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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265화 (265/334)

〈 265화 〉 원왕 회의 (1)

* * *

이브 로펜하임은 자신이 용기가 부족했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었다.

메르헨 아카데미에 돌아온 직후에 아이작을 만났으면 기분 좋게 말을 걸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성을 되찾아가며 점점 용기가 줄어들었고, 이젠 아이작이 메르헨 아카데미에 돌아왔음에도 쉽게 말을 걸지 못했다.

단순한 용기 문제였다면 또 모른다. 항상 아이작의 옆에는 거들떠도 보기 힘든 거물들이 곁을 맴돌고 있었다.

루체 엘타니아, 카야 아스트레앙, 도로시 하트노바, 앨리스 캐럴, 스노우화이트 황녀….

도저히 파고들 틈이 없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이브의 용기는 점차 줄어들어 망설임만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래선 안 돼…!’

아침에 기숙사에서 눈을 뜨자마자 스스로를 다그치는 이브.

이래선 안 된다. 동생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며 그녀는 자기 뺨을 철썩철썩 때렸다.

오늘은 컨디션이 좋았다. 근거 모를 자신감이 넘쳐흘렀고, 세상이 무너져도 아이작에게 제대로 말을 걸 수 있을 것 같았다. 때때로 있는 최고의 날이었다.

그러나….

“아이작, 어디 있어…?”

아무리 아카데미를 돌아다녀도 아이작을 찾을 수 없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이브는 바르토스관 행정실에 가서 교직원에게 아이작의 행방을 물었다.

“아이작 학생, 지금 외출 중이네요.”

“네…?”

“외출 신청하고 위병소를 통과했습니다. 오늘 아침에요.”

이브는 멍을 때렸다.

오늘 같은 날에, 또 외출해 버렸다고…?

왜 또 이렇게 된 건데…?

“저기? 이브 학생?”

교직원은 안색이 안 좋아진 이브를 걱정했다.

……

메르헨 아카데미 마법학부 2학년생, 저번 학기 기준으로 A 클래스 소속이자 전교 5등, 케리드나 화이트클락.

그녀에게 이번 방학의 의미는 각별했다.

약혼 후보자인 남자와 처음으로 대면 약속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비록 상대는 부모가 정해주려는 짝이었고, 케리드나는 그의 얼굴조차 알지 못했지만.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다는 귀족 영식으로 유명한 사람이니 기대감이 절로 들 수밖에 없었다.

“케리드나 님, 긴장하셨어요.”

“기, 긴장이라니? 그럴 리가 없잖아?”

케리드나는 화이트클락 가문의 대저택 앞, 정원에 마련된 아름다운 파빌리온에 앉아 있었다. 옆에는 메이드가 다소곳이 서 있었다.

북부 지역에 1년 내내 내리는 새하얀 눈이 파빌리온의 지붕을 덮었다. 눈이 내리는 걸 상정해서 디자인된 곳이었기에 정경에 심미감이 넘쳐났다.

한껏 예쁘게 꾸민 케리드나는 이상형의 모습을 상상하며, 찻잔 쥔 손을 덜덜 떨었다.

“하지만 손이….”

“수전증이야.”

“아, 예…. 그래도 심호흡이라도 하시면서 마음을 편하게 가지시는 편이 어떻겠어요?”

“긴장한 거 아니라니까.”

케리드나는 후후, 하고 경망하게 웃었다.

“오히려 여유가 넘친다고. 내가 뭐가 아쉬워서 긴장하겠어? 긴장해야 할 건 상대방이지. 청순한 얼굴에 가려진 내 악한 본성을 품어 주지 못한다면 내 남자가 될 자격이 없으니까…!”

“아…, 예. 그렇죠.”

케리드나는 아직 사춘기 티를 벗지 못했다. 순수하고 여린 심성을 지녔으나, 악역 영애라는 캐릭터에 매료되어 자신을 악한 사람 취급하는 경향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연극이나 소설 따위에 감정을 쉽게 이입해 버리는 공감 능력과 감성의 영향이었다.

메이드에겐 익숙한 일이었다. 그녀는 대꾸 없이 넘어갔다.

그때, 케리드나 쪽으로 다가오는 남자와 호위병을 메이드는 발견했다.

