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193화 (193/334)

〈 193화 〉 홍련의 무녀 (6)

* * *

[이제 그만하자꾸나. 많이 다쳤느니라.]

“씨발…, 네가 뭔데 나한테 명령질이야?”

미야의 두 눈은 핏물 탓에 붉게 물들어 있었다.

두 눈을 부라리며 구미호를 노려본 미야는, 한번 코웃음 치더니 원망의 화살을 그 마수에게로 돌려 버렸다.

“아아, 그래. 너 때문이야. 쓸모없는 여우 새끼. 주인 하나 못 지키고 매번 이 꼴을 만들어? 네가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뭐야? 내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넌 뭐 했냐고?!”

[…….]

“도움 좀 될까 싶어서 계약했더니, 너도 쓸모없는 버러지 새끼에 불과했어. 흐윽…! 씨발…, 씨발!!”

신밀의 에르메토나에게 힘을 빼앗길 때, 구미호는 의식을 잃고 그 마족의 지배를 받아야만 했다.

마치 잠이라도 자고 온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나 만신창이가 돼 버린 미야의 모습을 보고 앞뒤 정황을 짐작하기란 별로 어렵지 않았다.

불길 속에서 미야는 계속 피 눈물을 쏟으며 반복해서 욕설을 내뱉었다.

구미호-마에는 망가져가는 제 주인을 가만히 바라보며, 죽음의 숲에서 나누었던 어린 미야와의 대화를 곱씹었다.

─ ‘뭐 하냐니? 네 검지에 꽃반지 끼우고 있잖아. …아, 마에. 근데 이거 검지 맞지? 응? 손 아니야? 전부 발이야? 으익?’ ─ ‘됐다~. 미야표 꽃반지야. 이걸로 우린 친구가 됐습니다!’ ─ ‘응? 인간이랑 마수가 무슨 친구…? 그런 걸 뭐 하러 따져? 친구면 친군 거지.’ ─ ‘난 정말 좋은 걸. 이렇게 예쁜 마수랑 친구 할 수 있어서.’

“뭘 꼬라 봐, 씨발아? 당장 안 돌아가?”

그토록 사랑스러웠던 아이다.

구미호는 과거의 기억과 미야를 겹쳐 보며, 아련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미안하구나. 사역마로서 의무를 다하지 못한 내 무능함을 질책해 다오. 나중에라도 벌은 충분히 받겠다. 그래도, 그렇다고 해도, 지금은 네 곁에 있도록 허락해주지 않겠느냐?]

“뭐?”

[너는 내 유일한 친구니라. 너는 날 구해주었다. 그 조용한 숲 속에서, 혼자 외로움에 사무쳐 가던 나를 밝은 세상으로 이끌어 주었느니라.]

구미호는 애잔한 미소를 흘렸다.

[미야, 너는 나의 빛이다. 너를 사랑한다. 그러니… 그 슬픔을 함께할 기회를 다오.]

“…푸흐!”

이윽고, 미야는 우습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구미호로선 미처 예상치 못했던 반응이었다.

“친구? 밝은 세상으로 이끌어 줘?”

미야는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몸 상태가 엉망인데도 고양감이 치솟으며 그녀의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속내를 메운 듯한 새까만 악의와 극도의 흥분감이 그녀를 종용했다.

당장 제 심기에 거슬리는 것들을 상처 입히라고.

“별 지랄을 다 떠네.”

[미야…?]

호송용 마차 위에 앉아있던 아이작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벌써 숨겨 왔던 진실을 드러내려는 걸까.

미야는 어그러진 미소를 흘렸다. 흉측하게 부풀어 오른 데다 피까지 잔뜩 머금었기에, 평소의 미모와는 거리가 먼 얼굴.

빙빙 돌아가는 머리로 그녀는 생각했다.

부정할 것도 없이, 구미호하고는 어느 누구보다도 불공평한 사역마 계약을 맺은 상태였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든지 간에 구미호는 미야와의 계약을 마음대로 해지할 수 없고, 주인의 명령은 강한 강제성을 띤다.

