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241화 (241/334)

〈 241화 〉 사령왕 토벌전 (5)

* * *

제르베르 황국엔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드넓은 황야가 영토 한 부분을 크게 차지하고 있었다.

약 10년 전, 부유섬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곳이었다. 그날의 피해가 생채기처럼 남은 것이었다.

많은 땅이 그러하겠으나, 로펜하임 남작령 또한 그 황야에 맞닿아 있었고.

지하 왕국은 그곳 어딘가에 위치해 있었다.

사령의 칼가르트는 부활하고 계약의 메피스토로부터 전해 들었다.

우리의 표적인 빛의 아이를 지키는 자가 있다. 바로 얼음의 원왕, 빙제다.

그는 우리의 계획을 사전에 알아채고 움직이는 것 같다. 무슨 능력으로 그게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단순한 무력 싸움으로 네가 빙제를 이길 순 없다.

그러니 권능으로 죽여라.

들키면 끝이라고 생각해라.

[호들갑은….]

메피스토는 악신의 대리인. 그는 괜한 거짓말이나 과장된 사실을 떠벌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호들갑을 떠는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마치 빙제를 칭송하는 것처럼 들릴 정도였으니.

얼마 안 가, 칼가르트는 강렬한 시선을 느끼고 두 눈을 찌푸렸다. 빙제가 자신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단번에 눈치챘다.

그렇다고 별다른 감정의 동요는 일어나지 않았다. 메피스토가 강하다고 호언장담했던 빙제가 어떤 사내인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기대감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내줄 선택지를 듣고 빙제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지하 왕국, 왕좌에서 칼가르트는 몸을 일으키고 마법 지팡이로 지면을 짚었다.

한편, 황야 어딘가.

천족, 뷔엘은 언덕에 앉은 채 칼가르트가 시체 병단으로 진을 치는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분주한 움직임을 보아하니 빙제에게 발각된 모양이었다.

뷔엘 뒤론 성스러운 하얀 로브를 차려입은 한 여성 천족이 가만히 서 있었다. 그녀는 뷔엘과 같은 광경을 바라보았다.

메피스토와의 거래는 끝마쳤다. 다만, 뷔엘은 떠나기 전에 자신에게 방해가 될지도 모를 빙제라는 인간을 한번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과연 빙제는 얼마나 강할 것인가.

뷔엘은 절로 기대가 되었다.

* * *

<메르헨의 마법 기사> 「10막, 사령왕」.

2학년 2학기 파트부터 사건 스케일은 세계 단위로 커진다.

아카데미에서 깨작깨작 마족을 뽑아내 봤자 이안을 쓰러뜨리지 못한다고 악신 네피드가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악신은 시간을 들여, 세계에 퍼진 강력한 마족을 깨우는데 치중하기로 한다.

그렇게 「10막, 사령왕」 파트에선 사령의 칼가르트가 부활한다. 그는 죽음의 군대를 이끌고 황국을 가로질러 메르헨 아카데미를 향해 진군한다.

메르헨 아카데미와 황실 기사단은 연륙교를 넘어 배수진을 치고 전쟁을 벌인다.

이때, 그들은 마족의 약점인 이안 페어리테일에게 협력을 요청하고 그를 전장에 투입시킨다.

물론 학생은 보호 대상이었기에, 이안은 아카데미와 황실 기사단으로부터 우선순위로 확실한 보호를 받으며 죽음의 군대와 싸워나간다.

중간 보스는 흉린-몰리카르테, 악룡-오르키스. 둘 다 죽은 마수였으나, 칼가르트의 힘을 받아 마족으로 부활한 존재들이었다.

최종 보스는 사령의 칼가르트였다.

「10막, 사령왕」은 창명검의 위력을 확실히 체감할 수 있는 시나리오 파트이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 칼가르트는 이안이 창명검을 얻기 전, 훨씬 이른 시기에 출현했다. 날 해치우기 위함일 터.

즉, 2학년 2학기 첫 파트였어야 할 시나리오 10막은 오늘 끝날 것이었다.

