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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167화 (167/334)

〈 167화 〉 격분 (2)

* * *

“지금부터 1, 2학년 대련 평가를 시작하겠다.”

마법학부 대련장.

돔 형태의 대련장이 총 4곳 있었고, 스노우화이트는 그중 한 건물 관객석에 앉아 있었다.

“꺄아아악! 교수니임!!”

“하악, 하악!”

“페르난도 교수님, 사랑해요!”

“나 방금 눈 마주쳤어!”

마법학부 1학년 담당이자 은발의 미남, 페르난도 프로스트 교수의 등장으로 대련장은 여학생들의 함성으로 들어찼다.

페르난도 교수는 무심한 반응만 보였다. 그 차가운 태도가 오히려 여학생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정숙하고 설명을 들어라. 지금부터 대련 평가의 룰을 설명하겠다.”

페르난도 교수는 대련장 한가운데 서서 확성기를 든 채 대련 평가의 룰을 설명했다.

저번과 같았다.

대련 시작 후 1분간 항복 금지. 누군가 기절하거나 전투 불능 상태가 되었을 때, 혹은 항복 선언을 했을 때 대련은 즉시 종료.

콰아앙! 화르륵!

심판의 호명에 따라 학생들이 관객석에서 내려가 대련장으로 향하고, 대련을 펼쳤다.

심사관들의 피드백을 듣는 것으로 마무리. 참고로 피드백은 대련을 벌인 학생들 의사에 따라 나중에 심사평 형식으로 받을 수도 있었다.

화이트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부터 몸의 떨림이 멎지 않았다. 이토록 긴장된 적은 오랜만이었다.

저도 모르게 다른 관객석에 앉아 있는 청은발의 선배, 아이작을 쳐다보았다. 그는 잔야의 지팡이를 어깨에 걸친 채 대련장을 바라보던 중, 화이트의 시선을 알아채고 눈을 마주쳤다.

웃는 얼굴로 가볍게 손을 흔드는 아이작. 입 모양으로 ‘잘할 수 있어’라고 하는 듯했다.

화이트는 그 모습에 웃음이 튀어나와 긴장감을 줄일 수 있었다. 역시 아카데미 사람들 중에선 아이작 선배가 가장 편하고 좋았다.

이윽고.

“1학년 D 클래스, 스노우화이트 폰 카이로스 에펠토. 1학년 A 클래스, 미야. 앞으로!”

심판의 호명.

학생들의 이목이 단숨에 쏠렸다. 그야말로 극과 극. 꼴찌 대 수석의 대련이었으니.

단순히 그뿐이라면 꼴찌가 바보 같다며 모두 무시했을 터이나, 하필 그 사람이 제르베르 황국의 황녀라는 점이 모두의 흥미를 끌었다.

‘때가 됐다….’

화이트는 다시 아이작을 쳐다보았다.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여주었고, 화이트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순백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새하얀 황녀, 스노우화이트와.

흑진주빛 머리칼을 곱게 늘어뜨린 무녀, 미야는 관객석에서 내려가 대련장으로 향했다.

학생들은 수군거렸다.

이 정도로 실력 차이가 많이 나면 양쪽 모두에게 좋지 않을 텐데.

꼴찌는 압도적인 전력 차로 패배할 게 뻔하고, 수석은 이겨 봤자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할 터였다.

그러나 미야와 제대로 승부할 수만 있다면, 화이트는 어찌 됐든 상관없었다.

대련장 위.

화이트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미야는 여유만만한 태도를 보였다.

“수단은 무제한. 1분 동안은 항복 금지. 한쪽이 기절하거나 전투 불능 상태가 되면 대련은 즉시 종료다. 서로 상대에게 예를 갖추고 대련에 임하도록.”

심판의 간단한 설명에 화이트는 “네!”하고 대답했고, 미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심사관들은 숨을 죽이고 대련장을 지켜보았다. 제르베르 황국의 황녀와 동방국의 무녀. 두 여학생은 존재 자체로 아카데미에 큰 소란을 일으키는 장본인들이니까.

“그럼, 준비! ···대련 시작!”

심판은 팔을 번쩍 들며 대련 개시를 선언하더니 뒤로 빠졌고.

승부의 결과가 뻔한 대련이 시작되었다.

미야는 팔짱을 낀 채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마법진을 전개해 전투 태세를 갖출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저 미소만 머금을 뿐.

반면에 화이트는 연녹빛 마법진을 허공에 전개하며 언제든지 마법을 사용할 준비를 마쳤다.

“미야 씨, 대련 받아줘서 고마워요.”

화이트는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갑니다…!”

이제, 매일 죽어라 쌓아온 성과를 내보일 때였다.

굳이 미야와 친구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녀와 친분 관계를 쌓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화이트는 이번 대련에서 전력을 쏟아부을 셈이었다.

