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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240화 (240/334)

〈 240화 〉 사령왕 토벌전 (4)

* * *

이브 로펜하임은 양팔을 위로 뻗은 자세로 구속되어 있었다.

어둠 마력에 당하고 난 뒤 정신을 차리니 이 꼴이었다. 어둠 마력의 잔흔이 끈질기게 남아 있는지 지렁이처럼 꿈틀대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며칠간 씻지 못하여 몸도 꾀죄죄했다.

전부 기분 나쁜 감각이었다.

로펜하임 남작은 이틀에 한 번 스프를 가져와 다짜고짜 이브의 입에 들이부었다. 먹여 살리려는 목적 같았다. 안 먹으면 어둠 마력으로 목을 쥐어 짜려 들었기에 이브는 억지로 스프를 마셔야만 했다.

앞뒤 정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로펜하임 남작은 마족이었을까? 아니, 그것보단 마족과 결탁한 경우일지도 몰랐다. 로펜하임 남작은 마족처럼 생기지 않았으니까.

이브는 주변을 살폈다.

자신은 감옥에 갇혀 있었다. 이곳은 저택에서 범죄 행위를 벌인 죄인을 가두는 음습한 지하실.

출입구 쪽엔 어둠 마력이 흐르는 강력한 결계가 쳐져 있어 웬만한 이들은 드나들 수 없었다. 이브가 백호 사역마 데본을 소환해 탈출을 감행할 생각을 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문이 굳게 닫힌 다른 방도 있었다. 그곳엔 많은 아이가 갇혀 있었다.

불과 며칠 전, 처음 보는 사내들이 아이들을 그 방에 집어넣는 광경을 지켜봐서 알 수 있었다.

사내들은 이브에게 눈독을 들였지만, 로펜하임 남작이 강압적으로 만류했다. 어떤 이유가 있는 듯했다. 분명 좋은 이유는 아닐 터였다.

그렇다면 로펜하임 남작이 마족과 결탁하고, 아이들을 모으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 실험, 혹은 흑마법을 위한 제물…. 그런 거겠지.

상정할 수 있는 건 최악의 경우뿐이었다. 이브는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아이작….”

생각나는 건 유일하게 사랑하는 동생뿐이었다.

떠나려는 자신을 붙잡으려 했던 어린 아이작의 모습이 밤마다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브는 과거의 선택을 곱씹었고, 표류했다.

앞으로의 수십 년 인생, 아이작을 책임지기 위해 고작 몇 년만 그의 곁을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로펜하임 남작가에서 모진 핍박과 차가운 시선을 견뎌오며 살아온 건 오로지 아이작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제는 돌아갈 수 없으리라. 어떤 결말을 맞이하든 아이작을 영영 볼 수 없을 것이었다.

그 사실이 이브를 견딜 수 없을 만큼 슬프고 괴롭게 했다.

가끔 눈물이 쏟아지기도 하였으나, 이브는 입술을 깨물고 소리를 꾹 참았다.

“보고 싶어….”

마지막 소원이 있다면, 아이작을 한 번만 더 보고 싶었다.

……

이브는 한 차례 지진을 느꼈다.

다른 방 안쪽에서 아이들이 당황해 우왕좌왕하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 뒤, 결계가 유리창 깨지듯 사그라졌고.

한 명의 여성이 지하실 안으로 들어왔다.

이브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었다.

“학생회장…?”

메르헨 아카데미 학생회장, 앨리스 캐럴이었다. 그녀는 복도를 걸었다.

연이어 앨리스를 뒤따라 들어오는 백금 갑주 차림의 기사들. 이브가 어느 때 보았던 강자들이었다.

얼음 왕국, 뒤펜도르프의 병력.

모두 빙제 아이작의 하수인이었다.

곧 지하실에 낯익은 남자가 들어섰다. 그는 [빙결 폭발]을 가볍게 시전해 감옥을 부수고서, 안으로 들어와 이브 앞에 마주 섰다.

주위에 흐르는 냉기. 지하실 복도를 비추는 램프 빛이 그의 후광이 되어 주었다.

어수선한 소리가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이브는 지금의 광경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오랜만이네, 누나.”

“아이작…?”

이브는 꿈이라도 꾸는 것 같았다.

* * *

이브 로펜하임.

아이작과 어머니는 같지만 아버지는 다른 이부누나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선 비중 없는 NPC였고, 생기 없는 눈으로 이안을 바라보며 기분 나쁜 거짓말만 하던 정신병자 캐릭터였다.

하지만 내 기억과는 달리, 2학년 1학기를 거치면서 보았던 이브는 매우 멀쩡했다.

