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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309화 (291/334)

〈 309화 〉 애착

* * *

메르헨 아카데미에 학생들이 복귀했다.

아카데미에도 올드렉에서 벌어졌던 사건 소식이 이미 퍼진 모양이었다.

올드렉에 갔던 학생들은 아카데미에 잔류했던 학생들에게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했고.

내 이름이 자연스레 학생들 입에서 오르내렸다.

“아이작 선배님께서 9성급 얼음 마법을 썼다고! 그것도 세 번씩이나, 한꺼번에!”

“태어나서 9성급 마법 본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그때 하늘에 철문이 나타나고! 거기서 무지막지하게 큰 마수가 튀어나와서…!”

누가 들으면 허언 같은 이야기뿐.

하지만 학생들의 증언은 모두 일치했고, 심지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메르헨 아카데미에서 모르는 자가 없었기에 모두 믿고 감탄하는 분위기였다.

나도 사람인 이상 어깨가 올라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점점 학생들과의 심리적 거리감이 벌어지는 느낌은 썩 좋지 않았다.

무녀 미야하고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메이가 받는 형벌이야 이미 아는 내용이라 넘어갔다.

─ ‘이뤄야 할 게 있어. 전력이 한 명이라도 더 많이 필요해. 화봉국을 위한 일이기도 하니까, 너도 도와줬으면 좋겠다.’─ ‘저야 아이작 선배님께 받은 은혜가 깊으니까요. 물론이에요!’

특별한 문제 없이 이야기는 잘 풀렸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동료들과 함께 나누기로 했다. 그때까진 강해지는 데 집중해 달라고 부탁했다.

미야는 엄청난 천재인데다 구미호까지 사역마로 다루고 있으니, 필시 좋은 전력이 될 것이었다.

“사람들이 널 찬양하니 스스로가 자랑스러운지?”

“딱히요.”

메르헨 아카데미에 복귀하고 일주일 뒤, 저녁.

교정에서 떨어진 창고 안. 나는 헤겔 마탑주 아리아 릴리아스를 만났다. 아리아가 내게 여기서 만나자고 몰래 편지를 보냈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순찰자를 위해 마련된 간이 창고로, 순찰에 필요한 마도구 여분이 즐비했다. 하지만 대체로 이 창고가 쓰일 일은 없었다.

우리는 나란히 벽면에 기댄 채였다. 나는 손에 쥔 마력기로 마력 운용력을 단련하며 본론을 꺼냈다.

“균열 넓히는 방법, 얘기하러 오셨죠?”

아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균열을 넓히는 시기를 임의대로 조정하는 건 불가능한 것.”

“그러면요?”

“균열을 넓힐 수 있는 조건을 노릴 수밖에.”

“그게 뭡니까?”

아리아는 살짝 주먹 쥔 왼손을 들었다.

“우리는 고작 먼지에 불과. 먼지가 아무리 난리를 피워 봤자 내 주먹을 펼 수는 없는 것.”

아리아는 그 손을 내게 내밀었다.

“펴보는 것.”

“…….”

나는 아리아의 손을 펼쳤다.

아리아는 손에 힘을 주고 저항하려 했지만, 그녀가 가진 육체적 힘은 매우 약했기에 손쉽게 강제로 펼칠 수 있었다.

“이렇게 엄청난 압력을 가진 무언가가 개입되면 균열을 열 수 있는 것.”

이렇게 쉬운 비유면 그냥 말로 해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굳이 뭐라 하지 않았다.

“여기서 그 힘은, ‘명계 폭풍’.”

“폭풍?”

“관측 결과, 명계엔 수시로 대형 폭풍이 부는 것. 인간 대부분은 그 폭풍에 휩쓸리면 1초도 안 돼서 온몸이 찢겨 죽겠지만, 그 폭풍이 불 때가 균열을 벌릴 수 있는 이벤트임은 틀림없는 것.”

아리아는 내 눈을 올려다보았다.

“그 폭풍은 시공이 뒤틀릴 만큼 대규모의 마나를 끌고 다니니, 균열을 어그러뜨려 느슨하게 만드는 것도 가능한 것.”