드넓은 황야 한가운데. 거무칙칙한 마력을 흘리는 대규모의 군대가 보였다. 시체 군대였다.

좀비라고 보기엔 외모가 기형적으로 변해 있어, 한 무더기의 마족 군대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그들 중 깔끔하게 진을 친 마법사 무리가 일제히 어둠 마법진을 전개했다. 표적은 용을 타고 날아오는 나와 앨리스였다.

순식간에 도열된 수많은 어둠 마법진이 황야를 메운 달빛을 몰아냈다.

“힐드, 공격해.”

나는 담담하게 지시를 내렸다.

나를 태운 빙설룡-힐드는 사납게 포효하며 등 위로 거대한 마법진을 그려냈다.

곧 시체 마법사들이 대량의 어둠 마법을 발사했다.

부와아아아!!!

시꺼먼 어둠이 나와 앨리스를 향해 뻗어나갔다. 마치 용암이 폭발하며 뿜어내는 자욱한 연무와 흡사했다.

그 수많은 어둠 마법의 기이한 기류는 놀라울 정도로 일정했다. 결국, 전부 하나로 합쳐져 매섭게 소용돌이쳤다. 그 충격으로 어둠의 번개가 사정 없이 비산하며 사방을 갈랐다.

칼가르트의 힘으로 뭉친 군대 답게 뛰어난 마력 운용력.

피할 곳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뚫어낸다.

[카아아아아아!!]

빙설룡이 전개한 마법진이 백옥빛 실선을 쏘아냈다.

그것은 어둠의 파도를 꿰뚫고, 순식간에 비대해지며 대형 빛살로 변모했다.

콰아아아아아!!

8성급 얼음 원소 마법 [마하발특마].

어둠 연무와 [마하발특마]가 격돌했다.

콰아아아앙!!!

어둠 번개를 머금은 차가운 검푸른빛 폭발이 무자비하게 터져나갔다.

일대가 쩌적, 거리는 소리를 내며 빠른 속도로 얼어 간다. 어느새 황폐했던 땅은 살얼음 낀 얼음의 땅으로 뒤바뀌었다.

그곳에 빙설룡-힐드와 악몽룡-재버워크가 내려앉았다.

앨리스와 함께 서로의 용에서 뛰어내렸다. 이미 앨리스는 악몽을 몰아내는 검, 보팔 소드를 손에 쥐고 있었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갑주 또한 착용한 채였다.

시체 군대가 우리를 마주 보았다. 시야에 한꺼번에 다 들어오지 않는 병력을 보니, 칼가르트가 일찍 깨어난 뒤로 얼마나 많은 시체를 능욕하며 전력을 강화해왔는지 알 수 있었다.

칼가르트에게 있어서 시체의 결함은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마족의 모습으로 메우면 되기 때문이었다. 시체 군대가 괴물의 모습으로 변한 건 그 때문.

모두, 내가 안식을 돌려줘야만 할 터였다.

경험치 행사로도 보였지만, 시체들 앞에서 그런 마인드는 자제하자.

앨리스와 나란히 시체 군대를 향해 걸어 나갔다.

[그대가 빙제로군.]

내게 말을 건 자는 시체 군대의 선두에 서 있었다. 확성 마법을 건 것인지 목소리가 잘 들렸다.

익숙한 모습이었다.

깔끔한 검은 로브 차림. 넓은 어깨를 지닌 건장한 성인 남성 체격.

구릿빛 피부와 머리 양옆으로 튀어나온 구부정한 뿔. 새까만 눈.

그리고 한 손에 쥔 기괴한 스태프.

사령의 칼가르트였다.

[사령의 칼가르트]

Lv :186

종족 : 마족

속성 : 어둠,재생

위험도 : 최상

심리 : [ 당신을 절망에 빠뜨리려 합니다. ]

“시체 능욕하니까 좋냐?”

[쓸데없는 잡담은 필요 없다.]

칼가르트의 굵직하고도 기괴한 목소리가 귀청을 울렸다.

