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9 합동 전술 평가 (6)
너는 특별하다.
고작 그 한 마디였다.
진중한 얼굴로, 매번 자신에게 무신경하던 아버지가 내뱉은 고작 그 한 마디 때문에.
방탕하게 살아가던 트리스탄 험프레이의 삶은 극적으로 궤도를 뒤틀었다.
그는 잠을 아껴가며 책을 들여다보았고, 코피를 아무리 쏟아 내도 마법을 단련했다.
내일이 오면 오늘보다 강해지리라며 그의 눈은 언제나 성장해 있을 자신을 내다보았다.
그리 살다 보니, 그는 나날이 실력이 늘어가며 저택 사람들의 존경을 두루 받았고.
떠받들여지다 보니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자신이 책임져야 할, 자신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한없이 실감이 나서.
그들의 존경이 헛되지 않도록 할 의무감 또한 그는 느꼈다.
그렇기에 트리스탄은 너희들이 섬기는 자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인지 되새기라는 듯, 언제나 호기롭게 웃어대며 ‘나는 특별하고 우월하다!’라는 자만심 넘치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오만함 속에 피와 땀으로 얼룩진 시간을 감춰둔다. 언제나 품격 있는 자태를 내보이는 백조가 수면 아래로 힘겨운 발길질을 하듯이.
자기 등을 믿고 따라오라고, 트리스탄은 언제나 방자하게 웃어 보였다. 그것이야말로 위에 설 자의 태도. 트리스탄 험프레이가 가꿔온 삶의 방식이었다.
……
이마에 금빛 다이아몬드 문양이 새겨진 여학생, 알렉사는 무표정이었다. 그녀가 뻗은 오른팔이 트리스탄 험프레이를 노렸다.
트리스탄의 눈은 현실을 직시했다. 속성 우위, 최대 마력량의 차이. 저 여학생은 자신보다 훨씬 강하다.
하지만 상대보다 약한 자가 어떻게 싸우는지는 이곳, 메르헨 아카데미에서 질리도록 보아오지 않았는가.
그렇다. 아이작의 싸움법이었다.
그 건방진 녀석과 두 번씩이나 격돌하면서, 트리스탄은 속 시원한 승리를 거둬본 적이 없었다.
취할 건 취해야 했다. 아이작이 깨달음을 주었다면 받아들여야 했다. 강해져야 하니까. 공격이 곧 방어라는 개똥철학을 벗어 던지고 방어 마법 단련에도 치중했던 이유도 그런 것이었다.
게다가 이 빌어먹을 아카데미에는 아직 자신보다 강한 녀석들이 많았고.
저 여학생 후배는 루체 엘타니아나 카야 아스트레앙에 근접한 마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렇다고 물러날 것인가.
‘하! 그럴 리가.’
자신은 위대한 마법사가 되기 위해 메르헨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전투를 피하라니, 그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아카데미에 있는 모든 것은 자신의 성장을 위한 먹잇감에 불과했으니.
휘우우우우───!
휘몰아치는 트리스탄의 연녹빛 바람.
“덤벼 보거라, 꼬맹아.”
그는 여유만만한 미소를 만면에 머금었다.
“…….”
알렉사는 말이 없었다. 대답할 필요가 있을까. 자신은 앨리스 캐럴의 뜻을 따라, 왕국을 위해 그저 싸울 뿐이었다.
저 재수 없고 약해 보이는 금발의 사내는 금방 해치울 수 있으리라.
곧 알렉사의 바위 마법진이 강렬한 빛을 발하고.
드드드드득──!
지면에서 바위기둥이 솟구치더니 트리스탄을 향해 사납게 공기를 가로질렀다.
4성급 바위 마법 [암석 붕괴].
저 황옥빛 바위에 담긴 마력의 밀도가 얼마나 높은지 트리스탄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웬만한 마법으론 저 바위를 부술 수 없을 것이었다.
