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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229화 (229/334)

〈 229화 〉 변화 (3)

* * *

“손만 잡고 잘게.”

정통적으로 그 말이 구라일 확률은 백 퍼센트였다.

내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도로시는 내게서 떨어졌다.

일어서서 도로시를 쳐다보았다. 무조건 안 된다고 말하려 했지만, 그녀의 얼굴이 제대로 시야에 담기자 말문이 턱 막혔다.

거친 호흡을 간신히 참아내는 모습.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왜 그래, 아이작?”

나는 도로시 이마에 손등을 올렸다. 남은 손은 내 이마에 갖다 대었다.

체온이 높다. 이미 높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생각 이상으로 높았다. 아직도 이 지경이었나.

가슴 아파오고 한숨이 푹 새어나왔다.

“하아….”

나무로 가서 옷가지를 집어 들고 옷을 입었다.

“안 들킬 자신 있죠?”

도로시는 내가 단번에 허락할 줄 몰랐는지 잠깐 놀라더니, 이내 배시시 웃었다.

“당연하지. 남몰래 교칙을 위반하는 건 내 전문 분야라구?”

벌점 만점이 할 얘기는 아닌 것 같았다.

……

“샤워 가운 있지?”

“네, 있어요.”

“니히히, 누나 씻고 나올게!”

중상위권 기숙사, 엘마관.

방에 도착하고 몸을 씻었다. 그동안 도로시는 내가 열어둔 창문으로 몰래 들어오기로 했다.

아지트는 안 간지 시간이 꽤 흘렀기에 가 봤자 청소부터 해야 할 터. 그래서 기숙사로 온 것이었다.

욕실을 나서자마자 어느새 내 방으로 들어온 도로시가 천하태평하게 씻으러 들어갔다. 당연히 자기 방에서 씻고 올 줄 알았는데.

‘일단….’

도로시가 씻는 동안 이것저것 준비하기로 했다.

침대 옆에 있는 수납장 위엔 아로마가 든 병이 놓여 있었다. 뚜껑을 열자 좋은 향이 피어났다.

내가 수면 시간마다 조금이라도 숙면을 취하려고 애용하는 연금 도구였다.

옷을 대충 입은 뒤 바가지를 챙겼다. 그 안에 차가운 물을 받고 수건을 적셨다.

준비 끝.

침대 옆, 벽면에 기대고 서서 도로시를 기다렸다.

“개운해…!”

샤워를 마친 도로시는 콧노래를 부르며 욕실을 나섰다. 샤워 가운만 달랑 걸친 모습에 먼저 눈 호강부터 했다.

티를 안 내려 했는지는 몰라도, 도로시가 욕실 안에서 기본적인 화장을 마쳤다는 건 알아차릴 수 있었다.

도로시는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으면서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능청맞게 웃었다.

“왜 그렇게 홀린 듯이 쳐다봐? 누나가 그렇게 섹시해?”

도로시는 일부러 가냘픈 한쪽 어깨를 드러내며 장난쳤다.

곧바로 나는 도로시에게 다가가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어? 아, 아이작?”

별안간 도로시의 목소리에 당혹감이 서렸다.

마법을 안 쓰면 내 힘에 저항 못 하는 도로시는 그대로 밀려났다.

“침대로 가요.”

“버, 벌써? 누나 아직 마음의 준비 안 됐는데…!”

뭔 소리냐.

나는 도로시를 침대에 눕혔다.

위에서 도로시를 내려보았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 내 눈을 응시하는 도로시의 눈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 말 많던 도로시가 입을 다물고 마른침을 연신 삼키며 정적에 몸을 맡겼다.

“…….”

도로시의 떨리는 눈이 옆으로 돌아갔다. 긴장한 기색을 보이면서도 그녀는 점차 몸에 힘을 풀었다. 이제는 마음의 준비란 게 된 모양이었다.

