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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203화 (203/334)

〈 203화 〉 스승 - 막간 (2)

* * *

상귀-메르뷸. 8성급 서리 귀신 마수.

<메르헨의 마법 기사> 설정집 마수 단락에서 찾아볼 수 있었으며, 게임에는 등장하지 않는 마수였다. 실제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저놈도 빙설룡처럼 크기가 꽤 클 텐데.

8성급 마수는 괴묘-체셔를 제외하곤 전부 몸집이 크다는 설정이 있었으니 기억을 못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저 모습은 위장용일까.

[…….]

상귀-메르뷸이 다가왔다.

무빙워크를 탄 것처럼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고 그가 발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허공에 붕 떠 있는 것이었다. 흡사 공포 영화에 나올 법한 유령 같은 움직임이었다.

상귀는 내 앞에서 멈추더니 천장에 닿을 법한 높이에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길쭉하고 뒤틀린 안면 구조가 기괴한 인상을 자아해 내고 있었다.

이어 인사하듯 상체를 굽히더니 빼빼 마른 손을 내미는 상귀. 4개의 손가락은 기형적으로 길쭉했다.

그 손이 펼쳐지고 단검 한 자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은빛 단검.

아름다운 문양이 조각 된 은백색 검집엔 은빛 손잡이를 지닌 단검이 납검되어 있었다.

“주는 거야?”

상귀-메르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은빛 단검을 거머쥐었다. 차가웠다. 무게감은 예상과 비슷했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상귀는 머릿속이 울리는 듯한 기이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를 이끌어 주소서. 언제든 부름에 응하겠나이다….]

스으으.

할 말을 마친 상귀-메르뷸은 차가운 연기가 되어 사라지더니 창밖으로 흘러 갔고, 이내 사그라졌다.

저건 상귀의 고유 마법, ‘영체화’. 몸의 실체를 없애고 영체가 되어 움직일 수 있는 마법이었다.

창가 쪽으로 걸어가 창밖을 내다보았다. 연푸른빛 가루가 흩날리며 섬 전체에 전개된 투명한 결계를 무탈하게 빠져나갔다. 저런 식으로 아카데미에 들어왔던 거겠지.

“힐드.”

착. 커튼을 친 뒤.

빙설룡에게 더욱 마력을 불어넣어 작은 백룡의 형태로 만들었다. 녀석은 지면에 착지하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이게 뭔 상황이냐? 아침 댓바람부터 귀신 같은 놈이 나한테 뭘 주고 갔는데…?”

얼떨떨한 심정이었다.

[아마, 내 옛 동료들이 네 존재를 알아차린 것 같구나.]

빙설룡의 옛 동료라면 태초의 빙제가 다루었던 사역마나 하수인을 뜻했다.

[네가 발산했던 [빙제]의 기운을 어렴풋이 느낀 거겠지. 특히 원옥마수 소환이 가장 결정적이었을 거다.]

“이렇게 될 줄 알았어?”

[몰랐다!]

자신 있게 대답하는 빙설룡.

[내가 걔들 생각을 어찌 알겠는고?]

“그러냐.”

그렇겠지. 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일 텐데.

어쨌든, 나도 모르는 새에 재해급 얼음 마수들이 내 존재를 알아차렸다는 얘기였다.

[으. 그래도 그렇지, 제일 음침한 녀석이 찾아왔구먼.]

빙설룡은 날아올라 내 어깨에 안착했다. 녀석의 눈길이 내 손에 쥐어진 은빛 단검을 향했다.

검집에서 검을 빼내 칼날을 확인했다. 냉기가 흘러나오며 서늘한 감각이 느껴졌다.

칼날에는 특이한 마법진이 3개 새겨져 있었다.

손가락을 갖다 댔으나 특별한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차갑고 단단하기만 할 뿐.

[이 검은 서리군주의 자격. 이름은 상화의 검. 맹세의 검이자 계약의 검이다.]

빙설룡은 기다렸다는 듯이 설명했다.

[네가 쉽게 감당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다. 아무리 네가 빙제의 환생이라고 해도…, 아직은 마족과 싸울 때가 아니면 약하잖느냐.]

어쩌라고. 감당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내가 정한다.

기연이 제 발로 알아서 기어 들어오다니. 뜻밖의 수확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은빛 단검, 상화의 검을 이리저리 살폈다. 간지는 합격이었다.