애당초 강자를 앞에 두고 고작 두려움 하나 날려 보내 봤자 힘의 우위라는 근본적인 문제점은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목적은 상대가 강적이라고 해도 대등하게 싸우고, 끝내 승리하는 것.
트리스탄은 아이작의 전투법에서 그 힌트를 얻었고.
끝없는 고민과 단련의 결과가 지금, 그의 몸체에 일고 있었다.
그의 바람이 적이 아닌 자신을 노렸다.
콰아아앙───!
5개의 바위기둥이 회오리바람을 몰아내고 트리스탄을 짓뭉개려 했으나, 눈 깜짝할 새에 그는 자리에서 사라진 채였다.
알렉사는 당황했다.
“어디에…?”
알렉사의 눈은 재빨리 트리스탄의 마력을 좇았으나.
“……!”
휘우우──!
퍼엉───!
갑작스럽게도, 그녀는 옆구리에 강한 충격을 느끼곤 옆으로 날아가 수차례 바닥을 뒹굴었다.
응축된 바람 마력의 폭발과 강한 발차기가 그녀를 덮친 것이었다.
알렉사는 반사적으로 마법을 휘둘러 자신을 공격한 무언가를 향해 바위기둥을 퍼부었으나.
그 무언가는 눈으로 쫓기 힘든 속도로 알렉사의 마법을 피하고는, 자세를 가다듬었다.
드드득──!
알렉사는 [바위 생성]으로 바위를 만들어 자기 몸을 받쳐, 굴러가길 멈추었다.
그녀의 찌푸려진 눈이 자신을 공격한 사내를 향했다. 그는 온몸에 바람 마력이 휘감긴 채였다. 저 재수 없는 금발이, 교복의 옷자락과 케이프가 바람에 온화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어느 누가 마법사이면서 전투 시작부터 근접전을 시도하겠는가. 그 상식 밖의 기행을 알렉사는 조금도 예상치 못했다.
게다가 질풍과 일체화된 듯한 속도는 놀라울 지경.
“끄아, 아악…. 아프지 않느냐…!”
…다만, 자기가 공격해 놓고선 정강이를 부여잡고 아파하는 꼴은 꽤 볼품 없었다.
트리스탄이 자신보다 강한 마법사를 상대하기 위해 모색한 방법.
바람 마법으로 속도를 극명하게 높이고, 엄청난 속도와 육탄전으로 적을 쏘아붙인다.
아이작의 전투법과 유사했다. 그 녀석은 마법학부면서 망설임 없이 근접전을 시도하니까.
아무리 녀석이 건방지다고 해도, 그의 기지와 실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바람 마력의 폭발까지 덧입혀 위력을 높인 건, 아이작이 근접전에서 [빙결 폭발]을 쓴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지근거리에서 마법을 시전하면 적에게 더 큰 피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직 제대로 다루긴 어려워 타율은 4할밖에 안 됐지만, 운이 좋게도 첫 공격만에 성공했다.
마법사로선 효율적이지 못한 전투법. 하지만 지금처럼 특정 조건만 맞는다면 가장 효과적인 전투법일 것이었다.
“하! 고작 이 정도로 뒹구는 것이냐! 완전히 허약체질이 아니더냐!”
그 조건은 바로, 상대가 신체 능력이 좋지 않을 것. 바로 저 후배 녀석처럼.
이 경지에 이르기 위해 그는 몇 번이고 속에 있는 걸 게워내며, 온몸이 일으키는 경련과 격한 거부감 속에서 수많은 땀방울을 흘려냈다.
드디어 실전에서도 써먹을 수 있게 되다니. 트리스탄은 격하게 흥분했다.
“…그윽.”
이를 꽉 깨무는 알렉사. 그녀의 이마에 십자 핏줄이 돋아났다. 트리스탄의 도발은 효과적이었다.
그녀는 트리스탄에게 차인 옆구리를 움켜쥔 채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곤, 그 금발의 선배를 노려보았다.
[기초보호마법] 조차 두른 상태가 아니었다면 피를 토했을 터. 머리에 피가 쏠릴 만큼 분노가 물밀듯이 일었다.
