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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210화 (210/334)

〈 210화 〉 앨리스 토벌전 (6)

* * *

원더랜드. 앨리스가 떨어졌던 또 다른 차원의 세계다.

가끔 꿈속에서만 보았던 그 기이한 세계는 어느 날 현실이 되어 버렸다.

사람, 동물, 모두가 정신이 나간 그곳에서, 앨리스는 이성을 유지해가며 꿋꿋하게 살아남았다.

자기 심기를 건드린 자들을 모조리 단두해 버리는 하트 왕국의 여왕을, 앨리스는 목을 베어 권력을 찬탈했다.

전설의 검, 보팔 소드를 손에 넣어 악몽룡-재버워크와의 결투에서 승리했다.

그렇게 앨리스는 새로운 하트 여왕이자 원더랜드의 영웅으로서 명성을 떨쳤다.

그 모험은 순탄치 않았다. 누군가 그녀의 모험담을 써내려 간다면, 부모님을 보고 싶다는 그리움과 두렵고 무서운 일들을 견뎌내야 한다는 좌절감을 많은 페이지에 언급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면, 그녀가 걸어온 여정에는 많은 인연이 생겨나 있었고.

그 모두가 앨리스에겐 더없이 소중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트럼프 병사들의 목을 들고 한 마리의 마족이 찾아왔다. 그 마족은 막강한 군대를 하수인으로 부리고 있었다.

그가 앨리스에게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계약하자며.

콰아아앙!!

폭음이 앨리스를 고통스러운 기억 속에서 끄집어냈다.

청은발의 사내, 아이작이 시야에 비쳤다. 그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토끼의 형상을 한 죽음의 마법과, 모든 걸 먹어 치우는 [식신]을 뽑아내 그 사내를 일제히 공격했으나.

그는 재빠른 몸놀림으로 피하거나 얼음 원소 마법으로 능숙하게 대처했다.

그러나 돌격이 늦춰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앨리스의 맹렬한 공세에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진짜 힘, 쓰지 않을 생각인가 보구나.”

조금이라도 발악해볼 요량이었던 앨리스는 아이작의 의도를 짐작할 수 없었다. 자신 따위는 가뿐히 쓰러뜨릴 수 있는 그가 어째서 진정한 힘을 꺼내지 않는 걸까.

이름 없는 영웅으로서가 아닌, 함께 시간을 보내온 ‘아이작’으로서 자신을 꺾겠다는 의지일까.

아니면 그 정도의 힘만으로 자신을 이기기에 충분하다는 걸까.

어느 쪽이든 어이없는 생각이었기에, 앨리스의 입가에 절로 실소가 터져 나왔다.

화아아악!

앨리스는 검신에 마력을 휘감고 휘둘렀다. 매서우나 고상하기도 한 연붉은빛 검기가 허공을 빠르게 가로질렀다.

아이작은 눈살을 찌푸렸다. 피부를 짓누르는 어마어마한 마력이 느껴졌다.

보팔 소드의 악몽을 몰아내는 힘이다. 하지만 검의 주인이 살의를 머금으면, 적의 몸을 절삭하면서 영원한 꿈속에 가둬 버리고 현실과 꿈의 경계를 없애 버리는 환각 계열 마법의 힘이기도 했다. 베인 자가 맞이할 결말은 죽음이리라.

신체 일부라도 그 검기에 베이면 끝장난다는 걸 아이작은 알고 있었다. 그는 [서리불꽃]을 폭발적으로 발사하여, 그 추진력으로 몸을 날려 검기를 피했다.

잇달아 아이작은 6성급 얼음 원소 마법, [서리혁작]을 시전했다.

연푸른빛 마법진이 허공에 전개되고 묵직한 냉기 덩어리가 튀어나왔다. 그러나 앨리스가 보팔 소드를 휘둘러 내지른 검기가 [서리혁작]을 반으로 갈라 무력화시켰다.

퍼어엉!!

[서리혁작]이 터져 나갔다. 앨리스를 노려야 했던 수많은 고드름이 맹렬한 기세로 비산했다. 앨리스는 염동력으로 이루어진 보호막을 전개해 고드름을 가볍게 튕겨 냈다.

