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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263화 (263/334)

〈 263화 〉 왕위 즉위식 (5)

* * *

‘그런 얘길 여기서 하겠냐.’

낯간지러운 이야기다. 대답은 보류하기로 했다.

“굳이 지금 얘기하고 싶지 않은데.”

“실례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전하.”

“아니야.”

대행주 리샤드는 내가 회피하는 주제를 더 파고들지 않았다. 내 대답에 맥 빠졌는지 앨리스는 몸에 힘을 풀고 눈을 내리깔았다.

그 후로 리샤드는 신하들과 함께 나를 모시고, 왕궁 앞의 아름다운 얼음 정원을 가로지르며 일정을 이야기했다.

쉴 생각은 없었기에 곧바로 주요 행정직과 병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고, 저녁엔 기다란 식탁에서 만찬을 즐겼다.

도로시는 뭘 하든지 들뜬 채로 즐거워했고, 앨리스는 얌전하게 굴었다. 뭐랄까, 서로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어느덧 하늘이 어둡게 물들자 리샤드와 신하들은 날 데리고 어딘가로 향했다.

“어디 가는 거야?”

“전하께 보여드려야 할 것이 있어서 말입니다.”

우리는 왕궁 뒤편, 부속 건물에 이르렀다.

리샤드가 턱짓하자 따라오던 신하들이 모조리 멈춰 섰다.

“따라오시지요.”

리샤드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었다. 그것을 타고 내려가자 결계가 보였다.

“이건?”

“이 결계로 지하실의 냉기를 천 년간 봉인해 왔습니다. 그 냉기에 닿으면 누구라도 순식간에 얼어붙어 목숨을 잃고 말지요.”

“천 년간?”

“1대 주군께서 명하시길, 훗날 새로운 빙제가 나타났을 때 이 지하실에 있는 것을 전하라는 명이 내려져 왔사오니. 오직 전하만이 이 지하실을 메운 냉기를 다스릴 수 있을 것이옵니다.”

“이 안에 뭐가 있는데?”

“발자국 하나 남기는 것으로 일대를 빙판으로 만들어 버렸던 강력한 고대 마수, ‘빙천곡의 휘설랑’. 그 마수를 토벌하고 만들어 낸 ‘휘랑의 망토’이옵니다. 서리군주를 상징하는 최상의 마도 방어구이지요.”

마도 방어구란 마도 무기처럼 마법적인 힘을 지닌 방어구를 뜻했다.

태초의 빙제가 망토를 달고 다녔던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게 휘랑의 망토라고 불리는 것인 줄은 미처 몰랐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도 그런 옷은 구할 수 없었으니까.

“이 결계는 오로지 제게만 허락된 권한으로 풀 수 있사오니, 원하신다면 결계를 풀겠나이다.”

“…풀어줘.”

“명령대로 하지요.”

이런 데서 전력 강화라니. 뜻밖의 수확이었다.

리샤드는 오른팔을 앞으로 뻗고서 마력을 조작해 결계를 풀었다.

사르르, 결계가 녹아내리듯 사그라지며 싸늘한 감각이 피부를 에워쌌다.

극저온의 냉기가 점차 지하실로부터 흘러나와 쩌적, 하고 주위를 하얗게 얼려 버리기 시작했다.

지하실 안쪽은 무척 밝았다. 마치 조명을 수십 개나 설치하기라도 한 것처럼. 아마 안쪽에 강한 얼음 마력을 내뿜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 터.

“다녀오시지요.”

리샤드는 고개를 숙였고.

나는 계단을 내려가 극저온의 냉기로 가득한 지하실에 들어섰다.

밖에서 철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대행주 리샤드가 나가서 문을 닫은 것이었다. 지하실의 냉기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걸 막아내기 위함일 터.

