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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310화 (292/334)

〈 310화 〉 암갑귀

* * *

스노우화이트가 진정되자 우린 서로를 바라보았다.

별다른 이야기 없이, 단지 서로 열심히 하자고 응원만 했다.

─ ‘아이작 선배, 파이팅해요!’

화이트의 응원을 기억 속에 담아둔 채 다시 뜀박질을 시작했다.

달리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예쁘게 가꾼 자연 경관과 아름다운 건축물들의 조화. 마법을 응용해 심미감을 자아해내는 구조물도 간간히 보인다.

비가 오고, 낙엽이 떨어지고, 눈이 오고, 다시 맑은 날이 돌아오며.

이 널찍한 교정의 풍경이 바뀌어가는 모습을 쭉 보고 있노라니, 어느새 깊은 정감을 느끼게 돼 버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고개를 돌려 중앙 행정 건물, 바르토스관을 바라보았다.

저 건물 옥상에서 악신이 나오는 날, 내가 이 풍경을 지킬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내 의사는 확고했다.

난 이곳을 지키고 싶었다.

* * *

소녀 미첼은 빨간 망토의 후드를 벗으며 한숨을 내뱉었다.

밤하늘 아래, 어느 제단.

검은 고깔 모자와 검은 로브 차림의 마법사들이 피를 쏟으며 죽음을 맞이했다. 저마다 흑마법사였다.

캐스팅하던 마법사들이 모두 목숨을 잃은 까닭에, 지상에서 발광하던 기이한 소환진의 빛이 점차 희미해져 갔다.

결박된 채 소환진 중심에 모여 있던 어린아이들은 몸을 덜덜 떨며 미첼을 바라보았다.

“살려, 살려줘….”

흐느끼는 목소리.

아직 살아있는 흑마법사 한 명이 지면에 엎드려 처절하게 애원했으나, 미첼은 무덤덤하게 그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제발….”

“난 사냥꾼이야.”

미첼은 손에 쥔 도끼를 어깨에 걸치고 쪼그려 앉았다.

그녀의 생기 없는 두 눈이 흑마법사를 담았다.

“너희 같은 늑대들을 사냥하는 게 내 임무야. 어린아이들을 제물로 바쳐 악한 마수를 소환하는 건…, 늑대 새끼들이나 할 짓이잖아.”

미첼은 어깨에 걸친 도끼를 위로 들어 올렸다.

도끼 날에 달빛 반사되어 번쩍였다.

“죽어.”

“아, 아…!”

처억!

“크헉!”

미첼은 도끼로 흑마법사의 목을 내려찍었다.

미첼의 뽀얀 뺨에 선혈이 튀겼다. 그녀는 손수건을 꺼내 제 얼굴을 닦았다.

숨을 거둔 흑마법사는 연신 경련했다. 근육이 떨릴 때마다 검은 로브에 가려진 목에서 대량의 피가 울컥거렸다.

어느새 소환진의 빛이 완전히 사그라지고, 주위에 타오르는 불의 꽃만이 제단을 밝혔다.

미첼은 소환진 중심으로 가서 어린아이들을 포박한 줄을 도끼로 자르고 풀어주었다.

아이들은 엉엉 울었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화신에게 해.”

“네에…?”

미첼은 어린아이를 보며 서늘한 미소를 머금었다.

“날 구해줬던 분. 난 그분의 뜻을 대신하고 있을 뿐이야. 그분은 너희 같은 애들이 위험에 처하는 걸 원치 않거든.”

아이들은 미첼의 말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

미첼은 아이들을 향해 손을 뻗고, 눈을 감고서 읊조렸다.

“화신의 가호가 함께 하길.”

……

스으으으.

바위 동굴 내부.

스산한 냉기가 흐르고, 밀도 높은 마력이 바위 피부를 감쌌다.

바위산 껍질을 지닌 악어 거북 형태의 마수, 암갑귀-고르모스는 굳게 닫고 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

정면을 쳐다보니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제 바위 하수인과 몇 번이고 결투를 벌이고, 아무리 부상을 입어도 다시 일어서서 또 싸워나갔던 청은발의 소년.

그가 전신에 냉기를 흘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때가 왔나….]

언젠가 암갑귀와 승부해 그를 굴복시키고 사역마 계약을 맺겠다고 선언한 남자. 아이작이었다.

전의를 느낀 암갑귀-고르모스는 거체를 일으키며 바위 마력을 끌어올렸다.

