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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306화 (288/334)

〈 306화 〉 아카데미 대항전 - 막간 (3)

* * *

돌연 일대를 뒤덮는 엄청난 마력.

철의 바다로 발생한 피해를 수습하던 이들은 화들짝 놀랐다.

아이작의 마력이다. 올드렉에 있는 어느 누구도 분간하지 못할 리 없었다.

발산하는 마력 자체가 물리력에 버금간다. 사람들은 중력이 늘어난 것만 같은 착각마저 느꼈다.

차라라락!

갑자기 전개된 얼음 결계.

마력을 느낄 줄 안다면 누구라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 결계는 이곳에 있는 어느 누구도 뚫을 수 없다는 사실을.

연푸른 얼음 결계의 안쪽은 몹시 불투명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간헐적으로 지면이 흔들리고 굉음이 울렸다.

“무슨 일이냐!”

“빙제님께서 결계를 전개하셨습니다! 전투 중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피했던 사람들은 아직 대피소에 머무르고 있었으니.

얼음 결계 안엔 오로지 아이작과 미지의 적만이 있을 터.

아이작은 피해를 확산시키지 않기 위해 결계를 전개했으리라.

“전부 대열을 갖추고, 결계가 풀리는 즉시 빙제님을 지원하라!”

황실 병력은 얼음 결계 근처에서 대열을 이루고 전투 태세를 취했다.

사건이 모두 끝난 줄 알고 안도감으로 들어찼던 올드렉에 다시금 사뭇 긴장감이 감돌았다.

한편, 얼음 결계 안쪽.

아이작과 뷔엘은 벽과 지붕을 타고 쏘다니며 난투를 벌이고 있었다.

뷔엘은 무장해야 본 실력이 발휘된다. 그러나 지금은 무장하지 않았기에 신성력을 휘감았음에도 아이작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이 세계의 정점인 아이작은 아무리 최상위 천족이라고 해도 맨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화풀이인가. 그래, 좋군! 납득이 가는 이유다!]

뷔엘은 새하얀 날개를 펼쳤고.

두 존재는 건물 옥상을 박차고 서로를 향해 뛰어들었다.

아이작은 얼음 마력이 스민 주먹을, 뷔엘은 신성력이 스민 주먹을 내질렀다.

콰아앙!!

거센 압력파가 퍼져나간다.

아이작의 주먹은 뷔엘의 주먹을 얼리고, 부서뜨리며, 그의 전신 절반을 날려 보냈다. 힘의 차이가 극명했다.

그러나 뷔엘의 사라진 신체 부위는 빛이 모여들며 순식간에 재생되었다.

뷔엘은 몇 번이고 반격했으나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모든 공격이 파훼된다. 모든 공격이 가로막힌다.

불사의 힘이 없었다면 목숨이 수십 개로도 모자랐을 터.

콰악! 콰아아!!

아이작은 뷔엘의 머리를 붙잡고 아래로 떨어지면서, [빙결 폭발]로 뷔엘의 팔과 다리, 날개를 터뜨렸다.

뷔엘은 비명을 내질렀으나 파괴된 부위는 금세 빛에 휘감기며 재생되었다.

[끝까지 가보잔 거냐?]

뷔엘이 화를 내며 물었다.

공기 저항으로 두 존재의 머리칼과 옷자락이 격렬히 뒤흔들렸다.

“끝까지? 그럴 자신 있어? 너도 곤란하잖아? 계획 틀어지면 안 되니까.”

[역시 네놈은 모든 걸 알고 있군…! 오만한 마법사여, 대체 어디까지 내다보고 있느냐! 네놈의 시야는, 왜 내다봐선 안 될 것까지도 내다보고 있느냔 말이다!]

콰아아앙!!

아이작과 뷔엘이 지상에 추락했다.

그대로 뷔엘의 전신은 산산조각이 나버렸고, 아이작은 터져 버린 뷔엘을 짓밟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산해 버린 뷔엘의 신체 조각들은 신성력을 머금고 한 곳으로 모이더니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글쎄다. 모르겠다. 지금은 그냥, 복잡한 생각은 하기 싫고….”

아이작의 눈에 살의가 어렸다.

“네가 조금이라도 망가졌으면 좋겠다.”

아이작은 다시 뷔엘을 향해 공격을 쏟아부었다.

콰아악!!

그리 아이작은 뷔엘과 끝나지 않는 전투를 이어가며 기억 속을 떠돌았다.

─ ‘두 번째 방법은, 당신이 얼음 호수에 찾아오는 것. 살아서, 여기까지 와서, 얼음 원소 마법의 궁극을 손에 넣는 것.’

1회차 도로시가 했던 말.

─ ‘이미 알고 있었지? 넌 살아 있으면 대재앙이 될 존재야.’

철의 요정 라크닐이 도로시에게 했던 말.