“오셨네요.”

“흐악…!”

케리드나는 벌떡 일어서곤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펄떡펄떡 뛰는 심장. 케리드나는 연극에서나 보았던, 악역 영애를 품어 주던 잘생긴 남자 캐릭터를 떠올리며 얼굴을 붉혔다.

먼저 인사를 건넨 사람은 메이드였다.

“브얀스에서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히히…! 아니다!”

케리드나의 기대감으로 반짝이는 눈이 삐걱삐걱 돌아갔다.

그리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귀족 영식을 두 눈에 담는 케리드나.

“이거이거! 반갑소, 화이트클락 가문의 영애여! 세인트리오 공작 가문의 헬리제라고 하오!”

차아악.

케리드나의 눈빛은 찬물이라도 끼얹은 것처럼 차게 식어버렸다.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남자는 입은 옷만 번지르르할 뿐, 케리드나보다 키가 작은 껄렁껄렁한 어린 소년이었다. 캬캬, 하고 천진난만하게 웃는 모습은 경박하게 보였다.

물론 소문대로 아름다운 외모이긴 했으나…, 어려도 너무 어려 보였다. 케리드나가 바랐던 미남의 외형으로부터 동떨어져도 한참이나 동떨어졌다.

“어, 어서 오시지요…, 헬리제 경. 실례지만 혹시 나이가…?”

“올해로 13살이오!”

케리드나는 큭, 하고 침음을 흘리며 비틀거렸다.

테이블을 짚는 케리드나.

이건 예상치 못했다.

“케리드나 님?”

“내가 바랬던 건 저런 꼬맹이가 아니야….”

“예?”

“내가 바랬던 건, 듬직한 야수와도 같으면서 때론 시구르 산 차의 산뜻한 풍미처럼 선해 보이는 미남이었다고…!”

케리드나는 고개를 떨군 채 슬픈 목소리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녀의 분홍색 머리카락이 스르르 흘러내려 실망감 어린 얼굴을 감추었다.

약혼하라는 부모의 지시가 강압처럼 느껴졌다. 웬만해선 저 소년과의 약혼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사실이 한탄스러웠다.

약혼 후보자 소년, 헬리제는 케리드나의 심정도 모르고 싱글벙글 웃을 뿐이었다. 좋은 환경에서 매일 떠받들어지며 살다 보니 매사에 자신감만 철철 넘치게 되고 만 까닭이었다.

“왜 그러시오, 나의 그대여?”

“으헉…!”

어린 소년의 그 한 마디가 소름 끼치게 느껴져, 케리드나는 각혈하고 싶어졌다.

“케리드나 님….”

“이건 아니야, 이건 진짜로 아니야…. 뭐라고 거절하지…?”

“그걸 저한테 물으셔도….”

가문을 생각한다면 헬리제와 사이가 틀어져선 안 됐다.

케리드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메이드에게 작은 목소리로 도움을 구했지만, 돌아오는 건 무력한 대답뿐이었다.

그 순간.

[카아아아!]

사나운 마수의 포효 소리가 모두의 귀청을 울렸다.

케리드나의 두 눈이 희번덕 뜨였다. 그녀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 포효 소리는… 불과 몇 달 전에 들어 본 적이 있었으니.

강풍이 불어왔다. 세인트리오 가문의 소년 헬리제는 “뭐, 뭐야?!”라고 소리치더니 겁에 질려 덜덜 떨었고, 호위병들은 일제히 그를 지켰다.

백옥빛 마력이 흰 눈처럼 퍼져나가고, 거체의 하얀 용이 내려와 화이트클락 가문의 정원에 안착했다.

“저건…?”

신화 속 백룡, 빙설룡-힐드였다.

화이트클락 가문의 사용인들은 “백룡…?”하고 크게 놀랐고.

세인트리오 가문의 호위병들은 짙은 경계심을 내비쳤다.

13살 소년, 헬리제는 백룡의 위엄에 압도 당해 잔뜩 겁먹은 채 “엄마아….”하고 울먹였다.

백룡이 고개를 지면에 붙이고, 백룡 위에 타고 있던 청은발의 남자가 무심히 내려왔다. 그는 곧장 케리드나에게 다가갔다.

