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214화 (214/334)

〈 214화 〉 앨리스 토벌전 (10)

* * *

악몽룡-재버워크의 복부가 절반 이상 갈라지고, 그 틈새로 매서운 한기가 들이닥쳤다.

그대로 악몽룡의 몸체는 꽁꽁 얼어 버렸고, 얼음의 바다로 무력하게 추락했다.

앨리스의 육신도 마찬가지였다. 서리낫의 고유 마도 [절대영도]는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므로.

어느새 베여버린 신체 틈새로 강력한 냉기가 파고들었다.

앨리스의 신체는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눈 깜짝할 새였다.

목에서 뻗어 나온 검붉은빛 마력의 날개가 흩어졌다. 등 뒤의 기괴한 양팔 또한 잿빛 가루가 되어 한풍에 흩날렸다.

목과 얼굴에 새겨진 낙인은 점차 희미해져 갔다.

더는 앨리스의 마력을 다룰 수 없게 된 메피스토는 그대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턱.

아이작은 단숨에 날아가 앨리스의 몸을 공주님 안기로 받아 냈다.

메피스토의 힘과 인격의 파편은 잿빛 가루가 되어 사라져 가고 있었다. 앨리스의 몸이 치명상을 입은 채로 통째로 얼어붙어 신체 기능이 완전히 정지된 까닭이었다. 마치 냉동 인간이나 다름없었다.

마지막으로 메피스토는 앨리스의 한쪽 눈가에 마력으로 일렁이는 기괴한 눈과 입을 만들어 버티는 게 고작이었다.

이제 그 마족은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었다.

메피스토는 마력으로 만들어낸 눈으로 아이작을 쳐다보았다. 마음마저 얼어붙을 듯한 싸늘한 적안이 메피스토를 담아내고 있었다.

메피스토는 허망한 웃음소리를 냈다.

[이거, 아쉽군요…. 하트 여왕의 몸으론 당신을 이길 수 없겠어요….]

메피스토의 마력이 희미해지자 마족 하수인들은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는 재해급 얼음 마수들과 뒤펜도르프 군대의 우세로 이어졌다.

뒤펜도르프의 함성 소리가 커졌다. 결국 치명상을 허용한 암익의 프레이야는 얼음 바다로 추락했고, 탐식의 하몬은 그대로 쓰러졌다. 모두 잿빛 가루가 되어 사라져 갔다.

곧 전쟁이 끝나리라.

…그렇게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말이죠…, 제가 가진 패는 이게 끝이 아니랍니다?]

메피스토는 마지막 남은 입으로 큭큭 웃었다.

[이름 없는 영웅이여, 이 이야기를 들어 주시길….]

휘우우우우우!!!

별안간 어마어마한 어둠 마력이 아이작의 머리 위를 메워갔다. 칠흑처럼 새까만 마력이었다.

아이작은 두 눈을 찌푸리고 고개를 들었다.

파아아앗!

어둠 마력은 뭉게뭉게 피어오르더니 삽시간에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백야를 몰아냈다.

아이작은 시야에 떠오르는 레벨 업 시스템 창을 고갯짓으로 치우고서, 하늘을 메운 어둠 마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뒤펜도르프의 전력 또한 마족의 군대를 모두 해치웠음에도 함성을 지르지 못하고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얼음의 바다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저와 계약했던 인간 중에,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지려 했던 어리석은 여인이 있었어요….]

메피스토는 입술을 달싹였다.

[여인은 저와의 계약으로 굉장히 아름다운 외모를 얻었고, 유명해지며 황제의 연심을 샀답니다. 그렇게 황후가 되었죠.]

칠흑의 하늘에선 오로지 아이작만이 홀로 빛나고 있었다.

고독한 광채였다.

[여인은 매일 거울에 대고 물었습니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지’…? 거울은 항상 그 여인이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답해주었죠…. 그래서 여인은 흡족한 삶을 이어나갔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여인은 황제와 사랑의 결실을 맺었어요. 그렇게 태어난 아기는 흰 눈처럼 새하얬고 정말로 아름다웠죠. 그리고 시간이 흘러, 여인은 거울에 대고 다시 물었어요.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지’…?]