얼마 안 가 얼음 호수에 가기 위해 명왕과 격돌하게 될 것이다.

아이작은 확신했다. 명왕은 이길 수 없다고.

상태창의 힘을 지니고도 명왕과는 승부가 되지 않을 터였다.

그래도 어떻게든 할 것이었다. 이 여정이 헛되지 않도록. 어떻게든 일이 잘 풀릴 것이라며 좋게 믿기로 했다.

그렇게 열심히 나아가고 있었거늘.

‘왜 전부 지랄이냐.’

도로시가 살아 있으면 대재앙이 될 것이란 발언은, 아이작의 여정에 큰 회의감을 불러일으켰다.

악신을 이겨야 한다는 건 엄청난 부담감으로 작용한다.

그 고통을 잊고 감내하려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몰아넣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작은 그리하고 있었다. 제 한 몸 건사하기 힘들더라도, 힘이 있으니 모두와 함께 살아남기로 했다.

그런데 어째서 도로시는 연신 죽음을 강요받는가.

─ ‘두 사람은 지금 서로를 사랑하고 있나요?’

1회차 도로시가 했던 말이 떠오를 때마다 아이작은 가슴속이 턱 막혀 갑갑함을 느꼈다.

도로시는 살아야 한다.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사랑스럽고, 빛나는 사람이니까.

속이 가열되는 물처럼 들끓는다.

그가 품은 분노는 자기 뒤통수를 치고 계획을 어그러뜨렸으며 많은 사람을 죽일 뻔한 빌어먹을 천족, 뷔엘에게 쏟아졌다.

[그렇군….]

아이작에게 멱살이 잡힌 뷔엘은 숨을 가다듬었다.

이미 십수 차례 몸이 박살 났으나, 야속하게도 불사의 몸은 쉬지 않고 회복되어 간다.

고통은 익숙하다. 뷔엘의 과거는 질척한 피비린내로 가득했으니.

아이작의 눈엔 핏발이 곤두서 있었다. 그는 지치지도 않았음에도 거친 숨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뷔엘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네놈…, 많은 걸 짊어지고 있군.]

아이작의 눈살이 한 차례 떨렸다.

타인을 이해하기란 대개 어려운 법이다. 과거의 경험은 공유할 수 없는 것이니. 그저 비슷한 경험을 토대로 상대에게 공감해주는 것이 지성체가 할 수 있는 행위다.

고통과 눈물로 얼룩진 과거가 뷔엘의 눅눅히 굳어 버린 비통한 감정을 끌어낸다. 그는 아이작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치 피로 얼룩진 자신의 과거를 보는 듯했으니.

[빙제 아이작.]

뷔엘은 전신에 성스러운 신성력을 피어 올렸다.

[네놈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래…, 나는 네놈을 존경한다.]

“…….”

[하지만 나도 물러설 수 없다.]

뷔엘은 목숨을 잃어갔던 많은 동료들을 떠올렸다.

[네놈이, 우리의 대척점에 서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구나.]

다행이었다.

이런 사내가 적이라면, 뷔엘은 자기 계획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겸허히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입 다물어.”

아이작은 냉담하게 반응하며 다시 뷔엘의 머리를 터뜨렸다.

* * *

얼음 결계를 풀고 걸어 나왔을 때, 황실 병력은 놀란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안경을 쓰고 일부러 선한 웃음으로 그들을 안심시킨 뒤 사정을 설명했다. 잔존 마족이 있어서 안전하게 처리해야 했다고.

시간이 좀 걸렸던 탓에 아주 위험한 적과 싸웠다고 생각했는지, 황실 병력의 찬사가 쏟아졌다.

‘신성력은 감지 못했겠지.’

내 마력에 가려졌을 테니까.

애당초 신성력을 감지해도 그게 신성력이라고 구분하는 것도 어렵고.

‘…바로 떠났네.’

뷔엘은 이미 자리를 떠난 뒤였다.

어차피 결전의 날까지 그놈과 어떤 싸움을 벌이든 실질적인 의미는 없었다.

화풀이? 맞았다. 조금 전의 전투는 화풀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난 그놈에게 언제든 고통을 안겨줄 수 있다는 사실을 각인시켜줬다. 그거면 된다.

‘묶어둘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새삼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뷔엘을 아예 무력화시킬 순 없으니까.

그가 더는 계획을 못 이룰 것이라 판단하고 천신을 호출해 위기에서 벗어나면, 나나 그놈 모두에게 큰 피해가 발생할 테니.

나는 아예 천신의 심판을 받아 목숨을 잃을 것이며.

뷔엘은 부하들과 함께 오랜 세월 형벌을 받으며, 천위 시계의 효과와 블랙 스톤의 마력 폭주가 맞물리는 굉장히 희귀한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다.

양쪽 다 최악으로 치닫는 치킨 게임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뷔엘은 아카데미에 그대로 남아 있을 작정이었다. 날 경계하기 위해서겠지.