게다가 화봉국의 무녀라는 지위도 변할 일이 없다. 이미 자신은 그 지위를 견고하게 다졌으니까.

마음에 상처를 입는 건 제 주인도 지킬 줄 모르는 무능력한 사역마, 구미호뿐.

언제 구미호에게 진실을 밝힐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무너질 구미호를 상상하며 내내 기대감에 잠겨 왔던 미야다.

결국, 구미호는 절망과 후회 속에서 미야를 쭉 따를 것이었다. 썩 괜찮은 유희이지 않겠는가.

격한 분노와 흥분이, 앨리스가 흘려 냈던 ‘악의’가 미야를 잠식했다.

“잠깐 귀 좀 내밀어 봐.”

구미호-마에는 몸을 숙여 미야에게 머리를 가까이 갖다 대었다.

미야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진실을 토해냈다.

“그거…, 나 아니야.”

목숨을 걸고 구미호-마에에게 온정을 베풀었던 어린 꼬마 아이.

아이작이 1회차에서 지키고자 했지만 끝내 지키지 못했던 ‘진정한 무녀’.

“내 빌어먹을 동생이었다고.”

쌍둥이 여동생.

진짜 미야였다.

[…무슨 소릴?]

구미호는 잠시 사고가 정지한 듯했다.

[무슨 소릴, 하는 것이냐?]

눈앞에 있는 흑발의 소녀는 아무리 봐도 자신을 구해주었던 그녀가 맞았다.

비범한 마력까지 갖추었으니, 의심의 여지 없이 제 주인이 그녀라고 철석같이 믿어온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구미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다…, 넌 미야이지 않느냐? 그런 식으로 자기 자신을 부정할 필요는….]

“난 내 동생이 쌓아온 모든 걸 빼앗았어. 너도 마찬가지야. 넌 내 소유물에 불과하다고.”

미야는.

아니, 미야의 언니는 말했다.

“그러게, 왜 그딴 병신 같은 사역마 계약을 넙죽 받고 그랬어? 이, 멍청한, 새끼야. 끄흐흐.”

[미야…?]

“이제 입 싹 다물어라. 명령이야.”

충격에 빠진 얼굴로 구미호는 몸을 일으켰다.

살짝 벌려진 입, 허공을 방황하는 눈동자.

불길 속에서 미야의 언니와 구미호가 나눈 대화 소리는 아무도 듣지 못했다.

다만, 그들을 지켜보았던 사람들은 구미호에게 정신적 충격을 안겨줄 이야기가 오갔다는 사실 만큼은 확실히 짐작할 수 있었다.

문득 구미호의 머릿속에 어린 미야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 ‘언니가 있어. 메이 언니. 말도 잘하고 엄청 멋있어. 난 나중에 언니처럼 되고 싶어.’

미야의 언니. 이름은 메이.

사역마 계약을 맺은 뒤로 미야로부터 메이가 실종되었다고 전해 들었다.

실제로 실종되었던 쪽은… 미야였단 말인가.

“크흐흐. 한심한 여우 새끼. 주인 하나 지킬 줄 모르는 무능한….”

차라락!

쿠웅!

“……?”

냉기와 얼음 덩이가 대련장 일부를 감싼 불길을 꺼뜨리고.

청은발의 남학생이 미야의 언니, 메이 앞에 우뚝 섰다. 아이작이었다.

이미 한계에 달해 버린 그녀의 화염을 치워내기란 간단한 일이었다.

보기만 해도 가슴속이 차가워질 듯한 냉소적인 적안이 메이를 노려보았다.

“씨발, 선배애? 뭐 하러 왔어? 또 오지랖 부리려는…?”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드냐?”

아이작은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더니 메이의 왼쪽 손목을 붙잡고 들어 올렸다.

격통이 일자 그녀는 끄윽, 하고 신음하더니 혐오감 어린 표정을 지었다.

“이 버러지 새끼가, 감히 누구 몸에 손을…! …어?”

메이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상했다.

8성급 이상의 마수와 사역마 계약을 맺으려면 특수한 계약진이 필요하다.

아이작이 과자집 마녀로부터 받았던 8성급 사역마 계약진이 그것이었다.