앨리스는 기동력을 높이기 위해 신체 강화 마법을 사용한 뒤, 염동 마법으로 보이지 않는 물체를 허공에 만들어내고 그것을 밟았다. 그러자 밟은 자리가 파동을 일으키며 아름답게 발광했다.

부우웅!

무형의 무언가가 용수철처럼 앨리스를 쏘아냈다. 그녀는 무서운 기세로 아이작을 향해 날아들었다.

옥상에 착지한 아이작에게로 앨리스가 유려하게 검을 휘둘렀다. 그 검신에 연붉은빛 검강이 맺혀 있었다.

돌연 아이작은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 손에 바위 마력이 피어오르며 대검이 쥐어졌다.

태초의 원왕 중 암제가 다루었던 바위 대검, 암철검.

앨리스는 두 눈을 좁혔다. 그 대검이 예사롭지 않은 마도 무기임은 단숨에 짐작할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바위 마력이 깃들어 농익은 채였으니.

그런 무기를 다룬다는 것도 아이작이 이름 없는 영웅이라는 방증일 터.

그러나 앨리스는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퍼어어엉!!

보팔 소드의 검날이 암철검의 검날과 맞부딪혔다. 앨리스의 육체적인 힘은 아이작보다 뒤떨어졌지만, 그 차이를 메우고도 남을 무거운 마력이 그녀에게 있었다.

검기가 가까이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가며 아이작의 몸을 공처럼 날려보냈다.

쿠웅!

아이작은 출입구를 뚫고 벽면에 꽂혔다.

끄으, 하고 신음을 흘린 아이작은 제 몸에 떨어진 부스러기를 털어낼 틈도 없이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암철검의 방어 스킬, [암식] 덕분에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다시. 앨리스는 허공에서 염동력으로 만든 무형의 무언가를 박찼다. 연붉은빛 마력을 흩뿌리며 로켓처럼 날아든다.

조금 전, 아이작은 검을 맞대고 깨달았다. 보팔 소드의 검기는 암철검의 힘으로 대항할 수 있으리라고.

아이작은 메를린 아스트레앙에게서 배웠던 기초적인 대검술을 떠올리며, 지면을 박차고 무게중심을 쏟아 암철검을 사선으로 휘둘렀다.

고밀도의 바위 마력이 스민 검날이 앨리스의 검격과 충돌했다.

쿠우우웅!! 카가가각!!

바위 마력이 격류를 일으켰다. 사방으로 광범위한 석설 파도가 너울졌다.

묵직한 바위 대검의 일격이 앨리스의 검기마저도 베어내며, 그녀를 향해 내리그어졌다. 그 검격을 막아 낼 만큼의 마력을 삽시간에 뽑아내지 못한 것이 앨리스의 패착이었다. 그만큼 그녀는 지쳐 있었다.

검이 그어낸 궤적을 따라 날카로운 황옥빛 검기가 솟구쳤다. 그 전에 위험을 감지한 앨리스는 염동력으로 자기 몸을 억지로 밀어내 그 검격을 피했다.

그러나 돌조각이 몰아치며 앨리스의 몸체를 깊숙이 파고들고, 암철검이 일으킨 강한 충격파가 그녀를 덮쳤다.

[쇄암식 제1형]. 황파섬.

앨리스는 피를 토하며 튕겨 나갔으나 염동력으로 제 몸을 받쳐 무사히 착지했다.

아이작은 검기를 따라 눈앞에 조형된 날카로운 바위 너머, 앨리스를 노려보며 깊은숨을 내뱉었다.

손가락 일부가 석화되어 감각이 사라졌다. 방금 전처럼 암철검을 꽉 쥐고 쇄암식을 쓰는 건 이제 어려웠다.

아이작은 혀를 차고 다시 앨리스를 향해 도약했다.

앨리스는 다가오는 그를 향해 수십 가닥의 연붉은빛 검기를 날렸다. 아이작은 암철검으로 그 검기를 베어내거나 튕겨 내며 돌격을 멈추지 않았다.