샤워 가운이 풀려 가슴골이 훤히 보였다. 샤워 가운을 싸매자 도로시는 흠칫 놀랐다.

그대로 나는 침대에서 내려가 도로시의 몸 위로 이불을 덮어 주었다.

“응?”

도로시는 어리둥절한 기색을 보였다.

미리 준비해 둔 바가지에서 수건을 꺼내 물기를 짜낸 뒤, 곱게 접어 도로시의 이마에 올려주었다.

그제야 도로시는 내 의도를 눈치챘는지 도끼눈을 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됐고.

체온계로 도로시의 체온을 재보았다.

‘역시 고열이네.’

별빛 마력이 폭주했을 때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고통스러울 수준이었다. 두통이 상당히 심할 터였다.

“도로시 선배, 왜 말 안 했어요? 아직도 열이 이 정도란 거. 저한테 엘라라도 보내서 알려줬으면 좋았을 텐데.”

“…….”

“선배?”

도로시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뱉었다.

“날이 아니었네….”

도로시도 내 동료이기에 이미 카야에게처럼 단언해 두었다.

3학년 때 목표를 이룰 때까지 대놓고 연애하거나 깊은 애정 행각을 벌이는 건 되도록 피할 생각이라고.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날 유혹했을 정도다. 여간 외로워서 그런 게 아니겠지. 맥 빠지겠지만 미안할 따름이었다.

분위기를 풀고자 시답잖은 이야기를 꺼냈다.

“…아픈데 닭은 2마리나 드셨네요.”

“맛있잖아. 그리고 평소보다 많이 먹으면 몸이 더 빨리 나아지지 않을까, 싶었거든.”

별빛 마력이 폭주했던 날 이후, 도로시는 몸이 아픈 상태로 기숙사에 혼자 틀어박혀 며칠을 보냈다. 별빛 마력이 또다시 폭주할걸 우려해 결계까지 전개한 채로.

별빛 마력이 반발하여 교회나 병원에서 치유 마법이 먹히지 않았던 탓에, 자연적으로 몸이 회복되길 홀로 기다렸던 것이었다.

분명 학사 메이드의 접근도 차단됐으리라.

아플 때 혼자 있는 건 몹시 쓸쓸한 일이다. 도로시가 나와 대화하고 싶다며 늦은 시각에 찾아온 데엔 최근 며칠간 아픈 몸으로 외롭게 지냈던 까닭도 클 것이었다.

‘이러면 내가 더 미안해지잖아.’

램프의 빛 가리개를 조절했다. 은은한 불빛만이 어두운 방 내부를 비추었다.

이윽고, 도로시 이마에 놓인 수건이 데워졌다. 수건을 다시 물에 적시고 짜낸 뒤, 내 냉기를 흘려 시원하게 만들었다. 그대로 그 수건을 다시 도로시 이마에 올렸다.

“그래도…, 기분이 꽤 나쁘지 않네.”

도로시는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았다. 긴장감이 완화되고 기분이 아늑해졌는지 목소리가 편안해졌다.

시간이 흘렀다.

도로시 옆에 의자를 두고 앉아 책을 읽던 중, 그녀가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작.”

“네.”

“하나 해주고 싶었던 얘기가 있어.”

책에서 눈을 떼고 도로시를 쳐다보았다.

“누나 진짜 이름 따로 있다?”

“이름요?”

도로시의 진명. 알고는 있었지만, 모르는 척했다.

“‘도로시 게일’이야. 내 이름.”

“게일…? 지금은 왜 하트노바입니까?”

“그건 어렸을 때 지은 모험가 명이야. 가족이랑 고향 전부 잃고, 시한부 돼서 혼자 남겨졌을 때…. 어떻게든 모험가 일로 먹고살 순 있었어. 스텔라가 준 힘 덕분에. 요정의 힘이란 게 솔직히 복잡한 계산이 필요가 없거든. 그래서 가능했지. 그때 하트노바란 이름으로 활동했어. 모험가 하트노바.”

