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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251화 (251/334)

〈 251화 〉 장인어른 (2)

* * *

군복무 시절에 매일 했던 아침 구보는 더럽게 싫었는데.

이젠 이른 아침마다 습한 공기를 마시며 뜀박질하지 않으면 하루를 시작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

가로수 길을 달렸다. 달리기로도 모자라 양손으로 마력기를 쥔 채 마력 순환 단련도 함께 했다. 여기서 구할 수 있는 마력기 중 가장 난도 높은 것이었다.

이것도 무난하게 느껴질 때가 오면 아카데미 밖에서 더 빡센 마력기를 구해야겠지.

며칠 전, 헤겔 마탑주 아리아 릴리아스가 마차를 타고 메르헨 아카데미로 출발했다. 얼음 기사의 보고를 듣고 알았다.

최근에 아리아가 보낸 편지를 읽고 뒤펜도르프 병력 중 믿음직한 녀석들에게 아리아 호위를 맡겼다.

아리아가 중요한 비밀을 품은 것으로 판단되는 지금, 그녀를 내 감시 하에 두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예상할 수 없는 만일의 위험으로부터 지키려는 목적도 있었다.

앞으로 이틀 정도만 지나면 아리아가 헤겔 마탑에 도착할 터.

그때까지 부단히 단련만 한 뒤 아리아를 맞이할 생각이었다.

또한, 화이트도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걔한테서 편지가 와서 알았다. 편지엔 황실이 불편하다며 조기 복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전술했듯 화이트는 「요정 대전」의 핵심 키다.

미안하지만, 여기 오면 단련하느라 고생 좀 해야 할 거다. 시나리오 클리어를 위해서니까 나중에 이해해주겠지.

[아이작은 참 재미없는 인생을 살고 있네.]

어깨 옆에 뚱뚱한 보라색 고양이 마수가 누운 자세로 날아가며 투덜댔다. 괴묘-체셔였다.

[좀 대충대충 살아도 되지 않니? 그만한 힘을 갖고도 단련, 단련, 단련만 하는 건 너도 웃기지 않니?]

“어쩌겠냐. 살려면 이래야지.”

[으, 끔찍해…. 난 절대 그렇게 못 살아.]

단련에 강박이 생기기도 했지만, 악신 자체가 더럽게 강하다는 사실을 알기에 여유 부리고 싶지 않았다. 괴묘-체셔는 내 뜻을 알고 있었다.

속도를 높여 가로수 길을 빠르게 내달린 뒤 기숙사로 돌아왔다.

잠에서 깬 빙설룡-힐드가 비몽사몽 휘청거리며 날 반겨주다 벽에 머리를 찧었다.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 아침 식사를 마친 뒤 훈련장으로 향했다.

방학이지만 아카데미에 남은 학생들이 꽤 있었다. 향상심으로 똘똘 뭉쳐 거의 매일 단련에 매진하는 사람들이었다.

각각 다른 학부, 다른 학년. 학기 중엔 마주칠 일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얼굴을 자주 보다 보니 어느새 서로 반갑게 인사하며 사소한 담화를 나눌 수 있는 사이로 발전했다.

시간이 흘러, 마법진을 전개해 한창 마물 환상 웨이브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별안간 이변이 찾아왔다.

“……!”

순간,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우수수 돋아났다. 두 눈이 크게 뜨였다.

그대로 동작을 멈추고 마법진을 거두었다.

방금 전에 느낀 건 마력이 아니었다. 명백한 살기였다.

살기는 곧바로 걷히긴 했으나, 주위에 있던 학생들은 위화감만 느꼈는지 잠깐 멈칫했을 뿐 단련에 매진했다.

고개를 뒤로 돌리자 훈련장 입구를 지나 내 쪽으로 다가오는 한 남성이 눈에 비쳤다.

낯이 익었다.

앞머리는 온통 뒤로 넘겼고, 카야 아스트레앙과 똑같은 담녹색 머리칼을 가진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 남성.

팔자 주름이 깊었고, 머리칼은 일부가 희끗희끗했다.

그는 내 앞에 서더니 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법사 치곤 감각이 날카롭군.”

“…….”

학생들이 하나 둘 우리 쪽을 쳐다보았고.

그들은 모두 놀란 기색을 보였다.

‘뭐야?’

이 아저씨가 왜 여기 있어…?

