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222화 (222/334)

〈 222화 〉 앨리스 토벌전 - 막간 (1)

* * *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학생회장 앨리스 캐럴의 최후는 빈말로도 좋지 않았다.

자살한 뒤로 내통자이자 범죄자로서 온갖 욕설과 저주를 받았으니까. 순전히 악역 취급이었고, 그녀의 묘비는 산 구석에 빈약하게 세워졌다.

팔라딘은 황국에 붙잡힌 후로 소식을 알 수 없었다. 다만, 맵을 탐사하다 보면 그들이 고문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유추할 수 있는 단서가 있었다.

커뮤니티에선 팔라딘이 황국의 고문과 추궁에도 굴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다 끝내 자결했다는 게 정론으로 굳어졌다.

‘결국, 이렇게 됐네.’

앨리스와 팔라딘은 살았고, 내 수하가 되었다.

예상 밖의 결과였다. 내가 생각했던 건 대등한 협력 관계였지, 주종 관계가 아니었으니까. 나야 좋은 일이었다.

또한, 앨리스는 트럼프 병사를 소환해 하트 왕국이 무사하다고 보고 받았다. 앨리스와 팔라딘은 안도했다.

약 1년 뒤에 악신이 부활하므로 계약의 메피스토는 미리 준비하고자 이 세계 어딘가에 머무르고 있을 터. 내가 무저갱을 쓰러뜨리고 나타났으니 도망쳤을 가능성도 상정해야 했다.

상귀-메르뷸과 일부 병사에게 메피스토가 있을 만한 곳, 녀석의 특징과 생김새 따위를 알려주었다. 이후, 메피스토를 찾으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들은 내게 명령 받아서 기쁜지 강한 의욕을 내보이며 아카데미를 떠나갔다.

「9막, 앨리스 토벌전」은 그리 막을 내렸다.

이튿날에도 해는 수평선 너머로 자연히 떠올랐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토벌대는 황실 기사단과 함께 아카데미에 남았다. 그곳에 남으라는 황명 때문이었다.

앨리스 캐럴 사건의 중심지였던 바르토스관은 출입 금지 구역이 되었다. 사건 현장을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그 외에도 부서진 건물 몇 채는 아카데미에서 곧바로 복구 작업에 착수했다.

아카데미 학생과 교직원, 헤겔 마탑 마법사, 섬 주민들이 돌아오며 교정은 예전의 정취를 되찾았다. 그러나 아카데미는 앨리스 캐럴 사건을 수습해야 했기에 며칠간 휴강한다는 공지를 전교생에게 전파했다.

교장 엘레나 우드라인과는 시간을 내서 짧게 면담했다. 그녀는 내가 무저갱 안에 있는 동안 벌어졌던 일과 도로시 폭주 사건의 경위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지?’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도로시가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 별빛 마력이 폭주하는 일은 없었다. 즉, 금시초문이었다.

일단… 그건 나중에 도로시와 함께 알아볼 일이었다. 지금은 휴식이 먼저니까.

도로시와 루체, 카야는 사태가 종료되자 많이 피곤했는지 곧바로 기숙사로 가서 잠을 청했다. 벌써 이틀째. 잠만 잘 기세였다.

나 구해보겠다고 그리 된 것이었으니, 슬픈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교장 엘레나, 부단장 마그리오와 협의하여 아카데미 구치소 건물 하나를 일시적으로 단독 점유하기로 했다. 앨리스 캐럴과 팔라딘을 구속한 채 그곳에 두려는 목적이었다.

앨리스는 자기 의지로 구치소에 있겠다고 했다.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 뜻을 존중하고 구치소 방을 하나 내줬다.

어쨌든, 아카데미 구치소에는 뒤펜도르프 일부 병력을 배치해 교대 근무로 경비를 서게 했다.

나머지 병력은 뒤펜도르프로 돌려보냈다. 그들은 국민 모두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한 뒤 왕위 즉위식을 준비해야겠다고 했다.

굉장히 기뻐 보였다.

소환한 이후에 계약을 맺었던 터라 그들을 뒤펜도르프로 역소환할 수는 없었다. 내가 마력 소모 없이 녀석들을 이곳에 둘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미안해지네.

그나저나.

‘뒤펜도르프라….’

내 목적을 위해 무거운 무게추 같은 큰 책임을 하나 짊어진 셈이었다. 영 실감이 안 났다.

