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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236화 (236/334)

〈 236화 〉 사전 답사

* * *

이브 로펜하임은 로펜하임 남작령으로 돌아가기 전에 아이작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가기로 했다.

아이작이 걷는 방향을 보건대, 그가 가려는 목적지는 훈련장이 분명했다. 대마법사이면서 방학식 날에도 단련에 열을 올리는 모습은 꽤 상식적이지 않았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무 뒤에 몰래 숨어서 아이작의 얼굴을 본 순간 이브의 마음은 녹아내렸으니.

‘사랑스럽다….’

얼굴에 마구 키스해주고 싶은 충동이 북받쳐 올랐다. 온종일 곰 인형처럼 동생을 껴안고 살아가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다.

나이 18살의 듬직한 사내이자 원왕인 아이작에게 그런 애 취급은 실례겠지만, 여전히 동생이 애처럼 귀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역시, 선뜻 나설 수 없었다. 단지 이브는 아이작이 먼저 다가와 주길 상상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대마법사는 발산되지 않는 마나도 감지할 수 있는 초월적인 마나 감지력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그 능력으로 부디 제 존재를 아이작에게 들키길 바라고 만다.

그렇게 한 마디라도 말을 섞었으면 좋겠다고 이브는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아이작은 그저 무덤덤하게 교정을 가로지를 뿐이었다.

얼마 안 가 아이작은 훈련장으로 들어갔다.

“아휴….”

이브는 나무를 껴안고 탄식했다.

* * *

방금 이브 로펜하임이 날 지켜보는 걸 알아챘지만 무시했다.

누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애당초 아이작이 자살할 때까지 좋지 않은 사이였던 게 분명하니까.

아직 어렴풋이 남아 있는 아이작의 감정이 이브에게 거부감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렇다면 굳이 악신 토벌에 도움 안 되는 복잡한 가정사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텅 빈 훈련장에 도착해 단련을 시작했다. 잠시 뒤, 이브가 마차를 타고 아카데미를 떠나는 모습을 [천리안]으로 확인했다.

‘저 누나가 로펜하임 남작가였지?’

이브는 로펜하임 남작가에 입양되어 로펜하임이란 성을 얻었다. 내가 괴묘-체셔를 보낸 곳도 제르베르 황국의 변두리에 위치한 로펜하임 남작령이었다.

다만,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로펜하임 남작가는 사령의 칼가르트와는 아무 상관도 없었다.

단지 녀석이 출현하는 장소가 로펜하임 남작령에 있는 어느 폐교회였을 뿐.

뭐, 그런 건 됐고.

‘이제부턴….’

신경 쓰이는 사람도 떠났고, 아카데미에 머무르는 학생도 거의 없으므로 몸집이 큰 사역마를 소환해도 별다른 문제는 없으리라.

“힐드.”

화아아아아!

뒤로 백옥빛 마력이 응집되더니 백룡의 형상을 이루었다. 빙설룡-힐드였다.

집채만 한 크기. 이 역시 본체보다 작았지만, 평소 해츨링으로 다닐 때에 비하면 훨씬 컸다.

[불렀나, 주인?]

빙설룡은 연푸른빛 눈동자로 나를 가까이서 바라보며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빙설룡이 머리를 숙이자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냉기로 뒤덮인 단단한 비늘의 감촉. 녀석은 내 손길을 한껏 즐기려고 눈을 감았다.

“오늘부터 다시 쭉 소환한 상태로 둘 거야. 예전보다는 자유로울 거고.”

어차피 단련할 거라면 저번처럼 빙설룡과의 융화력을 탄탄히 기르는 데 주력하고 싶었다.

적어도 3학년이 되기 전에 빙설룡과의 융화력을 최대치까지 찍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사역마가 본래 몸집에 가까울수록 융화력이 더 빠르게 올라간다. 어차피 아카데미에 내 정체를 깠으니 이 정도 크기로 소환해도 괜찮을 것이었다.

가끔 더 넓은 곳에 가서 빙설룡을 온전한 크기로 소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앞으로 매일 내 몸을 만져 주겠단 건가? 좋다. 보답으로 나도 매일 애교를….]

“그건 괜찮아.”

단답했다.