앨리스는 감탄했다. 그가 보팔 소드의 힘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슬슬 감을 잡아가고 있었으니.

중립 속성의 고위 마법도 연계되었으나, 아이작은 능숙하게 피하거나 막아 냈다.

가속도가 붙어간다.

마치 예전부터 앨리스와 몇 번이고 싸워본 적이 있는 것처럼, 무시무시한 적응 능력이었다.

아이작은 머리를 터질 듯이 굴리며 원소 마법을 연산하고 난사했다. 그의 등 뒤를 따르는 마법진 수 개가 무서운 속도로 구축 및 해제를 반복했다.

얼음 원소 마법과 바위 원소 마법이 앨리스와 환상 시계를 향해 쉴 새 없이 퍼부어진다.

사각을 노린다. 아이작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환상 시계였다. [영원의 비석]을 구축해 가는 환상 시계의 마력 흐름을 방해하면 안 됐기에, 앨리스는 그 시계에 보호막을 씌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탓에 앨리스는 아이작의 다채로운 노림수를 읽어내며 방어하는 데 치중했다.

점점, 아이작은 두 손의 감각을 잃어가고 있었다. 석화 때문. 암철검의 부작용이었다.

바위 골렘 사역마, 이든을 부분 소환했다. 이든의 힘이 아이작에게로 융화되었다.

바위 갑주가 아이작의 팔을 감싸고, 등 뒤에 떠오른 암철검의 황옥빛 바위 고리에도 연갈빛 갑주가 덧씌워졌다. 이로 인해 손의 감각이 완화되는 것은 아니었으나, 암철검을 강제로 꽉 쥐는 것은 어떻게든 가능했다.

아이작은 더욱 기민하게 움직였다.

전세가 기울어져 간다.

앨리스가 사역마를 한 마리라도 불러오면 그녀의 승리는 불 보듯 뻔해지겠지만.

이미 그녀의 사역마는 모두 누군가와 싸우고 있었기에 가세할 수 없었다.

남은 트럼프 병사라도 더 불러와야 할까. 아니, 아이작이 바위 검기를 한 번이라도 내지르면 병사들은 단번에 끝장날 터. 더군다나 옥상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는 오히려 보팔 소드의 검기를 날리는 데 방해만 될 것이었다.

아이작이 암철검을 똑바로 쥐고 짓쳐들어온다. 앨리스는 움직임을 포기하고 저력을 다해 보팔 소드의 힘을 끌어내려 했다. 마력이 검신에 스미며 화염처럼 타올랐다.

휘두른다.

화아아아악!!

작열하는 검기가 피할 곳 없이 쏘아졌다.

아이작은 바위 마력을 휘감은 암철검을 휘둘렀으나, 앨리스의 검기를 베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콰아아앙!!

연붉은빛 마력과 황옥빛 바위 마력이 뒤섞인 아름다운 폭발이 일었다.

그 여파로 앨리스의 머리칼과 옷자락이 빠르게 펄럭였다.

위우웅.

자욱한 흙먼지 속, 여전히 대검을 든 아이작의 인영이 보였다. 그는 바위 마력을 끌어 올려 등 뒤로 마법진을 구축했다.

앨리스는 그를 향해 다시 보팔 소드를 휘둘러 검기를 날렸다.

그 순간, 흙먼지 위로 누군가가 솟아올랐다.

아이작이었다.

그러나 아직 흙먼지 속에는 그의 인영처럼 보이는 것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아이작과 비슷한 형체로 몸을 키운 바위 골렘 사역마 이든이 암철검을 든 모습일 뿐이었다.

공중에 붕 떠오른 아이작은 감각을 잃은 오른쪽 검지로 환상 시계를 가리켰다. 반대쪽 손으로 움켜쥐어 그리 손동작을 취할 수 있었다.

검지로 표적을 겨누는 이유는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그의 등 뒤로 7개의 연푸른빛 마법진이 전개되었다. 계단을 오르면서 지금까지 계속해서 연산해 오고, 마침내 사용할 수 있게 된 원소 마법.

냉기가 예리하게 몰아쳤다.

앨리스가 다급히 아이작을 향해 검기를 내질렀으나 그는 몸을 비틀어 피해냈고.