당연히 그 책임에서 회피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오히려 왕으로 떠받들어준다고 하니 나야 좋을 따름이었다.

방학에 뒤펜도르프에 들려 왕위 즉위식을 진행해야겠지. 그들이 나를 기다려온 만큼 그 기대에 보답하고 싶었다.

빙퇴웅-바르바토마와 태동악-투가로스는 저마다 자연 어딘가로 돌아갔다. 몸집도 크고 생긴 것도 무서운 녀석들이 내 하수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이제는 꽤 귀엽게 느껴졌다.

성녀 비앙카 앙투라제는 내게 전할 것이 있다며, 일이 잘 수습되고 여유가 생기면 교회로 와 달라고 부탁했다. 긴히 할 얘기가 있다고도 했다.

‘걔는 또 뭐냐.’

성녀 비앙카. 되도록 엮이고 싶지 않은 인물이지만, 음습한 의도가 없다는 걸 알아챘기에 일단 알겠다고 답했다.

아카데미 게시판 앞엔 학생들이 옥시글거렸다. 휴강 공지 외에도 중요한 공지가 걸린 까닭이었다.

그 공지엔 ‘내통자가 붙잡혔고,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자 황실 기사단과 협력하여 사건을 조사하는 중이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결국, 학생들 모두 내통자 이야기로 왈가왈부하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학생회장님이 그러실 리 없다거나 객관적인 사실을 보라거나, 게시판 앞에 모인 학생들은 언쟁을 벌였다.

‘이때 자퇴자 좀 나왔던가?’

게임에서 「앨리스 토벌전」 이후로 자퇴자가 몇 명 나왔더라. 이딴 사건사고만 터지는 아카데미에 더는 못 다니겠다며 졸업장 수혜를 포기한 녀석들이 조금 있었지?

아마 수 명? 꽤 적은 숫자였다. 모든 원흉이라고 여겨졌던 ‘내통자’가 붙잡혀서 이제는 괜찮으리라고 전망한 학생이 많았던 까닭이었다.

무지에서 비롯된 안도감이었다.

‘[영원의 비석]이 뭔지 안다면 안 그러지.’

앨리스가 발동하려 했던 [영원의 비석] 효과를 알았다면, 여기서 무서운 게 부활한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을 테니까.

그 마법이 뭔지 아는 사람은 극소수다. 앨리스에게 물어보니, 그녀도 메피스토를 통해 알았다고 했다.

게임에선 숱한 조사 끝에 나중에야 그 마법이 뭐였는지 밝혀지는데, 윗선에선 즉시 그 정보를 특급 비밀에 부쳤다.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덕분에 혼란을 최소화하고, 적절한 시기에 사람들을 대피시킨 뒤, 악신 토벌전에 대비할 수 있었으니까.

즉.

‘함구하는 편이 좋을 거야.’

안 그러면 엄청난 혼란을 불러 올 터.

나는 그 혼란이 불러 올 악영향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앨리스, 팔라딘과 미리 말을 맞춰둘 필요가 있으리라.

수업이 없었기에 학생들은 마치 휴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일상을 보냈다. 그러나 내가 교정을 거닐 때면, 길을 지나던 학생들은 내게 경외심 어린 시선을 보내 왔다.

[멸악자]가 발동된 모습을 실시간으로 전교생에게 보여주기도 했고, 원왕이라는 신분을 얻기도 했으니 그럴 만했다.

심지어 카를로스 황제가 아카데미에 왕림할 예정이라는 소식까지 더해져 내 이야기는 전교생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황제가 아카데미에 친히 행차하시는 이유가 나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그 탓에 되도록 인적이 드문 길을 이용했다. 과한 관심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다시 수업이 시작되는 날이 두려워졌다.

‘이건… 아직 좀 멀었네.’

교정을 걷던 중, 품 안에서 회중시계를 꺼냈다.

무저갱의 봉인이 풀린 스노우화이트의 백금색 시계.

「앨리스 토벌전」까지만 해도 새까맣게 변해 있던 그것은 서서히 백금색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무저갱이 소환되고 녀석에게 잡아먹히기 직전, 마법으로 이 회중시계를 낚아챘다. 화이트에게 돌려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돌려주진 않을 생각이었다. 이 시계에 얽힌 이야기를 카를로스 황제에게 들려 줘야 할 테니까.

