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7화 〉 천의 날개 토벌전 - 막간 (1)
* * *
블랙 스톤의 자연 마나는 원래 있던 장소로 되돌아갔다.
그 여파로 더욱 거센 지진이 일어나며 화산이 터지려 했으나, 최고위 천족들과 그 부하들이 신성력을 퍼부어 자연 마나의 불안정한 흐름을 안정시켜 재해를 막았다.
이후, 천족들은 살아남은 반역군을 데리고 돌아갔다.
사죄의 의미로 최고위 천족이 세계에 풍요의 축복을 내렸고, 더는 동족이 인간계에 간섭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하며 빛 속에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 허무하게 전쟁은 막을 내렸다.
그 후, 아이작을 어디로 후송할지 논의가 벌어졌다.
뒤펜도르프냐, 황국 최고의 의료시설이냐, 메르헨 아카데미 병원이냐.
짤막한 논의 끝에 메르헨 아카데미로 정해졌다.
아이작이 뒤펜도르프 군단장들과 황실에 남겨둔 전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이 쓰러지고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닥칠 경우, 메르헨 아카데미 병원에 데려가고 치유 능력이 뛰어난 성직자나 유능한 의사를 붙여 달라고.
그는 명계에 다녀오고 일이 잘 풀렸을 경우, 최소한 자신이 어떤 상태가 될지 예상했던 것이다.
그렇게 아이작은 메르헨 아카데미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뒤펜도르프의 기사단장 모르칸이 호위로 붙었다.
메르헨 아카데미 병원. 아이작은 파견 온 황국 최고의 마법 의사의 치유 마법과 카야의 식물 마법으로 치료를 받았다.
전신 곳곳이 터져 당장에 죽지 않은 것도 용한 수준이었다. 강한 마력이 반항하는 사춘기 아이처럼 저항하며 치유 마법을 방해하던 탓에 3일간 힘겨운 치료가 계속되었다.
마침내 치료가 끝난 뒤, 아이작은 개인 병실로 옮겨졌다.
여전히 그는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단지 식물인간처럼 잠잠히 숨만 내쉬며 곤히 잠들어 있을 뿐.
“아이작 님…. 못 깨어나신지 벌써 4일째죠?”
카야 아스트레앙은 보호자석에 앉은 채 아이작을 가만히 바라보며 물었다.
반대편에서 아이작의 손을 잡고 침대에 앉아 있던 도로시 하트노바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 쓰던 마녀 모자는 병실 구석에 놓여 있었다.
그간 카야는 쪽잠을 자며 아이작을 치료하는 데 전념했고, 도로시는 복도에 머물렀다. 치료가 오래 걸린 탓에 오늘에서야 병문안이 허용되어 그녀들은 아이작의 병실에 와 있었다.
“앨리스 선배한테만 말하고 떠나시더니…. 얼마나 무리하신 거예요….”
아이작 걱정에 틈만 나면 눈물을 머금던 카야도 이제는 안정을 되찾았다.
악식의 인격도 카야 옆에서 아이작을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도로시는 카야를 힐끔 쳐다보았다.
제 기억 속에 들어온 또 다른 도로시 게일의 기억은 아직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 기억이 무엇인지 정체도 모를 뿐더러, 아이작과 먼저 상의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에.
‘이 기억이 사실이면….’
저번 여름 방학 때부터 아이작의 감정이 침잠해 있던 이유가 납득이 간다.
명계에서 아이작이 또 다른 도로시 게일 앞에 나타났던 광경이 머릿속에 선명히 떠올랐다.
피투성이로 슬프게 웃는 아이작의 얼굴은 도로시의 가슴속에 멍울이 지게 했다.
그리고.
‘괴물이 사라졌어.’
아이작의 본질 속, 도로시조차 두려움을 느끼게 했던 미지의 괴물이 사라졌다.
‘아이작, 무슨 일을 겪고 온 거야…?’
도로시는 걱정 어린 손길로 아이작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지루하네. 언제까지 잠만 퍼 잘 거야? 우리 도로시가 나흘째 밤잠 설치고 있는데.]
하얀 고양이 사역마, 엘라가 아이작의 배 위에 올라가 앉으며 한숨을 푹푹 내뱉었다.
틱틱대고 있지만, 엘라도 아이작이 깨어나지 않을까봐 걱정하고 있었다.
덜컥.
느닷없이 문이 열리고 병실이 단숨에 시끄러워졌다.
[아이작의 기절 소식 접수! 벨로, 현장에 도착!]
[아이작, 괜찮느냐?!]
“아이작…!”
몸통에 붕대를 감은 작은 범고래 사역마, 벨로와 까마귀처럼 생긴 뇌신조-갈리아가 허공을 날며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을 따라 붕대를 휘감은 루체가 목발을 짚으며 병실에 들어섰다.
