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141화 (141/334)

EP.141 멘토 아이작 (6)

미야의 몸이 나무에 퍽 부딪혔다.

해일처럼 거센 기세로 퍼부어진 물 원소 마법이 지면에 가라앉고, 미야의 몸도 스르르 쓸려 내려갔다.

미야는 고통스럽게 헛기침하며 물을 토해냈다. 입안과 온몸이 저릿했다. 마비라도 걸린 듯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마력이 높은 밀도로 응축된 물 마법에 강력한 번개 마력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공격. 이만한 마력 운용력은 가히 천재의 영역이었다.

저벅저벅, 루체가 다가왔다.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낀 미야는 물에 젖은 생쥐 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콰악─.

“끄흑!”

루체는 미야의 한쪽 어깨를 발로 짓눌러 나무에 맞붙게 하고서, 무덤덤하게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나무 아래, 어둡게 그늘진 루체의 얼굴에서 아쿠아마린빛 눈동자가 섬뜩한 살기를 뿜어댔다.

파지지직, 거리며 범접할 수 없는 번개 마력이 루체 주위로 아우성쳤다. 그 뒤로 검은 뇌조의 형태가 일렁이며 맹금류의 눈이 번뜩였다.

전설의 마수, 뇌신조-갈리아의 마력.

하물며 그 사역마와 루체의 융화력은 최대치. 루체와 뇌신조의 힘은 일체화되어 있었다.

마력 운용력, 원소 화력, 사역마까지, 무엇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존재.

경외심마저 떠오르게 만드는 그 강자의 아름다운 자태를 바라보며.

미야는… 강한 의구심을 느꼈다.

“루체 선배, 어째서…?”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돈과 권력, 명예, 모든 걸 거머쥔 자신이 당신의 꿈을 이뤄주겠다고 제안했다. 루체에게는 분명 절호의 기회이자 달콤한 제안이었을 터.

설령 그런 게 아니었더라도, 그 누구도 미야 자신에게 섣불리 손댈 순 없을 터였다.

그래. 동방국의 지배자나 다름없는 무녀, 바로 자신을 상대로. 이는 곧 한 국가를 상대로 시비를 거는 행위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미야는 얼떨떨한 심정이었다. 예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의 상식과는 지나치도록 어긋난 행보였다.

곧, 루체의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훔쳐봤던 거, 다 알고 있었어.”

루체의 시력은 도가 지나칠 만큼 뛰어나다.

집중해서 주위를 탐색하면 멀리 있는 개미 한 마리조차도 잡아낼 수 있는 수준.

그녀는 아까 전에 화이트와 메를린, 미야가 자신을 훔쳐보고 있었음을 알아챘다.

화이트는 당연히 올 사람이었으니 넘어가고.

문제는 미야였다.

“네가 뭔데.”

“끄으윽!”

미야의 어깨를 짓누르던 루체의 발에 힘이 들어갔다. 미야는 고통에 신음했다.

“아이작을…, 버러지라고 불러?”

루체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팠던 한 조각의 회한이었다.

소중한 사람에게 버림받았던 루체에게 더없이 소중한 사람이 되어 주었던.

과자집 마녀를 무참히 잃어 버렸던 지독한 기억이었다.

수많은 병력 앞에서 과자집 마녀를 껴안은 채 루체는 눈물만 쏟았다. 그때의 무력감과 이별의 고통이 이제껏 그녀를 옥죄어 왔다.

그리 어두컴컴한 마음 속에서 표류하게 된 루체에게, 마치 한 줄기 광명처럼 아이작이 나타났다. 그는 자신의 소중한 사람이 되어 주었다.

아이작이 루체에게 지니는 가치는 천금보다도 귀하다. 누군가 그를 욕한다면, 루체의 속에선 천불이 일고 만다.

루체는 상체를 숙여 가까이서 미야를 내려다보았다. 땋아 내린 로즈골드색 머리칼이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리 한동안, 두 사람은 서로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미야는 금방이라도 자신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그 냉소적인 눈빛에 압도당해 숨을 쉬는 것조차 잊어 버렸다.

“다시는, 말 걸지 마.”

나지막한 목소리로 루체는 속삭였다.

이내 루체는 미야의 어깨에서 발을 내리고서, 등을 돌리고 담담하게 그 자리를 떠나갔다.

“…….”

미야는 루체가 짓밟았던 어깨를 부여잡았다. 아팠다. 동시에 구미호의 마력이 풀리고 화염의 꼬리가 사그라졌다.

떠나가는 2학년 수석의 뒷모습을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로즈골드색 머리칼에 노을빛이 스며들어 있었다.

“…칫.”

미야는 혀를 찼다.

짓밟히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건… 자괴감. 그녀가 처음으로 겪어보는 감정이었다.

곧 검지 손톱에 화염이 일렁였다. 미야는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미야, 저 아이를 자극하지 말거라.]

