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182화 (182/334)

〈 182화 〉 공신제 (3)

* * *

아크볼 레이스가 시작되기 30분 전.

나는 대기실에서 체육복으로 갈아입었다. 마법학부 2학년 B 클래스 일부 학생들끼리 콘셉트를 맞추어 특수제작한 의상이었다.

아크볼 레이스는 팀전이라 서로 복장을 통일할 필요가 있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른 녀석들도 같은 디자인의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채였다.

‘오오.’

체육제라 옷을 통일해서인지 평소보다 더한 소속감이 느껴졌다. 고등학교 축제가 떠올라서 은근히 기분이 들뜨기도 했다.

이제 무릎과 팔꿈치, 머리에 안전 장비까지 착용하면 준비는 끝이었다.

의자에 앉아서 옆에 있는 테이블에 안전 장비를 내려놓았다.

팀원들은 이미 안전 장비까지 모두 착용한 상태였다. 내가 녀석들보다 느린 건 대기실에 늦게 들어온 까닭이었다.

[천리안]으로 클로버 팔라딘이 마법학부 1학년 대기실에 들어가는 모습까지 감시하느라 그랬다. 놈이 화이트에게 무슨 짓을 벌일지 몰라 안심할 수 없었으니까.

“트리스탄 님은 벌써 나가셨네.”

“트리스탄 완전 흥분했더라. 어우, 난 미친 듯이 떨리는데….”

“아이작, 먼저 가 있을게. 준비되면 나와.”

우리의 주인공 이안 페어리테일이 한 말에 나는 담담하게 “알았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팀원들이 출입문을 열고 나가려는 때, 별안간 문이 먼저 열려 다들 멈칫했다.

“어…?”

모두 놀란 듯했다. 쟤네 왜 저러냐?

눈길을 출입문 쪽으로 돌리고서 그 의문의 답을 금방 알아낼 수 있었다.

“학생회장님?”

“학생회장님께서 여긴 어쩐 일로…?”

아니, 뭐?

의외의 손님이 안으로 들어오자 팀원들은 모세의 기적처럼 길을 비켜 주었다.

그러자 자상한 미소를 머금은 미인이 내 눈에 들어왔다. 잠시,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착각이 느껴졌다.

말끔하게 차려 입은 교복. 찰랑이는 연금발.

‘네가 여기 왜 와…?’

학생회장, 앨리스 캐럴이 똑바로 걸어오더니 내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그러더니 무릎을 짚고 상체를 휙 숙여, 앉아 있는 나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팀원들은 나가지 않고 크게 뜬 눈으로 나와 앨리스 쪽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안녕, 애기야.”

“앨리스 선배? 여긴 왜…?”

“그냥. 보고 싶어서 찾아왔단다.”

팀원들은 입을 떡 벌리고 경악하더니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앨리스, 얘는 진짜 앞뒤 분간을 못 하나. 그게 사람들 앞에서 할 소리인가.

이러면 나만 곤란해진다. 저번에 화이트 병문안 때도 그렇고. 분명 놀리려고 이러는 게 분명했다.

타인의 웅성거림 따윈 가볍게 흘러 넘기는 녀석이라서 그런지, 앨리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지 말고 애들 떠드는 것 좀 신경 써줘.

반개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자, 앨리스는 옆 테이블에 놓인 안전 장비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안전 장비 차는 중이었니?”

“예….”

“으음.”

앨리스는 벚꽃 색감의 눈동자로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잠깐 가만히 있어 볼래?”

“예?”

앨리스는 내 옆에 놓인 안전 장비를 가져가고는 내 팔꿈치에 채워주었다.

뭐하는 거야?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애기 챙겨주고 있어.”

“아니, 그건 제가 눈이 있어서 알겠는데요….”

“눈 있어서 다행이네.”

앨리스는 내게 상냥한 미소를 건넸다.