고오오오.

가히 무시무시한 마력. 절로 경악하게 만드는 묵직한 압박감.

암갑귀는 단숨에 판단했다. 아무리 태초의 암제가 살아 있었더라도 저 소년은 이기지 못했을 것이라고.

[오랜만이다, 고르모스!]

아이작 뒤에 숨어서 날고 있던 작은 백룡, 빙설룡-힐드가 튀어나와 앞발을 들고 인사했다.

아이작은 고르모스와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고르모스, 계약하러 왔어.”

[알고 있다. 말도 안 되는 마력이군…. 그간의 수련은, 일부러 자신을 약하게 만들어 자양분으로 삼았던 것인가.]

“마음대로 생각해.”

[…긴 말은 필요 없겠군.]

아이작은 손목을 암갑귀에게 내보였다.

손목에 새겨진 사역마 계약진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맹세한다. 이 싸움에서 내가 승리할 시, 넌 내 사역마가 된다.”

[맹세하지.]

“계약 성립이다.”

서로의 의사가 합치했다.

쿠우우우우!

암갑귀 주위로 바위 덩어리가 셀 수 없이 나타나고, 지면에서 바위 골렘들이 몸을 일으켰다.

아이작보다 열 배 이상 거대한 골렘 무리가 저마다 바위 무기를 들고 전열을 갖추었다.

한때 아이작의 갈비뼈를 수십 회 부러뜨렸던 골렘도 튀어나와 전투 태세를 취했다. 그 골렘만 해도 10마리. 예전이었으면 1마리만으로도 벅찼을 터.

[와라, 아이작. 날 굴복시켜 내 주인이 될 자격을 인정해 보거라.]

<메르헨의 마법 기사> 극후반부에 가서야 사역마 계약을 맺을 수 있는 8성급 마수, 암갑귀-고르모스.

드디어 때가 이르렀다.

파앗!

아이작은 지면을 박차고 도약했다.

카가가각!!

날카로운 바위 덩어리들이 탄환처럼 쏘아지며 아이작을 노렸으나, 그는 얼음의 벽을 전개해 모든 공격을 튕겨냈다.

골렘들이 거대한 무기를 휘두르자 아이작은 그 무기를 밟고 뛰어올랐다.

날아오는 대량의 석설 또한 모두 원소 마법으로 튕겨냈다.

쿠구구.

아이작의 다리에 사역마 이든 융화의 효과인 [바위 갑주]가 덧씌워졌다.

그 발로 거대 골렘에게 발차기를 날렸다.

콰아앙!!

발차기의 위력이 워낙 강해 주위로 쇼크웨이브가 퍼져나갔다. 거대 골렘의 머리는 가볍게 부서졌다.

연이어 다른 골렘들도 아이작에게 공격을 퍼부었으나, 아이작은 [바위 갑주]를 씌운 주먹으로 골렘들을 차례대로 부서뜨리며 거침없이 암갑귀를 향해 돌격했다.

콰가가강!!

순식간에 골렘들이 전부 파괴되었다.

잇달아 튀어나오는 골렘들의 최후도 마찬가지였다.

여유 부리지 않는다. 방심하지도 않는다.

강자인 그의 전투 방식엔 약자로서 쌓아온 경험이 철저히 배어 있었다.

이 남자를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암갑귀는 그리 판단했다.

어느덧 암갑귀에게 이른 아이작.

그는 공중에 붕 뛰어올라 오른손에 얼음 마력을 응축시켰다.

얼음 마력이 소용돌이치고, 그 손 위로 5성급 [빙결 폭발]의 술식이 전개되었다.

[완벽하군! 이 몸이 압도당하는 경험은 처음이구나…!]

“그러냐.”

흥분된다.

암갑귀-고르모스는 깔깔 웃으며 수많은 바위 창을 허공에 생성해 아이작을 표적으로 쏘아냈고.

“그동안, 훈련에 어울려줘서 고마웠다.”

아이작은 암갑귀의 머리를 향해 얼음 마력을 터뜨리며 [빙결 폭발]을 내질렀다.

콰아아아아!!

연푸른 광채가 찬란하게 퍼져나간다.

차가운 충격파가 사방에서 날아오던 바위 창들을 모조리 부수고 튕겨냈다.

장대한 빙결의 범람이 암갑귀를 휩쓸었다. 껍질 위 바위산이 우르르 붕괴되고 날아간다.