내게 다가온 자는 검 하나로 황국 최고의 전력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남자.

검성 제랄드 아스트레앙이었다.

[제랄드 아스트레앙]

Lv :192

종족 : 인간

속성 : 바람

위험도 : X

심리 : [ 당신이 사윗감으로 적합한지 시험하고 싶어 합니다. ]

‘사윗감?’

제랄드가 왜 여기 있는가. 그 의문의 해답은 제랄드의 심리를 읽고 나서 단숨에 추론할 수 있었다.

카야가 날 좋아한다는 사실을 가족에게 들킨 거겠지.

‘카야야….’

이마를 턱 짚고 한숨을 내쉴 뻔했으나 자중했다.

“인사하지. 아스트레앙 공작가의 가주, 제랄드 아스트레앙이다. 널 보러 왔다, 아이작.”

제랄드는 귀족식 예법으로 인사했다.

안경을 한 차례 들치고 제랄드 쪽으로 몸을 돌렸다.

마음 편히 ‘아이고, 장인어른’ 태세를 취할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무슨 용무십니까?”

제랄드는 독수리처럼 위협적인 눈매로 내 눈을 노려보았다.

“넌 내 딸, 카야 아스트레앙을 품을 생각인가?”

이거….

꽤 번거로운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조짐이 보였다.

거짓말할 상황은 당연히 아니었고,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었다.

처음부터 날 시험한 걸 보면 썩 유쾌한 첫 만남도 아니고.

단호하게 말했다.

“예. 그렇다면 어쩌실 겁니까?”

훈련장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학생들은 죄다 긴장한 얼굴로, 나와 제랄드의 대치를 지켜보았다.

* * *

“……?”

황실 마차가 위병소를 통과해 메르헨 아카데미에 이른 때였다.

마차 안. 메를린 아스트레앙은 창문을 통해 아스트레앙 공작가의 마차를 발견했다.

카야가 돌아온 걸까, 하고 생각했으나 자세히 보니 가주 제랄드 전용 마차처럼 보였다.

메를린은 식겁하곤 창문에 고개를 내밀어 그 마차를 더욱 자세히 살폈다.

저건… 분명히 아버지의 마차가 맞았다.

“메를린? 왜 그래요?”

맞은편에 앉은 스노우화이트 황녀가 물었다.

“아버지께서 지금… 이곳에 계시는 것 같습니다.”

“네?”

화이트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거, 검성, 제랄드 아스트레앙 공작이요?! 어떻게 그걸 아셨죠?”

“저 마차, 저희 가문의 가주 전용 마차입니다. 이유는 몰라도, 아카데미에 방문하신 것 같습니다.”

화이트는 주차되어 있는 아스트레앙 공작가의 마차를 발견하곤 눈을 반짝였다.

제랄드는 황국 최대의 전력 중 한 명이자 검성이라 불리는 남자다. 그를 동경하는 사람은 많았고 화이트도 그러했다.

그러나, 메를린은 도저히 좋아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무서운 그녀로선 그저 심란할 뿐이었다.

한편, 카야 아스트레앙은 바람 마법으로 허공을 가로지르며 교정을 살피고 있었다.

아버지, 제랄드 아스트레앙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아버지, 대체 어디 가신 겁니까…?”

제랄드는 아카데미에 도착하자마자 교장실에 들러 교장 엘레나를 만났고.

당분간 아카데미에서 신세를 지고 싶다고 교장 엘레나에게 말했다. 이야기는 잘 끝마쳤다.

교장의 허가가 떨어지고 건물을 나서자, 제랄드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뚜렷한 불안감이 카야를 잠식했다. 제랄드가 아카데미에 온 목적은 하나뿐이었으니.

“앗, 찾았…!”

이윽고, 카야는 제랄드를 발견했다.

이미 제랄드는 청은발의 남학생, 아이작과 함께 대련 시설에 들어가고 있었다.

카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안 좋은 예감밖에 들지 않았다.

“으아아…!”

카야는 다급히 낙하해 대련 시설로 뛰어들어갔다.

시설 내부. 조용한 대련장에 아이작과 제랄드가 거리를 벌리고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참관인 역할을 맡은 교직원이 있었다. 아카데미가 아이작과 외부인 제랄드와의 대련을 허가해줬다는 방증이었다.

관중석은 빙제와 검성의 대련 소식을 접한 학생들이 일부 차지했다. 모두 흥미로운 표정으로, 대련장 위에 선 두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이작은 가볍게 몸을 풀었고.