“짜증 나…!”
알렉사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그러나 내성적인 성격 탓에 목소리는 작은 편이었다.
다시 한번 그녀 주위의 마법진과 지면이 7개의 바위기둥을 위압적으로 토해냈다. [암석 붕괴]. 그 공격이 엄청난 속도로 트리스탄을 노려왔다.
그러나 속도의 우열은 명확했다. 눈 한번 깜박일 새에 사라져 버린 트리스탄.
그는 알렉사가 추적할 수 없는 속도로 [암석 붕괴]를 피해 그녀에게 짓쳐들었다.
「암벽 (바위 속성, ★4)」
드드드득───!
방어. 알렉사는 바위의 벽이 끌어올려 자신을 둥그렇게 감싸게 했다.
연이어 [암석 붕괴]가 쉴 새 없이 무서운 기세로 퍼부어졌으나, 트리스탄은 허공을 자유롭게 유영하며 여유롭게 바위 공격을 피해댔다.
“굼벵이보다 느리구나! 한숨 자고 와도 피할 수 있겠군!”
크하하하! 하고 실컷 도발해 대며, 트리스탄은 알렉사를 보호하는 [암벽]의 한 지점을 향해 집중적으로 공격을 쏟아냈다.
바람 마법 [풍검], [질풍엄니]. 바람 마력을 머금은 주먹과 발차기. 알렉사의 [암벽]이 손상되자마자 빠르게 수복돼도, 트리스탄은 멈추지 않고 공격을 쏟아부었다.
다리뼈가 부러졌다. 입에서 피가 쏟아졌다. 신체 과부하가 지나쳤다. 그러나 트리스탄은 멈추지 않고 알렉사와 격렬한 공방전을 펼쳤다.
빠르게, 더 빠르게.
트리스탄의 연격이 점차 속도를 높여간다.
“날파리 새끼…! 날파리 새끼가아…!”
바위 속, 알렉사는 격한 짜증을 느껴 한 손으로 짙은 갈색 머리칼을 쥐어 잡고 파들파들 몸을 떨었다.
그때.
콰가강──!
“…뭐?!”
[암벽]의 일부가 뚫리고, 그 틈을 격렬한 바람이 파고들었다.
알렉사는 믿을 수 없었다. 트리스탄의 재빠른 연격이 알렉사의 수복 속도를 뛰어넘어, 그녀의 방어를 뚫은 것이었다.
트리스탄의 손이 [암벽]의 부서진 틈새에 들어가 알렉사의 멱살을 잡았고.
당황한 나머지 알렉사의 마력이 흐트러진 틈에, 트리스탄은 늑대의 엄니처럼 날카로운 바람 연격 [질풍엄니]로 [암벽]을 박살 냈다.
콰가가강────!!
“크하하하!!”
곧바로 트리스탄은 손에 뭉쳐 두었던 바람 마력을 터뜨리려 했다.
코와 입에서 피를 쏟으며 깔깔 웃고 있는 미친 사내가 알렉사의 눈에 비쳤다.
엄청난 혐오감이 일었다. 알렉사의 표정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잡았…!”
쿠우우웅───!
알렉사의 마법이 더 빨랐다. 미리 준비해 놓은 [암석 붕괴]가 지면에서 솟아올라 트리스탄을 덮치고, 그의 몸을 천장까지 밀어냈다.
콰앙! 하는 무언가가 터지는 듯한 충격음이 울렸다.
쿠웅!
바위 기둥이 자비없이 천장에 꽂혔다.
그러나 트리스탄이 머금은 회오리는 엄청난 속도로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도중에 도망친 것이 분명했다.
“크하하하!! 제법이구나!!”
미친 새끼.
그 말밖에 나오지 않는 놈이었다.
[암석 붕괴]에 당해 뼈가 으스러졌음에도, 피를 펑펑 쏟아 내고 있음에도, 트리스탄은 흥분에 잠긴 채 더욱 미친 듯이 웃어 댈 뿐이었다.