“명계 폭풍이 불 때가 균열을 넓힐 수 있단 말이네요…. 그럼 시기는요?”

“계산 결과, 시기는….”

이어지는 아리아의 대답에 나는 한동안 멍을 때릴 수밖에 없었다.

나도 모르게 눈살이 흠칫 떨렸고, 입이 살짝 벌어졌다.

“괜찮은지?”

“…그때뿐이죠?”

“단언컨대 그때뿐.”

얼음 호수에 이르는 건 도로시를 희생시키지 않고 악신을 이기기 위한 조건이다.

시나리오에 큰 지장이 있다면 악신이 나오기도 전에 패배할 터. 이를 1회차 도로시가 눈치채지 못했을 것 같지 않다.

명계가 아무리 불확실성이 차고 넘치는 곳이라고 해도, 내가 제대로 돌아올 수만 있으면 시나리오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관건은 ‘잘 다녀올 수 있는지’뿐이겠지.

“괜찮겠죠, 어떻게든.”

그렇게 믿자.

나는 선하게 웃었다.

“고마워요, 선생님.”

“이건 내가 원해서 하는 연구. 널 도와주는 게 아니라 거래일 뿐.”

아리아는 두 눈을 감았다.

“명계의 심층까지 갔다 온 뒤, 네가 보고 듣고 체험한 것들을 낱낱이 내게 알려줄 것.”

“당연하죠.”

아리아의 욕망과 내 목표가 어우러지고, 이해관계까지 일치하니 이토록 든든한 동료가 또 없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아직.”

“할 얘기 남았어요?”

“얘기해줄 게 있는 것.”

아리아는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루체 엘타니아. 그 애가 내 연구실에 몰래 침입했던 적이 있는 것.”

루체?

“결계를 정교하게 수복해 놔서 파악이 늦어진 것. 추측컨대, 아마 비밀 통로를 찾아다녔을 것.”

균열이 있는 비밀 연구실. 그곳으로 가려면 아리아의 연구실에 있는 비밀 통로를 지나야만 한다.

그 넓은 곳에서 비밀 장치가 어디 있는지 파악해야 그 통로에 들어설 수 있지만.

만약 루체가 명계로 이어지는 균열을 발견했으면…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예감이 들지 않는다.

“…비밀 통로에 누가 드나든 흔적 같은 거 있었어요?”

“꼼꼼히 조사한 결과, 별다른 흔적은 없던 것. 비밀 통로를 찾아내는 데 실패한 것으로 추정.”

“그래요….”

한때 비밀 연구의 마나가 슬그머니 마탑 밖으로 흘러나온 적이 있었다. 아리아의 얘기를 듣고 알았다.

황실 마탑은 황국 전체에 뻗친 감지 능력으로 그것을 알아챘다.

하물며 루체는 아예 헤겔 마탑에서 자주 수습했으니. 녀석도 그 마나를 감지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어쨌든 비밀 통로로 가는 방법은 못 알아낸 건가.’

저번에 헤겔 마탑에서 떠나려던 중, 수습 중이던 루체와 마주쳤던 일이 떠올랐다.

그날 마탑 옥상에서 루체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 ‘내가 온 건 어떻게 알았어?’─ ‘네 사역마가 전에 마탑주 찾았던 거 아니까.오늘 마탑주가 복귀한다길래 네가 올 것 같았어.’

─ ‘그래…? 예리하네.’─ ‘…무슨 일 있지?’

루체라면 정황 증거를 토대로 내가 아리아와 함께 위험한 계획을 짜고 있다고 추론했을지도 모른다.

“어쩔 건지?”

“일단 모르는 척 해야죠.”

괜히 루체를 떠봤자 좋은 꼴을 볼 것 같진 않았다.

아리아는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루체 엘타니아가 좋은 애라고는 빈말로도 못 하겠지만, 그 애가 널 누구보다도 소중히 여긴다는 건 자명한 사실.”

“걱정시키지 말란 거죠?”

아리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애정은 양날의 검. 그런 애가 가장 위험하니 조심할 것.”