빙설룡은 도끼눈을 뜨고 짧은 앞발로 내 뺨을 꾹꾹 눌렀다.

[주인? 내 말 들리나?]

“들었어. 나 빙제 환생 아니라고 몇 번 말하냐?”

[으미, 싯펄. 고집하고는.]

빙설룡은 구수한 욕설을 내뱉더니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네가 빙제의 환생이 아니면 대체 뭐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녀석을 쳐다보며 말했다.

“힐드, 이게 뭔지 자세히 설명해줘.”

* * *

최상위권 기숙사, 샤를관.

범고래 사역마, 벨로와 까마귀 크기로 소환된 검은 뇌조 사역마, 뇌신조-갈리아는 소환되자마자 격한 설렘을 느끼며 루체를 빤히 쳐다보았다.

헤겔 마탑에서 아이작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어젯밤, 이미 한 침대에서 부둥켜 안기까지 했잖은가.

뺨을 붉힌 채 침대에 앉는 루체.

벨로와 뇌신조는 흐뭇한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저, 주인? 아이작이랑, 으흐흐, 잘 됐…?]

“흐으….”

루체는 허탈한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가렸다.

음흉하게 웃으며 루체를 떠보려던 벨로는 당황한 얼굴로 곧바로 입을 꾹 다물었다.

이건… 말을 걸어선 안 되는 상황이라는 걸 벨로와 뇌신조는 눈치챘다.

“갈리아, 벨로. 간단히 짐 정리만 해줘.”

[루체? 그건 메이드를 부르면 될 일 아니더냐?]

“싫어. 혼자 있고 싶어.”

루체는 기운 없이 이불을 덮고 침대에 누웠다.

벨로와 뇌신조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루체가 대충 벗어둔 신발과 옷을 정돈했다.

[어이, 갈리아.]

[알고 있다….]

루체에게서 떨어진 벨로와 뇌신조는 가까이서 속닥거렸다.

[아직 손자 보기엔 그른 것 같군….]

뇌신조의 슬픈 목소리가 처연하게 흩어졌다.

어젯밤, 얼마나 기대하며 스스로를 역소환시켰던가.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법이었다.

뇌신조는 한숨을 푹 내뱉었다.

헤겔 마탑을 떠나기 전, 개별 면담 때.

아리아는 루체에게 신세계의 편린을 가르쳐주었다.

야한 소설에서 본 온갖 지식과 성적 호기심으로 무장된 아리아는 담담한 어조로 음담패설을 늘어놓으며 루체를 휘어 잡았다.

루체 자신과 아이작을 빗댄 수많은 야릇한 상상을 하도록 만들었던 것이었다.

이토록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절절히 실감한 적이 있었을까.

아이작을 보기만 해도 아리아의 야릇한 이야기가 떠올랐기에, 기숙사까지 오는 내내 루체는 도저히 이성을 제대로 유지할 수 없었다.

아리아의 음담패설은 아직 사춘기가 채 가시지 않은 소녀가 감내하기엔 지나치게 자극적이었다. 루체는 더 듣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집어삼켜야만 했다.

“오늘은… 쉬어야 해…!”

선택이 아니라 강제였다. 어서 흥분한 속내를 진정시켜야만 했다.

루체는 두 눈을 부릅뜬 채 잠을 청하려고 애썼다. 두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 * *

이 정도면 됐겠지.

낮, 나비 정원 구석. 내가 만들어 낸 바위 기둥 다섯 개를 바라보며 심호흡했다.

오른손으로 총 모양을 만들고 검지로 바위 기둥 하나를 가리켰다. 그대로 7성급 얼음 원소 마법 [빙뢰]의 마법진을 구축하기 위한 연산을 시작했다.

7개의 연푸른빛 마법진이 허공에 새겨졌다.

표적을 노린다.

검지가 가리키는 방향을 기점으로, [빙뢰]를 쏘아냈다.

콰과광!!

전격처럼 빠른 속도로 연푸른빛 마력이 공기를 가로질렀다. 동시에 반동으로, 차가운 냉기가 주위로 폭발하듯 퍼져 나갔다.

허공에 빛줄기가 수 갈래 새겨지고, [빙뢰]는 바위 기둥을 빗겨나갔다.