왜일까. 점점 저 사내의 웃음소리가 소름 끼치게 느껴진다.
자신보다 약한 게 분명한데도.
“…으!”
쿵, 쿵!
알렉사는 다시 [암벽]으로 자신을 감싼 뒤, 바위기둥을 뻗어 모든 통로를 막아 냈다.
이내, 천장에 연갈빛 바위 마법진이 넓게 전개되었다. 살벌한 마력. 트리스탄은 전신에 소름이 돋는 감각을 느꼈다.
궤적을 그려나가는 건, 6성급 마법 [황석 소나기]의 마법진이었다.
“1학년 주제에 벌써 6성급 마법이라니….”
트리스탄의 입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도가 지나칠 만큼 어이가 없는 광경이었다.
1학년생이면 5성급 마법을 써도 대단하다고 추켜세워지는 판이거늘.
벌써 6성급 마법까지 쓴다는 건 루체 엘타니아 급에 필적하는 수준.
통로로 들어가 저 공격을 피해야 할 텐데, 이미 알렉사의 바위가 모든 통로를 막아 버린 상황.
심지어 밑으로 숨을 수 있을 만한 바위기둥들은 알렉사가 전부 없애 버렸다. 연갈빛 마력의 가루가 공기 중에 흩날리며 허무하게 사라져간다.
트리스탄의 두 눈은 천장에 새겨진 6성급 마법진의 위용을 담아냈다.
무시무시한 마력이 쏟아지고 있었다.
너는 특별하다.
고작 그 한 마디에 트리스탄 험프레이의 삶은 극적으로 궤도를 틀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진심으로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차피 그가 험프레이 가문의 차기 가주였기에, 칭찬 하나 입에 담기 힘들어했던 아버지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그리 말했던 것에 불과했고.
트리스탄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오히려 ‘너는 특별하다’라는 그 한 마디조차 그다지 좋은 의미가 아니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말만으로 좋았다. 트리스탄의 인생을 바꾸기엔, 고작 그 한 마디면 충분했던 것이다.
그리고 좋은 환경에서 단련을 거듭할 수록, 자신이 그저 유복하고 권력 있는 가문에 태어난 운 좋은 인간이었을 뿐임을 트리스탄은 절절하게 실감해 왔다.
그렇기에 험프레이 가문에 감사하며 죽을힘을 다해 특별해지기로 했다.
굳이 자신이 우월하다고, 특별하다고, 위대한 인간이라고 떠들어댔던 것도 그런 연유였다.
설령 허영심에 불과하다고 해도.
특별함을 만드는 건 자신이라고, 그는 여겨 왔던 것이다.
메르헨 아카데미에서 특히나 아이작이 트리스탄의 눈에 들었던 건 그런 이유가 컸다.
최대 마력량 E급. 어릴 적부터 마법에 제대로 된 노력조차 쏟아오지 않은 것이 분명한 형편없는 수치. 가난한 평민. 턱없이 낮은 신분.
단지 그 뿐이었던 놈이 전투에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었고, 단련에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이제는 자신 앞에 서서 많은 학생의 존경을 두루 받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작이 싫었다.
그놈은, 트리스탄 자신이 믿어온 걸 곧이곧대로 실현하고 있었으니까.
휘이이이이익───!!!
트리스탄의 바람 마력이 격렬한 회오리를 일으켰다.
최대 출력으로 4성급 방어 마법, [풍벽]을 전개한다.
이 아카데미에서 가장 위대하고 특별한 마법사가 될 자는 자신이다.
아이작 같은 놈한테 지고 싶지 않았다. 애당초 훨씬 좋은 조건에서 태어난 건 자신이지 않은가.
자신이 앞서는 게 당연했다.
“하!”
아마 저 후배는 천재라고 일컬어져 왔겠지.
천재? 우스운 단어다. 짓밟아주리라.
“와보거라, 꼬맹아!”
곧, 천장에 새겨진 마법진이 빛을 쏟아 냈고.
대량의 황석이 화살처럼 빗발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