메피스토는 쉰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거울은 대답했어요. 그 여인보다 스노우화이트 황녀가 더 예쁘다고…. 바로 여인의 딸이었답니다. 그 대답에 분노한 여인은 딸을 죽이려 했어요. 고작 자기보다 예쁘다는 이유로요…. 하지만 번번이 암살에 실패하더니 또다시 저를 찾았죠. 이미 분노와 원망, 열등감으로 얼룩져 버린 그녀의 마음은 딸의 영원한 불행을 바라고 있었답니다….]

힘이 약해진 괴묘-체셔를 쓰러뜨린 도로시와, 호룡-밴더스 내치를 쓰러뜨린 카야, 뇌신조를 타고 날고 있는 루체, 그 외에도 메르헨 아카데미에 있는 수많은 사람이 하늘을 쳐다보았다.

아득한 공포감이 고개를 치들었다.

“아이작!!”

“아이작…!”

“아이작 님!!”

저건 위험하다. 본능이 경고했다.

아무리 아이작이라고 해도 저런 걸 상대한다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었다.

하늘에 있던 도로시가 아이작을 향해 날아들었다. 뇌신조를 탄 루체, 그리고 카야는 섬에 전개된 보호막에서 벗어나 마찬가지로 아이작에게로 날아들었다.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가만히 있는 아이작을 어떻게든 데리고 도망쳐야만 한다고, 그녀들의 본능이 아우성쳤다.

“끅!”

“으으!!”

칠흑의 하늘이 연신 천문학적인 양의 마력을 폭풍처럼 퍼뜨리는 탓에 그녀들은 도중에 멈추고 버텨야만 했다.

고작 마력을 흘려내는 행위만으로 그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저는 그 여인에게 시계를 하나 주었답니다. 그 시계엔 스노우화이트에게 죽음보다도 끔찍한 최후를 안겨줄 수 있는 무시무시한 마족이 봉인되어 있었죠…. 바로 바닥이 없는 영원의 감옥에서, 평생 죽지 않고 살아가게 만드는 권능을 지닌 마족이었어요…. 여인은 정말 좋아했어요. 자기 딸이 영원한 고통 속에 머무르게 된다니. 우후후….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로 유쾌한 반응이었죠. 어차피 네피드 님께서 부활하실 테니, 그 전에 시계에 담긴 녀석을 여유롭게 풀어줄 생각으로 준 거였어요…. 절 즐겁게 해준 인간이었으니까요….]

메피스토가 황후에게 건넸던 회중시계.

스노우화이트가 어머니께서 주신 선물이라며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백금색 시계를 뜻했다.

[하지만…, 당신 같은 인간이 나타날 줄은 몰랐어요. 그래서 녀석을 예정보다 일찍 풀어주기로 했죠…. 저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녀석이라 고삐 푸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답니다…?]

메피스토의 눈에 희열이 번졌다.

[녀석은 나오자마자 스노우화이트를 잡아먹을 거예요. 다른 인간들도 잡아먹을 테고, 끝내 절망에 빠질 당신도 잡아먹고 말겠죠…! 막으려 해도 늦었답니다? 우후후, 이 얼마나 유쾌한 일인지…!]

메피스토는 마지막 남은 입으로 활짝 웃었다.

[이름 없는 영웅이여, 안녕히 계시길…. 부디 영원의 감옥에서 즐거운 여행…을….]

아이작은 고개를 숙이고 다시 메피스토를 바라보았다.

자기 이야기에 빠져 있던 메피스토는 아이작의 표정을 보더니 남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메피스토의 사라져 가는 입이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작의 얼굴에는… 어째선지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휘우우우우!!

칠흑의 하늘이 어둠 마력을 머금은 삭풍을 퍼뜨렸다.

도로시는 강력한 별빛 보호막을, 루체는 뇌신조와 함께 고밀도로 응축된 [뇌공의 결계]를, 카야는 피 속성과 식물 속성의 힘으로 [선혈의 나무]를 전개해 자신을 보호했으나.

어둠의 삭풍은 그 방어조차 가뿐히 뚫어 버리며 그녀들의 몸에 많은 생채기를 남겼다.