제랄드는 대련용 목검을 몇 번 가볍게 휙휙 휘둘러보았다.

“너무 가볍군.”

마치 깃털 같은 무게라고 제랄드는 생각했다.

오랜만에 만져본 대련용 목검은 영 휘두르는 맛이 나지 않았고, 힘 조절을 못하면 쉽게 부러질 듯했다.

“아버지, 아이작 님!”

시설 안으로 들어온 카야는 아이작과 제랄드를 향해 소리쳤다.

“어서 와, 카야.”

아이작은 담담하게 인사했다. 제랄드가 여기 왔으니 카야도 당연히 왔을 거라 짐작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본 카야가 몹시 반가웠으나, 자신에게 살기를 뿜었던 제랄드가 앞에 있었기에 웃으면서 인사할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카야는 머리를 풀고 귀걸이를 착용한 채였다. 슬슬 성숙한 선배 이미지로 변신을 꾀하려는 모양이라고 아이작은 생각했다. 2학년 1학기가 끝나갈 때부터 조짐이 보였으니.

“두, 두 분, 어떻게 된 겁니까? 왜 갑자기 대련을…?”

“참견하지 마라, 카야. 널 위한 일이니까.”

제랄드는 단호했다. 자기 딸을 곁눈질하지도 않았다.

마침 아이작은 스트레칭을 마친 참이었다. 그는 제랄드를 바라보았다.

카야는 그 두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안녕? 설명충 체셔 등장이야!]

대뜸 괴묘-체셔가 카야 옆에 나타나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카야는 아이작과 제랄드에게만 신경을 과하게 쏟은 나머지 괴묘의 접근을 뒤늦게 알아채곤 비명을 지를 뻔했다.

[저 사람은 있지, 아이작이 자기 사위로 적합한지 대련으로 판단하려는 것 같아! 아이작은 저 사람의 뜻을 받아들였지.]

“예?”

[더 말해줘야 알겠어? 아이작은 사위 후보로서, 예비 장인어른의 인정을 받으려고 대련하는 거라고. 널 갖기 위해서 말이지!]

카야는 멍을 때리다가, 얼마 안 가 괴묘의 말뜻을 이해했다.

“흡…!”

홍당무처럼 달아오른 얼굴을 두 손으로 확 가려 버리는 카야.

“끄아아….”

탄식이 입으로 새어 나왔다.

부끄러움과 수치심이 그녀를 연달아 강타한 까닭이었다.

오늘은 정말로, 생애 최악의 날이었다.

“아이작. 네겐 갚아야 할 빚이 있다.”

제랄드는 오로지 아이작이라는 대련 상대만을 노려보며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단순히 검을 들고 적을 살피는 몸짓에도 깊은 관록이 묻어 났다.

“빚? …아.”

아이작은 아스트레앙 공작령에서 마족을 처치했던 일을 떠올렸다.

그 일 말고는 제랄드가 부채의식을 느낄 만한 게 없었으니.

“하지만 이 승부는 별개다. 네가 내 딸에게 걸맞은 사윗감인지 아닌지, 내가 이 자리에서 직접 확인하겠다.”

점잖으면서도 예리하게 벼려진 목소리.

제랄드는 직접 맞붙어보지 않은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

뒤펜도르프의 군주, 얼음의 원왕, 희대의 대마법사. 그런 이명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자신이 판단할 건 오로지 이 대련에서 마주할 사위 후보.

이 대련은 일종의 면접인 셈이었다.

카야는 “아버지이이….”하고 울먹였다. 관중석에 모인 학생들도 있거늘. 격렬한 수치심이 카야를 뒤덮었다.

이건 사실상 공개 처형이었다.

“얼마든지요.”

아이작은 사위 후보로서 대련장에 섰다. 카야를 향한 애정을 무를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또한, 이건 예비 장인어른의 테스트만이 아닌 검성과의 대련이기도 했다. 필시 강해지는 데 좋은 자양분이 될 터. 아이작은 이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한 수 부탁드립니다, 장인어른.”

“…….”

아이작이 고개를 숙이며 태연하게 ‘장인어른’이란 호칭을 입에 담자, 제랄드는 눈을 좁히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생각이 그대로 입 밖으로 나와 버렸다. 아이작은 아차, 했다. 실수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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