‘…힐드, 얘 지금 나한테 장치 같은 거 숨겨두는 것 같아?’

[딱히 그런 건 아닌 것 같구나.]

옷깃 속에 작은 빛 형태로 숨어 있는 빙설룡-힐드가 머릿속에서 대답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앨리스는 그저 내 몸에 안전 장비를 채워주고 있을 뿐인 듯했다.

전교생에게 존경받는 학생회장이 내게만 이리도 정성을 퍼부어주니, 팀원들은 나갈 생각을 못 하고 여전히 놀란 얼굴로 날 지켜보고만 있었다.

너넨 언제 나가려는 건데.

“선배, 학생회장이 이래도 돼요?”

“내가 관중이라는 사실을 잊었나 보구나? 난 애기 편인걸. 관중인데 편파적으로 응원해도 상관없잖니?”

대놓고 편파적이란 표현을 쓰네. 너도 입장이란 게 있을 텐데.

그런 건 얘가 알아서 할 문제이니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그래서, 저 응원하러 오신 거예요?”

“응.”

“왜요?”

“난 애기가 마음에 드니까.”

앨리스는 양 무릎을 모아 쪼그려 앉고서 내 무릎에 안전 장비를 채워주었다.

딸깍, 거리는 소리가 울리며 안전 장비가 단단히 내 신체 부위에 고정되었다.

마지막으로 앨리스는 양손으로 안전모를 들고 내 머리에 씌워주더니 뿌듯한 미소를 흘렸다.

“됐다~. 히, 귀여워.”

내 안전모를 쓰다듬는 앨리스.

적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반응이었다.

“그럼 애기야, 다치지 말고 잘하고 오렴. 응원하고 있을게.”

“아, 네…. 감사합니다.”

경계심을 감추고 형식적인 미소로 화답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앨리스를 지나쳐 출입문으로 향했다. 팀원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가자.”

“으응….”

어리벙벙해진 팀원들과 함께 출입문을 나섰다. 녀석들은 나와 앨리스를 번갈아 곁눈질하며 우리 사이를 짐작하고자 쓸데없이 머리를 굴렸다.

고개를 뒤로 돌리면 나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있는 앨리스가 보였다.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가 그녀의 만면에 흐르고 있었다.

의미심장하네. 우리가 나간 뒤 대기실에 이상한 장치라도 설치하려는 걸까.

괴묘-체셔가 있는 한 [천리안]으로 앨리스를 감시할 순 없다.

그러니 아크볼 레이스가 끝난 뒤, 대기실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천리안]으로 안쪽을 점검해 보자.

‘그건 당연히 해야 할 거고.’

…앨리스가 생각 없이 대기실에 무슨 짓을 벌여 놓진 않겠지. 위험한 일이 생기면 용의자로 특정될 위험이 있으니까.

나는 앨리스에게 고개만 까딱 숙여 인사하고서 팀원들과 함께 복도를 가로질렀다.

복도를 지나는 동안 학생회장과 무슨 사이냐, 설마 사귀는 사이냐, 루체는 어쩌게, 따위의 온갖 질문 세례를 받았지만 대충 얼버무렸다.

……

대낮의 맑은 하늘 아래, 야외 경기장.

학부 구분 없이 많은 학생이 출발선 앞에 섰다. 마치 마라톤 경기 직전을 보는 듯했다.

주위로는 사각형의 넓은 관중석이 경기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어느 쪽을 바라보든 바깥쪽 아크볼 레이스의 경로를 모두 확인할 수 있는 구조였다.

레이스 참가자는 각자 학년별 콘셉트에 맞춘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채였다. 그걸로 같은 팀을 알아볼 수 있었다. 아까부터 느끼건대, 신축성이 좋고 움직이기 편했다.

그나저나, 어째선지 마법학부 1학년 D 클래스 참가자들은 공신제 준비 기간에 보았던 드릴 머리를 하고 나왔다. 물론 신경쓰기 싫어서 무시했다.