도로시는 작은 목소리로 웃었다.

“어렸을 때 지었던 별명이라, 조금 별났지? 외숙모, 외삼촌, 토토, 고향 사람들…, 떠올리기만 해도 너무 힘들더라구. 그래서 이름이라도 버리면 조금은 나아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거야. 점점 하나씩 잊어가다 보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남은 게 고작 몇 년 안에 죽으리란 시한부 낙인밖에 없었던 도로시는 혼자서 각박한 세상살이를 견뎌야만 했다.

가족과 고향 사람들이 떠오를 때마다 도로시는 마음이 무너질 것 같은 기분을 느꼈을 것이었다.

“나중엔 좀 무뎌졌어. 어차피 곧 그분들 따라갈 거라고 생각하니까, 떠올리는 게 망설여지지 않더라구.”

선명한 고통이 어언 어렴풋해질 때까지, 도로시는 꿋꿋하게 살아왔다.

광원 하나 없이 홀로 어둑한 삶의 길을 걸었다. 그 짧은 여정의 끝자락에 도로시를 반길 건 먼저 떠나버린 이들을 뒤따라갈 수 있는 드높은 낭떠러지뿐이었다.

사는 의미조차 알 수 없는 인생이었으나, 도로시는 기어이 무너지지 않았다.

비록 위태로웠을지언정, 그 끝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즐겨보기로 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도로시는 삶의 끝자락에 도달했고.

“그러다 널 만나버렸어.”

나는 낭떠러지 앞에서 도로시를 맞이했다.

도로시의 여정을 좋아했고,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그걸 난 뭐라고 부르는 줄 알아?”

“뭐라 부르는데요?”

여전히 도로시는 고열이었다.

달아오른 얼굴로 나를 쳐다본 도로시는 세상 예쁘게 웃었다.

“기적.”

……

도로시는 잠들었다.

나는 침대 옆에 의자를 두고 앉아 바위 원소 마법 서적을 읽으며, 수시로 도로시 이마에 놓인 수건을 차갑게 적셔 도로 놓았다.

어느덧 밤이 깊었다. 평소에 루틴을 지키려다 보니 이 시간대가 되면 졸음이 급격히 몰려왔다. 책이 안 읽히고 고개가 자꾸만 꾸벅거렸다.

‘잘까.’

엘마관이라 침대는 널찍한 편이었다. 나는 도로시 옆에서 잠들려고 했다.

그때.

똑똑, 하고 창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깜짝 놀랐네….

창밖엔 괴묘-체셔가 허공을 떠다니고 있었다.

나는 침대에서 내려가 창문을 열었다. 괴묘는 찢어진 입으로 씨익 웃었다.

[니옹, 아이작 잘 있었니?]

“체셔, 되게 일찍 돌아왔네?”

[어서 네가 보고 싶었거든! 그래서 부리나케 날아왔지.]

괴묘-체셔는 창틀에 앉더니 도로시를 발견했다.

[도로시? 저 무서운 앤 왜 여기 있니?]

“사정이 좀 있어. 앨리스는?”

[당연히 같이 왔지.]

아카데미는 앨리스가 마족에게 이용 당했다고 공론화할 계획이었다. 앨리스의 오명을 씻어내기 위해서였다.

평소 앨리스가 쌓아둔 선한 행실 덕분에 많은 학생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터.

다만, 표면적으론 아직 사건 조사 단계였으니. 일이 잘 풀릴 때까지 앨리스는 학생들 눈에 띄어선 안 됐다.

“미안한데, 아직 앨리스 문제는 해결 못 했다. 이렇게 빨리 돌아올 줄 몰랐어.”

[괜찮아. 대신 앨리스를 안으로 들여도 될까? 우리가 지금 갈 데가 없잖니.]

“어?”

[앨리스, 된대.]