“루체 엘타니아? 이제 깨어나신 겁니까?”
카야는 루체의 방문에 놀란 기색을 보였다. 루체도 그간 기절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는 벨로! 여기는 벨로! 아이작은 응답하라! 다시 한번 전달한다! 아이작은 응답하라!]
벨로는 아이작 위를 빙빙 맴돌며 어린 남자아이 같은 목소리로 명랑하게 떠들었다.
[아이작….]
뇌신조-갈리아는 침대 옆 수납장 위에 안착해 수심 어린 눈으로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루체는 카야 옆에 이르러 목발을 옆으로 내동댕이치고 침대를 짚었다. 충격 어린 두 눈이 똑바로 아이작을 향했다.
“아이작. 4일째라고 들었어…. 난 원래 몸이 약하니까 그렇다 쳐도, 얜 이렇게 회복이 더딜 애가 아니잖아…. 너, 치료 똑바로 한 거 맞아?”
루체는 다급한 눈으로 카야를 쳐다보았다.
“저는, 당연히….”
“그럼 왜 이러는데? 식물 마법은 치유 계열 중 최고 아니야? 요정의 힘이잖아. 다시 제대로 해줘, 아이작이 깰 때까지. 빨리!”
루체는 아이작 걱정에 그리 소리쳤다.
“…….”
카야의 두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보다 못한 악식의 인격이 나선 것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미간을 찌푸리며 코웃음 쳤다.
“아무것도 못 하고 쓰러져 있던 주제에, 왜 명령질이에요? 루체 엘타니아, 당신이 뭐라도 됩니까?”
“뭐…?”
루체의 눈빛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었다.
악식의 카야는 고개를 내밀어 루체를 지근거리에서 노려보았다.
핏빛처럼 붉은 눈동자와 대양처럼 푸른 눈동자가 대비를 이루었다.
“제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제가 무슨 기분인지 아냐고요? 아이작 님 치료에 아무것도 보탠 거 없으면 그 입 다물어요.”
“…….”
3일간 아이작을 치료하겠다고 발버둥 치며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치료가 끝난 뒤에도 아이작이 깨어나지 않으니 카야는 더없이 심란해져 있었다.
그리 내몰려 있었거늘, 루체가 신경을 자극하니 악식의 인격은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너네 병실에서 뭐 하는 거야?”
[너희들, 여기서 싸우지 마. 나 화낸다?]
도로시와 엘라는 루체와 카야에게 불쾌한 시선을 보냈다.
살벌한 공기가 병실에 내려앉자 가만히 벽 쪽에 서 있던 서리기사 모르칸도 반응했다.
그때, 열린 문틈으로 천연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이 분위기는 뭘까?”
[니오옹!]
도로시와 카야, 엘라, 모르칸의 시선이 모두 출입문 쪽을 향했다. 루체는 싸늘한 눈초리만 슬쩍 보냈다.
“어째 무거운 분위기구나.”
싱긋 웃는 앨리스 캐럴과 함께 뚱뚱한 보라색 고양이 사역마, 괴묘-체셔가 안으로 들어왔다.
앨리스도 이마와 팔에 붕대를 감고 있었지만 루체보다 상태가 나았다.
그녀는 루체와 카야에게 다가가 그녀들의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그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산뜻한 연분홍빛 눈동자가 루체와 카야를 번갈아 살폈다.
“싸우면 안 된단다? 여긴 병실이잖니. 그것도 애기가 잠든.”
“…싸울 생각 없어요. 뭣 모르고 헛소리를 하길래 뭐라 한 것뿐이지.”
악식의 카야는 고개를 뒤로 빼고 한숨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는 여전히 루체를 노렸다.
“얘야?”
앨리스 특유의 미소가 루체를 향했다.
“…….”
루체는 심해를 비추듯 생기 없는 눈으로 카야를 노려보다가, 한숨을 푹 내뱉으며 눈을 감았다.
감정적인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여기서 분위기를 나쁘게 만들면 아이작이 안정을 취하는 데 방해될 테니.
결국, 루체가 말없이 아이작을 쳐다보며 신경전은 종료되었다.
“옳지.”
앨리스는 루체도 한 수 접고 물러서자 자상하게 칭찬했다.
도로시는 도끼눈을 뜨고 앨리스를 노려보았다. 루체와 카야의 신경전이 끝난 건 좋았지만, 앨리스가 중재했다는 점이 영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왜 그렇게 쳐다 보니, 도로시?”
“그냥, 왠지 기분 나빠서.”
“넌 정말 날 싫어하는구나? 귀엽게도.”
앨리스는 도로시에게 상냥한 미소를 건넸다.
아이작의 하렘에 속한 여자들은 모두 기가 세다. 즉, 그녀들을 교통 정리할 사람이 필요했다.
앨리스는 그 역할을 스스로 도맡을 셈이었다.
