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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266화 (266/334)

〈 266화 〉 원왕 회의 (2)

* * *

“이 차 어디 거예요?”

“시, 시구르 산이에요….”

“시구르 산? 향이 마음에 드네. 알려줘서 고마워요.”

“그만해주시면 안 될까요? 부, 부담감이….”

“케리드나 경부터 말을 놓으셔야 저도 말을 놓을 것 아닙니까?”

“하지만….”

“먼저 말 놔요.”

“죄송…, 미안, 미안해! 말 놔줘, 제발 부탁할게…!”

“진작 그러지.”

해결되었다. 나는 뿌듯하게 차를 마셨다.

반면에 케리드나는 십 년 감수한 사람처럼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힘이 쭉 빠져 버렸다.

“그런데 저희 언…, 우리 언니는 왜 찾는 거야?”

“볼일이 있어서.”

에이첼 화이트클락.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독종으로 기억한다.

그렇다고 악한 사람은 아니었다.

‘평화주의자였지?’

에이첼은 평화를 사랑한다.

그녀가 생각하는 평화의 개념이란 무엇인가, 하는 불필요한 논의조차 필요 없다. 그저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평화를 무엇보다 우선시한다고 보면 된다.

끼이익, 하고 응접실의 문이 열렸다. 나와 케리드나의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갔다.

단정한 분홍색 머리칼을 가진 성숙한 여인이 사용인 두어 명과 함께 응접실로 들어와 내게 고개를 숙였다.

청순, 그 개념 자체를 형상화한 듯한 선한 미인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빙제님. 에이첼 화이트클락이라고 합니다.”

“저도 처음 뵙겠습니다. 아이작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 있게 인사했다.

케리드나는 나와 에이첼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어리둥절한 기색을 보였다.

“아이작 님이라 하는군요?”

에이첼과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째 그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에이첼은 나를 집무실로 안내했다.

“들어오시지요.”

고풍스러운 집무실. 벽면에 걸린 화이트클락 가문의 상징, 커다란 백룡 마크가 눈에 띄었다. 방안엔 에이첼과 나, 둘만이 들어섰다.

문이 굳게 닫히자 에이첼은 웃는 얼굴로 날 쳐다보았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성녀 비앙카에 버금가는 자애로운 미소였다.

에이첼은 집무실에 방음 결계를 둘렀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서로 눈을 마주치는 중이라 그 어색함의 정도가 상당했다.

대충 아무 말이나 꺼내서 대화 분위기나 조성하자.

나는 창밖을 쳐다보았다.

“여긴 항상 눈이 내리는 거죠? 뒤펜도르프에도 이렇게 눈이 많이 내렸는데….”

“후후, 그런가요?”

척. 에이첼은 내게 잰걸음으로 다가오더니 한쪽 무릎을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뭐야, 이 사람?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빙제님.”

“…당신은 카를로스 황제를 모시는 사람 아닙니까? 고개 드세요.”

“제가 충성을 바치는 건 오로지 평화뿐입니다.”

평화가 무슨 사람이나 신이라도 되나.

어쨌든 위험한 발언이었다. 자기는 황제 편도, 내 편도 아니라는 소리니까.

“빙제님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그 강인한 힘을 베풀어 거대한 위협을 막아오셨죠. 몇 번이고 감사를 표해도 모자란 일이에요. 부디 당신이 지킨 인류의 수 만큼이라도 보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길.”

“그건 모르겠고, 일단 일어나세요….”

이러면 내가 부담스럽다.

에이첼은 단정한 눈웃음을 보냈다. 청순함을 넘어 인자함까지 보였다.

“근데 이런 데서 원왕들이 모인단 겁니까? 상상이 안 가는데.”

원왕 회의는 화이트클락 가문의 대저택에서 열린다고 뇌제가 알려줬다.

이런 곳에서 원왕이 전부 모이면 분명 눈에 띌 테고, 세계에선 난리가 벌어질 텐데.

“괜찮아요. 직접 보시면 알게 될 테니까. 일단 원왕님들을 호출했어요. 공식 회의는 아니지만, 다들 빙제님을 기다리는 분위기였으니까 금방 참석하시겠죠.”

