물어보고 알아낸 정보였다.

내가 그리 자잘한 설정까지 신경 써야 했던 이유는.

‘살아남아야 하니까.’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는 악신을 상대로, 내 좋지 않은 머리와 무력으로 살아남고자 발버둥 쳐야 하는 상황인데.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는지, 매번 검토하고 대비하는 건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 중 하나였다.

앨리스의 연분홍빛 눈동자가 오른쪽 위로 올라갔다. 곰곰이 생각하는 모양새였다.

이내.

“…내가 착각했나 보구나. 사건사고가 워낙 많았거든. 다른 거랑 헷갈렸나 보네.”

앨리스는 한 발짝 물러섰다.

이윽고 우리는 자잘한 잡담을 나누며 생활동에 이르렀고, 내가 소속된 중하위권 기숙사 브릭스관 남자동으로 향했다.

“사역마한테 신세 질 만큼은 회복됐니? 남자동까진 못 들어가는데.”

“이제 괜찮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선배.”

선배의 호의에 감격한 척, 활짝 웃었다.

앨리스는 내 미소를 담담하게 쳐다보았다.

“다 왔구나.”

마침내 브릭스관 정문 앞에 도달하려는 때.

별안간 음습한 살기가 전신을 에워쌌다.

앨리스도 같은 감각을 느꼈는지 우산을 살짝 들어 시야를 확보했다.

브릭스관 정문 구석에, 파란 우산을 쓴 한 여학생이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로즈골드색 머리칼. 나비 머리 장식. 얼핏 봐도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오게 만드는 아름다운 소녀.

그러나 표정은 몹시 무감정했으며, 푸른 눈동자엔 생기가 조금도 내비치지 않았다.

“루체?”

루체 엘타니아였다.

[ 루체 엘타니아 ]

Lv : 158

종족 : 인간

속성 : 물, 번개

위험도 : ??

심리 : [ 앨리스 캐럴에게 강한 질투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

아직 약속 시간 되려면 30분은 더 남았을 텐데…?

“그 아이구나. 사교회에서 봤던, 1학년 수석.”

“아, 네….”

“그럼 난 여기서 물러나야겠네.”

내가 앨리스였어도 굳이 루체의 살기로 만연한 브릭스관 남자동 정문에 도달하고 싶진 않을 것 같았다.

“선배, 감사했습니다.”

“나도. 즐거웠단다, 애기야.”

싱긋 선한 미소를 짓는 앨리스.

“또 보자.”

그녀는 우산을 쓴 채로 내게서 떠나갔다.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연금발이 찰랑였다. 독특하게도 머리카락 끝에 검은색과 하얀색 털 가닥이 눈에 띄었다. 흑백은 곧 앨리스를 상징하는 색이었지. 새삼 느껴진다.

곧, 나를 도와주고 있던 앨리스의 [염력]이 사그라졌다. 잠깐 휘청거릴 뻔했으나 다행히 넘어지지 않았다. 힘이 좀 돌아왔어.

어쨌든.

“후우.”

…심장 떨려 죽는 줄 알았다. 이제 끝났네. 안심이다.

“아이작.”

“……!”

아니, 새로운 시작이었다.

어느새 내 뒤쪽으로 다가온 루체가, 내게 우산을 씌워주며 귓가에 대고 내밀한 음색으로 속삭였다. 단숨에 온몸을 느슨하게 만들고 힘을 쫙 빼버리는 살인적인 목소리였다.

“저 사람 누구야?”

“학생회장. 길 가다가 날 도와줬….”

루체 쪽으로 고개를 돌려 대답했으나, 그녀의 표정을 보고 순간 고개를 흠칫 떨었다.

“…는데.”

타인에게 곧잘 혐오감을 느끼고 마는 대인기피증 루체는, 유독 앨리스의 뒷모습을 향해 강한 경계심을 뿜어대고 있었다. 눈가에 그늘 진 거 봐라.

루체가 유일하게 마음을 연 사람은 나뿐이다. 어찌 보면 독점욕에 가까운 감정이리라.

내게 인맥이 늘어날 때마다, 루체는 자기와 내가 같이 있을 시간이 줄어들었다며 괴로워하는 편이었다.

물론 대놓고 그런 감정을 표현하진 않았다. 그녀의 표정 변화와 [심리 간파]로 알아차리는 거였지.

“에효.”

루체는 한숨을 내쉬며 까치발을 들고 내 어깨에 턱을 굈다. 그녀에게선 은은한 향기가 났다.