“…….”

부정하기 어려웠다.

내가 명계로 떠날 것이라고 루체가 안다면, 그녀가 무슨 짓을 하든 이상할 것 같지 않으니까.

“조언 감사합니다.”

나는 예의 있게 웃으며 인사한 뒤 창고를 떠났다.

* * *

한밤중에도 아카데미의 많은 건물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연구, 단련, 공부. 개개인의 사정으로 상시 건물의 불을 켜둔 채라, 교정 전체에 짙은 어둠이 깔리는 날이 없었다.

서늘한 밤 공기가 폐부를 적셨다. 뜀박질 중이었다.

아카데미를 달리며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다 보면 계절의 변화를 크게 실감하게 된다.

‘가을인가.’

양손엔 쥔 마력기는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손에서 떼 놓지 않고 있었다.

전신엔 중량이 크게 늘어나는 마도구 내복을 착용한 상태.

체중이 말도 안 되게 늘었으나, 덕분에 뛰는 맛이 났다. 이게 없으면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서 단련이 안 된다.

애용하는 코스로 달리던 중, 수국 정원이 눈에 띄었다.

잠깐 멈췄다가, 이끌림을 따라 그곳에 들어섰다.

아름다운 길을 가로질러 구석까지. 뛰면 뛸수록 어떤 마력의 느낌이 강해져 갔다.

“히야압!”

수국 정원 구석.

스노우화이트가 호수 위에서 마구 움직이는 단련 도구를 겨냥하며 바람 마법을 시전하고 있었다.

밤의 기운을 머금어 아름답게 빛나는 군청색 원소 마법.

닉스의 속성과 바람 속성이 혼화된 특이 속성, ‘밤바람 속성’의 마법이었다.

화이트는 땀을 뻘뻘 흘렸다. 뒤로 묶은 머리카락, 편한 트레이닝복 차림. 작정하고 단련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아이작 공이십니까?”

수풀 너머에서 홀린 듯이 화이트를 지켜보던 중, 메를린이 내 옆에 다가왔다.

이미 기척을 느꼈기에 놀라진 않았다.

“복귀하셨네요, 메를린.”

“예, 오랜만에 뵙습니다.”

“무사해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치명상을 입었다고 들었는데.

과연 아스트레앙 가문의 자제 답게 회복 속도도 뛰어나다.

“아직 완치는 못했지만요.”

메를린은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는 함께 화이트를 지켜보았다.

“인사, 안 하실 생각입니까?”

“저도 곧 제 단련 하러 갈 생각이라서요. 만나봤자 할 수 있는 게 수다밖에 없고. 지금은 화이트를 가르쳐줄 여유도 없고요.”

“그래도 화이트 황녀님을 보러 오셨군요.”

“예, 뭐.”

“올드렉에 있을 때 화이트 황녀님과 절 찾으셨단 얘기를 들었습니다. 깊은 사려에 감사드립니다.”

“감사 받을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아뇨, 감사할 일입니다. 무조건요.”

순순히 감사를 받으라는 듯 단호한 어조였다.

그냥 “아, 예….”하고 대답했다.

“…화이트 황녀님께선 아이작 공이 오셨는데 왜 안 깨워줬느냐고 울먹이셨지만요. 제 동료들이 많이 곤란해 했다고 합니다.”

“그래요?”

상상이 간다. 왠지 미안해지네.

메를린은 담담한 얼굴로 나를 일별했다.

“보다시피 화이트 황녀님께선 새로운 힘을 각성하셨습니다. 아이작 공께서 얘기해주셨다고 들었는데. 요정의 힘이죠?”

“예. 분명 예전과는 마법의 위력이 비교도 안 될 겁니다. 앞으로도 더 강해질 거고요.”

“화이트 황녀님께선 저 힘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됐을 때, 아이작 공께 자랑스럽게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하셨습니다. 더욱 강해지고 싶다면서요.”