화이트는 미야를 향해 오른팔을 뻗었다. 바람 속성 마법진이 빛을 발한다.

스멀스멀 흐르던 바람에 연녹빛 마력이 더해지고, 그 기세가 거세졌다.

쏘아낸다.

휘우우우우우!!

마법진이 회오리바람을 토해냈다.

4성급 바람 원소 마법, [돌개바람]. 아직 미숙한 수준이나마 사용할 수 있었다.

이미 열심히 숙달시킨 3성급 마법, [풍검]보다 위력은 약한 편이긴 하나.

화이트의 마법 중 가장 공격 범위가 넓다는 이점이 있었다.

연녹빛 회오리바람이 거칠게 대련장을 가로지르며 미야를 뒤덮었다. 관객석 쪽에는 투명한 보호막이 전개되어 있어 화이트 마법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내.

화르르륵!!

붉은 화염이 바람을 휘감아 소용돌이쳤다.

압도적인 마력량. 중력이 몇 배로 늘어난 것처럼, 무거운 무언가에 전신이 짓눌리는 기분. 화이트의 얼굴에 공포가 번져 나갔다.

곧 강렬한 화염이 화이트의 바람을 먹어 치우고 기둥의 형태로 솟구쳤다.

4성급 화염 원소 마법, [불기둥].

나선형으로 치솟는 화염의 기둥 속, 여전히 미소 짓고 있는 미야의 얼굴이 보였다.

미야는 접힌 검은 부채를 가볍게 휘저어 화염을 머금은 회오리바람을 날려 보냈다.

“……!!”

휘우─. 화르르르륵!!!

재차 [돌개바람]으로 반격해 보지만, 화이트의 원소 마법은 미야의 화염에 가볍게 잡아 먹혔다.

피할 곳 없이 퍼부어지는 화염을 바라보며 화이트는 패배를 직감했다.

실력 차이란 그토록 무자비하고 냉혹한 현실이었다. 화이트로선 어쩔 겨를도 없이 짓밟힐 수밖에 없는.

게다가 화이트는 아직 4성급 마법, [풍벽]을 사용할 줄 몰랐다. 그렇기에 그저 피부에 씌워둔 [기초 보호 마법]에 집중하며 양팔로 얼굴을 가릴 뿐이었다.

그때였다.

화르륵!

화염은 화이트를 덮치지 않고 그녀의 코앞에서 갈라졌고.

사방으로 퍼져나가 드높은 화염의 벽을 만들어냈다.

일부러 심판과 관객들로부터 시야를 가리려는 목적처럼 말이다.

질식 당할 것 같은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화염으로 일구어낸 공간 속.

오로지 화이트와 미야만이 그곳에 남겨졌다.

화염 원소를 손발처럼 다루는 원소 운용력에 감탄이 나오는 건 뒷전이었다.

미야가 다가온다.

화이트는 본능적인 공포 탓에 몸을 덜덜 떨면서도, 애써 긴장감을 꽉 부여잡고 전투 태세를 유지했다. 반면에 미야의 얼굴엔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가 만연했다.

화이트 앞에서 멈춰 선 미야.

그리고, 미야는 웃는 얼굴로 입술을 달싹였다.

화염이 이글거리는 소리에 뒤섞여 조곤조곤, 미야의 목소리는 화이트가 절대로 듣고 싶지 않았던 말만을 골라냈고.

서서히 화이트의 얼굴에 그늘이 져갔다.

열기 탓에 호흡이 곤란해진 것도, 압도적인 무력차에 공포심을 느꼈던 것도, 이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고작 몇 마디에 그 순수하고도 선했던 화이트의 속에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았다.

“…뭐라고 했어?”

화이트는 존대를 포기했다.

그녀의 살벌한 목소리에도 미야는 더욱 능청맞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왜 그렇게 얼굴이 굳었어? 내가 틀린 말한 것도 아니잖아.”

“…….”

“다시 듣고 싶으면 또 해 줄 수 있는데.”

미야는 손가락을 가볍게 휘저었다.

“하늘나라 가신 네 엄마랑, 그 엄마한테 몇 번이고 암살당할 뻔했던 나약하고도 한심한 딸의 이야기. 황녀라는 애가 그런 일을 겪고도, 아직도 그렇게 약하면 어떡해?”

화아아아아!!

가슴속을 옥죄어 오는 분노가 화이트의 두뇌 회전을 팽배하게 만든다.

단숨에 마법진 전개식을 계산해 3개의 마법진을 구축하는 화이트. 마법진 1개 전개하기에도 급급했던 그녀로선 비약적인 발전이었다.

지나치게 끓어오르는 분노는 가끔 사람을 차분하게 만들 때가 있다. 지금의 화이트가 그러했다.

