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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253화 (253/334)

〈 253화 〉 장인어른 (4)

* * *

“대련 종료! 아이작 승!”

참관인이 선언했다.

제랄드의 패배 선언으로 대련은 끝났다.

“…….”

제랄드 아스트레앙은 등을 돌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작을 슬쩍 곁눈질하고서.

아이작. 학생 나이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으면서도 오만하지 않은 사고방식이 무척 놀라웠다.

하물며 변칙적인 전투 방식은 어떠한가.

아이작이 재능에 심취하지 않고 그저 고단한 단련을 해왔음을 제랄드는 무심코 느껴버렸다.

아이작을 다그친 연유는 그에게 마음이 갔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카야의 남자 보는 눈이 틀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심 아이작이 마음에 들었다는 사실을 입 밖으로 내뱉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대련도 제 패배로 확정 났으니 여기서 더 할 이야기는 없었다.

제랄드는 대련장을 떠나갔고, 아이작의 눈은 그의 등을 뒤쫓았다.

“미쳤다.”

“대련용 검으로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해…?”

“검 부딪힐 때마다 마력 미세하게 터뜨리는 거 봤어? 그렇게 정교하게 마력 운용하는 건 처음 봤다, 난.”

“근데 굳이 그래야 하긴 했나?”

“일부러 계속 검을 부딪히려고 위력을 조절한 것 같던데. 큰 마법 쓰면 역으로 당했을 것 같더라.”

학생들은 흥분했다. 아이작과 제랄드의 대련은 마법이나 검으로 높은 경지에 오르면 ‘이러한 것도 가능하다’라는 가르침을 전해줬기 때문이었다.

비록 제랄드가 쥐었던 대련용 검이 오래 버티지 못했지만.

어디서도 구경하기 어려운, 수준 높은 대련이었음은 분명했다.

“으아아….”

카야는 대련장에 가만히 서 있는 아이작과, 떠나가는 제랄드를 번갈아 보았다. 곤란했다. 누구한테 가야 할까.

그 심정을 알아챈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여주더니 제랄드가 떠나간 방향으로 턱짓했다. 일단 제랄드와 이야기를 나눠보라는 의미였다.

카야는 “죄, 죄송합니다…! 나중에 찾아뵐게요!”하고 아이작에게 인사하고선 제랄드를 뒤쫓았다.

뚱뚱한 보라색 고양이, 괴묘-체셔는 아이작과 눈을 마주치곤 앞발을 들었다. 잘 봤다는 의미의 감사 인사였다. 곧 괴묘는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빙벽]이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찬 바람만이 여운처럼 남았다.

연이어 아이작도 대련장을 떠나갔다.

‘마법을 벴어.’

머릿속으로 대련을 복기하는 아이작.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선 제랄드와 싸울 일이 없었다.

갖가지 칭호를 가졌으나 막상 게임에서 활약할 일이 없는 캐릭터는 많았다. 제랄드도 그중 한 명이었다.

단지 아스트레앙 공작가에 방문해 상태창만 띄울 수 있을 뿐이었지.

그래서 강하다는 건 알았지만, 마법까지 척척 베어낼 수 있는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리 대련을 되새기다 보니 제랄드의 다그침이 가슴속을 쿡쿡 찔렀다.

자신은 뒤펜도르프와 계약했다. 그들이 모시려는 자로서 마땅한 책임감을 갖추지 못했다.

스스로를 내리깎는 언행은 뒤펜도르프를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제랄드의 지적은 바로 그러한 의미였으리라.

깨달은 건 무슨 일이 있어도 잊지 않는다.

아이작은 다시 안경을 썼다.

* * *

“아이작 선배!”

“화이트?”

대련 시설을 떠나자 화이트가 다가왔다.

화이트는 꽃이 만개한 것처럼 활짝 웃으면서 양팔을 뻗었다. 평소에 껴안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화이트는 안아 달라는 시늉을 곧잘 하곤 했다. 습관인 듯 보였다.

그러다 “아.”하고 팔을 내리는 화이트.

예전에 나를 껴안았다가 호되게 혼났던 일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지금은 아카데미 학생 신분이라도 황녀로서 지켜야 할 체통이란 게 있다. 항상 조신한 몸가짐을 보여야 할 텐데, 화이트는 그게 영 지키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화이트 옆에는 메를린이 동행하고 있었다. 어째 표정이 심각해 보였다.

“일찍 돌아왔네.”

“네에, 오랜만이에요!”

“과제는 다 했어?”

“에헤헤. 선배, 아직 방학이에요.”