그는 귀족처럼 호화로운 옷을 입고 있지도 않았고, 멋있게 치장하지도 않았지만, 케리드나가 연극에서 보았던 이상적인 남성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케리드나에게 그 남자는 연애 대상이 아닌 공포의 대상으로 보일 뿐이었다.

“음?”

청은발의 남자, 아이작은 파빌리온 앞에 이르고서 멈칫했다.

자신을 경계하는 호위병들.

경악하는 사용인들.

호위병 뒤에 숨어서 겁에 질린 어린 귀족 소년.

마찬가지로 공포감을 내비치는 케리드나.

“나, 와선 안 되는 타이밍이었어?”

“왜 당신이…?”

케리드나는 기절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 * *

원왕 회의.

「앨리스 토벌전」이 끝난 후, 뇌제 자울 드래고니악이 초대한 자리.

이를 위해 화이트클락 공작가의 에이첼 화이트클락을 만나러 왔다.

오자마자 내 동기인 케리드나 화이트클락이 보였기에 그녀를 먼저 보러 갔지만, 좋은 타이밍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케리드나는 인맥 쌓기를 중시하지만 막상 나와 친한 관계는 아니었다. 말도 제대로 섞어본 기억이 없네.

‘그래도 서로 동기인 건 아니까.’

반가운 척을 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빙설룡-힐드는 역소환한 상태다. 이 녀석은 에이첼 화이트클락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상의한 후 타고 온 것이었다.

북부의 화이트클락 공작령은 너무 멀고 면적도 넓으니까, 에이첼의 문제가 없을 거란 확답이 필요했다.

저번에 뒤펜도르프에 갈 때는 국경도 넘어야 했고, 원왕의 위엄도 살려야 했고, 황국의 영공을 마음대로 가로지르는 실례를 범하고 싶지 않았기에 힐드 탑승을 자제했었지.

확실히, 마차보단 용 비행기가 시간 절약이란 측면에서 뛰어난 효율을 자랑했다.

“차, 차를 내 왔습니다….”

“오, 고맙…, 왜 네가 차를 내와?”

“그게 예의라고 생각해서요….”

응접실.

소파에 앉아서 에이첼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어째선지 케리드나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차를 내왔다.

마치 메이드라도 된 것처럼 두 손을 모으고 다소곳이 서서 안절부절못하는데, 오히려 내가 불편할 지경이었다.

“왜 존댓말 하냐? 우리 동기잖아.”

“여, 여긴 아카데미가 아니잖아요….”

엄밀히 따지면 우리는 각자 다른 나라 소속이라 신분의 높낮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케리드나는 내게 쫄아 버린 것이었다.

“뭐라는 거야. 네가 뭐 나한테 꿇리는 것도 아니고. 우리 사이의 문제라면 그냥 안 친했다는 거 말곤 없잖아.”

“저저, 저도 염치란 게 있어요…! 작년 학기말 평가 때 몹쓸 말을 그렇게 내뱉었는데….”

케리드나와는 작년 1학년 1학기 학기말 평가 때 처음으로 마주치긴 했다.

그때 얘가 높은 건물 옥상에서 날 발견하곤 뭐라 뭐라 소리쳤었지.

하나도 안 들려서 무시했지만, 어쨌든 케리드나는 자기가 내게 밉보였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안 들렸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설마 했는데 역시 안 들렸던 거였어…!”

그걸 1년이 넘어서야 깨달았구나. 상심하는 타이밍이 많이 늦었어.

“그보다 에이첼 경은?”

“아, 곧 올 거예요. 잠깐 외출 중이었거든요. 아이작 씨 왔다고 얘길 전하니까, 지금 바로 오겠다고 사역마 통해서 제게 알려줬어요.”

“그래, 음….”

동기인데 존댓말 쓰는 거, 역시 되게 불편하다.

“…너 진짜 존댓말 쓰지 마라. 불편하기만 하고 괜히 죄책감까지 느껴진다.”

“어떻게 저 따위가 감히 원왕님께….”

“…….”

진짜 개불편한데.

어쩔까.

아.

“그럼 뭐, 저도 존댓말 쓸게요.”

“……!”

충격적인 발언이라도 들은 것처럼 케리드나는 경악했다. 그녀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나는 태연하게 차를 한 모금 홀짝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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