허락 안 했잖아.

그러나 마땅한 해결책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기에 곧바로 따질 수 없었다.

앨리스는 출입 금지 구역이 돼 버린 자기 방으로 돌아갈 형편이 안 되니까. 게다가 아지트는 더러웠고, 앨리스를 밖에 놔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앨리스 캐럴은 염동력으로 올라왔다. 나는 하릴없이 그녀를 방으로 들였다.

“안녕, 애기야.”

“앨리스….”

앨리스는 웃는 얼굴로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키스했던 기억이 떠올라 화끈거리는 감각이 올라왔지만, 차분한 표정을 유지했다.

괴묘-체셔는 창문을 닫았다.

“빨리 왔네.”

“애기가 빨리 오라고 했으니까. 잠깐 신세 져도….”

앨리스는 침대 쪽을 쳐다보더니 말을 멈췄다.

“도로시네?”

앨리스는 미적지근하게 말했다.

“아픈 상태라 내 방에 들였어.”

“보면 안단다.”

앨리스는 도로시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침대에 앉더니, 도로시 뺨을 손가락으로 어루만졌다.

“아직도 열이 다 안 내려갔나 보네.”

“응. 거기다 별빛 마력이 반발해서 치유 마법도 안 먹힌다더라.”

“특이하구나.”

나는 앨리스 옆으로 가서 도로시 이마에 놓인 수건을 갈아준 뒤,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미안하다. 바로 돌아왔는데 못 챙겨줘서.”

“히, 괜찮아. 그 말만으로 고맙단다. 근데 애기 많이 졸려 보이네?”

“어, 좀 피곤하다. 원래 이때 잘 시간이라.”

하품이 연신 새어 나왔다.

그 모습을 본 앨리스는 싱긋 웃더니 침대에서 일어났고.

내 뒤로 가더니 내 어깨를 휘감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뒤통수가 앨리스의 가슴에 잠기며 두 눈이 크게 뜨였다. 몹시 말랑말랑하여 의지와는 무관하게 황홀한 쾌감이 느껴졌다.

고개를 뒤로 젖히자 나를 자상한 미소로 내려다보는 앨리스와 눈이 마주쳤다.

“뭐 하냐?”

“보면 알잖니? 애기도 기댈 곳이 필요해 보이니까. …자장가 불러줄까?”

“적응 안 된다, 너….”

“뭘 새삼스레.”

꽤 들떠 보이네.

어느덧 앨리스하고는 거리감이 확 줄어 버린 기분이었다.

“아…, 조금 부끄럽겠구나. 좋아하는 도로시 앞이라.”

깨달은 척, 앨리스는 숨소리 섞인 목소리로 내숭을 떨었다.

“애기야. 도로시…, 지금 잠들어 있는데.”

고혹적인 목소리.

특유의 상냥한 미소가 오늘따라 응큼하게 보였다.

“앨리스, 너 지금 무슨 생각 하냐?”

“야한 생각.”

“뭐?”

저돌적인 대답에 순간 헛숨을 집어삼켰다. 얘가 지금 뭐라는 거냐…?

그때 스륵, 하고 무언가가 이불에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와 앨리스는 침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엘라?”

언제부턴가 침대 위에서 하얀 고양이 마수가 도끼눈을 뜨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도로시의 사역마, 엘라였다.

“끄으….”

곧 도로시가 한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신음을 흘리며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이마에 놓여 있던 차가운 수건이 떨어지고.

흐트러진 연보랏빛 머리칼 너머, 싸늘한 별빛 눈동자가 나를 뒤에서 껴안은 앨리스를 직시했다.

“도로시, 좋은 아침.”

앨리스는 도로시와 눈을 마주한 채 씨익 웃으며 나를 자기 가슴에 더욱 꼭 끌어안았다.

무거운 공기가 흘렀다.

얼떨결에 나는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라도 하는 것 같은 아찔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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