빙설룡은 고운 아가씨처럼 점잖은 쪽이 잘 어울리는 목소리라, 애교가 영 어울리지 않았다. 꼭 안 맞는 옷을 입는 것처럼.

빙설룡은 눈을 좁히곤 삐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애교를 부려 달라 해도 안 부릴 테니 후회하지 말거라.]

희소식이었다.

……

[니오옹, 피곤하다….]

며칠 뒤, 이른 아침이었다.

사람 없는 교정, 가로수길에서 뜀박질하던 중이었다. 돌연 어깨에 무게감이 느껴지며 독특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발을 멈추고 옆을 돌아보자 허공에 둥둥 떠다니며 내 어깨에 턱을 괸 괴묘-체셔가 보였다.

“체셔? 왔구나.”

괴묘의 두툼한 허릿살을 붙잡고 녀석을 지면에 눕히며 쪼그려 앉았다.

다친 곳은… 없었다. 괴묘는 단지 피곤해 보일 뿐이었다.

“꽤 오래 걸렸네.”

[생각보다 살필 게 많아서 말이야. 거리도 멀었고.]

“고생했다.”

[니오홍! …내가 아무리 매력적이어도 뱃살은 쓰다듬지 마.]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노려보는 괴묘.

빙설룡은 몸 쓰다듬으면 좋아하던데, 이 녀석은 정반대인 모양이었다.

괴묘는 몸을 일으키고 나를 쳐다보았다.

[보고하자면, 네가 말한 교회에 많은 인간이 드나들었던 흔적이 있었어. 시간은 꽤 된 것 같아.]

사령의 칼가르트가 나타나는 장소는 사람 발길이 끊긴 오래된 폐교회.

즉, 많은 사람이 드나든 흔적이 있다면 칼가르트가 이미 출현했다는 뜻이었다.

“흔적이 있었다는 건….”

[네가 말한 마족 같은 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단 얘기야. 이미 어디로 떠난 거겠지.]

본래 칼가르트는 2학년 2학기 파트 때 나타나, 황국 영토를 가로질러 메르헨 아카데미로 진격한다.

그 경로에 있는 건 뭐든지 무참히 짓밟으며, 수많은 제르베르 국민의 생명을 앗아가 모두 시체 병사로 만든다. 즉, 얼마 안 가 황국에 비상이 걸릴 터였다.

암울한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지금은 몹시 조용했다. 게임 속 칼가르트의 진군 루트를 [천리안]으로 살폈으나 아무 이상도 없었다.

따라서 칼가르트는 어딘가에 숨어 숨죽이고 흉계를 꾸미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날 경계하는 건가.’

게임 속에서 칼가르트는 곧바로 이안을 처치하러 가면 됐지만, 지금은 내가 있다.

칼가르트는 여느 마족처럼 무식하게 행동하는 부류가 아니므로 나를 대비하고 있을 터. 전력도 지속해서 강화해 나가고 있겠지.

아마 악신의 대리인인 계약의 메피스토도 칼가르트를 돕고 있을 지도 몰랐다.

‘일단 이안은 지켜야겠고.’

이안과 에이미, 시엘에게 무슨 위협이 들이닥칠지 몰랐다. 뒤펜도르프의 병력을 몰래 보내 놓는 편이 좋으리라.

[그리고 아이작, 네 말대로 이상한 게 없는지 일대를 살펴봤는데 말이지. 수상한 점이 있더라고!]

“뭔데?”

[로펜하임 남작이 아기나 어린아이들을 모으고 있었어.]

로펜하임 남작이?

[밤에 몰래 지켜봤지. 마차 여러 대가 애들 데리고 지하로 가서 어디에 가두더라고? 위험한 결계가 펼쳐져 있어서 들어가 보진 못했지만 말이야.]

괴묘-체셔조차 위험하다며 접근을 망설일 만한 결계.

황국 변두리에 있는 작은 목초지를 차지한 로펜하임 남작이 그런 결계를 구축하는 그림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재화나 인력이 턱없이 모자랄 테니까.

“지하에 마족이 있는 것 같았어?”

괴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랬으면 내가 알아차렸겠지. 일단 남작에게 접근하는 건 조금 어려워 보여서 말이지, 돌아가는 마차를 몰래 미행해봤어. 아마 남작은 여러 지부를 두고, 아기나 어린아이를 모아 운송하는 것 같단 말이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인가.