……

[ 상 태 ]

이름 : 아이작

Lv : 150

성별 : 남

학년 : 2

칭호 : 빙제

마력량 : [ ※ 마력 고갈 상태입니다. ]

- 마력 회복 속도(A+)

- 체력(A+)

- 근력(A+)

- 지력(A)

- 정신력(S)

잠재력 <<상세>>

[ 전투 능력 ]

원소 계열 1 : 얼음

- 원소 화력(A)

- 원소 효율(A+)

- 원소 시너지(A)

원소 계열 2 : 바위

원소 화력(A-)

원소 효율(A-)

원소 시너지(B+)

[ 고유 특성 ]

- 멸악자

- 무기술사

- 마법 기사의 극의

- 일취월장

“나 왔어.”

“어서 와, 애기야.”

아직 카를로스 황제가 오기 전이었다.

낮마다 아카데미 구치소에 있는 앨리스 방을 들렸다. 그녀는 팔라딘에게 자신이 구치소에 감금되어 있다는 사실을 비밀로 해달라 했기에, 따로 몰래 감금된 상태였다.

아카데미 구치소는 큰 사고를 벌인 학생을 구금하는 장소로, 살벌한 느낌이 전혀 없었다.

고풍스러운 멋이 있다고 해야 할까. 상대가 학생이다 보니 형벌보다 갱생에 초점을 맞춘 곳이라 그러했다.

우리는 무저갱에서 보냈던 시간이 부족하기라도 했던 것처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함께 이런저런 놀이를 하며 웃기도 했고, 내가 음식을 만들어 함께 식사하기도 했다.

“주인님께 이런 호사스러운 대접을 받아도 될지 모르겠네.”

“호칭 뭐냐….”

“주인님 맞잖니?”

“어색해.”

“그럼 애기라고 불러주는 게 좋았니, 애기야아?”

“그렇게 애교스럽게는 안 불렀잖아.”

앨리스는 연신 장난치면서 예전처럼 나를 대했다. 내가 왜 매일 찾아오는지 이해한 모양이었다.

그러다 할 말이 떨어지면 우리는 나란히 벽에 붙어 앉아 시간을 보냈다. 그때는 마력기를 쥐고 미량의 마력으로라도 마력 운용력을 단련하며 앨리스 곁을 지켰다.

앨리스는 툭툭 내뱉듯 말장난을 쳤고, 나는 그 장난을 받아주었다.

앨리스에게는 정말로 많은 생각이 드는 시간일 것이었다. 그러니 그녀 곁에 있어 주고 싶었다. 이제는 내 하수인이 되었으니 더더욱.

‘상태 점검이나 할까.’

앨리스 옆에서 생각을 정리하기로 했다.

이번 「앨리스 토벌전」은 어마어마한 성취를 안겨 주었다.

레벨은 앨리스와의 승부에서 승리하자 2 업, 메피스토 분신과 마족 군대 이기고 8 업, 무저갱 이기고 15 업. 총 레벨 25가 올랐다.

마력은 여전히 고갈 상태였지만, 이제까지의 성장 속도를 감안 하면 최대 마력량은 ‘95,300’ 정도 뜰 것이었다. 레벨 151부터는 마력량 증가 속도가 또 가파르게 오르겠지.

칭호는 어느새 ‘빙제’로 바뀌어 있었다. 추측컨대, 상화의 검을 사용하고 바뀐 듯했다.

시스템이 내 처지에 맞추어 칭호를 하사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또한, 달성한 업적은 2개였다.

앨리스 상대로 환상 시계를 부수는 데 성공하며 업적 [시간의 수호자]를 달성했다. 보상으로 보너스 스탯 15 얻었다.

무저갱을 쓰러뜨리며 전설 업적 [영원 초월]을 달성했다. 보상은….

‘이건데….’

스킬 목록을 확인했다. 새로운 중립 속성 마법이 생겨나 있었다.

8성급 마법, [미궁 창조].

이름 그대로 미궁을 만들어 내는 마법. 무저갱을 쓰러뜨리자마자 내 머릿속에 흘러들어온, 녀석의 힘이었다.

[미궁 창조]는 [빙화신궐] 같은 영역 지배 마법과 융합해서 써먹을 수 있다. 즉, 얼음 미궁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요구되는 마력량은 더럽게 높겠지만, [대 종족 전투력]으로 강해져서 써먹으면 그만이었다.