“그렇습니까.”

“네에.”

원왕들이 눈에 안 띄는 방식으로 모일 방법이 마련돼 있는 모양이었다.

“아, 잠시만 실례할게요.”

에이첼은 창가 쪽으로 다가가 커튼을 쳤다.

“여긴 원왕님들이 선택하신 회의 장소. 어떤 상황이 닥치든 대비책이 철저하게 마련되어 있죠. 아, 빙제님이 백룡을 타고 오신 점에 대해 설명할 거리도 충분히 대비해두었으니 걱정 마세요.”

“자신할 수 있으세요?”

“네에. 숨기는 거랑 거짓말을 잘 못하면 언제든지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 입장이거든요.”

에이첼은 하하, 하고 웃었다.

웃으면서 할 얘기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럼.”

에이첼은 박수를 한번 짝 치고 내 주의를 가져갔다.

“회의실로 안내해드리기 전에 하나 해야 할 게 있어요. 아주 중요한 일이죠.”

갑자기 에이첼은 상의 단추를 툭툭 풀기 시작했다.

“뭐 하시는 겁니까?”

“빙제님께서 여기 오셨다는 건 원왕 회의에 참석하겠다는 의사이신 거, 맞죠?”

“일단은.”

고개를 끄덕이자 에이첼은 상의를 슬쩍 내려 가냘픈 어깨를 내보였다.

그 어깨에 마법진 하나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더니 은은하게 발광했다.

“그럼 맹약을 맺어야 해요.”

“맹약?”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에이첼은 원왕 회의의 요주 인물이다. 원왕들과 함께 서로에게 보험을 드는 건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나조차도 말이다.

“원왕 회의는 세간에 절대로 알려져선 안 될 중요한 자리니까요. 맹약은 필수죠.”

맹약이란 서로 특정한 내용으로 계약을 맺는 마법이다.

심적으로 확실히 의사가 합치해야 하기에 강제성은 없으며, 의무를 어길 시 미리 합의된 내용에 따라 페널티가 부과된다.

한 마디로 계약의 효력이 분명한 공증인 셈이다. 공증인이 마법이 되었을 뿐.

‘증표가 꽤 깊이 새겨져 있어.’

맹약의 증표를 새기는 과정은 고통을 수반한다.

맹약의 강도가 높을 수록 느껴야 할 고통 또한 심해진다.

원왕 회의와 관련된 맹약을 맺은 까닭인지, 에이첼의 어깨에 새겨진 마법진은 매우 선명했다. 꽤 아팠을 거다.

“…알겠습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빙제님. 이건 계약서입니다.”

허공에 글자가 새겨졌다. 글자는 푸른빛으로 반짝였고, 가독성은 좋은 편이었다.

회의의 참가자가 되겠다는 서약. 비밀 유지 서약. 회의 내용을 악용하지 않겠다는 서약 등. 상식적으로 지켜야 할 내용이 담겨 있었다.

페널티는….

‘신체 감각 중 하나.’

위협적인 페널티네. 이런 페널티를 걸 정도면 증표 새길 때 많이 아프겠는데….

“맹약 또한 어디까지나 마법. 원왕님들께는 효과가 미미할 수도 있겠지만, 안 하는 것보단 낫겠죠.”

내 평상시 상태는 원왕 급보다 한참 아래다. 페널티 맞으면 효과가 확실할 터였다.

“내용에 동의하시나요?”

“네, 물론.”

지키기 어려운 건 없으니까.

“이 맹약의 증표는 원왕 회의의 증표에 덧씌워질 거예요. 제 몸에 빙제님의 증표를 새겨주시길.”

에이첼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에 새겨진 마법진에 검지와 중지를 올렸다.

“에이첼 경, 많이 아프실 겁니다.”

“아픈 건 중요하지 않아요. 당신을 포섭하기 위해서라면, 맹약의 고통 따윈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이작, 맹약에 동의를.”

“에이첼 화이트클락, 맹약에 동의합니다.”

내 손가락을 타고 푸른 마력이 흘러나와 에이첼의 어깨에 새겨진 마법진에 색채를 입혀갔다.