연이어 구미호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뇌신조는 나조차도 대항할 수 없느니라. 하물며 뇌신조의 힘은 이미 저 소녀의 것이 되어 있으니, 나로선 손 쓸 도리가 없구나.]

“…….”

미야의 붉은 도화살 화장을 한 눈이 찌푸려졌다.

그녀의 목소리에 한숨이 뒤섞였다.

“지랄 마.”

갖고 싶은 걸 갖는 건 당연하다.

자신이 위에 서는 건 당연하다.

그것이야말로, 미야에게는 당연한 삶의 이치였다.

‘아이작….’

청은발의 선배, 아이작. 그가 루체 엘타니아의 이성적인 판단마저 흐리게 할 만큼 소중한 존재인가.

미야는 피식 웃고는 나무를 짚고 일어나더니, 루체와는 반대 방향으로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다리가 여전히 저릿했으나 회복 마법을 걸어 주니 나름 걸을 만했다.

“더 갖고 싶어졌어….”

자괴감과 수치심이 몰려와 미야를 움츠러들게 했다. 몸이 으슬으슬 떨리기까지 한다.

하지만 오히려 처음으로 느껴본 그런 감정들이 미야의 의욕을 자극하기도 했다.

미야는 화염 마력으로 열기를 일으켜 물에 젖은 몸을 말리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루체 엘타니아, 아이작.

그 두 이름만을 되새기면서.

이윽고, 미야는 자신을 찾아다니던 호위 마법사와 합류했다.

미야의 교복이 일부 찢어져 있어 호위 마법사는 공포에 떨었으나, 미야는 괜찮다며 유야무야 넘어갔다.

고작 이런 일로 시끄럽게 만들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 모습을 지켜본 이가 있었다.

산책하길 좋아하는 한 여학생은 수국 정원을 거니는 중, 강한 마력을 감지하고 루체와 미야를 발견했다.

양쪽 머리를 땋아서 고리 형태로 묶은 연분홍빛 머리칼.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성모를 머리에 씌우고 성복을 몸에 걸친 채였다.

얇게 뜨인 나머지 실눈으로 보이는 눈에선 눈동자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흥미롭다는 듯 고결한 미소만이 그 여학생의 얼굴에 담겨 있을 뿐이었다.

“사일론. ‘아이작’이란 자가 누군지 아는가?”

성녀, 비앙카 앙투라제는 고상한 목소리로 성복을 입은 호위 성자에게 물었다.

* * *

화이트 가르치기를 마치고, 우리는 수국 정원 출입구에서 헤어졌다.

생활동으로 향하는 길. 반딧불이처럼 빛나는 손톱만 한 마력 덩어리 하나가 날아와 내 품에 안착했다. 빙설룡-힐드였다.

[주인, 돌아왔다.]

‘힐드, 아까 한 얘기 다시 해봐.’

빙설룡-힐드는 수시로 내 주위를 순찰하게 했다. [천리안]에 이은 이중 감시 장치 같은 느낌이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내 머릿속에서 상황을 중계하는 역할인 것이다.

앨리스가 나를 검은 괴물이라고 의심하고 있고, 팔라딘까지 입학한 마당에 신중을 기하는 건 당연했다.

빙설룡-힐드는 아까 전, 주위에서 벌어졌던 상황을 내 머릿속에 전달했다.

그러나 말이 두서가 없었기에 한 번 더 내용을 정리해 보기로 한 것이다.

‘무녀가 나를 몰래 훔쳐보고 있었고, 루체와 시비가 걸렸다…. 그리고 그 광경을 성녀가 목격했고?’

[그렇다.]

루체와 미야가 대립하게 된 원인은 나였다. 미야는 루체를 떠보기 위해 나를 내리깎았고, 그것이 루체의 화를 불러왔으니까.

미야는 이번 일을 적당히 넘어가기로 한 듯 보였다. 본래의 시나리오처럼 루체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서겠지.

어차피 내가 원인이 아니었더라도 두 사람 간의 갈등은 필연이다. 미야는 루체를 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심한 짓은 하지 않으리라.

그나저나 내가 루체의 역린이라는 걸 미야가 알아챘다.

우연히 두 여학생이 싸우는 광경을 목격한 성녀 비앙카에게까지도.

이것이 무슨 변수를 일으킬지는 예상하기 어려웠다. 적어도 날 건드리면 루체에게 죽겠구나, 라는 인식은 심어줬을 테니 심한 짓은 안 당할 거라 생각하지만….

뭐, 어차피 미야하고는 불가피하게 엮이게 됐을 터였다. 좀 더 일정이 앞당겨졌다고 생각하자.

오히려 내가 루체의 보호 아래에 있다는 인식을 미야에게 심어 줘서, 생각보다 더 안전해진 상황일 수도 있겠다.

‘문제는 성녀.’

성녀, 비앙카 앙투라제.

황금의 세대 주역 3인방 답게 무척 아름다우며, 연분홍빛 머리칼을 가진 고귀해 보이는 여학생이다. 실눈이지만 흑막은 아니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그녀는 조연이었고.