웃긴 했지만 과제 같은 건 더는 언급하지 말라는 단호한 뉘앙스였다. 아직 다 못 했다는 간접적인 표현이기도 했다.

과제에서도 기한의 이익을 확실히 챙기려는 모습이 내 멘티 다웠다.

“그보다요, 아이작 선배! 아까 엄청 굉장했어요! 아스트레앙 공작이 마법을 벴던 것도, 아이작 선배의 기술도요! 근데 두 분, 어쩌다 대련하시게 된 거예요? 강자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대련장으로 향했다거나…!”

화이트는 설렘을 잔뜩 느끼며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화이트의 상상 속 나와 제랄드는 마치 무협물에 나오는 강호들처럼 꽤 멋있게 싸우러 간 것 같았다.

실상은 네 녀석이 사윗감에 어울리는지 확인해 보겠다는 사랑과 전쟁에 가까웠지만.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에둘러서 대답했다.

“아이작 공.”

화이트가 재촉하려는 때, 대뜸 메를린이 말을 걸었다.

나와 화이트는 메를린을 쳐다보았다.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물어보세요, 메를린 경.”

“혹시, 카야 아스트레앙과 무슨 관계….”

메를린은 더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끝내 시선을 떨구며 말하길 포기하는 메를린. 아직 대답을 들을 마음의 준비가 안 된 모양이었다.

메를린은 사정을 대강 짐작한 게 분명했다.

어차피 때가 되면 카야나 제랄드를 통해 알아서 전해 듣게 될 것이었다. 지금은 신경 쓸 문제가 아니었다.

화이트는 의구심 어린 표정으로 메를린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럼 뭐. 화이트, 시간 있어?”

화이트의 고개가 다시 내 쪽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다시 싱긋 웃었다.

“네에. 아이작 선배, 오랜만에 봤으니 차나 한잔 어떠….”

“옷 갈아입고 나와. 단련하자.”

“네?”

바짝 굳어버린 화이트.

화이트의 웃는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점점 그녀의 얼굴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메, 멘토링은 방학에 쉬는 거 아니었어요?”

“너 그 상태로 2학기 맞이하면 하위권 못 면한다.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단련해야 해.”

꼰대 같은 언사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화이트는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되니까.

“아이작 선배, 아뢰건대 방학엔 좀 쉬어도 괜찮지 않을까요오…?”

“안 돼.”

화이트가 학기 중에 그 힘들었던 단련을 견뎠던 건 나름 루틴이 정착된 덕분이었다. 게다가 화이트에겐 성장 욕구도 있었다.

하지만 방학이 되면서 화이트는 황실로 떠나 버렸고, 단련 루틴은 깨지고 말았다. 그러니 힘든 단련에 거부감이 들 수밖에.

마치 헬스장에 다니는 것과 같다. 아직 헬창이 아닌 사람이 운동하겠다고 매일 헬스장에 나오다가, 어떤 이유로 도중에 헬스장을 그만 나오게 되면 다시 힘든 운동을 하기가 싫어지듯. 화이트도 마찬가지였다.

안 된다. 우린 쉬어선 안 돼.

물론 오늘 단련의 강도는 조절할 생각이었다. 먼 길 오느라 고생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단지 하루라도 빨리 단련 루틴을 되찾아주고 싶었다.

“아, 맞아. 메를린, 저희 황실 기사단과 긴히 논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고….”

“후우.”

메를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을 정리한 듯 보였다.

“가시죠, 화이트 황녀님.”

“네에?”

“아이작 공 밑에서 단련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잖습니까.”

“메를리인….”

화이트는 돌파구를 찾으려 했으나 길이 막히고 말았다.

왜 내 편을 들어 주지 않느냐는 듯 메를린에게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는 화이트.

메를린은 화이트의 성장을 위해, 그리고 내 동향을 살피기 위해 날 도와주려는 모양이었다.

나야 고맙지.

화이트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나, 난… 이, 이러려고 황실에서 도망친 게 아닌데…!”

“화이트 황녀님,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습니다.”

나와 메를린은 화이트를 감쌌다. 화이트가 그늘에 휩싸였다.

“흐이이…!”

화이트의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

밤이었다.

콰강!!

나비 정원 구석에서 바위 목표물을 세우고 7성급 얼음 원소 마법 [빙뢰]를 발사하길 반복하고 있었다.

오늘 멘토링은 잘 마쳤다. 화이트는 우는 소리를 했지만, 자포자기하며 막상 단련에 들어가니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막상 복습해 보니 자기 성장이 실감 나서 의욕이 생긴 모양이었다.

뭐든 그렇다.

사법연수원에 입소하기 전, 합격자 모임을 갖고 담화를 나눌 때였다.

