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195화 (195/334)

〈 195화 〉 공신제 - 막간 (2)

* * *

위액이 역류해 미리 준비해 두었던 봉투에 토사물을 쏟아 냈다.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피로가 몰려오고 머리에 쥐가 났다. 역시 무리가 심한 느낌이다.

“죽겠네, 진짜.”

봉투를 정리하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한번 더.

온몸에 일어나는 강한 거부감을 무시하고 7성급 원소 마법 단련에 다시 매진했다.

요즘 내가 남학생들 사이에서 공공의 적으로 불린다는 모양이다.

콘테스트에서 화이트와 도로시의 소감 탓이었다. ‘아이작은 난봉꾼이다’라는 소문이 재조명되었다.

황녀인 화이트에게는 불명예스러운 소문이었기에 그녀와 엮인 소문은 자제되는 듯했지만.

도로시와 나 사이의 소문은 폭주하듯 퍼져나가고 있었다.

도로시 팬클럽 놈들이 내게 분노의 눈초리를 보내 왔다. 내가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 대련 신청하라고 으름장을 놓았으나, 막상 실제로 덤벼드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내 이성 문제에 아무 관심도 없는 트리스탄 험프레이나 별 시답잖은 이유로 싸움을 걸어올 뿐이었다.

당분간 불편한 시선을 감내해야 할 듯했다. 일단 소문이 잠잠해질 때까지 얌전하게 살아갈 작정이었다.

별안간 삐익, 거리는 소리가 머릿속을 울리며 기묘한 감각이 전신에 흘렀다.

순간 엿 됐음을 감지한 나는 곧이어 찾아온 찌릿한 통증에 바닥을 사정 없이 뒹굴어야 했다.

“으극…! 으아악…!”

마력 회로를 남용하면 돌발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증상.

전신을 아우르는 통증이 잠시간 일어나는데, 마치 살이 쥐어뜯기는 듯한 감각이었다.

내 몸을 수차례 거세게 때렸다. 이러면 조금은 나아졌다.

숨을 고르고 바닥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뒤질 것 같았다.

……

“접근 방식이 잘못됐나? 딱 들어맞는 기분이 안 들어….”

“…….”

최근 내 일과의 주축은 7성급 원소 마법이라고 볼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다인용 책상의 절반을 통째로 차지한 채 책을 늘어놓고 읽고 있었다. 바로 뒤에선 루체가 까치발 들고 내 어깨에 턱을 괸 채였다.

처음엔 그녀가 방해됐으나, 마법진 구성 연습이나 연산식 수정에 도움을 주었기에 이제는 오히려 내가 붙잡는 실정이었다.

왜 얘가 여기 있는지 누군가 묻는다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냥 어느 순간 내 옆에 와 있었다. 날이 갈수록 기척 지우는 능력이 강해지는 모양이었다.

시험 기간도 아니었고 아직 공신제의 여운이 감도는 시기였다. 평소보다 도서관을 나다니는 학생이 적었다.

그래서 큰 책상 절반을 차지해도 민폐라고 볼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양심에 걸려서 최대한 구석에 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이작 선배다.”

“저러면 책이 읽히나?”

“허세 같은데.”

가끔 학생들이 힐끔힐끔 곁눈질하며 지나갔다. 책상에 늘어져 있는 많은 책 때문이었다.

총 13권. 원소학, 중급 원소 각론, 심화, 고급 단계 등.

책을 전부 펼쳐 놓고 필요한 부분을 속독하며 연산식 구성에 도움을 얻고 있었다. 제대로 된 연산식을 구축할 줄 모르면 마법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요즘 내 일과는 이렇다.

첫째, 감각 익히기. 7성급 마법을 다루려면 여러 마법의 사용 감각을 조화롭게 혼합시키는 연습이 필요하다. 밑 작업인 셈이다. 머리와 마력 회로가 터질 것 같은데, 매일 훈련장에서 그 끔찍한 짓을 수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둘째, 연산식 구축. 7성급부터는 연산식을 짜낼 때 내 마력 회로 조건도 고려해야 한다. 그것도 어려운데, 마법의 토대가 되는 기본 연산식을 짜내고 숙달해내는 과정조차 더럽게 어려웠다.