[날 찾아낸 건 훌륭하다만, 너무 눈앞에 보이는 것만 좇았구나. 그대에게도 분명 지켜야 할 것들이 있지 않은가?]

“……?”

[빙제, 그대는 정 따위의 쓸데없는 감정에 구애받는 하등한 종족이다. 그대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완전무결할 수는 없다.]

뭔 개소리냐.

[…빛의 아이가 있는 장소, 그리고 메르헨 아카데미에 내 병사들을 보내 놓았다. 그대가 여기 있는 동안, 그대가 지켜야 할 것들은 모조리 파멸할 것이다.]

칼가르트의 목소리는 높낮이가 일정했다.

[선택해라. 그대가 지켜야 할 자들이 죽음을 맞이하게 내버려둘 것인지, 어느 한쪽을 지키러 지금 떠날 것인지. 그대의 강함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걸 이 자리에서 느껴보거라.]

카르네다스 가문의 대저택.

메르헨 아카데미.

두 곳으로 각각 중간 보스와 시체 병력을 보낸 듯했다.

이곳에서 메르헨 아카데미까진 [천리안]이 닿지 않는다. 다행히 카르네다스 백작령까진 닿았다.

기린 형태의 기괴한 마족, 흉린-몰리카르테가 시체 병사들을 이끌고 그쪽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하아.”

한숨이 튀어나왔다. 이 무슨 유치한 딜레마 협박이냐.

이미 황실도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그들로선 칼가르트의 움직임을 미연에 알아채고 막아 내기란 어려웠다.

뭐…, 상관없었다.

[얼음 생성]으로 얼음 의자를 만들어 그 위에 앉았다. 빙설룡-힐드가 내 뒤를 지켰다.

[무슨…?]

전장 한복판에서 대뜸 편하게 의자에 앉아버리는 내 모습을 보고 칼가르트는 의구심을 내비쳤다.

“앨리스.”

“응, 주인님.”

“저놈은 내가 맡을 테니까, 대충 나머지 놈들 쓸어봐.”

나는 턱짓으로 칼가르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앨리스는 내 하수인이다. 그녀의 활약은 곧 내 경험치가 될 것이었다.

“분부대로.”

앨리스는 보팔 소드를 옆으로 휙 휘두르곤 앞으로 걸어나갔고.

악몽룡-재버워크는 포효하며 날아오르더니 앨리스 위에서 그녀와 동행했다.

칼가르트는 눈살을 찌푸렸다.

[내 말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건가?]

“네가 착각한 게 있다.”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넌 너무 나한테만 신경 썼어.”

[무슨 뜻이냐…?]

나 혼자선 명백한 한계가 있다는 걸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시스템의 힘으로 강해졌다고 해도 기고만장해질 수 없는 건, 내가 전지전능해질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오글거리는 표현이긴 해도, 이미 내겐 악신을 해치우기 위한 여정에 힘을 실어 줄 믿음직한 사람들이 있었다.

파앗!

곧 앨리스가 보팔 소드를 양손으로 쥐고 지면을 박찼다.

시체 전사들이 각자의 무기를 거머쥔 채 앨리스를 향해 달려들었고, 시체 마법사들이 어둠 마력을 합친 원소 마법을 쏟아 냈다.

그 수많은 병력을 향해 홀로 돌격하는 하수인, 하트 여왕-앨리스의 모습은 몹시 고고했다.

보팔 소드의 검신에 적자색 기운이 스몄다. 앨리스는 검을 위로 올려 벴다.

콰아아아앙!!!

연붉은빛 검기가 폭발적으로 치솟으며 폭풍처럼 지면을 가로질렀다. 지평선을 향해 웅대하게 뻗어나간다.

검기가 가로지르는 경로에 놓인 시체 병단은 몸이 양단되었고, 고장 난 기계처럼 뚝뚝 멈춰버렸다.

고작 주위에 있던 병사들도 스쳐 지나가는 검기가 내뿜는 풍압에 공처럼 날아갔다.

잇달아 횡으로 휘두른 검기가 예리하게 날아들어 시체 군대를 덮쳤다.

