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6 합동 전술 평가 (3)
46번.
겨울방학 동안 내 뼈가 부러진 횟수다.
치유 마법이 얼마나 위대한지 새삼 실감이 났다. 하루에서 이틀 사이면 부러진 뼈가 멀쩡히 달라붙곤 했으니까.
겨울방학엔 암갑귀-고르모스를 자주 찾아갔다. 녀석이 창조해내는 골렘 하수인들과 싸우는 건 실전 능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니.
나는 녀석의 하수인한테서 셀 수 없는 패배를 반복했다. 수십 번의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리 다음 단계의 하수인들을 상대하고, 또 상대하며.
겨울방학이 끝나기 전에 내 목표 단계였던 압축형 골렘과 전투를 벌일 수 있었다.
놈은 체고 2m의 골렘이었다. 공룡처럼 컸던 여느 골렘 하수인들보다는 비교적으로 초라한 크기였지만.
내지르는 바위 주먹은 몹시 빨랐고, 한번 맞으면 내장이 터지는 것 같은 충격이 느껴졌다.
놈은 민첩했다. 공격은 능수능란했다. 마법의 위력도 이제까지 중 가장 막강해서 상당히 버거웠다.
그래서 흥분했다. 저놈만 이기면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들었으니까.
그렇게 몸이 망가질 각오로 싸웠다.
뼈가 몇 번이고 부러지든지, 피와 땀을 얼마나 쏟아 내든지, 암갑귀의 하수인을 이기기 위해 온 힘을 쏟아부었던 것이다.
마침내 겨울방학이 끝나기 하루 전, 나는 압축형 골렘을 쓰러뜨렸고.
너무도 기쁜 나머지 아픔조차 잊고 목청이 터져라 환호성을 내질렀다.
[ 상 태 ]
이름 : 아이작
Lv : 110
성별 : 남
학년 : 2
칭호 : 능숙한 2학년
마력량 : 30000 / 30000
- 마력 회복 속도(A-)
램프의 빛이 내리쬔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적은 총 3명. 원래는 4명이었으나, 저들의 조에 껴있던 팔라딘 셰라는 개별 행동 중이었다. [천리안]으로 살펴서 알고 있었다.
우선 첫 번째 상대는 레벨 39의 스노우화이트. 속성은 바람. 적당히 주의만 기울이면 되는 상대다.
다음은 기사학부 1학년 B 클래스 1등, 레벨 90의 아벨 카르네다스. 속성은 물과 불. 좋은 재능을 타고난 검사다.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 같은 날렵한 움직임과 뛰어난 반사신경은 그의 자랑거리다.
저 녀석은 날카로운 검격에 강력한 원소 마법을 조화롭게 얹을 줄 알았다. 가히 마법 기사 지망생다운 실력을 갖춘 것이다.
여담이지만, <메르헨의 마법 기사> 2학년 파트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 조연이었지.
마지막으로 B 클래스 상위권인 레벨 87의 로앤나 셸턴. 속성은 바람. 그녀에게 포착되었다면 화살을 피한다는 선택지는 포기해야 한다. 피하려고 해봤자 바람으로 슬쩍 궤도를 틀어 반드시 적을 명중 시키고야 마니까. 바람 마법으로 화살의 위력을 증폭시키기까지 한다.
궁수 답게 시력은 당연히 뛰어난 편. 마력의 흐름을 쫓는 능력도 몹시 탁월하다. 여담으로, 아벨의 연인이 될 여학생이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선 단연코 저런 팀은 없었다.
팔라딘 4명이 입학하면서 합동 전술 평가의 팀 구성에도 큰 영향이 끼친 게 분명했다.
어쨌거나, 내가 해야 할 일은 같았다.
내 목적은 심해괴수가 출현할 때까지 길을 비켜 주지 않는 것.
심해괴수 파트의 중간 보스, 심해여왕이 가진 흑해 여제의 반지에 아무도 마력이 흡수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는 것이었다.
◆ 대 종족 전투력
- 대 인간 전투력(D+) : 20/100
잠재력 ‘성장 속도’를 최대치까지 찍으면서 고유 특성 [일취월장]을 얻었다.
효과는 단순하다. 레벨 1 오를 때마다 얻는 스탯을 2배로 얻게 해주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성장 속도를 최대치까지 찍었던 레벨 106에서 110이 될 때까지 새로 얻은 스탯은 총 16.
모두 [대 인간 전투력]에 투자했다.
‘대 종족 전투력’의 효과는 모두 같다. 10 스탯당 레벨을 5씩 올려주고, 능력치도 증폭시켜준다.
그리고 최대치인 100 스탯을 찍으면 새로운 고유 특성을 얻으며, 그 효과는 레벨과 능력치 증가폭을 뻥튀기시켜 주는 것.
내 고유 특성 [멸악자]의 효과도 [대 마족 전투력]의 효과를 2배로 늘려주는 것이었으니. 다른 것도 똑같다고 보면 된다.
현재 내 [대 인간 전투력]은 20.
즉, 임시 레벨은 10 만큼 오른다.