“아이고….”

역시. 아직 숙달되지 않은 탓에 명중률이 낮았다.

가까이서 적을 노린다면 쉽게 맞출 수 있겠지만, 기왕이면 멀리서 쏘아내 적을 정확히 맞히는 단련을 하고 싶었다. 그 편이 전술의 폭을 넓히는 데도 좋으리라.

한 번 더. 나는 [빙뢰]를 발사했다.

헤겔 마탑에서 돌아오고 일주일이 지났다.

카야와 도로시를 통해 내가 헤겔 마탑에 있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터질 게 터졌지.’

화봉국-호란에서 엄청난 사건이 터져 전 세계가 떠들썩해졌다. 진정한 무녀가 모습을 드러낸 까닭이었다.

화봉국은 나라를 기만한 메이를 잡아 들이기 위해 제르베르 황실에 협력을 요청했고.

메이는 병실에서 도망치고 숨어 다니다 끝내 황실 기사단에 붙잡혔다. 그 과정에서 메이의 저항이 거셌기에 수 명의 기사가 부상을 입었다.

주변에 있던 학생들은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끌려가는 메이를 숨죽이고 지켜봤다. 가짜 무녀의 몰락이었다.

이제 메이의 처우가 어떻게 될지는 순전히 미야의 몫이겠지만, 가족 된 정을 생각해 사형은 면해주겠지.

아마 신체 일부를 없애고 종신노역형을 내릴 터.

인과응보다. 그간 무자비하게 잔혹한 짓을 벌여온 죗값을 치를 때가 온 것이었다.

그 외에도, 카야와 도로시가 공통적으로 내게 던진 질문이 있었다.

─ ‘아이작 님, 루체 엘타니아와 특별한 일 없었죠?’ ─ ‘회장, 그 스토커 친구랑 별일 없었지?’

별일 없었기에 별일 없었다고 대답했다. 헤겔 마탑에서 루체는 내내 날 돕기만 했으니까.

그녀들은 찝찝하다는 듯 의심스러워하는 눈초리로 날 쳐다봤으나, 내가 더 할 말은 없었다.

오랜만에 만난 스노우화이트는 내 손을 꼭 잡더니 “보고 싶었어요오….”하고 눈물을 글썽였다.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다시 멘토링에 들어갔다.

떠나기 전에 내줬던 과제는… 열심히 한 데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그녀가 제출한 과제는 열심히 한 흔적은 보였지만 완성도가 부족했다. 2주 안에 감당하기엔 상당히 빡셌던 모양이었다.

못 들었던 수업 내용은 에이미와 마테오가 잘 정리해 둔 필기 노트 덕분에 문제 없었고, 밀렸던 과제는 빠르게 처리했다.

그렇게 시간이 무던히 흘러갔다.

어느 날, 하루 수업을 마친 뒤였다. 해가 뉘엿뉘엿 져가고 있었다.

수국 정원, 호수를 가로지르는 다리 위. 난간에 팔짱을 올리고 마력기를 쥔 채 마력 운용력을 단련하던 때였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안녕, 애기야? 뭐하고 있어?”

연금발의 교복 차림 여학생이 불쑥 고개를 내밀며 인사를 건네왔다.

장난기 어린 목소리. 내게 데이트를 신청했던 선배였다.

“아, 앨리스 선배. 그냥 자투리 단련하고 있었습니다.”

“오, 별 걸 다하는구나?”

손에 쥔 마력기를 품 안에 집어넣었다.

“아, 늦어서 미안해. 일이 조금 밀려 있었단다.”

“괜찮아요. 금방 오셨으니까. 저도 여기 온 지 얼마 안 됐고요.”

학생회장, 앨리스 캐럴은 한쪽 팔을 난간에 올리고 턱을 괴면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애기야, 나 안 보고 싶었니?”

앨리스의 눈동자와 머리칼에 노을빛이 비쳤다.

잠시 동안, 그 눈동자를 바라보다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보고 싶었어요. 절 챙겨 주시는 선밴데 항상 보고 싶죠.”

거짓된 미소였다.

“다행이구나. 나도 애기가 보고 싶었단다.”

앨리스는 특유의 상냥한 미소를 흘렸다.

「9막, 앨리스 토벌전」을 하루 앞둔 때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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