그는 메이가 구미호의 힘을 사용했을 때, 그녀의 손목에서 계약진이 활성화되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래서 그녀의 손목을 붙잡아 의문점을 상기시킨 것이었다.

“너 딱 봐도 마력 바닥났잖아. 근데 어떻게 구미호가 완전한 상태로 여기 있다고 생각하냐?”

악신이 일깨우는 마족은 모두 위험한 권능을 타고 난다.

여태 마족이 나타나자마자 아이작이 곧바로 처리해 왔기에 두드러지지 않았을 뿐.

당장에 사역의 베라나 무상의 엘페르트를 떠올려본다.

전자는 이미 계약된 사역마를 제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권능을 타고 났다.

후자는 마력 무력화라는 권능을 타고 났다.

모두 말도 안 되는 엄청난 능력뿐이었다.

하물며 그들보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신밀의 에르메토나는 어떠하겠는가.

그 마족은 메이의 마력과 구미호를 빼앗았다.

놈의 능력은 완전 탈취.

메이와 구미호와의 계약 자체를 강제로 무효화하는 작업을 선행하고, 그 이후에 구미호의 힘을 제 마음대로 다룰 수 있었던 것이었다.

“아….”

메이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갔다.

느껴졌다. 구미호 계약진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구미호와의 계약이 파기되었다는 증거였다.

그제야 메이는 아까 전부터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구미호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이제는 들지 않았다.

완전히 남남이라도 된 것처럼.

“아, 아아…!”

갖고 싶은 건 어떻게든 가져야만 직성이 풀린다.

제 동생의 모든 걸 빼앗은 것도, 그녀가 가진 것들이 전부 탐났기 때문이었다.

메이의 얼굴이 복잡하게 뒤틀렸다. 처음엔 경악이, 다음엔 억울함이, 그다음엔 슬픔이, 마지막엔 분노가 그녀의 만면을 장식했다.

갖고 싶은 걸 갖지도 못하고, 갖고 있던 것마저 빼앗겼다는 사실이… 그녀에게 끔찍한 상실감을 안겨 주었기에.

마지막으로, 아이작은 메이가 부정하고 싶은 사실을 못 박았다.

“이유는 몰라도 너네, 계약 파기됐다. 네 사역마는 이제 자유야.”

빵 한 조각 얻지 못해 쓰레기통을 뒤졌던 기억이 메이의 머릿속을 메워간다.

망할 부모는 진작 쌍둥이 딸들을 버리고 도망쳐 버렸다.

메이는 제 동생과 단둘이 남겨졌다. 배고픈 일상이, 부유하게 살아가면서도 빵 하나 나눠주지 않고 자신들을 벌레 보듯이 쳐다보고 가던 이기적인 인간들이 메이는 몹시도 원망스러웠다.

모래사장에서 모래를 한 움큼 움켜쥐었던 기억을 되새긴다.

원하는 대로 모래를 퍼 담을 수 있는 모래사장처럼, 마음껏 돈을 쓸어 담을 수 있는 엄청난 부가 자신에게 내려앉길 메이는 애절하게 바라왔다.

가난뱅이가 아니라, 누구에게도 꿇리지 않는 엄청난 지위를 메이는 간절하게 꿈꿔왔다.

그리고 그 활로가 되어 준 건 다름 아닌 쌍둥이 여동생, 미야였다.

성스러운 불꽃을 타고난 동생은 화봉국이 그토록 바라왔던 무녀의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무녀는 선출제다. 악명 높은 심사 조건을 통과해야만 신녀로서 인정 받아 화봉국의 무녀가 될 수 있었다.

비단결처럼 고운 흑발과 흑요석 같은 눈동자.

새하얀 피부를 지녀야 하고, 평발이어선 안 되며.

어둠 속에서 한 달을 버틸 수 있는 정신력을 갖추어야 하며.

불 속성이어야 하며.

몸에 작은 흉터조차 있어선 안 된다.

그 조건들은 극히 일부. 세 달간 치르게 되는 시험에서 종이 수 장을 꽉 채우는 엄격한 심사 조건을 통과한 자만이 무녀의 자리에 이를 수 있었다.

