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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260화 (260/334)

〈 260화 〉 왕위 즉위식 (2)

* * *

마차는 뒤펜도르프에서 준비해온 것이었다.

하얀 색감의 고급 마차는 혹한의 땅을 가로지를 수 있는 내구도를 가졌으며, 마차를 모는 말들은 모두 얼음 결정이 온몸에 새겨진 백마 마수였다.

뒤펜도르프의 병력이 호위로 붙었다. 마차 밖에서 갑옷이 내는 카랑카랑한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다. 얼음 기사들이 움직이는 소리였다. 여전히 극진한 대우가 영 낯설었다.

루체나 카야, 도로시, 화이트에겐 왕위즉위식에 다녀오겠다고 얘기했다.

뒤펜도르프에 데려가려 했던 사람은 앨리스뿐이었다. 내 하수인이므로 뒤펜도르프의 병력이나 다름없기에 대동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아카데미를 떠나고 연륙교를 지났을 때, 갑자기 도로시가 날아와 마차 위에 안착했고.

결국, 도로시를 마차 안으로 들여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다.

‘불편하네….’

도로시와 앨리스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공기가 불편했다.

어느덧 한참을 가다 보니 때 이른 눈송이가 춤추듯 내리기 시작했다.

[주인, 눈 온다.]

“거의 다 왔나 보네.”

1년 내내 눈이 내리는 제르베르 황국의 북부는 정말 멀다. 즉, 뒤펜도르프 영토의 영향이 분명했다.

뒤펜도르프는 혹한의 땅으로, 아카데미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벌써 저 멀리, 황국이 많은 인력과 자원을 들여 바위 마법으로 구축한 벽이 보였다. 시야에 다 담기지 않을 만큼 널찍한 벽은 뒤펜도르프의 추위를 막아주는 방파제였다.

국경선을 통과하려면 유일하게 바위 벽이 세워지지 않은 구간에 이르러야 한다. 황국과 뒤펜도르프의 국경 경비대가 지키고 있는 곳이다. 경비는 삼엄한 편이지만, 뒤펜도르프는 황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기에 몇 가지 요구 조건만 지키면 수월하게 통과시켜준다는 모양이다. 입국 절차였다.

뭐, 우호적인 관계라는 것도 지금일 뿐이지. 앞으론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 * *

“여기서 하루 묵고 갈까요?”

“찬성. 춥고 졸려어.”

밤이 깊었다. 뒤펜도르프의 영토가 점점 가까워지며 한겨울이라도 된 것 같은 추위가 몰려왔다.

아이작 일행은 가까운 마을에 있는 숙박 시설에 들렀다.

모두를 수용하기엔 방에 여유가 없었기에, 아이작과 앨리스, 도로시가 우선 편의 시설을 이용하게 되었다. 마부는 다른 숙박 시설을 찾아갔고, 호위병들은 간이 캠핑을 만들어 그곳에서 노숙하기로 했다.

그리고.

“…….”

“…….”

도로시와 앨리스는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2인실. 어두운 방. 도로시와 앨리스는 2인용 침대에 나란히 누운 채였다.

도로시는 앨리스를 등진 채 침대 끝에 걸쳐 있다시피 했다. 반면에 앨리스는 다소곳이 누운 채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이렇게 된 거지…?”

“아이작이랑 자고 싶었니?”

“그런 말이 아니잖아. 왜 내가 너랑 한 침대에서 자야 하는 건데?”

“처음 겪는 일도 아니면서. 셋이서 같이 자봤잖아. 정 내가 싫으면 바닥에서 자는 게 어떻겠니?”

“침대는 포기 못 해.”

도로시는 “하암.”하고 하품했다.

싫은 건 싫은 거지만, 일단 졸렸다.

“그냥 잘래. 이제 말 걸지 마.”

“도로시, 있잖아.”

“말 걸지 말라니까….”

“나한테 애기 뺏길까 봐 긴장돼서 쫓아왔니?”

“…머리 돈 거지, 너?”

“농담이란다.”