성격도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아 굳이 엮일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비앙카는 ‘아이작’이란 이름을 머릿속에 새겨 넣어 버린 모양.

이 애의 행동 패턴은 팔라딘보다도 추측하기 어려워서 난감했다.

…선택의 여지가 있겠나. 비앙카까지 고려해 계획을 좀 더 체계적으로 세울 필요가 있으리라.

앞으론 시나리오 빌런이자 마족인 심해괴수, 사령의 군주 같은 놈들과도 싸울 준비를 해야 한다.

2학년 1학기 최초의 적인 심해괴수가 튀어나오는 건 조만간이었다. 다음 합동 평가 때 나오리라.

생각해야 할 게 많았다. 오늘치 단련을 마치고 나면 자기 전에 본격적으로 생각을 정리해야겠….

“……?”

인적 드문 길을 지나는 중, 대뜸 피부를 오싹하게 할 만큼 강한 마력이 느껴졌다.

휘우우우우──.

가벼운 연녹빛 바람이 내 주위를 휘감았다.

당황해서 고개를 번쩍 들자 한 여학생의 얼굴이 가까이서 보였다.

바람에 휘감긴 한 소녀. 그녀의 담녹색 양갈래 머리칼과 마법사 케이프가 깃발처럼 펄럭였다.

그녀는 활짝 웃으면서 내 어깨를 휘감고는, 그대로 지면에 착지하며 나를 와락 껴안았다.

그리 도망칠 수 없게 나를 꽉 잡아 두고는.

쪽.

내 뺨에 앙증맞게 키스하는 그녀. 기분 좋은 촉감이 뺨에 여운처럼 남았다.

그녀는 제 뺨을 붉힌 채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가까이서 쳐다보았다.

“오랜만이에요, 아이작 님! 저 안 보고 싶었습니까?”

내 애정캐, 카야 아스트레앙.

정확히는 악식이었다.

“전 너무 보고 싶었는데~.”

“카야…?”

카야는 헤헤, 웃으면서 내 뺨에 자기 뺨을 비비적거렸다. 뺨이나, 가슴팍이나, 말랑한 것이 맞닿으니 곤란한 심정이었다.

내 목을 팔로 휘감은 탓에 빠져나올 수도 없고, 따스한 숨결마저 연신 맞닿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오랜만이라 방심했다.

그나저나, 역시 얘도 2학년이 되면서 루체가 머리를 땋았듯 변화가 생겼다.

머리에 묶은 머리끈이 검은색에서 제 눈동자 색과 같은 붉은색으로 바뀐 점. 머리색과 색감이 잘 어울렸다. 머리칼도 조금 자른 느낌이었다.

“그래, 반갑다. 잘 지냈어?”

“아이작 님 덕분에요. 하아. 어쩜, 2학년이 되시니 더 늠름해지지 않으셨습니까~?”

카야는 지근거리에서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며 애교스러운 목소리로 그리 말했다.

나는 눈을 반개하고 동그란 안경을 한 차례 들친 후,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것보다, 너 요즘 나 피해 다니지 않았냐?”

카야는 “아앗….”하고 은근슬쩍 내게서 눈을 피했다.

나는 카야를 정말 좋아한다. 학기가 시작하자마자 인사하고 간간이 수다를 떨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그녀는 자꾸만 나를 피해 도망쳐 다녔다.

[심리 간파]로 심리를 읽어보면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입이 잘 안 떨어지는 모양이었다.

굳이 숨길 것도 없는 내용인데.

“사실 조금 말하기 곤란한 게 있어서…, 영 죄송스러워서요.”

멋쩍게 웃는 카야.

그녀는 자기 어머니에게 나를 향한 연심을 들켰다.

그래서 언젠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아스트레앙 저택에 데려가기로 약속했으나, 자기 멋대로 한 그 약속을 내게 어떻게 제안해야 할지 망설이는 듯했다.

오늘은 제대로 용기를 냈구나. 악식의 인격까지 대동하면서.

마침 잘 됐다. 조만간 안전하게 심해괴수를 상대하기 위해 억지로라도 작전 회의에 들어가려는 참이었다.

도로시는 이미 얘기를 마쳤고, 카야하고도 슬슬 대화를 나눌 때가 된 것이었다.

“나도 마침 할 말 있었거든. 조만간 얘기 좀 나누려 했는데.”

“앗, 그게 뭡니까?”

“너 먼저 말해. 요즘 왜 피해 다녔는데?”

“아….”

카야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다가.

못 참겠다는 듯 ‘푸흐’하고 웃음을 터뜨리곤 양팔을 내 허리에 휘감고서 내 품에 꼭 껴안겼다.

내 가슴팍에 제 뺨을 파묻는 카야. 은은한 향기가 내 후각을 적셨다.

“조금만 더 이러고 있다가 대화 시작해도 됩니까? 아이작 님 너무 좋아서 미칠 것 같아….”

…너무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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