연이어 연격을 날리려 하자, 어느새 바위 피부를 덧씌워 우락부락해진 이든이 그녀에게 짓쳐들어 암철검을 휘둘렀다.

암철검을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이든은 앨리스의 마법에 무력하게 튕겨 나갔다.

앨리스의 고개가 다시 아이작을 향해 돌아가고.

그 순간, 아이작은 검지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7성급 얼음 원소 마법 [빙뢰]를 쏘아냈다.

콰과강!! 콰아아앙!!

전격처럼 내질러진 냉기 마력이 수 갈래로 뻗어나가 환상 시계를 꿰뚫었다.

금빛 마력이 깨져 버린 모래시계처럼 흩어진다.

잇달아 터진 연푸른빛 폭발이 앨리스의 몸을 날려 보냈고, 온전한 형상을 갖추어 가던 [영원의 비석]을 산산이 무너뜨렸다. 환상 시계는 순식간에 풍비박산했다.

아이작은 옥상에 속절 없이 떨어졌다. 암철검을 본인 능력에 비해 과하게 사용한 부작용, 앨리스와 싸우면서 입은 온갖 부상 탓에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이 악물고 고통을 인내하며, 몸을 일으키는 행동만 가까스로 해낼 수 있을 뿐이었다.

곧바로 아이작은 제논에게서 뺏어온 포션을 한 병 꺼냈다.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었기에, 뚜껑을 부수고 [바위 생성]을 써서 유리병을 손에 고정시킨 뒤 포션을 들이켰다.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다음, 벽면에 처박혔던 이든을 역소환했다. 바닥을 나뒹굴던 암철검도 바위 마력이 되어 아이작에게로 흘러들었다.

앨리스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미약한 숨소리가 핏물로 적신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지금 그녀의 귀에는 오로지 그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앨리스는 고개를 들었다.

옥상을 메웠던 결계가 가루가 되어 풀리고 있었다.

[영원의 비석] 마법진도 서서히 사그라지며.

그리, 금빛 마력은 앨리스의 상처투성이 피부를 따스하게 쓰다듬으며 자연히 소멸했다.

구름이 물러나 아름다운 별하늘이 보였다.

자주 보았기에 더는 아무런 감흥도 느낄 수 없었던 그 풍경이 오늘따라 앨리스는 썩 마음에 들었다.

지독한 허탈감이 몰려왔기 때문이리라.

아이작은 숨을 몰아쉬다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끝났어.”

“응, 내가 졌네.”

옥상에 남겨진 건 지켜내야 할 것이 있던 두 사람이었다.

그들 사이에는 좁혀지지 않을 간극이 있었다.

한 명은 승리했고,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한 명은 패배했고, 이제 모든 걸 잃어야만 했다.

앨리스는 허무감에 휩싸인 눈으로 아이작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상냥한 미소를 흘렸다.

“장하다.”

기다렸다는 듯이 목 안에서 무언가가 박동하는 감각이 느껴졌다. 표정이 굳어진다.

앨리스는 실패의 대가를 지불하고 싶지 않았다.

이름 없는 영웅이 여기에 있다고 해도, 많은 사람이 죽을 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눈을 내리깔고, 피부를 감싼 보호 마법을 풀고.

자기 목에 손을 올리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사람 목 하나 날려 보내는 데에는 많은 양의 마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고작 이 정도의 마력으로 일생을 끝마칠 수 있다니. 참으로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모든 걸 내려놓을 차례였다.

이 목숨마저도.

그때, 앨리스가 마력을 흘려내는 손을 어느새 뛰어온 아이작이 낚아챘다.

포션의 효과로 손의 감각과 체력이 조금이나마 돌아온 덕분이었다.

마치 이럴 줄 예상했다는 듯이 움직인 아이작을, 앨리스는 이해할 수 없었다. 본능적으로 그녀의 죽음을 직감하고 막으러 온 것 같았다.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왜?

호흡을 갈무리하는 아이작을 앨리스는 의문스러운 얼굴로 쳐다보았다.

“…뭐 하냐?”

아이작의 목소리는 싸늘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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