콰아아아앙!!

전방의 병사들이 방패를 내세웠으나, 검기의 충돌로 일어나는 폭발에 휩쓸리고 말았다.

시체 군대의 진형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보팔 소드의 악몽을 몰아내는 힘은, 앨리스가 전의를 머금으면 악몽으로 끌어당기는 힘으로 뒤바뀐다.

그러나 이미 생명 활동이 정지해 버린 시체들에게 꿈이란 개념은 없었다. 그들은 다시 죽음이라는 안식을 되찾을 것이었다.

어둠 마법의 집중 포격은 악몽룡-재버워크가 8성급 중립 속성 마법, [환상염]을 시전하며 막아 냈다.

화르르르륵!!!

신비로운 적자색 화염이 거친 기세로 뿜어져 어둠 마법을 몰아내고, 살얼음 낀 황야를 거칠게 헤집었다.

그 와중, 칼가르트는 오로지 나만을 노려볼 뿐이었다. 자신이 움직이면 내가 움직일 것이라고 그는 느끼고 있었다.

그리 칼가르트는 나를 경계했다.

* * *

카르네다스 백작령, 높은 곳에 위치한 대저택 내부.

에이미 할로웨이는 먼 곳을 내다볼 수 있는 망원경과 비슷한 마도구를 사용해, 영주성으로 다가오는 마족 군대를 지켜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어둠 마력으로 이루어진 구름을 몰고 오는 마족 군대의 모습은 불과 약 두 달 전에 벌어졌던 학생회장 사건의 공포를 떠올리게 했다.

가장 무섭고 위험해 보이는 건 마족 군대 한가운데 있는 거대한 흑기린이었다.

목이 몹시 길어 하늘에 닿을 듯했고, 얼굴엔 이빨이 뺨을 뚫고 이어져 있었다. 섬뜩한 외형이었다.

“어쩌지? 어쩌지…?”

이안 페어리테일과 시엘 카르네다스는 천상 세계인지 뭔지 이상한 데로 가 버렸으니, 남은 사람은 카르네다스 가문의 전투 병력뿐이었다.

한편, 카르네다스 가문에 소속된 기사들과 마법사들은 영주성을 등지고 견고하게 진을 쳤다.

모두 긴장해 있었다. 저 마족 군대를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그들은 알 수 없었다.

황실 기사단이 발 빠르게 움직여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다. 적어도 그들이 도착할 때까지는 어떻게든 버텨야만 했다.

오늘 이곳이 자신들의 무덤이 될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들은 명예롭게 목숨을 불살라 이 영주성을 기필코 사수하리라고 다짐했다.

휘우우우우!

그때, 전방에 냉기 마력이 몰아치며 백금 갑주 차림의 얼음 기사들과 서리의 마법사들로 변모했다.

카르네다스 가문의 전투 병력은 모두 놀라 무기를 빼 들고 경계했다. 그러나 얼음 기사들은 관심 없다는 듯 말없이 성벽을 등지고 마족 군대를 적대했다.

군청색 로브를 입은 서리의 마법사 부대가 후방을 지원했다.

연이어 하트 왕국의 팔라딘 4명이 나타나 얼음 군대에 합류했다.

카르네다스 가문 소속 기사장이 경계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네놈들은 뭐냐?”

“서리군주의 추종자다.”

제복을 차려입은 흑발의 스페이드 팔라딘, 제논이 태도(太刀) 자큘라를 꺼내 들며 대답했다.

자큘라에 연푸른빛 냉기가 스르르 스며들었다.

“그분이 우릴 이곳으로 보내셨다. 만약 마족이 들이닥칠 시 이곳을 지키라는 명이다.”

“어째서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라.”

“사령왕이 여러 방향으로 군사들을 진군시켰다. 우리의 목적은 그들을 막는 거고, 그러니 너희들을 지키려는 것이다. 설명이 됐나?”

“…….”