몰아치는 냉기가 바위 동굴에 서리고.

암갑귀는 고통스러워하는 얼굴로 전신이 꽁꽁 얼어 버렸다.

걷혀가는 연푸른 냉기.

아이작은 [빙결 폭발]의 여파로 생겨난 빙괴 위에 선 채 암갑귀를 얼음장 같은 눈매로 내려다보았다.

“하아.”

아이작의 입김이 희뿌연 연기가 되어 공기 중에 흘렀다.

이윽고, 아이작의 의지에 따라 암갑귀를 가둔 얼음이 마력의 가루가 되어 허공에 흩어졌다.

[끄윽….]

암갑귀는 신음하며 비틀거리다 지면에 나자빠졌다. 그는 전신에 피를 흘리며 숨을 헐떡였다.

부서진 바위 피부 안쪽, 붉은 부위가 엿보였다. 암갑귀는 몸 안쪽까지 그득한 한기와 격통을 느꼈다.

“고르모스.”

아이작은 빙괴에서 가뿐히 뛰어내려 착지하고, 공기를 에워싼 냉기를 헤치며 압갑귀 코앞에 이르렀다.

“이제 날 따라줘. 네가 필요해.”

[…….]

암갑귀의 닫힌 입 사이로 바람 새는 듯한 소리가 빠져나갔다.

마침 눈을 감으니 천 년 전의 한때가 아른거렸다.

보이는 건, 매번 호탕하게 적들과 싸워나갔던 태초의 암제의 뒷모습.

그는 자주 주먹을 뻗으며 활기차게 소리치곤 했다.

─ ‘고르모스, 새로운 모험이다! 날 따라라!’

그 열정적인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저도 모르게 암갑귀의 입꼬리가 비죽 올라갔다.

[…부탁하듯이 말할 필요 없다. 내 패배다. 지금 이곳에서 널 새로운 주인으로 인정하겠다, 아이작.]

화아아아아!

서서히 암갑귀의 이마에 새로운 연갈빛 각인이 새겨져 나갔다.

이에 공명하여 아이작의 손목에 새겨진 계약진도 연갈빛으로 물들어갔다.

계약 성립.

암갑귀-고르모스는 아이작의 세 번째 사역마가 되었다.

아이작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음?]

별안간 아이작은 껴안듯이 암갑귀의 머리에 달라붙어 고개를 파묻었고, 바위 피부를 소중한 물건 다루듯 쓰다듬었다.

빙설룡-힐드는 슬그머니 날아와 아이작의 뒤통수를 껴안았다.

암갑귀는 그들이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으나, 주인인 아이작의 마음을 느끼고서 이내 미소를 지었다.

[이놈들이….]

무척 포근했다.

* * *

대낮. 오르핀관 복도를 걷던 중이었다.

어제부터 내 양쪽 손목이 절로 의식되고 있었다.

‘드디어 암갑귀랑도 계약했고….’

양쪽에 각각 다른 8성급 사역마의 계약진이 있으니, 상당한 만족감이 느껴졌다.

“음?”

책을 꺼내기 위해 사물함을 연 때였다.

처음 보는 쪽지가 안에 들어 있었다. 사물함 틈새로 집어 넣어둔 것이리라.

그것을 집어 내용을 읽었다.

[ 방과후에 아지트에서 보자 – 도로도로도로시 ]

‘도로도로도로시’라고 적힌 이름 옆엔 마녀 모자를 쓴 귀여운 캐릭터가 활짝 웃는 모습이 간소하게 그려져 있었다.

괴상한 이름은 제쳐두고, 악필을 보아하니 도로시가 남긴 쪽지 같았다.

‘올드렉에서 돌아온 뒤로 진지한 얘기는 안 했었지?’

신경 쓰고 있었다.

일부러 라크닐이 했던 얘기를 먼저 언급하지 않았다. 도로시를 배려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얘기할 마음이 든 건가.’

쪽지는 투명한 프로텍터로 포장하고 유리 케이스에 담은 뒤 사물함에 장식해뒀다. 도로시가 남긴 쪽지였기 때문이었다.

필요한 책을 꺼내고 다시 복도를 가로질렀다.

자신이 살아있으면 대재앙이 된다는 사실에서, 도로시가 좋은 결론을 도출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무슨 결론에 이르렀든, 내가 해야 할 대답은 같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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