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7화 〉 철의 요정 토벌전 (7)
* * *
“당장 저놈을 죽여라!”
카를로스 황제의 외침.
그 전에, 메를린은 메피스토에게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스윽!
예리한 검격이 메피스토를 노렸으나.
턱.
메피스토는 날렵하게 움직이던 검신을 고작 손가락만으로 붙잡았다.
믿을 수 없었다. 메를린의 두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그러나 메를린의 판단은 빨랐다. 그녀는 검을 포기하고 몸을 돌려 강한 발차기를 날렸다.
그러나 그마저도 메피스토는 가볍게 손으로 잡아 막아냈다.
스르르! 콰앙!!
“끄학!!”
묵직한 어둠 마법이 메를린을 감싸더니, 그녀의 복부에서 폭발했다.
그대로 튕겨나간 메를린의 육체가 바닥을 뒹굴다 벽에 부딪혔다. 경련하는 육체. 그녀의 입과 복부에서 대량의 피가 흘러내렸다. 아무리 움직이려 해도 중심을 잡고 일어설 수 없었다.
메피스토는 카를로스 황제를 보며 실실 웃었다.
[빙제가 없는데~ 누가 누굴 죽인단 걸까요? 그렇게 무시하시면 저도 상처 받는답니다?]
“네년…, 빙제가 저 성에 갇힐 때를 노린 건가?”
[정답! 치졸해도 어쩌겠어요? 아무리 저라도 빙제는 무서운걸요! 그런 괴물은 상대하지 않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답니다. 그럼, 스노우화이트 황녀님?]
메피스토는 화이트를 바라보며 섬뜩하게 웃었다.
[시계가 아무 소용이 없게 된 이상, 제겐 아직 당신을 지옥에 빠뜨릴 책임이 있답니다.]
“지금 뭐라는 거…?”
[전 당신의 어머니와 계약했으니까요!]
화이트의 떨림이 멎었다.
어머니의 계약자. 그 존재는 앨리스 사건 이후로 이미 전해 들어 알고 있었다.
“너였구나….”
그 나지막한 목소리엔 분노가 실려 있었다.
콰가강!
덤벼드는 기사들과 마법사들은 메피스토의 어둠 마법에 당해 피를 토하며 몸이 날려졌다.
황국의 정예들조차 손도 못 쓰는 존재.
악신의 대리인, 메피스토의 강함은 웬만한 인간으로선 따라잡기 어려웠다.
“밖에 아무도 없느냐!!”
[다들 곤히 자고 있는데 깨우지 마시죠?]
“이 무엄한 년이…!”
[말이 잘못 됐잖아요? 시간이 급해서 나름 봐드렸는데, 감사하지는 못할 망정. 서운하게 말이에요.]
복도에 있는 황실 병력은 모두 메피스토에게 당해 정신을 잃은 상황이었다.
서서히 화이트에게 다가가는 메피스토.
화이트는 다가오는 죽음을 허망하게 바라보았다.
제 어머니가 자신을 암살하려 한 이유가 떠올랐다. 그것은 지나치게 터무니없어 한동안 거짓말이라고 믿었을 정도였다.
자신보다 제 딸이 더 예쁘다고 생각하며 느껴버린 질투심이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 어처구니 없는 감정은 어머니의 죽음 뒤에도 끈덕지게 화이트를 따라붙고 있었다.
그 탓에 화이트는 공포보다도 허탈감을 더욱 강하게 느꼈다.
[빙제가 있을 때의 전 무력했죠.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
메피스토는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은 뒤, 화이트의 턱을 들어올려 가까이서 눈을 마주했다.
마족의 눈은 소름 끼치도록 기형적이었으나, 독특한 심미감마저 간직하고 있었다.
“화이트!”
카를로스 황제가 달려들려 하자 메피스토는 그를 향해 어둠 마력을 머금은 팔을 뻗었다.
카를로스 황제는 이를 악물고 발을 멈춰야만 했다.
[스노우화이트…. 역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간 답네요. 당신의 죽음은 인간들에게 뼈아픈 일이겠어요. 아아, 참으로 슬픈 일….]