눈앞에 서 있는 군대가 빙제의 수하들임은 분명했다. 냉기를 흘려내는 모습이나, 외형이나. 기록으로만 보았던 뒤펜도르프의 병사들이었다.

빙제가 누군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가 이름 없는 영웅이라 불리며 인류를 지키기 위해 힘쓰고 있다는 건 세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때론 그런 위대한 영웅도 탄생하는 법.

그런 자가 마족을 상대로 사람들을 지키겠다고 나섰다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그렇군, 빙제가…. 하지만 저걸 막을 수 있겠나?”

아무리 그래도 그들끼리 저 섬뜩한 흑기린 마족을 쓰러뜨릴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저 생물이 내뿜는 기운은 이미 이곳에 있는 강자들을 뛰어넘는 무언가였다.

그때.

휘우우우우.

쿠웅.

하늘에서 장신의 여성이 떨어져 지면에 착지했다. 사역마를 타고 와 떨어진 것이었다.

그녀에게서 고밀도의 냉기가 매섭게 터져나와 착지의 충격을 완화시켰다.

마나 감지력이 낮은 이라도 훤히 느낄 수 있을 만큼 막대한 마력을 지닌 여자였다. 카르네다스 가문의 기사들은 모두 놀란 얼굴로 마른침을 삼켰다.

군청색과 하얀색이 조화를 이루는 정복 차림. 장신의 여성은 뒤펜도르프 군대의 선두에 섰다.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냉기가 그녀의 연파랑 단발머리와 하얀 망토를 펄럭였다.

얼굴엔 반으로 그어진 오래된 흉터가 새겨져 있었다. 그녀에게선 마치 범접할 수 없는 강한 맹수의 위압감이 넘쳐흘렀다.

얼음 병사들과 팔라딘은 일제히 그녀에게 경례했다. 하트 팔라딘, 셰라 헥토리카만이 “저 언니 누구야?”라고 중얼거렸고, 제논은 그녀의 머리를 억지로 숙이게 했다.

“이미 설명하지 않았나. 눈치껏 알아채라.”

혼내듯 소곤거리는 제논.

장신의 여성은 진군해 오는 마족 군대를 노려보았다.

“경이롭군. 새로운 주군은 어디까지 내다보셨는지…!”

허스키한 목소리로 감탄하는 그녀.

주먹을 쥐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감복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황국 땅을 밟고, 이 세계에 뒤펜도르프의 위상을 떨치게 만들 수 있는 분은 오직 그분뿐일 거다. 어서 그 존귀하신 옥체를 뵙고 싶구나…!”

새로운 빙제는 마치 미래를 알기라도 하듯 마족의 출현과 진군 경로를 예상하고 병력을 대기시켰다.

가히 불가해한 대마법사였다.

겉보기에 그들은 황국에 좋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이해득실이 명확했다.

새로운 빙제는 단번에 황국과 동맹을 맺어 빚을 지웠고, 전세계에 뒤펜도르프란 이름을 드높였다.

이곳에서 벌일 전투 또한 마찬가지. 황국은 뒤펜도르프에 협조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장신의 여성은 흥분되는 감정을 갈무리하고, 사냥에 들어선 야수처럼 표정을 바꾸었다. 그녀는 오른팔을 옆으로 뻗었다.

그 손에 연푸른빛 마력이 뭉치며 커다란 은빛 양손 도끼가 쥐어졌다. 거대한 극빙의 핵을 이루었던 마도 무기, ‘파라혼’.

그녀는 파라혼의 끝으로 지면을 쿵 내려찍었다.

“전원! 전투 태세를 갖추어라!”

여성이 사납게 소리치자 얼음 병사들과 하트 왕국의 팔라딘이 일제히 무기를 치들고 마력을 끌어올렸다.

뒤펜도르프의 제3군단장, ‘아자벨 실버울프’.

그녀는 양손 도끼, 파라혼에 대량의 냉기 마력을 실었다.

“돌격해라!!”

뒤펜도르프의 군대가 함성을 내지르며 마족 군대를 향해 달려들었고.

카르네다스 가문의 전투 병력도 그들을 뒤따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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