머릿속이 정리되어 간다.

칼가르트는 즉살의 저주라는 권능을 가졌다. 신적인 존재나, 이안 같은 빛의 힘을 가진 자를 제외하곤 누구든지 한 명은 반드시 살해할 수 있는 초월적인 권능이었다.

그 권능을 발동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했다.

첫째, 즉살하려는 대상과 동일한 종족으로 이루어진 순결한 제물들.

둘째, 약 두 달 정도의 마법진 공정 기간.

칼가르트는 나나 황국에 들키지 않고 움직여야만 했을 테고, 적당한 재물과 권력을 가진 인간의 협력이 필요했을 것이었다.

권력이 있지만 그 권위가 낮으며, 황국의 눈에 띄지 않는 적합한 상대. 그중에서도 자신이 깨어난 장소와 가까이서 기거하는 인물.

바로 로펜하임 남작이 제격이었으리라.

‘저주는 나한테 내리려는 거겠지.’

나는 부유섬에 이어 최고위 마족, 무저갱도 해치웠고 내 전력을 아는 계약의 메피스토는 아직 건재하다.

시기가 아주 적절했다. 나라도 사령의 칼가르트를 미리 깨워 즉살의 저주로 날 해치우려고 들었을 법했다.

[이제 어쩔 거니?]

“떠날 준비 해야지.”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내 말에 괴묘는 눈을 반짝였다.

“가자, 로펜하임 남작가로.”

[니옹! 좋아. 가자고, 파트너! 난 쉬고 있을 테니까, 재밌는 순간에 앨리스 보고 꼭 소환해 달라고 말해줘!]

사령의 칼가르트를 토벌하러 가야 할 때였다.

* * *

마차는 포장된 도로를 지나 로펜하임 남작가 대저택에 도착했다.

이브 로펜하임이 마차에서 내리자 2명의 시종이 반겨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이브 님. 가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시종의 안내에 따라 저택에 들어서며, 이브는 마른침을 삼켰다.

아카데미에서 돌아온 직후, 가주 아드리안 로펜하임과 단둘이 남아 아카데미 생활을 보고하는 일은 어느 때건 혐오스럽고 긴장되는 일이었다.

저택 집무실. 시종은 문을 노크하고 이브가 도착했다는 말을 남긴 뒤, 그녀를 방으로 들여보냈다.

이브는 집무실로 들어갔고, 시종은 밖에서 문을 닫았다.

짙은 정적 속, 한 중년의 남성이 창가 앞에 서서 창밖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50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그는 여전히 이브가 한때 동경했던 귀족으로서의 기품이 넘쳐 흘렀다.

아드리안 로펜하임 남작이었다.

‘분위기가…?’

이브는 아드리안의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느꼈다. 마치 본능이 거부하는 듯한 께름칙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드리안을 싫어하는 감정과는 별개였다.

기분 탓이겠지. 그리 생각한 이브는 예를 차려 아드리안의 뒷모습에 대고 인사를 건넸다.

“다녀왔습니다, 아버지. 그간 무탈하셨습니까?”

“다행이군.”

“네?”

아드리안은 이브를 쳐다보았다.

어째선지 이브를 바라보는 그의 오른쪽 눈이, 스산한 어둠 마력을 흘리고 있었다.

“네가 자격이 돼서 말이다.”

필요한 건 순결한 제물.

아드리안은 사령의 칼가르트가 내려준 힘으로 이브가 제물로서 적합한 조건을 충족하고 있음을 파악했다.

“아버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어둠 마력을 목도한 이브는 겁에 질려 뒷걸음질쳤다.

이브는 재빨리 문 쪽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아드리안이 삽시간에 전개한 결계에 가로막혀 문을 열 수 없었다.

“우웁!”

아드리안은 이브에게 다가가 그녀의 턱을 움켜쥐었고.

“어차피 이곳을 떠나려 하지 않았느냐? 그럴 바엔, 날 위해 희생되어 네 쓸모를 증명하거라.”

이브는 턱뼈가 부러질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며 발버둥쳤으나, 끝내 어둠 마력에 삼켜져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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