[ 상 태 ]
이름 : 아이작
Lv : (120)
화이트는 내 마력량이 늘어났다는 사실을 눈치챘겠지만.
이 정도면 2티어 마도무기인 잔야의 지팡이 버프로 적당히 속일 수 있는 수준일 터.
이미 만일을 대비해 밑밥도 깔아 놨다.
2주 전에, 마도무기 얘기를 나누다가 잔야의 지팡이가 어떤 무기인지 설명해줬으니까. 내 마법의 위력을 높여주고 마력의 밀도를 높여 준다는 식으로.
그리고 오늘을 대비해 미리 준비해 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내가 벗은 안경은 ‘리벨라의 안경’. 꽤 유용한 효과를 지닌 마도구였다. 쓰고 다닌 만큼 벗었을 때 마력의 흐름을 좇는 능력이 일시적으로 강화되니까. 물론 효과엔 한계가 있지만.
모래주머니 차고 다니다 벗었을 때, 다리가 날아갈 것처럼 가벼워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
마력 회로를 빠르게 순환시킨다. 냉기를 내뿜는다.
전투 태세를 갖추고 화이트 일행을 냉소적으로 노려보았다.
저 후배들은 내가 8번째로 해치울 조였다.
* * *
아이작의 냉기가 공간을 지배했다.
주위가 무서운 기세로 희뿌옇게 얼어가고.
지면에 고인 얕은 해수가 삽시간에 얼음장으로 변해 갔다.
차아악─!
아벨의 검집에서 섬광이 쏟아졌다. 신형이 허공에 제 형상을 새긴다.
발도. 물 마력을 휘감은 검격이 지면에 내리꽂혔다.
물의 벽이 치솟으며 냉기를 잠시 막아 내고.
“로앤나!”
휘우우우──!
기다렸다는 듯이 몰아치는 로앤나의 연녹빛 바람. 마력의 바람이 화이트 일행의 몸체를 붕 띄웠다.
바람 마법으로 몸을 들어 올리는 행위는 마력 소모량이 막심했기에, 로앤나는 신체가 뒤틀리는 듯한 격한 거부감을 느끼며 한쪽 눈을 찡그렸다.
아벨이 일으킨 물의 벽마저 꽁꽁 얼고.
아이작의 냉기가 뒤덮여 지면이 온통 얼음판이 되자, 로앤나는 바람을 거두어 다 같이 땅에 발을 디뎠다.
“핫, 하마터면 시작부터 털릴 뻔했네….”
아벨은 하얀 입김이 섞인 실소를 터뜨렸다.
처음부터 지면에 고여 있던 물은 아이작이 준비한 것일 터. 아마 물 속성 주문서를 쓴 거겠지.
이미 많은 학생이 저 얼음 속성 선배에게 탈락했는데도 물이 고여 있다는 사실에서 아벨과 로앤나는 아이작의 첫수를 읽었다.
고작 냉기만 퍼뜨려도 빠르게 발을 얼릴 수 있으니까. 그렇게 빈틈을 만들어내려는 것이었을 터.
아벨과 로앤나는 확신했다. 아이작을 상대로 잠깐이라도 빈틈을 보이는 순간, 패배가 확정될 거라고.
경계 태세. 아벨은 검을 쥔 채 자세를 고쳐 잡았고, 로앤나는 활을 잡고 시위를 당겨 아이작을 겨냥했다. 뒤에서 화이트는 연녹빛 마법진을 전개했다.
사납게 몰아치는 한풍은 뼈가 시리도록 차가웠다.
추위는 몸을 둔하게 만든다. 아벨은 검날에 맹렬한 불길을 일으켰다. 추위 속 모닥불 앞에 있는 것처럼 온기를 한껏 느끼기 위해서.
대화할 시간은 없었다. 빠르게 적의 정보를 습득해야 한다.
아벨은 소리쳤다.
“화이트 황녀님, 저 선배가 누군지 아세요?!”
“제, 제 멘토예요! 아이작 선배…! 얼음 속성을 다루시는 건 처음 봤어요…!”
화이트는 냉기 너머에 있는 자기 멘토를 시야에 담았다.
아이작. 주 속성은 얼음, 보조 속성은 바위라고 들었다.
“정보가 필요해요! 뭐든 좋아요! 저 선배에 관한 거!”
“저, 정보…! …어?”
문득 위화감이 느껴졌다.
화이트에겐, 이 전투에서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까지 얼음 마법을 쓰는 아이작을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는 자신 앞에서 언제나 간단한 바위 마법만 부려오지 않았는가.
어째서, 이제까지 아무런 의문을 갖지 않았던 걸까.
거의 매일 해왔던 멘토링 과정을 반추해 보았다.
일부러 힘을 숨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이작은 자기 전력을 단 한 번도 보여준 적도, 이야기해준 적도 없었다.
“죄, 죄송해요! 없어요! 꺄악!”
휘우우우우우───!!
아이작의 냉기가 희뿌옇게 변해가며 시야를 가렸다. 숨 쉬기조차 까마득해질 만큼 기세가 겹겹이 쌓여 간다.