메를린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서 아카데미에 돌아온 후로 매일 저렇게 열심히 단련하고 계시죠. 시간이 나면 마법학을 공부하시고, 대부분은 실전 단련을. 체력 증진을 위해 신체 단련도 게을리하지 않으시고, 손에선 마력기가 떨어질 날이 없죠. 마력을 과하게 사용해 매번 코피를 쏟으셔도 별 말 없이 단련을 이어가십니다.”

“…….”

“화이트 황녀님께선 나름대로 아이작 공을 이해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아이작 공께서 직접 찾아오시지 않는 한, 보고 싶어도 일부러 참으려 노력하는 중이시죠.”

메를린은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니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화이트 황녀님께서 아이작 공께 큰 애착을 갖고 계신다는 사실을.”

명계의 여정을 감당하기 위해서 내 단련에 치중할 계획이었다.

그렇기에 저번에 힘을 각성했던 화이트에게 더는 가르칠 시간이 없다고 얘기했다.

이해타산은 상정하지 않았다. 그럴 상대가 아니었으니까. 그저 죄책감이 들어서 한 얘기였다.

그런 와중에 화이트를 위로해준다거나, 격려해주는 건 염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애착이라. 나도 그렇다.

진중한 눈으로 표적을 노리며 집중하고, 땀을 흘리는 화이트의 모습에 깊은 애착이 간다.

처음엔 그저 시나리오를 클리어하기 위해서 그녀의 멘토가 되어 가르쳐줬을 뿐이었는데.

저 애가 노력할 수록, 강해질 수록, 오히려 내가 뿌듯해지고 애틋하게 느껴져 버린다.

“조만간 저한테 중요한 일이 있어요. 그걸 위해서 제 단련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메를린에게 말했다.

“찾아오는 건 오늘이 마지막일 겁니다. 화이트의 집중력을 깨뜨리기도 싫고, 방해하는 것도 미안하고. 다음에 얼마나 강해져 있을지 기대하겠다고 전해주세요. 지금은 저도, 저 애를 만나기엔 떳떳하지 않아서요.”

“…알겠습니다. 그 뜻, 존중하겠습니다.”

내가 발걸음을 옮기자 메를린은 고개를 숙였다.

“살펴가시길.”

그리 다시 뜀박질하려던 때였다.

“…화이트 황녀님?”

“아이작 선배!”

풀숲을 헤치는 소리. 이어지는 화이트의 외침.

들켰나 보다. 아마 메를린이 자리에 없어서 주변을 둘러보다 눈치챈 것 같았다.

발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진중하면서도 울 듯 말 듯한 얼굴의 화이트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달려와 내게 확 안겼다.

“화이트…?”

뭐라 해야 하지?

식은땀이 뺨을 타고 흐른다.

“그, 우리 서로 땀내 나는 건 알고 이러냐?”

대충 떠오르는 대로 어설프게 농담이라도 던져봤지만, 화이트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화이트를 슬쩍 품에서 떨어뜨렸다. 그녀는 껌 딱지처럼 달라붙은 채 애써 버티다가 끝내 나를 올려다보았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맑은 눈. 어린애처럼 흐르는 콧물. 흐물흐물거리는 입.

“흐아앙…! 아이작 선배애액…!”

예전과 다를 것 없이 화이트는 울먹였다. 그녀의 흐느낌이 삐끗해 우스꽝스럽게 들렸다.

심장이 덜컥거렸다. 북받침이 몰려왔다.

이 가슴을 울리는 감정이 무엇인지,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애를 정말 소중히 여기게 되었구나, 하고.

그만 솔직한 심정이 내 입 밖으로 튀어 나갔다.

“미안하다. 더 잘해주지 못해서…. 내가 부족했어….”

“뭔 뚱딴지 같은 소리예요오…. 흐으윽…! 보고 시펏써요오…!”

찌르르, 거리는 풀벌레 소리가 화이트의 울음소리에 잡아먹혔다.

화이트는 어눌한 목소리로 외치며 다시 내 품에 안겼다.

잔잔하게 화이트의 등을 토닥였다.

남들이 보기에 꽤 볼품없는 꼴인지도 모르겠으나, 지금은 화이트를 더 소중히 대해주고 싶은 마음만 들 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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