앨리스는 장난스럽게 웃었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사실 애기가 걱정돼서 따라온 거지?”

“…….”

도로시는 눈을 가늘게 떴다.

“넌 사람 감정 읽을 줄 알잖니. 난 그런 건 못해도, 요새 애기가 급박해 보인다는 느낌은 들더구나.”

“…아이작 지금 상태 안 좋은 거 맞아.”

도로시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아이작은 책임감이 되게 무겁다? 악신 토벌해야 한다면서. 그래서 자기 마음에 스크래치가 얼마나 나는지 알아차릴 정신도 없이 살아가고 있어. 그런 애가, 요즘 많이 슬퍼하더라구.”

“슬퍼해?”

“응. 힘들어도 꿋꿋하게 살아왔던 애가 뭐 때문인지 정말로 크게 슬퍼하는데….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잖아.”

아무리 심지가 올곧은 아이작이라고 해도, 그가 혼자서 피투성이가 돼 가는 꼴을 가만 놔둘 수 없었다.

도로시는 아이작에게 위로가 되어 주고 싶었다. 말 못 할 슬픔 따위도 자연스레 물러가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앨리스는 도로시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자상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구나. 도로시는 기특하네.”

“…진짜, 네가 그런 말 하면 기분 나빠.”

도로시는 투덜대며 눈을 감았다.

* * *

숙박 시설에서 하루 묵은 뒤, 탁 트인 길을 나가며 국경 경비소로 향했다.

뒤펜도르프의 한풍을 막기 위해 도열된 바위 벽의 어느 지점이었다. 그곳엔 황국을 상징하는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나와 앨리스, 빙설룡-힐드는 미리 챙겨 온 두꺼운 옷으로 갈아입었다. 힐드는 두꺼운 옷 같은 건 필요 없었지만, 우리와 같은 기분을 내고 싶었다며 입은 것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뒤펜도르프에서 가져온 방한성 옷이 있었다. 그건 도로시가 입었다. 하얀색 털 외투였다.

“저기, 벨론.”

“예, 주군.”

내 부름에 마부, 벨론이 답했다. 중년 남자였다. 이름은 어젯밤 마을에 도착했을 때 물어보고 알아냈다.

벨론은 봄옷이나 다름없는 차림이었다.

“안 추워?”

“괜찮습니다. 저는 서리 종족이라 추위에 강하니까요. 이 정도 추위야 삼삼하죠.”

“그러냐.”

서리 종족이라.

인간의 외형인 건 똑같은데, 한랭에 강해지도록 진화한 걸까.

“추우면 말해라.”

“배려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어느덧 우리는 국경 경비소에 이르렀다.

국경 경비소는 초소를 포함해 여러 건물이 자리 잡은 채였다. 작은 마을이라고 보아도 무방한 수준이다.

“빙제님을 뵙습니다! 황실 기사단 3번대 국경 경비대 대장, 마틴이라고 합니다.”

뒤펜도르프 병력의 입국 사유를 전해 받았던 까닭인지, 국경 경비대는 열을 맞추어 나를 깍듯이 맞이했다.

마차에서 내렸다. 나도 성의를 보이고 싶어서였다.

국경 경비대 대장 앞으로 나아갔다. 내 뒤론 뒤펜도르프의 병력과 도로시, 앨리스, 빙설룡-힐드가 자리를 지켰다.

“반갑습니다. 아이작이라고 합니다.”

국경 경비대는 모두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만, 내게 감탄하고 있었다. 이런 어린 녀석이 원왕이라는 게 신기한 모양이었다.

“지나가려는데, 개문해주시겠습니까?”

경비소에 들어올 때 검문 절차를 마쳤기에 더 할 건 없었다.

이제 경비대가 등진 거대한 문을 통과하면 될 뿐.

“알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시길.”

국경 경비대는 좌우 끝으로 열을 맞추고 길을 텄다. 정성 보소.

필요 없는 이벤트였지만, 이런 대접 받는 기분은 썩 마음이 들었다.

쿠우웅. 끼이이이익.