왜 이브는 정신병자가 되지 않았는가. 게임과 큰 차이점이 있다면, 떠오르는 건 역시 아이작의 죽음이다.

아이작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메르헨 아카데미 학생인 이브는 자연스레 아이작의 소식을 접했으리라.

로펜하임 남작은 이브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했다고 했으니, 아마 이브가 아이작 곁을 떠나버린 이유가 있으리라.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다.

명백한 사실은 이브가 아이작에게 더할 나위 없는 애정을 품었다는 것이었다.

아이작을 잃고 정신까지 망가졌을 만큼 이브에게 동생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 존재였을 터.

그런 사람이 부귀영화 누리자고 다짜고짜 로펜하임 남작가에 입양되었을 거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콰아아!

이브의 구속구를 부수었다. 얼마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 탓인지 이브는 넘어지려 했다. 그녀의 어깨를 잡아주었다.

이브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그녀는 내 옷을 붙잡고 슬피 흐느꼈다.

“아이작, 미안해. 미안해…. 정말 보고 싶었어….”

이브는 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연거푸 읊조렸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고개만 한 차례 끄덕였다.

“나가자.”

마법 주머니에서 외투 하나를 꺼내 이브 어깨에 덮어 준 뒤, 그녀를 등에 업고 정원으로 향했다.

이브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을 걸어왔다.

“아이작, 여긴 어떻게 온 거야?”

“일이 있어서 들렀어.”

“…나, 무서웠어.”

“응.”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

“응.”

“미안해…. 너 힘들 때 곁에 못 있어줘서. 내가 너무 무능한 사람이라서, 정말 미안해….”

“…….”

이브는 내 어깨에 고개를 파묻은 채 연신 사과만 했다.

사과를 받아야 할 상대는 내가 아닌, 세상의 풍파를 감당하지 못하고 절망하고 목숨을 끊어 버린 이전의 아이작이었다.

그렇기에 지금의 아이작인 나는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고, 그저 침묵했다.

한편, 앨리스와 뒤펜도르프 기사들은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아이들 수는 예순다섯 명. 들었던 대로였다. 혹시 몰라 [천리안]으로 주변을 구석구석 살폈으나 남은 아이는 없었다.

로펜하임 남작가의 기사와 마법사는 앨리스가 가볍게 제압하고 구속해둔 상황이었고.

아드리안 로펜하임은 내가 오른쪽 눈을 날리자 어둠 마력을 잃어 기절해 버렸다. 그의 몸은 얼음으로 구속했다.

아드리안은 황실에 넘어가 죗값을 치를 것이었다.

이번 일에 황국의 대처가 늦어진 건 사령의 칼가르트가 사람을 부려 은밀히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큰 사건이라도 벌어지지 않는 이상, 시골 변두리 남작령에서 벌어지는 일이 사사건건 황실에 보고될 리 없으니까.

나조차도 게임 지식을 바탕으로 혹시나, 싶어서 검토하고 알아낸 걸 황국이 벌써 알아챘을 리 없었다. 또 한 번 황국에 빚을 지운 셈이었다.

정원 의자에 이브를 앉혔다. 그녀는 상태가 엉망인 로펜하임 남작을 바라보며 통쾌함과 후련함, 그리고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듯했다.

나야 앞뒤 사정을 구체적으로 모르고, 이브에겐 그다지 정이 안 느껴졌지만.

똑같이 로펜하임 남작에게 짓밟힌 유일한 혈육이었으니 그녀를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물씬 들었다.

“누난 여기 있어.”

“아이작? 너는…?”

“할 일이 있어. 곧 사람들이 올 거야. 그동안 내 하수인들이 지켜줄 테니까 마음 편히 있어도 돼.”

그리 대답하던 중, 앨리스가 이브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은 아카데미 동기였지만, 이브에게 앨리스는 머나먼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 탓에 이브는 쭈뼛쭈뼛하며 어색한 기색을 보였다.

앨리스는 이브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처음으로 제대로 인사드리네요. 몸은 괜찮으세요, 형님?”

“형님…?”

얜 지금 뭐라는 거냐.

이브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시누이로서 들어야 할 호칭을 뜬금없이 앨리스에게서 들었으니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흡…!”

금세 앨리스의 말 뜻을 이해한 이브는 얼굴을 붉히고는 입을 틀어 막고 침음을 삼켰다.

나는 앨리스의 손목을 붙잡고 다급히 그 자리를 떠났다.

“어머, 여보?”

“그 호칭 좀 그만 써라…. 끝났잖아.”

앨리스는 내 하수인이고 최전선에 서야 할 책임이 있어서 동행했다.