지하실엔 살인적인 냉기가 가득했으나, 내겐 별다른 영향이 없었다. 새로운 빙제가 된 내게 소유권이 넘어온 힘이라서 그럴 것이었다. 분명 이 냉기는 상화의 검과 연동된 힘이겠지.

넓은 지하실. 말끔하고 기다란 망토 하나가 은빛 거치대에 걸린 채 고요히 나풀거리고 있었다.

하얀색 털 카라가 장식된 짙은 파란색 망토였다. 그것은 연푸른빛 냉기를 뿜어내며 지하실을 죽음의 공간으로 탈바꿈시켜 자신을 보호하고 있었다.

다가갔다.

휘이이이이!

냉기가 제 주인을 만난 것처럼 반응하며 나를 중점으로 맴돌기 시작했다. 반기는 걸까.

망토를 만지자, 뿜어져 나오는 냉기가 한층 격렬해졌다.

망토를 집어 들고 그것을 어깨에 씌웠다. 망토가 내 어깨에 착 달라붙었다.

“후우.”

고정대를 장착하고 숨을 들이마신다.

‘이게 휘랑의 망토….’

서서히 지하실을 메운 냉기가 망토 안으로 스며들었다.

마치 새로운 주인을 맞이해 안정을 되찾았기라도 하듯.

[전설의 방어구 [휘랑의 망토]를 획득하였습니다!]

휘랑의 망토는 내 것이 되었다.

휘우우우우.

마침내 냉기가 사그라지자 지하실엔 은은한 조명만이 쓸쓸히 남았다.

벽면에 걸린 램프 안에서 얼음 마력을 에너지 삼는 마석이 발광하기 때문이었다.

휘랑의 망토가 흘려 낸 냉기 덕분에 천 년이란 시간이 지나도 램프는 빛을 잃지 않았다.

‘오오.’

망토의 고운 촉감.

천 년 이상 지났어도 극저온의 냉기로 보존되었던 까닭에 옷은 크게 문제가 없어 보였다. 태초의 빙제가 입고 다녔던 흔적만 간간이 찾을 수 있을 뿐.

성능은 이것저것 시도해 봐야 파악할 수 있겠지만, 굉장히 쓸 만한 망토라는 건 분명했다. 당장에 망토에 담긴 독자적인 얼음 마력조차 밀도가 매우 높다는 게 느껴졌다. 이건 확실히, 좋은 물건이었다.

“응?”

거치대 옆에 놓인 작은 상자가 놓여 있었다. 눈에 잘 안 띄어 알아채는 게 늦어졌다. 그 작은 상자를 집어 들었다.

작은 상자는 휘랑의 망토가 뿜어온 냉기 탓인지 꽁꽁 얼어 있었으나, 빙결 해제로 상자를 원 상태로 되돌릴 수 있었다.

상자를 얼렸던 얼음이 연푸른빛 가루가 되어 스르르 사라졌다. 나는 상자를 열었다.

‘쪽지?’

쪽지 한 장.

내용물은 그것뿐.

상자에서 쪽지를 빼냈다. 거기엔 이 세계의 언어가 두 문장 적혀 있었다.

“…….”

헛숨을 들이마셨다. 그대로 호흡하길 잊었다.

나는 잠시간 사고가 멈춘 채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 악신을 봉인했던 자가 당신을 돕고 있을 것이다. ] [ 그러나 살고 싶다면 아무것도 믿지 마라. ]

이게 뭔 말이야?

살인적인 냉기가 남아 있던 지하실이다. 여기에 휘랑의 망토와 함께 무언가를 남겼을 사람이라면.

‘태초의 빙제 말곤 없을 텐데.’

문득 1회차 도로시가 남겼던 책 내용이 뇌리를 스쳤다.

─ ‘무슨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직관적인 형태로 당신을 돕는 이가 있다고 합니다. 그녀의 존재를 절대로 악신에게 들켜선 안 됩니다. 그렇다고 그녀를 맹신하진 마세요.’

“…….”