‘하나 아쉽네.’

원래 메피스토와 마족 군대를 쓰러뜨리면 전설 업적 [패왕]을 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메피스토 본체를 쓰러뜨리지 못한 까닭인지 아직 업적 달성 조건이 미충족된 듯했다.

메피스토는 찾아내는 즉시 잔혹한 최후를 맞이하게 할 것이었다. 그때가 오면 [패왕] 업적도 자연스레 달성되겠지.

‘[대 종족 전투력]은….’

[대 인간 전투력]은 여전히 스탯 80에서 멈춰 있었다. [대 천족 전투력]은 0. [대 이종족 전투력]은 쓸데없이 1이 찍혀 있었다.

현재 잔여 스탯은 무려 115. 메피스토의 마족 군대와 무저갱을 먼저 토벌한 덕분에 얻은 성과였다. 덕분에 다음 학기가 전해주는 불안감을 덜 수 있었다.

이제 다음 학기에 출현하는 건 천족과 요정, 그리고 마족인 사령의 칼가르트와 사멸의 타나토스였다.

사멸의 타나토스는 이안이 [낙원추방] 안 갈겨주면 모든 공격이 먹히지 않는다. 따라서 이안의 역할이 중요해질 터.

‘이제 천족이랑 요정이 문젠데.’

천족과 요정에 대비하기 위해 스탯 분배는 일단 보류해둘 생각이었다. 일이 또 어떻게 꼬일지 모르니까.

따라서 [대 인간 전투력]을 최대치까지 찍는 건 나중으로 미뤄둬야겠지.

어차피 인간 상대로 진심으로 싸우려 하면 내 임시 레벨은 190까지 오르고 그만큼 능력치도 강해진다.

‘그 정도면 넉넉하지.’

물론 만일의 경우, [대 인간 전투력]을 최대치까지 찍어야만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그런 경우는 가능한 한 피해야 할 것이었다.

“아.”

슬슬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이제 곧 카를로스 황제가 도착하기 때문이었다.

“곧 황제 올 시간이라, 가 볼게.”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앨리스도 덩달아 일어났다.

“응, 조심히 가렴. 와줘서 고마웠단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앨리스에게 주고 싶은 것이 있었다.

“이거 괜찮냐?”

“응?”

품 안에 있는 포장지에서 액세서리를 빼내 앨리스에게 건넸다. 검은 초커였다.

의상 상점이 영업을 재개하였기에 어젯밤에 사둔 것이었다.

가장 무난한 디자인으로 골랐지만, 만약 디자인만 마음에 안 들 뿐이라면 나중에 같이 새로운 걸 살 생각이었다.

“낙인을 보이고 다닐 순 없으니까 일단 사 왔어. 싫으면 말해.”

초커를 직접 끼워주지 않고 앨리스의 반응을 기다렸다.

트라우마를 자극할지도 모르니까. 만약 그렇다면 사과하고 초커를 버릴 생각이었다. 단지 초커가 앨리스 취향이라 생각해 사온 것일 뿐.

앨리스는 아무 말 없이 초커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여러 생각이 드는지 잠시간 멍한 얼굴을 했다.

불편한 정적이었다. 지금이라도 초커를 치우는 게 맞을까…?

“…히.”

이윽고, 앨리스는 특유의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초커를 받아들였다. 그러더니 연금발 안쪽으로 손을 넣어 초커를 목에 둘렀다.

초커는 앨리스 목에 새겨진 연푸른빛 낙인을 가렸다. 잘 어울렸다.

“잘 쓸게, 애기야.”

앨리스의 뺨이 살짝 상기되었다.

그 온화한 미소에 나는 안도감을 느끼며 미소 짓고 떠날 수 있었다.

* * *

아이작이 떠나간 자리.

짙은 적막이 맴돌았다.

앨리스는 무덤덤한 얼굴로 벽에 걸린 거울을 쳐다보며 목에 끼운 초커를 만지작거렸다.

질감이 부드러웠다.

“아, 이런….”

여전히 자신은 누군가에게 속박된 채였다.

하지만 이제는 원망스럽고 저주스러운 속박이 아니었다.

앨리스는 고개를 숙였다.

“기쁘네….”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초커가 전해주는 감촉이, 목에 살며시 느껴지는 미약한 압박감이 앨리스는 썩 마음에 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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