‘좋아.’

간단히 몸을 풀었다. 컨디션은 괜찮네.

공신제 첫날, 아크볼 레이스 첫 경기.

다행히 지금까지 화이트에게 별일은 없었다. 이제부터가 본 게임이지만.

클로버 팔라딘은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칫, 하고 몰래 혀를 차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다 금세 표정을 갈무리하고는, 자길 쳐다보며 ‘꺄악’거리는 관중석 여학생 무리에게 상큼한 알파메일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럴 때마다 여학생들의 목소리 데시벨이 높아졌다. 어마어마한 함성이군.

이내, 다시 짜증스럽게 표정을 굳히는 클로버 팔라딘.

참가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본 뒤로 쭉 저런 반응이었다. 화이트가 호되게 당하는 모습을 내가 무력하게 지켜보도록 만들겠다는 계획이 틀어진 까닭이었다.

다만, 그 계획을 완전히 뒤엎은 건 아니었다. 녀석은 기어이 화이트를 공격해 나를 화나게 만들 작정이었다.

이제부터가 진검승부인 셈이지.

다른 팀에는 도로시가 보였다. 녀석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기다렸다는 듯 싱긋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댔다.

‘예뻐.’

숨막히도록 껴안아주고 싶네. 도로시의 해맑은 미소를 보니 가슴속에서 기운이 펄떡 솟아나는 듯했다.

다른 한편에선 화이트가 설렘과 긴장감이 만연한 얼굴로 덜덜 떨고 있었다. 잘하길 빈다, 화이트.

그 외에도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내 동기 중 A 클래스에선 리제타 라이온하트가 나섰다. 사람들이랑 맞부딪힐 생각에 꽤 흥분한 기색이 보이고 있었다.

그러다 녀석은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식겁한 얼굴로 고개를 휙 돌려 버렸다.

지금도 내가 무섭냐…. 리제타와 허울없이 지내고 싶어도 날 볼 때마다 저리 반응해 대니 섭섭할 노릇이었다.

“하!”

우리 팀원 중 허영심 많은 금발 귀족, 트리스탄 험프레이가 호기롭게 실소를 내뱉었다.

“이 열기! 이 함성! 가히 이 몸에게 어울리는 완벽한 무대로다! 크하…!”

빠바밤, 하고 악단이 연주를 시작했다. 그러자 트리스탄은 깜짝 놀라 크하하어억, 하고 헛숨을 삼키더니 콜록콜록 헛기침했다.

“자아, 드디어!! 여러분께서 고대하시던 그 순서가 왔습니다!!”

진행자의 발랄한 목소리가 아카데미에 울려 퍼졌다. 머리에 검은 토끼 귀 리본을 단 하얀 단발머리 여학생이자 이안의 연인, 에이미 할로웨이였다.

녀석도 진행자로서 예쁜 옷과 화장으로 한껏 치장하고 온 듯했다.

경기장 위쪽 진행석에 선 채로, 그녀는 확성기를 들고 악단의 연주를 배경음 삼아 활기차게 소리쳤다.

“참가자 전원 집합 확인! 아크볼 레이스 준비가 모두 끝났다고 합니다아악!!”

관중석에 있는 학생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지르고.

악단의 연주곡이 신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에이미 텐션 높네….’

보기 좋아.

우리 팀인 이안 페어리테일도 자기 연인의 모습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흘렸다.

“아크볼 레이스를 시작하기에 앞서, 간단히 규칙을 설명 드리죠! 경기는 제블렘 5일 중 하루씩 건너뛰어 총 3일간 진행! 선착순으로 우수한 팀을 정해 다음 경기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2일에 한번씩 치러지며, 토너먼트 룰이란 얘기였다.

“그럼~, 모두 고개를 들고 하늘을 봐주세요!”

에이미가 오른팔을 번쩍 들고 하늘을 가리키자 참가자와 관객 모두 고개를 들었다.