끝내 미야는 무녀가 되어, 언니 메이가 바라왔던 모든 걸 한순간에 손에 넣게 되었다.

미야는 힘들게 살아온 제 언니와 새로운 시작을 하려고 했다. 분명 우리 자매의 미래는 행복으로 가득 차리라고 미야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메이가 동생에게 느꼈던 감정은 기쁨도, 기특함도 아니었다.

피가 끓는 질투심이었다.

“아아아…! 아아, 아아악…!!”

메이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실어증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내내 비명만 질러댔다.

치유반은 그녀를 다시 들 것에 싣고 옮겨 갔고, 아이작과 구미호는 떠나가는 그녀를 말없이 지켜보았다.

무녀 미야.

사암의 시련에서 떠올렸던 1회차의 기억 속, 아이작은 지켜내지 못했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깊은 회한에 잠겼었다.

그렇기에 그녀들에게 더한 애정을 품어왔고.

그중에는 무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이작은 새로 입학한 무녀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고, 속으로 깎아내렸고, 화가 나는 일이 생기면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 복수했다.

조금도 그녀를 동료로서, 자신이 지켜내야 할 사람으로서 여기지 않았으니까.

악신에게 맞섰던 자신의 동료 중 한 명인 무녀가, 지금 들것에 실린 채 떠나가는 저 흑발의 여학생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구미호-마에는 고개를 숙였다.

[나는 지금까지… 무슨 짓을….]

구미호가 상심하려는 때, 아이작은 그 마수를 쓰다듬어 주었다.

메이와 구미호가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알아차리는 건 무척 쉬웠으니까.

구미호는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호란, 하서의 제 3 무황실.”

[……?]

“거기 지하실로 가 봐.”

아이작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담담한 어조였다.

화봉국-호란에서 하서의 제 3 무황실은 몹시 외진 곳에 있는 폐궁이었다.

강력한 결계와 철통 보안으로 감싸져 있으며 화봉국의 고위 공무직조차 출입이 엄금되는 곳.

오로지 무녀와 그녀의 사역마로서 등록된 마수만이 무황실을 드나들 수 있었다.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었으나 미야의 언니, 메이는 그 점을 악용했다.

“이제 자유잖아. 속는 셈 치고 가 봐라.”

그곳엔.

“보고 싶었던 사람이 거기 있을 거야.”

무녀는 성스러운 화염을 다루는 존재.

메이가 화봉국의 국민에게 성스럽고도 이질적인 붉은 화염을 내보이며 무녀로서의 자격을 증명하고 그 지위를 공고히 할 수 있었던 건.

제 회유에 넘어간 동생을 함정에 빠뜨려 마력 공급원으로서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지위, 권력, 부. 메이는 미야가 손에 넣은 모든 걸 가지고 싶었다.

그것이… 잠시간 한 움큼 움켜쥐어도 금세 손가락 틈으로 빠져나가고 마는 모래 알갱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채.

그리고 이를 가능케 했던 건 미야 자신의 결정이었다. 그녀는 일부러 언니의 함정에 걸려주었다.

자신보다 똑 부러진 언니가 무녀가 되는 편이 화봉국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선택이 폭군을 낳는 결과로 이어졌을 줄은 미야는 지금까지도 모르고 있을 터였다.

아이작은 무덤덤하게 구미호와 눈을 마주쳤다.

구미호가 미야의 언니, 메이로부터 자유를 되찾고 진실을 알았으니 이제 거리낄 건 없었다.

슬슬 운명과 책임으로부터 눈을 돌리고 깊은 잠에 빠져 버린 미야를 일깨우고, 신녀의 자격이 없는 자를 섬겨 온 화봉국이 진실을 마주하도록 만들어야 할 터.

필시 엄청난 정치적 파장과 국민의 혼란을 야기하겠지만, 이는 화봉국이 반드시 거쳐 가야 할 진통이었다.

구미호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

그 순간, 구미호는 깨달았다.

입학 시험 날, 처음 봤을 때부터 범상치 않았거늘.

역시 자신의 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렇군, 네 녀석이….]