가득 챙겨 온 양피지에는 마법진을 그려보거나 연산해야 할 수식을 만들어 가며 정리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책이 많다 보니 앉아서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었다.

한 번에 대여 가능한 권수는 최대 3권까지였기에 여기서 이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어서 7성급 원소 마법을 익히고 싶었다.

악신을 이기고 살아남기 위한 일이니까. 학생들 시선에 아랑곳할 순 없지 않겠는가.

“어려워?”

“이건 나 혼자서 알아내려면 시간 좀 걸리겠다. 숙달시키는 것도 문제겠고.”

자격증 따보겠다고 인터넷이나 학원 강의를 듣듯,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해지는 순간이었다.

우수한 인재들이 아카데미에 다니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경쟁자를 통한 심리적 자극, 인맥 형성, 인생을 탄탄대로로 만들어 주는 졸업장 취득 등.

그중에는 순수하게 올바르고 효율적인 마력 운용법과 마법 사용법을 익히기 위해서, 라는 것도 포함된다. 내가 수업에 열중해온 이유다.

지금도 각 원소 마법의 여러 운용법을 익히거나 중요한 마법적 지식을 얻는 등 많은 도움을 얻고 있다. 독학해서 엉뚱한 습관을 들이는 건 양질의 재능을 낭비하는 짓이나 다름없으니.

여기서 아카데미의 단점이 드러난다. 바로 ‘수준이 비슷한 학생끼리는 똑같은 교육을 받는다는 점’이었다. 개인 교습 파와 아카데미 파가 나뉘는 가장 큰 이유다. 중재안은 방학 때 개인 교습을 받는 방법뿐.

수준 높은 A 클래스마저도 현재는 5, 6성급 마법 단련에 커리큘럼이 특화되어 있었다.

지금 내 처지는 고등학교 수능에서 사회 과목 1등급 맞는다고 사법시험 문제 집을 풀겠다고 하는 꼴이나 마찬가지. 아니, 그 이상.

하지만 연산의 방향성만 잡을 수 있다면.

나머진 [마법 단련 효율]과 [학습 효율] 최대치인 내가 어떻게든 알아서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루체는 내 어깨에서 턱을 떼고 양피지를 바라보며 옅은 한숨을 내뱉었다.

“나도 얼음 속성이면 좋았을 텐데. 영 도움이 안 되네.”

“도움 많이 되고 있어. 미안한데 좀 더 내 옆에 있어라. 이따가 보답할게.”

“그건 사양 안 하지.”

루체는 온화하게 미소 짓더니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그녀는 말했다.

“아이작.”

“왜?”

“나 방금 좋은 방법 떠올랐어.”

……

콰당!

“그억?!”

루체는 나를 데리고 오르핀관 교수실로 쳐들어갔다.

문을 확 열자마자 좀비가 보였다. 아니, 좀비가 아니라 대학원생 마르코였다.

그의 처참한 몰골을 보자마자 나는 식겁했으나, 그도 놀랐는지 의자에 앉은 채로 벌러덩 넘어지고 말았다.

루체는 쓰러진 마르코를 노려보며 포커페이스로 단 두 글자만 입에 담았다.

“교수.”

“그어어…?”

“위치.”

“그, 그어억…!”

2학년 수석의 살벌함에 압도 당한 마르코는 두려움에 찬 얼굴로 집무실 쪽을 가리켰다.

루체는 내 손목을 붙잡은 채 안쪽에 있는 집무실로 걸어갔다.

문을 노크하기도 전에 손잡이부터 돌리는 루체. 예의범절을 상실한 그녀는 다짜고짜 문부터 열어젖혔다.

문이 덜컥 열리자 집무용 책상에 앉아서 서류 작업하던 은발의 미남 교수, 페르난도 프로스트 교수가 보였다.

“루체 엘타니아인가. 그 뒤엔… 아이작이군.”

루체는 어쩌라는 듯 대답하지 않고 나를 끌고 집무용 책상으로 향했다.

책상 앞에 선 루체는 페르난도 교수를 쳐다보며 용건을 꺼냈다.

“스승이 필요해.”

예의는 여전히 없지만, 그래도 많이 발전하긴 했다.

공적인 자리가 아니면 타인과는 일말의 대화조차 기피했던 루체다. 이 정도도 장족의 발전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 과정이 다소 급진적이었지만, 아무튼 아련해진다.