거대한 문이 천천히 열렸다. 맞붙어 있던 두 개의 문짝이 떨어지자, 벼르고 있었다는 듯 눈보라가 새어 들어왔다.

마침내 문이 완전히 열리고, 눈보라가 쏟아지며 내 머리칼과 옷자락을 뒤흔들었다. 휘이익, 거리는 바람 부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딱히 춥진 않았다. 그냥 차가운 바람이구나, 싶을 뿐.

“느흐흐, 완전 추워.”

도로시는 즐겁게 웃었다.

앨리스는 말없이 팔짱을 끼고 몸을 웅크렸다.

“그럼, 조심히 가십시오.”

경비대 대장 마틴은 길을 비키고 고개를 숙였다.

[주군, 다시 마차에 들어가시는 편이….]

“괜찮아. 몸이 뻐근해서. 잠깐 걸을게.”

뒤에서 기사단장 모르칸의 말에 그리 답했다. 마차에만 있으니 답답할 지경이었어.

우리는 활짝 열린 거대한 문을 지나갔다. 국경 경비대는 열린 문 앞에서 다시 열을 맞추어 우리의 뒤를 지켰다.

그렇게 우리는 뒤펜도르프의 영토에 첫발을 내디뎠다.

“굉장해…!”

도로시가 감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새하얀 땅.

하얀 하늘. 파란색 빛깔을 비추는 하얀 식물들.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보였지만, 주위론 눈이 가득 쌓여 있었다. 설원이나 다름없었다.

열린 길엔 푸른 마석이 틈틈이 놓여 있었는데, 그것이 눈이 쌓이는 걸 방지하는 작용을 하는 듯 보였다.

“냐하하! 예쁜데 추워!”

도로시는 들뜬 목소리로 외치고는, 하얀 눈밭에 제 발자국을 남기며 키득거렸다.

이곳은 죽음의 땅이라고도 불린다. 작정하고 횡단하려는 건 자살 행위다. 뒤펜도르프의 국민이 아니라면 견디기 어려운 추위 탓이다.

그 원인인 세찬 눈보라가 만연하다. 단순한 눈보라가 아니다. 온화하며, 아름답다. 그것은 마력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어찌 됐든 앨리스와 도로시는 많이 추울 것이었다.

뒤펜도르프는 이 눈보라 때문에 교역이 어려웠고, 폐쇄적인 국가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땅을 지배하는 냉기는 새로운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아무도 다스릴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곳엔 내가 있었다.

“다들 잠깐만.”

“애기야?”

내가 앞으로 나아가자 앨리스가 의구심 어린 목소리로 날 불렀다. 국경 경비대 또한 나를 지켜보았다.

느껴진다. 이 눈보라는 내 것이다. 다스릴 수 있는 마력이다.

상화의 검으로 뒤펜도르프와 계약을 맺어 새로운 빙제가 된 까닭일 터.

오른팔을 앞으로 뻗었다. 눈보라를 운용하려 하자 내 주위로 연푸른빛 마력이 흘렀다.

잔잔히 읊조렸다.

“멈춰.”

화아아아악!!

내 의지가 눈보라에 전해진다.

잠시간 태풍 몰아치는 소리와 함께, 지평선 너머까지 눈보라가 빠른 속도로 사그라졌다.

시야가 환해졌다. 하얀 하늘에 내리쬐는 햇볕이 보였다. 뒤펜도르프의 하얀 땅이 더욱 새하얗게 물들었다.

뒤를 돌아보았다. 크게 놀란 사람들이 보였다.

“도로시 선배, 이제 어때요?”

“딱 괜찮아졌어!”

“다행이다.”

나는 싱긋 웃었다.

“이게 무슨…?”

몸을 떨면서 경탄하는 국경 경비대 대장 마틴.

국경 경비대는 공포감을 느꼈다. 내가 자연재해마저 가볍게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그들의 오해 따윈 알 바 아니었기에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가자.”

나는 놀란 얼굴을 한 뒤펜도르프 호위병들을 이끌고 나아갔다.

목적지는 왕위즉위식이 열리는 뒤펜도르프의 수도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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