이성을 차갑게 가라앉혔다.

쪽지와 상자를 품 안에 집어넣었다. 지금은 혼란을 겪을 때가 아니었으니.

지하실을 나서서 올라가자 철문이 자연스레 열렸다. 첨탑 밖으로 나가자 리샤드와 신하들이 고개를 숙여 나를 반겼다.

돌연 리샤드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려고 했다. 그러나 눈물이 흘러내리진 않았다.

“저으으언하…! 극한의 냉기를 거머쥐시고, 휘랑의 망토를 걸치신 그 근엄하신 모습에 감복하지 아니할 수 없나이다…!”

내게 짬 때릴 생각으로 가득했던 리샤드는 휘랑의 망토를 걸친 내 모습에 호들갑스럽게 아첨했다.

복잡한 심경이었기에 그저 선하게 웃어 주고 말았다.

“…가자.”

“예, 그리하지요.”

망토를 벗어 귀중품용 마법 주머니에 집어넣고 발걸음을 옮겼다.

“하나 묻자.”

“예, 전하.”

“태초의 빙제는 어떻게 죽었어?”

태초의 원왕들은 게임 컷씬이나 설정집에서 단조로운 실루엣으로만 등장할 뿐이었다.

자세한 외형이나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 따위는 알 수 없었다.

“그건…, 저희도 모르옵니다.”

모른다고?

“옛 기록에 따르면, 아주 먼 여행을 떠난다고 하시고선 돌아오지 않았다고 전해지고 있사옵니다.”

“여행?”

“예. 대행주라는 자리까지 만드시고,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난다면 미리 세워둔 무덤에서 기리라고 하셨으니…. 아마 돌아오지 못할 걸 염두에 두고 떠나셨던 듯 하옵니다.”

작정하고 떠났다?

“인간의 수명으론 [불로]의 힘을 갖고도 버틸 수 없을 만큼 긴 세월이 흘러 버려서, 이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돌아가신 것이라 확신하고 있사옵니다. 아직도 저희는 그분의 유해를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지요.”

“…….”

태초의 빙제, 베로니카 아슬리우스의 무덤은 이곳, 왕궁의 끝자락에 성전처럼 자리 잡고 있다.

이름만 무덤일 뿐, 실제로 베로니카의 유해는 그곳에 없었다.

자신이 마지막 여행을 떠나게 될 줄 미리 알고 있었다니….

“태초의 빙제가 남긴 유언 같은 건?”

“유언이라 봐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여행을 떠나시기 전에 하신 말씀이 있사옵니다. 아직 해석이 분분하여 그 말씀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는 명확히 파악하지 못했지만요.”

“뭐라 했는데?”

리샤드는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별을 따라가겠다. 거짓을 뿌리치기 위해’.”

“…….”

“그런 말씀이셨습니다. 그분께서 무슨 별을 따라가셨는지, 뿌리치려 하셨던 ‘거짓’이라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지금까지 아무도 모르고 있지요. 혹시 전하께선 짐작 가는 바가 있으신지…?”

9성급 얼음 원소 마법 [한빙지옥]의 영창과 빙설룡-힐드가 했던 전 주인 이야기가 떠올랐다.

태초의 빙제는 이 세계에서 아무에게도 정을 주지 않은 것 같았다.

자기 생애에 그 어떠한 의미도 찾지 못하고 그저 살아가며, 고독할 뿐인 이 세상은 지옥이라며.

마지막엔 기어이 홀로 여행 길에 올라섰던 것일까.

“…전혀.”

태초의 빙제가 정확히 무슨 생각을 품어왔고, 무엇을 추구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가 뿌리치려 했던 거짓이라는 게 무엇이었지도.

왜 살려면 아무것도 믿지 말라고 내게 메시지를 남겼는가.

왜 자신을 망설임 없이 없애라고 전언을 남겼는가.

그 진실의 갈피는 얼음 호수에 있을 것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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