“…내 선생님을 뵙자고 교수실에 함부로 쳐들어왔다는 얘길 하고 싶은 건가, 루체 엘타니아?”

“잠깐만.”

그래도 역시 예의는 챙겨야지. 너무 막 나갔다. 지금이라도 내가 수습하는 편이 좋으리라.

루체가 알려 준 방안은 잘만 풀리면 내게 정말 좋은 일이었으니까. 기왕 이렇게 된 거, 얘한테만 신세 질 순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루체를 뒤로 물린 뒤, 안경을 한번 들치고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교수님, 2학년 되고 오랜만에 인사 드리네요. 그간 무탈하셨습니까?”

“안타깝군. 허례허식을 챙기기엔 이미 늦었다. 용건부터 말해라.”

페르난도 교수는 침착했지만, [심리 간파]로 그가 기분이 상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다.

“헤겔 마탑의 마탑주, 아리아 릴리아스 님을 만나 뵙고 싶습니다.”

아리아 릴리아스.

페르난도 프로스트 교수의 스승으로, 평소에는 쉽게 만나볼 수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 교수님 만큼은 무조건 만나주는 사람이었다.

난 이미 <메르헨의 마법 기사> 지식으로 알고 있었고, 루체는 마탑 수습 일을 하면서 우연히 알았다고 했다.

페르난도 교수는 눈살을 찌푸렸다.

“왜지?”

“이 섬에서 가장 마법 이론에 능통하신 데다, 얼음 속성으로 알고 있어서요.”

정확하게는 얼음, 물 속성이다.

“그건 누가 알려 준 건가?”

헤겔 마탑에서 수습 과정을 거쳤던 루체 쪽으로 슬쩍 손을 내밀자 페르난도 교수는 곧바로 납득했다.

“7성급 마법을 익히고 싶습니다. 방향이 잘 안 잡혀서 그러는데 도움 좀 구하고 싶어요. 작년에 D 클래스 제자였던 정으로 한 번만 도와주시면 안 됩니까?”

“…….”

메르헨 아카데미를 졸업할 때 대부분의 학생은 5성급 마법까지 익히고 나간다.

6성급도 배우긴 하지만 아카데미 학생들은 어디까지나 학생 레벨. 6성급 마법까지 숙달하고 나가는 학생은 매우 적은 편이었다.

하물며 7성급 마법은 졸업 직전인 3학년 A 클래스가 이론 정도만 겨우 익히는 수준.

애당초 7성급 마법을 잘 다루는 데다 가르치기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은 부르는 게 몸값이니, 아카데미에서 교수 노릇이나 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아리아 릴리아스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갖은 시험에서 보았던 그녀의 마력 운용력은 가히 넘볼 수 없는 수준이었지. 하물며 7성급 이상의 마법도 못 다루는 마탑주는 찾아볼 수 없다. 헤겔 마탑처럼 규모가 적은 곳이라 해도 말이다.

“작년엔 D 클래스 열등생이었으면서, 이제는 엘리트 마법사들이 30년을 들여야 겨우 익힐 수 있을까 말까 한 7성급 마법을 배우고 싶다…, 라는 건가? 제정신이 아니군.”

페르난도 교수는 어이가 없는지 실소를 터뜨리곤 의자에 등을 기댔다.

이미 내가 천재라고 불린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단지 형편 때문에 재능을 늦게 꽃 피운 사람으로 유명하다고 들었다.

그래선지 아카데미에서 내 재능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은 이제 없었다. 페르난도 교수를 포함해서 말이다.

“사적으로 교육의 기회를 불평등하게 제공해 주는 건 아카데미 교수로서 책망 받을 일이다. 그건 알고 도움을 청하러 온 건가?”

“심도 있게 배우고 싶어 하는 학생에겐 교육의 기회를 더욱 퍼주는 게 교수 된 사람의 도리 아니겠습니까?”

대학원생이 되겠다는 말은 아니었다.

“교수실에 허락 없이 막 들어와 놓곤 다짜고짜 부탁 드려 죄송합니다. 하지만 꼭 좀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페르난도 교수님.”

나는 상체를 숙였다. 루체는 당황한 기색을 보였으나, 내가 툭 건드리자 눈치껏 고개를 숙였다.