나도 고개를 뒤로 젖혀 하늘을 쳐다보았다.

경기장 위, 허공에서 수많은 마나 알갱이가 염동력으로 잘그락잘그락, 거리며 이리저리 움직였다. 헤겔 마탑주, 아리아 릴리아스의 섬세한 마법이었다.

1학년 1학기 학기말 평가 때와 같은 식이었다. 그 어마어마한 마력 운용력은 역시나 감탄스러운 수준이었다.

마나 알갱이는 이 주위를 본뜬 지도 형태를 띠었다. 아크볼 레이스의 경로와 목적지가 선명한 빛깔을 발했다.

“경주로는 메르헨 아카데미 외곽까지 이어져 있으며, 오늘의 목적지는 바르토스관입니다! 아크볼을 가지고 먼저 목적지에 도달한 여섯 팀은 다음 경기를 치르게 될 거예요! 나머지는, 아쉽지만 모조리 탈락! 마지막 날, 1등부터 3등까지의 등수를 차지한 팀에겐 개막식 때 알려드렸던 아주아주 좋은 경품이 주어지니 모두 힘내주세요오!!”

참가자 모두 “우오오오!”하고 팔을 번쩍 들며 소리쳤다. 나도 따라했다.

“마지막으로 우리 여학생들의 우상! 냉철한 꽃미남 스승, 페르난도 프로스트 교수님의 소감을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에이미가 교직원석에 모여 있는 교수들 중 은발의 미남 교수, 페르난도 프로스트를 가리키자 여학생들이 목청이 터져라 함성을 내질렀다. 거의 포효에 가까운 소리였다.

페르난도는 으흠, 하고 목을 가다듬고서.

확성기를 들고 무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마법학부 1학년 D 클래스, 탈락하면 전원 각오하도록. 과제를 배로 얹어줄 테니.”

“이럴 수가아!! 설마 했던 공포스러운 발언!! 하지만 제 후배님들께 확실한 동기 부여가 될 것 같네요! 좋습니다!!”

경악한 마법학부 1학년 D 클래스 후배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전교생은 깔깔 웃어댔다.

“자아! 그러엄~!”

에이미는 활짝 웃으며 한쪽 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지금부터 제블렘의 꽃, 최대 규모의 경기! 아크볼 레이스를 시작하겠습니다!!”

퍼엉! 하고 화염 마력으로 이루어진 불꽃이 상공에서 터져 나가며 화려한 형상을 새겨 나갔다.

연주곡이 웅장하고도 경쾌한 선율을 흘려내고.

학생들은 갈채를 보내며 각자 자기 팀을 응원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였다.

이윽고.

“참가자 전원, 준비!!”

에이미가 오른팔을 위로 번쩍 들자 출발선 양 끝에 서 있는 학생들이 큰 깃발을 앞으로 쭉 뻗었다. 동시에 전교생의 함성이 잦아들었다.

묵직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나는 상체를 살짝 숙이고 무릎을 짚어 달릴 준비를 마쳤다.

아크볼 레이스에서 내가 목표로 삼은 건 많다. 화이트 지키기, 클로버 팔라딘에게 한 방 먹이기, 좋은 경품 얻기 등. 그리고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경험치도 얻고 싶었다.

클로버 팔라딘, 피에르 플랑체를 곁눈질했다. 녀석은 자기 타겟인 스노우화이트에게 눈길을 주고 있었다. 저러니까 꼭 변태 같네.

저놈이 얼마나 어리석은 계획을 품었는지 내가 이 기회에 똑똑히 알려줄 셈이었다.

곧, 에이미는 팔을 확 내리며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경주, 시작!!”

깃발이 번쩍 들어 올려지고.

수많은 학생의 응원과 함성 속에서, 나는 다른 참가자들과 일제히 출발선을 넘어 앞으로 달려 나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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