지금은 함께 아드리안이 알려준 장소로 향해야 할 터.

[천리안]을 써서 지하 왕국과 시체 병단을 발견했다. 칼가르트는 내 시선을 알아채고 도망치기엔 늦었다고 판단했는지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맞이해줄 작정이라면 기꺼이 응해야 할 터였다. 물론 함정을 파 놓았을 가능성을 대비하는 건 필수겠고.

가장 넓은 구간인 로펜하임 남작가 정원 한가운데. 달빛이 환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그곳에서 앨리스와 나란히 섰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어차피 곧 떠날 처지라 무시했다.

“애기야.”

앨리스가 내게 말을 걸었다.

특유의 자상한 미소가 여전히 앨리스의 만면에 가득했지만, 어째 복잡한 심경이 엿보였다. 한동안 앨리스와 동거하면서 그녀의 심리 변화를 눈치챌 수 있게 되었다.

내 손가락 사이사이로 슬그머니 낭창낭창하고 보드라운 손가락이 끼어들었다. 앨리스는 그리 내 손을 깍지 끼고 잡았다.

“나 오늘 얘기, 처음 들었는데.”

아이작의 가정사 얘기인가.

“알려주고 싶은 얘기도 아니었고, 사실 나도 잘 몰랐어. 너도 아까 같이 들었잖아.”

“…….”

“뭐, 신경 안 써도 돼.”

그냥 그런 일도 있었구나, 하는 거지. 그리 중얼거리며 빙설룡-힐드를 소환하려 했다. 칼가르트가 있는 장소를 알았으니 빠르게 날아갈 셈이었다.

그때, 난데없이 앨리스는 내 뒤통수를 자기 어깨에 끌어안았다.

소환 술식 연산이 흐트러져 소환이 멈춰 버렸다. 당황스러웠다.

“앨리스?”

“애기야, 있지. 사실 아까 가슴이 좀 아팠단다.”

앨리스는 소곤소곤 속삭이며, 나긋나긋하게 내 머리를 연신 쓸어내렸다.

여전히 미소 짓고 있었지만, 젖은 눈과 축 처진 눈썹엔 애틋함이 담겨 있었다.

“애기가 내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줬으면 좋겠구나.”

로펜하임 남작과 이야기를 나눌 때 앨리스의 반응을 기억했다. 그녀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갔고, 그녀에게서 짙은 살의마저도 느껴졌다.

하지만 앨리스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나를 지키는 것. 그녀는 충동적으로 내 가정사에 함부로 끼어들지 않았고, 내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다.

“가끔은 내게 어리광도 피워주렴. 난 애기 거잖니?”

지금은 날 위로해주는 것이 날 위해주는 일임을 앨리스는 알고 있었다. 새삼 이 애에게 내가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는 실감이 났다.

앨리스의 품에서 벗어났다. 그녀는 온화한 미소로 내 눈을 마주했다.

괜찮다거나, 슬프지 않다거나, 그런 말은 거추장스러울 뿐이었다. 그저 한 마디만 하면 될 것이었다.

“…고맙다.”

“천만에, 여보.”

앨리스는 분위기를 풀 목적인지 조금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나와 앨리스는 각자의 사역마를 소환했다.

휘우우우우!

허공에 마력이 뭉치고.

빙설룡-힐드가 나타나 연푸른빛 냉기를 흩뿌리며 백옥빛 날개를 펼쳤다.

악몽룡-재버워크가 적자색 화염을 검은 날개에 휘감은 채 위협적인 위용을 드러냈다.

정원 한가운데를 차지한 백룡과 흑룡이 일제히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두 마리의 용이 내뿜는 위세를 놀란 얼굴로 쳐다보았다.

곧 빙설룡과 악몽룡은 고개를 숙였다. 나는 빙설룡 위로, 앨리스는 악몽룡 위로 올라탔다.

“힐드, 마족 잡으러 갈 거야. 전투 준비해.”

[오냐, 주인! 다 때려 부숴주겠다!]

빙설룡은 의욕을 불태우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재버워크, 너도 잘 부탁한다.”

악몽룡은 내가 말을 걸자 흠칫 놀랐다. 내게 패배했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빙설룡과 악몽룡이 날갯짓하며 날아올랐다. 그 여파로 발생한 강풍이 정원의 식물들을 세차게 흔들었다.

뒤펜도르프의 기사들은 떠나가는 내게 경례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입을 떡 벌린 채 우릴 가만히 지켜보았다.

나와 앨리스는 사령의 칼가르트가 있는 장소를 향해 하늘을 가로질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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