친구, 평화.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당장은, 저 검은 머리 무녀한테 제대로 된 공격을 먹여주지 않으면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았으니까.

화르르르.

화염의 벽이 걷혀가며 다시 대련장의 모습이 훤히 드러났다.

심판, 심사관들, 관객석에 앉아 있던 학생들은 모두 당황한 얼굴로 대련장을 지켜보았다.

화이트의 입에선 아무런 말도 튀어나오지 않았다. 그저 화이트는 미야를 향해 공격을 퍼부을 뿐이었다.

마력을 긁어내고, 긁어내며.

휘이익!! 차악!!

바람의 검기, [풍검]과 4성급 회오리바람, [돌개바람]이 한꺼번에 연격으로 들이닥친다. 지금의 화이트가 낼 수 있는 최대의 전력이었다.

그러나 미야가 마법진에서 쏟아낸 화염은 화이트의 전력이 담긴 마법을 가볍게 집어삼켰다.

당연한 결과였다.

미야는 검은 부채를 휘둘렀다.

뛰어난 [원소 효율]은 마법진을 전개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혀준다. 덕분에 미야의 마법진은 화이트 주변에 이리저리 생성되었다.

“……!”

화르르르륵!! 콰아아앙!!

맹공.

마력 밀도가 높은 화염이 화이트를 사정없이 불태웠다.

마치 화형식을 보는 듯했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귀를 찢는 비명이 울려 퍼졌고.

미야는 부채로 입을 가린 채 고통에 찬 화이트의 비명을 감상했다.

화염이 걷히자, 새까맣게 타버린 교복 차림의 화이트가 힘없이 무릎을 꿇었다.

바람 마법으로 머리만큼은 사수했기에 순백의 머리칼은 군데군데만 그을려졌을 뿐이었으나.

몸 상태는 빈말로도 좋지 않았다.

그러나 화이트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정신을 붙들었다. 여전히 기절하지 않고, 무서운 눈빛으로 미야를 노려보면서.

‘별거 아니네.’

미야는 화이트가 어떤 인물인지 궁금했다. 선한 가면을 쓴 음흉한 인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에선 확신에 이른다. 화이트는 그저 하얗고 순수한 인간. 미야가 가장 싫어하는, 힘없고 재미없는 버러지에 불과했다.

흥미가 팍 식어 버린 미야는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화이트를 바라보았다.

“이제 항복할래?”

화이트 앞에서 무릎을 모으고 쪼그려 앉으면서 묻는 미야.

화이트는 숨을 헐떡이면서, 분노에 치를 떨면서, 미야를 노려보았다.

“너 솔직히 재미없거든. 아. 항복 안 할 거면 여기서 나체로 만들어보는 것도 재밌겠다. 교복 완전 엉망이잖아? 한번 여기 있는 사람들한테 네 맨몸을 구경시켜 주는 것도 나쁘지 않…?”

다시 바람 원소 마법, [풍검]이 미야를 덮쳤다.

약했다. 대항할 필요도 없었다. [풍검]은 숙련된 [기초 보호 마법]으로 감싸진 미야의 몸에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이미 화이트의 마력은 방금 전 전력을 다한 연격 탓에 슬슬 밑천을 드러내고 있었으니.

그 탓에 [풍검] 조차도 평소의 위력을 온전히 낼 수 없었다.

“그렇게 화나? 내가 싫어졌어?”

“…….”

“아…, 머리카락.”

미야는 대련장 바닥에 떨어진 검은 머리카락 몇 올을 내려다보곤 툭 내뱉듯 독백했다. 이제 깨달았다는 듯.

그 직후였다.

미야의 오른손이 화이트의 머리채를 쥐어잡고, 왼손이 그녀의 복부를 짚었다.

콰가강!!

“으헉!!”

복부에 맞닿은 미야의 왼손이 화염 마력을 응축시키고, 폭발시키길 반복했다.

머리채를 쥐어 잡은 탓에 화이트의 몸은 그대로 고정된 채, 미야의 마법을 고스란히 받아내야만 했다.

“이 개 같은 년이…!”

미야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표정에 짜증과 분노가 뒤섞였다.

적당히 화이트가 정신을 붙들 수 있을 만한 선에서, 지속해서 고통을 선사하고자 미야는 위력을 조절해 화이트의 복부를 몇 번이고 폭발시켰다.

“감히, 내 머리카락을…!”

“악, 아악….”

미야의 머리칼은 겉보기에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나, 그녀는 이따위 인간에게 머리카락 몇 가닥이 잘렸다는 사실 자체에 참을 수 없는 화를 느꼈다.

화이트는 비명을 지를 여력조차 없는지, 흐느낌이 뒤섞인 비명을 초라하게 내뱉기만 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았다. 분노와 자존심, 승부욕으로 점철된 의지가 화이트를 물러서지 않게 했다.