지금쯤 옷을 갈아입고 론자이너스 강사의 모습으로 되돌아갔으리라.

내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놈을 계속 감시하는 수밖에.

‘아예 악몽에 가둬둘 수 없나?’

곧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앨리스의 힘은 통하지 않는다.

보팔 소드가 가진 악몽의 힘에도 명백한 한계가 있다. 이미 도를 넘어선 강자에겐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뷔엘은 최상위 천족. 지금은 때를 기다리고 있기에 진정한 전력을 발휘하지 않고 있는 것뿐. 마족으로 치면 사멸의 타나토스나 무저갱과 비슷한 급이었다. 당연히 안 먹힌다.

‘하, 됐다.’

어서 애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때, 누가 나를 뒤에서 껴안았다.

이미 기척을 느끼고 있었다. 알고 있는 사람이었기에 일부러 경계하지 않았다.

“루체?”

고개를 뒤로 돌렸다. 내 등에 고개를 파묻은 로즈골드색 머리칼의 여학생이 보였다.

좋은 향이 났다.

‘향수 바꿨나 보네.’

향기가 미미해졌지만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카데미 생활할 때 가장 많이 붙어 다니는 애가 얘니까.

“뭐 하냐?”

“합체.”

“우린 이걸 ‘백허그’라고 부르기로 사회적으로 합의가 돼 있어.”

“상관없어. 그냥 조금만 이러고 있자. 조금만.”

루체는 나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그러고 보니….’

루체가 관중일 때 나는 철의 성역에 붙잡혔다.

천재이자 강자인 루체다. 악의를 품은 요정이 나를 성역으로 끌어들였다는 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금세 알아차렸을 터. 심장이 내려앉았겠지.

‘실제로 게임 지식 없었으면 난 이미 라크닐한테 뒤졌겠고.’

루체가 얼마나 걱정했을지 짐작이 안 간다. 얘는 날 소중히 여기고 있으니까.

근데….

“루체, 일단 좀 떨어져라. 다 쳐다보잖아….”

여긴 사람이 너무 많았다.

“무슨 상관이야.”

“난 상관있어. 부끄럽다고…!”

“괜찮아. 전부 물고기라 생각하면 돼.”

용케 그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 대단하네.

“아이작.”

“왜?”

“걱정했어.”

“응…, 미안해.”

“걱정했어.”

“응.”

“진짜로 걱정했어.”

“응….”

루체의 목소리는 여느 때처럼 곱고 아름다웠다.

담백하게 내뱉는 그 속삭임엔 애달픈 감정이 서려 있었다.

“이제 걱정시키지 마.”

“그럴게.”

“못 믿어. 이제 오늘은 쭉 내 옆에 있어.”

“알았어, 인마….”

루체가 나를 더욱 세게 끌어안자 그만 허탈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뷔엘과 싸우며 타올랐던 감정이 가라앉았다.

루체의 품은 포근했다.

* * *

깊은 밤, 헤겔 마탑의 마지막 층. 마탑주 아리아 릴리아스의 연구실.

아리아는 책장을 둘러보며 책들을 살피던 중 어떤 위화감을 느끼고는, 연구실을 가득 메운 결계를 살피기 시작했다.

“응?”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책장 일부의 결계가 살짝 어그러져 있었다. 거의 티가 나지 않아 알아차리는 게 늦어졌다.

‘누군가가 결계를 파손시켰다가 도로 수복….’

아리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상당한 실력자의 소행이었다.

범인은 외부인인가? 아니다. 마탑에 등록되지 않은 자는 헤겔 마탑에 들어선 순간부터 들켰을 테니.

즉, 이 연구실에 문제없이 출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인물이 범인이다.

그들은 믿을 만한 자들로 엄선되었기에, 그 수는 손가락에 꼽는다.

아이작일까?

…아니다. 서로 비밀을 공유하며 동료처럼 지내는 사이니까.

궁금한 게 있으면 대놓고 물어보면 그만일 터. 그가 이 연구실에 몰래 잠입할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마탑 마법사들?

…아니다. 그들이 이만한 실력을 갖췄을 리 없다. 아무리 그래도 아리아가 손수 구축한 결계니까.

이건 뛰어난 실력을 요하는 묘기다.

결계의 구조를 꿰뚫어 보아야 하고, 결계의 어그러진 면의 계산식을 파악해 연산할 줄 알아야 하며, 그에 맞는 밀도 높은 마력과 수준 높은 마력 운용력을 지니고 있어야 하니까.

‘그렇다면….’

용의자는 한 명으로 좁혀졌다.

“루체 엘타니아…?”

루체.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어떤 목적을 갖고 아리아의 연구실에 몰래 침입한 적이 있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하아. 신뢰를 아무렇지도 않게 깨부수는 제자라니….”

아리아는 눈을 감고 한숨을 내뱉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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