메이가 그토록 찾아다녔던 이름 없는 영웅이었는가.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왔던 마족을 해치운 것도 분명히 이 남자일 터.

대마법사의 경지에 이른 존재는 불가해한 능력을 당연하다는 듯이 행한다.

특히나 이름 없는 영웅이라면, 구미호 자신보다 드높은 경지에서 불가해의 영역조차 이해하며 이 세상을 내다보고 있을 것이었다.

그가 진정한 신녀의 위치를 알아내는 것도 이상할 게 없다는 얘기였다.

“나중에 보자.”

[…….]

희대의 대마법사가 짓는 미소를 구미호-마에는 두 눈에 새겼다.

자유를 되찾은 여우 마수는 화염 마력이 되어 하늘로 치솟더니, 어디론가 떠나가기 시작했다.

만약, 만약에, 아이작이 한 말이 맞는다면… 그 은혜에 반드시 보답하리라고 다짐하면서.

야외 대련장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불꽃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마치 아름다운 유성처럼 보였다.

그렇게, 구미호는 소중한 친구를 찾아 멀리 떠나갔다.

……

적막하고 싸늘했다.

불꽃을 피워 올려 어두운 폐궁 속을 거닐었다. 한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돌 부스러기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주위를 자세히 살피자 책장에 가려진 미세한 벽 구멍이 보였다. 공기가 통하도록 저리 틈새를 만들어 놓은 것일까.

책장을 밀어내자 통로가 드러났다. 안쪽에는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었다.

계단을 지나 지하로 향했다. 점차 열기가 느껴진다.

마침내 지하에 이르자 화르르,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하실 중앙, 온화하게 흐르는 이질적인 푸른 불꽃 속.

허공에 한 소녀가 시간이 멈춘 것처럼 잠들어 있었다. 넘실거리는 흑발만이 조용히 춤추고 있을 뿐.

무척이나 보고 싶었다는 듯, 한동안 구미호-마에는 젖어 드는 두 눈동자에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을 담아냈다.

[미야….]

구미호-마에는 불꽃을 뻗어냈다.

화르륵!

구미호가 내지른 불길이 주위를 메운 대형 마도구를 고장 냈고.

포근하게 잠들어 있던 소녀는 마도구 고장으로 인해 마력 흐름에 이상이 생기자 의식을 되찾았다.

천천히 눈을 뜨는 미야.

비몽사몽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구미호가 시야에 담기자 미야의 두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차츰 미야의 몸이 지면으로 가라앉았다.

마침내 푸른 불꽃이 온전히 사그라지자, 그녀는 다리에 힘을 주지 못하고 그만 무릎을 꿇고 넘어져 버렸다.

오랜만에 땅을 밟았기 때문이었다.

“마에…?”

꿈속을 헤매 왔다.

구미호와 즐겁게 수다를 떨었던 한때도 꿈속에서 수도 없이 반복되어왔다.

미야에게 있어서 구미호는 소중한 친구였으니까.

구미호-마에는 말없이 다가가 미야에게 뺨을 비볐고.

당황한 그녀는 이윽고 은은한 미소를 흘리더니, 오랜만에 만난 제 친구를 껴안아 포근한 감촉을 만끽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구미호가 자신을 구해주러 온 것만은 분명해 보였기에, 미야는 웃을 수 있었다.

[보고 싶었다.]

“…그동안 찾아가지 못해서 미안해.”

미야는 구미호-마에의 등 위에 업힌 채 폐궁을 나섰다.

풀벌레 소리가 귀를 찔렀다. 주위엔 부서진 건물 잔해와 풀숲뿐, 다른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랜만에 보는 밤하늘은 무척 아름다웠다. 아스라이 빛나는 달빛과 형형한 별빛마저 눈 부셨다.

메이의 함정에 빠진 뒤로 이제껏 무력하게 잠들어 있었지만, 제 언니에게 무녀라는 지위를 맡긴 건 오롯이 미야 자신의 선택이었다.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미야는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녀는 각오를 다졌다.

“가자, 마에.”

진정한 신녀를 태운 구미호-마에가 발걸음을 옮겨 갔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 *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