큰 슬럼프에 빠져 1년간 공부를 쉰 적이 있는 사람이 이런 얘기를 했다. 고시 공부한 걸 다 까먹어서 절망할 뻔했는데, 막상 다시 고시 준비에 들어가니 공부가 수월하게 잘 되었다고.

해보면 된다.

이미 열정을 갖고 무언가를 부단히 해봤던 사람은 한동안 쉬었다고 해도, 또 해보면 어떻게든 된다.

그러니 단련에 거부감을 내비쳤던 화이트를 억지로 단련시킨 것이었다. 화이트의 의욕이 따라줘서 다행이었다.

그 이후론 카야와 대화라도 나눌 수 있을까, 하고 기대했지만 제랄드가 쉽게 놓아주지 않는 듯했다.

그래서 내 단련에만 집중하기 시작한 지 어느덧 4시간째였다.

“더럽게 안 맞네.”

바닥에 주저앉았다. 마력을 무리해서 많이 소모했다. 7성급을 익힌 뒤론 단련의 강도가 더 높아졌다는 게 체감되었다.

숨을 가다듬고 5분간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그때,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살기가 없네요.”

누군지 알아챘기에 그런 말을 먼저 던졌다.

뒤를 돌아보았다. 제랄드 아스트레앙이 다가오고 있었다.

날 찾아온 듯했다.

“마력이, 대련했을 때와는 크게 차이 나는구나.”

대련했을 때는 [대 인간 전투력]이 발휘되었으니까.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최대 마력량 조작은 대마법사의 영역이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 굳이 거짓말 쳐서 설명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제랄드 쪽으로 몸을 돌렸다.

“스노우화이트 황녀님을 꽤 험하게 굴리더구나.”

“뭐…, 멘토라서요. 아카데미에서 하는 게 있는데, 제가 가르치는 입장입니다.”

“그렇군.”

언제 봤냐….

“그보다, 카야 얘기하러 오셨죠?”

심리를 읽을 필요도 없었다. 카야 얘기 말고 이 사람이 날 찾아올 이유가 뭐겠는가.

그러나 제랄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카야 얘기는 끝났다 했을 텐데.”

…그럼 왜 오셨는데요?

가만히 눈을 바라보고 있자 제랄드가 말을 이어갔다.

“하나 묻지.”

제랄드는 내 앞에 서서 날 내려다보았다.

“넌 마법 하나로도 충분할 텐데, 왜 그런 전투법을 익힌 것이냐?”

대련 얘기구나.

‘그런 전투법’이라 한다면, 내가 마법에만 의존하지 않고 싸웠던 걸 의미하는 듯했다.

“마법 하나만 믿을 순 없으니까요.”

제랄드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대마법사의 경지에 이른 자가 마법을 믿지 못한다? 아이러니한 소리군.”

곧 제랄드는 새로운 발상을 떠올렸다.

“아니…, 오히려 누구보다 마법을 잘 알기에 마법을 믿지 못하게 된 것인가. 그렇다면 납득이 되는구나. 여기서 내가 배우고 갈 줄은 몰랐군.”

혼자서 자문자답하고 계시는 장인어른.

그냥 마법 하나 갖곤 이 여정을 무사히 클리어해 나갈 수 없기 때문인데.

그런 걸 설명할 수 없었으니, 알아서 납득해줘서 다행이었다.

“선물을 주마.”

“……?”

눈을 깜박이자 제랄드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차박, 거리는 잔디 밟는 소리만 들렸을 뿐.

인기척은 뒤쪽에서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제랄드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까 대련 때 봤던…, 그 마술 같았던 개쩌는 무빙인가.

마법도 아니고. 그저 움직임이 남다른 것이었는데, 어떻게 저럴 수 있는지 신기하기도 했다.

“보법이다.”

내 의문의 해답을 알려주듯, 제랄드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냉담하게 말했다.

“보법?”

“내가 여기서 며칠 체류하는 동안 이런 걸 가르쳐 주마.”

“예?”

“네 전투법에 분명 도움이 될 거다. 습득할 수 있을지는 네 역량에 달렸지만. 받을 거냐?”

내 입이 떡 벌어졌다.

이런 건 생각지도 못했는데.

“정말입니까?”

제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희열이 올라왔다. 굉장히 기뻤다.

“예, 그런 선물이라면 무조건…!”

절로 활짝 미소가 지어졌다.

상체를 힘차게 숙여 감사를 표했다.

“챙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인어른!”

“장인어른이라 부르지 마라.”

미간을 찌푸리는 제랄드.

여전히 그는 ‘장인어른’이란 호칭에 예민하게 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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