페르난도 교수는 겉보기엔 정 없는 성격처럼 보이나, 생각보다 유하고 학생들이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는 걸 인생의 낙으로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도와줄지도 몰랐다.

페르난도 교수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전에는 교수의 책임에 대해 논쟁하자는 의미로 한 말이 아니었다만.”

펜으로 책상을 툭툭 두들기는 페르난도 교수.

“왜 그렇게까지 하나? 이미 넌 그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성취를 이뤄냈을 텐데? 그만한 성장 속도라면 7성급도 웬만한 학생들보다 훨씬 빠르게 익힐 수 있을 거다. 그럴 바엔 아카데미 커리큘럼에 맞춰서 6성급까지의 마법을 더욱 갈고닦는 편이 낫지 않겠나?”

페르난도 교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예를 들어, [빙결 폭발] 쓸 줄 안다고 [빙결 폭발]의 모든 걸 마스터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 5성급 원소 마법도 여러 변화구로 쓸 수 있는 데다 응용법은 차고 넘친다.

그 외에도 배워두면 좋을 6성급까지의 마법은 무척 많았다.

즉, 1성급부터 6성급까지의 마법을 심도 있게 익히고 졸업해도 아카데미 뽕은 확실하게 뽑는 셈이었다.

문제는 내가 해치워야 할 적이 악신이라는 것. 아카데미에 재학하는 3년, 아니, 3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아득히 높은 경지에 이르러야만 했다.

“그보다는.”

상체를 일으키고 페르난도 교수와 눈을 마주쳤다.

“전 더 높은 경지에 닿길 원합니다, 교수님.”

향상심 만큼 좋은 핑계도 없다.

한동안 나와 눈을 마주치던 페르난도 교수는 눈을 지그시 깜박이더니 다시 서류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러면….”

[나쁘지 않은 것.]

돌연 파다닥, 하고 장롱 아래에 숨어 있던 작은 마도구, 전달꾼이 우리에게로 날아들었다.

꽤 아름다운 장식이 달린 걸 보니 신분 높은 사람의 것으로 보였다.

아리아 릴리아스의 목소리가 들리자 가장 크게 당황한 건 페르난도 교수였다. 두 눈을 크게 뜨면서 포커페이스가 무너져 내렸다.

“선생님?”

[제자는 일주일 뒤, 이 아이들을 내가 있는 곳으로 데려올 것.]

“그것보다, 왜 거기서 선생님 전달꾼이 튀어나옵니까? 이건 흡사 스토킹….”

[쓸데없는 물음은 불필요.]

<메르헨의 마법 기사> 설정집에서 본 기억이 있다. 아리아 릴리아스는 이제까지 자신이 가르쳐 왔던 제자들을 모두 소중히 여긴다고.

하지만 이건…, 페르난도 교수의 말대로 흡사 스토커 같았다. 집무실에서 교수가 어떻게 지냈는지 줄곧 엿들었단 거잖아…?

[학생, 이름은?]

전달꾼은 내 얼굴 앞으로 다가왔다.

“아이작입니다.”

[내 제자가 되고 싶으면 시험 통과가 필수. 모든 건 나중 얘기. 앞으로 일주일 뒤, 네가 내 제자가 될 만한 역량을 갖췄는지 시험해볼 예정. 미리 준비해둘 것. 너도 마찬가지.]

전달꾼은 루체에게도 시선을 주며 말했다. 얘는 왜?

뚝. 전달꾼은 통신이 끊기더니 다시 장롱 아래로 들어갔다.

페르난도 교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얼음 생성]으로 얼음 막대기를 만들었고.

그걸로 장롱 아래를 뒤적여 전달꾼을 꺼내 들고 창가로 향했다.

다시 전달꾼이 작동하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배은망덕한 것. 설마 버릇 없이 날 던져 버릴 셈? 당장 행동을 멈추고 다시 생각해 볼 거어어어엇……!]

휙. 쾅.

페르난도 교수는 전달꾼을 창밖으로 던지고는 곧바로 창문을 굳게 닫아 버렸다.

그러더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원래 자리로 되돌아왔다.

“…그분, 원래 그래요?”

“새삼스럽진 않군.”

페르난도 교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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