그렇기에, 미야는 그 심정을 이용해 연신 고통을 안겨 주었다.

심판은 식은땀을 흘렸다. 화이트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으려 하고 있고, 두 사람의 싸움에 개입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어서 화이트가 항복해 주길 바랄 뿐이었다.

“황국을 위해서, 나한테 이것저것 하려고 했지?”

“끄으…!”

콰앙!

“어차피 너 따위는 아무것도 못 할 텐데.”

“아악….”

콰앙!

“이렇게 약하면서, 왜 그렇게 자만한 거야? 스노우화이트?”

“아아, 악….”

콰앙!

대련장에는 오로지 미야의 화염 마력이 폭발을 일으키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미야의 말소리는 관객석까지 닿지 않았으나, 학생들은 충격에 빠진 얼굴로 수군댔다.

“아무리 대련이라지만,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저건 그냥… 괴롭히는 거잖아. 대련이 아니라.”

“아니, 그래도 끝까지 가 봐야 알 것 같은데.”

“멍청아, 저게 끝난 게 아니고 뭐냐. 황녀 전하께서 기절 안 하려고 겨우 버티고 있는 게 다인데.”

“으….”

이미 대련은 끝났다고 봐야 했다.

설령 권한 남용이라고 하더라도, 심판은 학생의 안전을 위해 일단 대련을 중지시켜야 할지 고민했다.

화이트의 충혈된 눈이 서서히 뒤집혀갔다. 몸이, 어서 이 고통에서 해방되라고 아우성치는 듯했다.

하지만 화이트는 포기할 수 없었고.

툭.

화이트의 주먹이 힘없이 들려 미야의 뺨을 건드렸다.

그 순간, 고요가 오갔다.

“오호….”

미야의 이마에서, 핏줄이 더욱 사납게 돋아났다.

그녀는 너덜너덜해진 화이트의 복부에서 손을 떼고 목을 콱 붙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끅…!”

화이트는 숨을 쉴 수 없었다. 괴로웠다.

미야의 손에서 화염 마력이 피어오른다.

‘항복’이라고 한 마디만 내뱉으면 될 뿐임에도, 화이트는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화가 나서 견딜 수 없는데, 미야에게 무력하게 당하기만 하니 분해서 미칠 것 같았으니까.

“그래, 여기서 끝내자.”

냉소적인 미야의 목소리.

저건 위험하다. 아무리 대련이 끝나고 치유 마법을 받을 수 있다고 해도, 도가 지나친 부상은 자칫 학생의 목숨을 위협할 수도 있었다.

“미야 학생, 이제 그…!”

그렇게 ‘이제 그만’이라고 심판이 다급히 소리치려 할 때.

화이트와 미야의 바로 옆에서, 순식간에 한 남학생이 나타났다.

그는 화이트의 목을 조이고 있는 미야의 팔을 툭 짚었다.

미야는 눈살을 찌푸린 채 감히 자기 몸에 손을 댄 남학생을 노려보았다.

“그만해.”

냉담한 목소리.

청은발. 2학년을 상징하는 파란색 브로치가 달린 교복 넥타이.

2학년 선배, 아이작이었다.

무표정. 앞머리 탓에 그늘진 눈가. 적색 눈동자가 싸늘한 빛을 뿜어댔다.

갑작스러운 그의 난입 탓에 대련장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안녕, 선배? 왜 우리 대련에 끼어들고 지랄이야?”

미야는 싱긋 미소를 지은 채 상냥한 투로 물었다.

아이작은 대답 대신 화이트 쪽으로 턱짓했다. 미야는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화이트의 눈동자가 뒤집혀 있었다. 축 늘어진 몸. 눈조차 감지 못하고 정신을 잃어 버렸다.

끔찍한 고통 속에서 끝내 한계에 치달은 것이었다.

“아, 기절했네.”

미야는 피식 웃고는 화이트의 목을 놓아주었다.

털썩, 하고 화이트의 몸이 힘없이 딱딱한 바닥에 늘어졌다.

아이작은 만신창이가 돼 버린 화이트를 내려다보았다.

아주 잠깐의 시간 동안 많은 감정이 그의 가슴속에서 교차했다.

청은발 너머, 그의 적색 눈동자는 마치 서리처럼 식어 있었다. 심연처럼 깊은 곳까지 내려간 분노가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그 감정이 냉기가 되어 대련장에 퍼져 나가고.

짙은 고요 속, 학생들은 아이작의 살기에 압도당해 마른침을 삼켰다.

“미야.”

아이작의 눈동자가 미야를 향했다.

냉철하고도 서늘한 목소리가 대련장에 내려앉았다.

“당장, 나랑 대련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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