“이상하네.”
[…네?]
문득 화이트의 머릿속에 의문이 떠올랐다.
여태 메피스토는 아이작이 있었기에 화이트에게 섣불리 다가가지 못했지만, 아이작이 철의 요정에게 붙잡힌 지금은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과거 앨리스 사건과 방금 전의 메피스토가 한 말로 추정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메피스토는, 상황이 이렇게 돌아갈 줄 어떻게 알았을까.
아이작의 병력에 쫓겨 다니던 신세였던 자가, 아이작이 있는 이곳에, 기다렸다는 듯이, 아주 적절한 때에, 어떻게 찾아온 걸까.
“이렇게 될 줄 어떻게 알았어? …동업자가 있는 거지?”
동업자.
그 말에 메피스토는 씨익 웃었다.
[훌륭해라. 죽음 앞에서 이리도 고상할 수 있다니. 당신의 아름다움은 초연히 빛나는군요.]
“화이트 황녀님…!”
들끓는 피 가래 소리. 메를린은 피를 머금은 입으로 화이트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바닥을 짚어가며 화이트를 향해 기어가려 했다.
손톱이 전부 까졌다. 전신에 격통이 일었다. 그러나 무시하고 어떻게든 나아가보려 해도, 어둠 마력에 침식 당한 메를린의 몸은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메피스토는 손가락이 기다란 손으로 화이트의 머리를 휙 잡았다. 그 손에 어둠 마력이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화이트는 살며시 두 눈을 감았다.
문득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건 엉망진창인 과거뿐이었다.
어머니의 암살 공작으로, 어린 시절의 화이트는 독사과를 베어 물었다.
서서히 죽어 가던 어린 화이트는 가만히 나무 사이로 비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멀어져 가던 의식. 생기를 잃은 두 눈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죽음을 목도했다.
그것은 너무도 찬란하고 아름다워서, 화이트는 하늘을 향해 유약한 팔을 쭉 뻗었다.
‘뭐하냐?’
풀숲에 누워 죽어 가던 어린 시절의 기억에 아이작이 나타났다.
아이작은 화이트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화이트 황녀님?’
아이작 옆에 메를린이 나타나 화이트에게 걱정 어린 표정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좋은 이야기라도 나눴으면 좋았을 텐데.
돌아보면 기억도 못 할, 별거 아닌 수다라도 나눴으면 이토록 아쉽지도 않았을 텐데.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해요, 아이작 선배.’
이 순간에, 화이트는 그저 아쉬움과 미안한 감정만 느끼고 있었다.
“그만두어라!!”
카를로스 황제가 목청이 터져라 소리쳤다.
그때였다.
콰아아앙!!
창가 쪽 외벽이 뚫리고 누군가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들었다.
순식간에 냉기가 서린 도끼날이 메피스토를 노렸다.
[……!!]
스릉!!
도끼날은 허공을 베었다. 메피스토는 곧바로 화이트에게서 벗어나 뒤로 빠져 아슬아슬하게 도끼날을 피했다.
방에 있는 모두가 커다란 양손 도끼를 든 후드 망토 차림의 인물을 바라보았다.
그 인물이 망토를 벗어 던지자 연파랑 머리를 가진 장신의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엔 눈에 띄는 흉터가 길게 새겨져 있었다.
눈살을 찌푸리는 메피스토.
연파랑 머리의 여성은 전신에 냉기를 뿜어내며, 메피스토를 향해 야성적으로 웃었다.
“과연, 주군께선 이 모든 상황을 예상하셨단 말인가!”
[당신은?]
“아자벨 실버울프!”
뚫린 외벽을 지나 후드 망토 차림의 인물 3명이 더 들어섰다.
그들은 모두 후드를 벗었다.
큰 체격의 백호 수인, 도르한.
민머리의 싸움꾼, 카리우스 알사브.
술기운 탓에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실실 웃고 있는 여성 마법사, 에리히 레버린스.
저마다 뒤펜도르프의 군단장이었다.