섬은 아이작이 펼친 빙결의 결계로 아슬아슬하게 보호 받고 있었다.

칠흑의 하늘에 가장 가까이 있던 아이작은 원소 팔찌의 [바람 속성 원소 저항력] 증가 효과와 강력한 냉기로 버텨 내며 무덤덤하게 그 자리를 지켰다.

원소 팔찌는 처음부터 그리 설정해두었다. 메피스토가 말한 ‘그 마족’이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아이작은 이미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말하지 않았냐?”

아이작의 목소리는 서리처럼 차가웠다.

“내가 너 찾아내서 죽인다고.”

[당신, 설마…?]

이 초월적인 마력을 느끼고도… ‘무저갱’을 쓰러뜨리겠다고 하는 건가?

“기다리고 있어.”

아이작은 살의 어린 적안으로 메피스토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 새끼 먼저 쳐 죽이고 너 잡으러 갈 거니까.”

화아아아악!!!!

아이작의 로브 안 주머니에서 짙은 어둠 마력이 새어 나왔다. 허공에 새겨져 가는 새까만 칠흑의 마력이 많은 눈을 번뜩이며 아이작과 앨리스의 육신을 노려보았다.

어째서 스노우화이트를 잡아먹으며 출현해야 할 ‘무저갱’이 아이작에게서 튀어나오고 있는 것인가? 메피스토는 엄청난 혼란을 느꼈다.

[어째서 그 시계를, 당신이…?]

마치 처음부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다는 듯, 아이작은 무저갱이 담긴 스노우화이트의 시계를 갖고 있었다.

격렬히 몰아치는 의문 속에서 메피스토의 마지막 남은 눈과 입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온전한 잿빛 가루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아이작 품에는 온몸이 얼어있는 앨리스만이 남겨졌다.

아이작은 앨리스를 한 손으로 꽉 끌어안은 뒤 남은 손으로 품 안에서 회중시계를 꺼냈다. 스노우화이트의 시계였다. 백금색이었던 그것은 어느새 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무저갱이라는 마족이 봉인되어 있던 시계. 고삐였다. 마침내 그 고삐를 풀고 녀석이 자유를 되찾은 것이었다.

아이작은 시계를 놓아주었다. 어둠 마력을 우르르 흘리는 그것은 하늘로 둥둥 떠올랐다.

이윽고, 칠흑의 하늘이 아가리를 쩍 벌렸다.

[영원의 옴]

Lv :■■■

종족 : 마■

속성 : 어둠, 바람,영원

위험도 :극■

심리 : [■]

마족 ‘영원의 옴’. 통칭 ‘무저갱’.

최상위 계급의 마족 중 하나. 벌써 등장해선 안 되는 적이었다.

아이작은 기억을 되짚었다.

화이트의 시계는 이미 무저갱을 내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메피스토가 직접 한 말대로, 이름 없는 영웅 때문이었다.

부유섬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메피스토가 이름 없는 영웅, 즉 아이작을 견제하기 위해 이른 시기에 무저갱의 봉인을 풀기 시작한 것이었다.

봉인이 풀려가는 그 시계를 아이작은 수시로 확인해왔다. 그리고 슬슬 무저갱이 나올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마침 시기도 적절했다. 메피스토가 노린 결전의 날은 바로 오늘이었을 테니.

그리고 메피스토의 반응을 보고 아이작은 무저갱이 오늘 튀어 나오리라고 완전히 확신했다.

아이작은 칠흑의 하늘, 무저갱을 바라보았다. 호승심이 그의 눈동자에 깃들었다.

새까만 존재, 무저갱은 아이작이라는 탐스러운 먹잇감이자 강력한 적수를 앞에 두고 흥분했다. 그 감정이 아이작에게 전해졌다.

아이작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 한 판 붙자.”

「9막, 앨리스 토벌전」.

그 마지막 전투를 시작하자.

구우우우우!! 콰작!

무저갱, 영원의 옴은 아이작과 앨리스를 집어삼켰고.

그들을 향해 날아가던 도로시와 루체, 카야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내려앉았다.

단 한순간에, 일대를 에워싸고 있던 아이작의 막대한 마력이 거짓말처럼 사그라졌다.

* *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