“도와줬다니. 또 무리한 거야, 바보야?”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 않냐.”

“너 열심히 하는 거야 어쩔 수 없는데, 도와줄 사람 필요하면 나 불러 주면 안 돼?”

루체는 내 어깨에서 고개를 돌려 내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뽀얀 볼은 푹 눌려 쫀득한 경단처럼 보였고.

고운 로즈골드색 머리칼은 내 옷을 휘감을 기세로 우수수 늘어졌다.

“나라면 쾌적한 친절을 제공해 줄 수 있어.”

친절을 서비스처럼 말하냐.

입술을 비죽 내민 모습. 자기가 떡하니 있는데 부르지 않고 굳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은 게 영 언짢은 모양이었다.

“…….”

루체를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문득 사암의 시련에서 보았던 모습과 겹쳐 보이고 만다. 시도 때도 없이 그랬다.

시체처럼 창백했던 낯빛. 새파랗게 질렸던 입술. 오른팔을 잃어 피를 철철 흘렸던 그때 모습이 지금과 무척 대비되어 보였다.

“…….”

“…너 왜 요즘 날 불쌍하게 쳐다봐?”

물론 이 녀석이 내 애틋한 마음을 알 리 없으리라.

“그냥 쳐다본 건데?”

“기분 나빠.”

루체는 다시 내 어깨에 턱을 괴고, 내 머리 쪽으로 슬쩍 제 머리를 기댔다.

* * *

이틀간 내리던 함박눈이 서서히 기세를 줄여나갔다. 앨리스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눈길을 걸어나갔다.

돌연 찬 바람이 피부를 쓰다듬으며 지나가고, 잿빛 마력이 뭉치며 한 마리의 뚱뚱한 보라색 고양이가 생겨났다.

머리에 쓴 작은 중절모. 괴묘-체셔였다.

[어땠니?]

괴묘는 뒤뚱뒤뚱 앨리스를 뒤따르며 물었다.

[아이작이 방해꾼 같아?]

“…확신은 안 들어.”

아이작이 방해꾼인가.

증거는 없었고, 정황도 그가 방해꾼이 아니라는 쪽에 쏠려 있었다.

검은 괴물씩이나 되는 인물이 그리 다치고 무리하면서 단련했다? 부유섬까지도 단신으로 처치한 존재다. 그가 고작 단련 따위로 그 지경이 되었으리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약하게 시전한 [염력]도 제대로 먹혀들었지. 생명체에는 마나끼리 서로를 밀어내는 힘, 마나 역장이 작용하는데도.

아이작의 마력이 턱없이 낮은 상태였다는 증거였다.

검은 괴물이 그 어마어마한 마력을 거의 소진한 만신창이가 되려면 대체 무슨 짓을 해야 한단 말인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즉,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아이작이 검은 괴물이라는 생각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어딘가 묘하지만.”

하지만 사람에겐 직감이란 게 있다.

앨리스의 직감은 아이작이 방해꾼이라고 주장하는 듯했다. 자신은 그런 불확실한 요소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작과 대화를 나누고 나니 직감이 외치는 소리가 더욱 드높아진 느낌이 드는 건, 그녀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괴묘는 씨익 웃었다. 그는 앨리스의 사역마. 그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앨리스가 오히려 아이작을 향한 관심이 짙어졌다는 것을, 괴묘는 알아챘다.

[그럼 어쩔 거니? 아이작을 좀 더 파헤쳐 볼 생각?]

“이미 방해꾼을 압박할 장치는 마련해 놨잖아.”

얼음 속성, 엘트섬 사건에 깊이 연루된 마법학부 1학년생, 검은 탑 마족이 처치되고 이틀 뒤에 돌아온 남자.

그런 의심스러운 정황들이 있었지만, 핵심적인 부분에선 아이작이 검은 괴물이 아니라는 증거가 나온다. 오히려 그런 점이 의심스러웠다.

“그 아이가 어떻게 나올지 지켜봐야지.”

그러니 누가 검은 괴물인지 파헤치기를 멈추지 않으면서, 아이작을 용의선상에 놓고 좀 더 지켜보기로 앨리스는 결정했다.

눈송이를 퍼붓던 회색 구름이 얌전해지고.

앨리스는 우산을 접고 눈을 탈탈 털었다.

그녀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새하얗게 물든 정원 길에 깊은 발자국이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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