“뒤펜도르프의 주군, 아이작 님을 섬기는 자다.”
아자벨은 양손 도끼를 휘두르며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후드 망토 차림을 보건대, 그들이 올드렉에 잠입해 있었다는 사실은 누구라도 알아차리기 쉬웠다.
화이트와 카를로스 황제, 메를린은 뒤펜도르프의 군단장들을 바라보았다. 어찌 된 영문인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흐헤헤, 에잇.”
에리히가 다소곳이 손을 휘저었다.
쿠우우웅!!
메피스토 뒤로 얼음 마법진이 전개되고, 동시에 얼음 기둥이 치솟아 메피스토를 펑 날려 보냈다.
주위로 순간 강풍이 불었다. 메피스토는 그다지 타격을 입진 않았으나, 몸이 공처럼 건물 밖으로 튕겨나가는 건 피할 수 없었다.
콰악!!
허공에 붕 날아가던 메피스토를 향해 백호 수인, 도르한이 날아들어 얼음 장갑을 씌운 큼지막한 주먹을 거세게 휘둘렀다.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메피스토의 몸은 격한 파공음을 내며 철의 바다를 향해 공기를 가로질렀다.
다른 뒤펜도르프의 군단장들도 뚫린 외벽을 통해 건물 밖으로 나서며 메피스토를 일제히 공격하려 했다.
“잠깐만요!”
아자벨도 뚫린 외벽으로 빠져나가기 전이었다.
화이트의 외침에 아자벨은 그대로 멈춰 섰다.
“당신들, 아이작 선배 편이죠…?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스노우화이트 황녀님, 주군께서 당신을 지키라 하셨습니다.”
“네…?”
아자벨은 화이트를 바라보며 송곳니가 있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미소 지었다.
─ ‘주군의 전언입니다. 마족 메피스토는 천족과 결탁했고, 메피스토는 추후 스노우화이트 황녀를 노릴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전 군단장은 내 지시대로 행하라.’
올드렉에 잠입하고, 스노우화이트를 지켜라.
“뭐, 대충 이렇게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주군께선 당신을 소중히 여기고 계시다고.”
아자벨은 그 말을 남기고 뚫린 외벽으로 몸을 던졌다.
바람이 밀려드는 방 안.
어떻게든 피 투성이로 기어온 메를린이 화이트에게 이르렀다.
카를로스 황제가 괜찮느냐며 화이트를 껴안았다. 그러나 화이트는 그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화이트는 다행이라며 안도하는 메를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다시 주위를 둘러보고, 양손을 들어보았다.
“아, 아아….”
두 손이 떨렸다.
죽음을 받아들여 가던 한때가 떠올랐다. 그토록 어머니의 미움을 샀다면, 분명 자신은 나쁜 아이일 것이라며.
삶을 포기하던 때의 그녀의 눈은 그저 하늘에서 내려오던 찬란한 빛만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그녀의 눈에 보였다.
그 순간에 느끼고 마는 것이다. 세상은 이토록 아름다웠구나, 라며.
화이트는 새파랗게 변해버린 손으로 풀숲을 쥐었고,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이 무색하도록.
그 간절함에 응답하듯, 여자아이처럼 보였던 난쟁이들이 화이트를 찾아 그녀를 도와주었고.
화이트는 해독이 될 때까지 깊은 잠에 빠져야만 했다.
사람을 믿은 대가란 그토록 무거웠다.
그럼에도 화이트는 사람들에게 정을 주려고 했다.
어쩌면 그것이, 자길 지옥으로 빠뜨리려던 어머니를 향한 제 나름의 복수인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빈손이다.
남는 것은 없으리라.
그리 생각했으나, 뒤를 돌아보니 제 뒤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이 보였다.
그중 청은발의 남자가 화이트를 보며 괜찮느냐고 물었다.
그 얼굴은 마치, 무녀와 대련하고 실려갈 때 자신을 위로해주던 그때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화이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녀의 어깨가 으슬으슬 떨렸다.
흐느끼는 소리를 가까스로 참아냈으나, 그리 한참을, 화이트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