에이첼은 끄윽, 하고 두 눈을 꾹 감았다.

“너무 아프면 말해요. 천천히 새길 테니까.”

“고마워요, 빙제님…, 으윽…!”

* * *

대체 뭐지?

아이작은 왜 에이첼 언니를 찾아왔고, 에이첼 언니는 왜 아이작을 자기 집무실에 들인 것일까.

지금 집무실엔 에이첼과 아이작, 단둘만 있었고, 방음 결계까지 촘촘히 전개되어 있었다.

케리드나는 가문에서 길들인 하얀 까마귀에 [시야 동화]를 걸고 창밖에서 집무실 쪽을 살폈으나.

에이첼이 이를 알아채고 커튼을 친 까닭에 내부를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케리드나는 집무실 문 앞에 직접 찾아갔다.

‘들어가는 건 안 되겠고.’

케리드나가 궁금한 건 아이작과 에이첼이 왜 만났는지였다.

두 사람이 공적이고 중요한 용무라도 보는 중이면 방해해선 절대로 안 될 것이었다.

슬쩍 소리 없이 문 손잡이를 돌려보았다. 턱. 어느 구간에서 막혀 돌아가지 않았다.

‘역시. 애초에 문이 잠겨 있어.’

케리드나는 문짝에 귀를 갖다 대고, 마력을 조작해 방음 결계에 슬쩍 구멍을 냈다.

방음 결계는 어려울 게 없는 마법이었다. 그러한 까닭에, 케리드나처럼 실력 있는 마법사는 방음 결계가 있다는 사실만 알아차리면 그 결계에 쉽게 구멍을 낼 수 있었다.

집무실 내부. 맹약의 증표가 새겨져 가는 고통 탓에 에이첼은 끅끅, 거리며 이를 악물고 있었다.

“끄으…?”

에이첼은 방음 결계에 구멍이 뚫렸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감지 마법까지 2중으로 쳐 놨기에 알 수 있었다.

‘케리드나구나.’

케리드나의 소행이라는 걸 알아챈 에이첼.

예상했던 상황이었고, 대비할 방법도 있었지만, 지금은 증표가 새겨지는 고통 탓에 움직이기 힘들었다.

이럴 때를 위해 생각해둔 방안이 있었다.

에이첼은 자극적인 소리로 케리드나를 오인시키기로 했다.

“흐읏….”

야릇한 신음이었다.

고통에 찬 신음과 야한 신음은 한끗 차이.

특정한 상황을 유추하게 만들면 사람은 자기 생각대로 받아들이기 마련이며, 의문을 품지 않게 된다. 그 상황이 자극적일수록 효과는 분명했다.

문 바깥쪽. 케리드나는 작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 아, 아파요…, 으읏…!

‘이게 무슨 소리…?’

- 하앙…! 조, 조금만 천천히…!

“……!!!”

케리드나는 식겁하곤 다급히 문짝에서 물러났다.

“어, 언니…?”

얼굴에 열기가 확 올라오고 심박수가 급증했다.

‘잘못 들었나…?’

잠시 고민에 빠지는 케리드나.

‘그래, 잘못 들은 거겠지.’

하늘에서 내려온 것처럼 청순하고 아름다우며, 세련되기까지 한 이미지의 에이첼 언니다.

고고함마저 갖춘 언니가 설마 아이작과 만나자마자 그렇고 그런 낯부끄러운 행위를 할 리가 있겠는가?

‘말도 안 되잖아. 소설로 치면 개연성이 한참이나 떨어지는 거라고.’

그렇겠지. 케리드나는 마음을 정리하곤 다시 문짝에 귀를 기울였다.

- 아프면 천천히 할게요.

- 고마…, 흐읏…! 제성, 해여….

- 저기, 아까부터 소리가….

- 어쩔 수 없잖, 하, 읏….

‘에이첼 언니이…!!’

케리드나는 마른 세수를 하며 속으로 절규했다.

부정의 여지가 없었다.

‘어, 어째서 아이작이랑 그런, 경박한…! 부럽…, 아니, 뭐 때문에…?’

케리드나는 복잡한 심경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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