2성급 마법, [싸락눈]을 머금은 한풍. [싸락눈]이 얼음장처럼 변해 버린 공간에 마구 튕겨 나가며 정신없는 소음을 일으켰다.
아이작이 시야에서 사라지기 전에 로앤나는 바람 마력을 머금은 화살을 쏘았으나.
이미 예상했다는 듯 절묘한 타이밍에 솟아오른 얼음의 벽이 화살을 막아 냈다. 화살이 퉁, 하고 튕겨 나갔다.
아벨의 검날에서 타오르던 불꽃이 끝내 냉기에 사그라졌다. 그러자 그는 소리를 내질렀다.
“로앤나! 지원!”
“알았어!”
“저도 가세할게요!”
화르르륵──!
화아아악──!
아벨은 불의 검기를 퍼부어 냉기를 갈라가며 돌격했다. 화이트는 아벨 주위로 바람을 일으켜 화염의 위력을 증폭시켜 주었다.
로앤나는 활의 시위를 당겼다. 아벨이 화염의 검으로 하얀 냉기를 갈라가며 짓쳐드는 동안, 그녀의 눈은 한풍 속에 숨어 있을 아이작을 추적했다.
냉기로 얼음 마력이 사납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마나 감지력을 발휘하는 것으로도, 마력의 흐름을 쫓는 것으로도 아이작을 찾아내기 힘들었다.
소리를 추적해보는 건? 소용없다. [싸락눈]이 일으키는 소음이 주변의 소리를 잡아먹고 있으니까.
희뿌연 냉기 속, 시야 확보도 어려웠지만.
한순간의 빈틈을 노리면 되었다. 아이작이 아벨을 상대하며 모습을 드러내는 그 순간이 로앤나가 시위를 놓을 때였다.
아니면, 아이작이 마법을 사용할 때를 노려야 했다.
그가 공격이든 방어든, 마법을 사용하기만 한다면 단숨에 마력의 출처를 특정 짓고 그쪽을 겨냥해서 화살을 쏘면 될 테니까.
로앤나는 자신이 있었다. 자신 앞에서 숨을 생각을 하다니, 아이작이 가소롭게 느껴질 정도였다.
“얼음의 벽이든 뭐든 써 보시라고요, 선배! 설마 쫄았습니까?!”
아벨은 화염의 검을 연신 휘두르며 기세등등하게 도발했다.
그는 마나 감지력에 자신이 있었다.
아무리 얼음 마력이 난잡하게 휘몰아치고 있어서 아이작을 추적하기 어렵다고 해도, 그가 마법을 쓰려 하면 강렬한 마력을 느껴 위치를 특정 지을 수 있을 터였다.
─싸늘한 감각.
아벨은 뒤통수 너머로 밀도 높은 마력을 느꼈다.
“……!”
발을 멈추고 다급히 뒤를 돌아보는 아벨.
두 눈이 크게 뜨였다. 놀란 얼굴로 그는 소리를 내질렀다.
“다들 피해!!”
두 눈이 휘둥그레진 건 로앤나와 화이트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작의 마력이 어째선지 발밑에서 느껴졌으니까.
마법사와 전투할 땐 마력의 근원지를 쫓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 그래서 그들은 기고만장하게 정석을 따랐으나.
아이작이 그걸 대비하지 못했을 리 없었다.
시간이 멈춘 듯했다. 발밑 얼음장에서 연푸른 광채가 터져 나올 때, 로앤나는 본능적으로 바람을 일으켜 화이트를 뒤로 밀어냈다.
「바람 생성 (바람 속성, ★1)」
휘우우우우!
“꺄악!”
화이트는 밀려나며 비명을 질렀고.
동시에 로앤나 자신도 물러서려 했으나.
─────「빙결 폭발 (얼음 속성, ★5)」
콰아아아아아─────!!
지면에서 연푸른 마력 폭발이 일었다.
얼음 조각이 비산했다. 섬광과 함께 눈 깜짝할 새에 생겨난 빙괴 속에, 로앤나의 몸은 반쯤 잡아 먹힌 채였다.
마력 폭발 탓에 붕 떠오른 로앤나의 몸이 솟아오른 빙괴에 붙잡힌 것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화이트 일행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로서는, 대인용으로 쓰기 좋을 만큼만 마력을 불어넣은 재해의 검집이 얼음판 밑에 있었을 줄은 몰랐을 테니.
아벨은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저 자리에 있었다면 로앤나와 함께 [빙결 폭발]을 피하거나 불의 검격으로 막아 낼 수 있었을 텐데. 저 정도 위력의 [빙결 폭발]이라면 자신은 충분히 가를 수 있을 터였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왜 아이작은 처음부터 저 마도구를 발동하지 않았던 걸까.
마치 아벨이 일행에게서 떨어지길 기다렸던 것처럼. 아벨이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췄는지 알고 있던 것처럼.
그 순간.
휘욱─!
“……!”
희뿌연 한풍을 헤치고 청은발의 사내가 튀어나왔다.
아이작.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