[니오옹. 아이작 너무 평화롭게 잠든 거 아니니? 난 뼈 빠지게 고생했는데….]
괴묘-체셔는 아이작 머리 옆에 몸을 둥글게 말아 눕고는 나지막이 투덜댔다.
괴묘의 울상이 엘라 쪽을 향했다. 마치 연극을 하는 것만 같은 목소리 톤으로 하소연이 이어졌다.
[엘라, 그거 알아?]
[몰라, 알고 싶지 않아.]
[나, 의리의 체셔는 아이작의 명령에 따라 맨날 천족을 감시하고, 두들겨 맞고, 죽을 위기까지 겪었어. 엄청 힘들었지…! 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려면 네 위로가 필요해…. 날 위한 위로 한마디를 부탁해도 되겠니?]
[저런. 그냥 죽지 그랬어?]
엘라에게서 튀어나오는 건 냉담한 반응뿐이었다.
[니옹, 역시 엘라는 위로 한 마디 하는 것도 세련되고 도도하구나! 그래서 좋아!]
[역시 넌 답답하고 못생겼구나. 그래서 싫어.]
표정이 녹아내리며 헤벌레 미소 짓는 괴묘에게 엘라가 담담하게 매도했다.
날카로운 비수가 괴묘의 가슴속에 꽂혔다. 괴묘는 각혈했다.
아이작의 복부 위에서 몸을 말고 눕는 엘라를 바라보며, 괴묘가 슬픈 표정을 지었다.
[엘라아….]
[입 냄새 나.]
[내가 그렇게 싫니?]
[응.]
[납득할 수 없어…!]
괴묘는 비장한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나처럼 매력적인 고양이가 싫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날 납득시키려면 논리적으로 내가 싫은 이유 1000가지를 대봐!]
[못 생겨서 싫고, 짜증 나서 싫고, 뚱뚱해서 싫고, 보라색이어서 싫고, 안 어울리는 중절모 쓰고 다녀서 싫고, 둔해 보여서 싫고, 우둔해 보여서 싫고, 생각이 미숙해서 싫고, 능청맞은 척 하는 말투가 싫고, 장난기 많아서 싫고, 이빨 괴상해서 싫고, 줄무늬 못생겨서 싫고, 입에서 썩은 음식물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싫고, 기분 나쁘게 웃어서 싫고, 발톱이 가지런하지 못해서 싫고, 답답해서 싫고, 치근덕대서 싫고, 눈치 없어서 싫고…….]
엘라가 거침없이 1000가지의 싫은 이유를 대는 동안 괴묘-체셔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다들 부정하지 않고 가만히 엘라의 말을 듣는 동안 출입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조심스럽게 열렸다.
엘라가 말을 멈추고, 허탈한 얼굴로 눈물을 뚝뚝 흘리는 괴묘를 제외한 모두의 시선이 출입문 쪽으로 돌아갔다.
문을 통과하려면 문 앞을 지키고 있는 호위병들이 아이작의 지인이라고 인정할 만한 사람이어야 했다. 즉, 방문객은 그들 모두 알고 있는 인물일 것이었다.
“저기….”
슬쩍 열린 문틈으로 1학년 여학생이 소심하게 고개를 내밀었다.
황녀, 스노우화이트였다.
그녀는 마치 상어 무리 앞에 선 작고 겁 많은 물고기처럼 몸을 떨었다.
“아이작 선배 보러 왔는데요….”
“…….”
“건방지게 병문안 와서 죄송해요. 수고하세요….”
끼이익, 철컥.
화이트는 지레 겁을 먹고 문을 도로 닫았다.
침묵이 내려앉은 병실.
병실 안의 모두가 출입문을 지켜보는 동안, 다시 출입문이 활짝 열렸다.
“실례하겠습니다.”
“메, 메를린…! 들어가면 안 돼요오…!”
담녹색 포니테일 머리의 황실 기사, 메를린 아스트레앙이 앞장서서 들어왔다. 뒤에서 화이트가 공포심 어린 눈으로 경악하며 그녀를 만류하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카야는 메를린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메를린 언니?”
“인사 드립니다. 화이트 황녀님의 호위 기사직을 맡고 있는 메를린 아스트레앙이라고 합니다. 화이트 황녀님께서 아이작 공이 걱정되신다고 하여 병문안 선물을 들고 찾아왔습니다. 합석해도 될런지요?”
메를린은 예쁜 화분을 든 채 정중하게 기사식 예법으로 인사했고, 화이트는 병실 안의 여학생들과 메를린을 번갈아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흐애애….”
미녀 콘테스트 때 1위를 차지했던 화이트는 의도치 않게 아이작에게 호감을 표현한 인물로 여겨지며 아이작을 좋아하는 여학생들에게 요주의 인물이 되었다.
하물며 그녀들은 저마다 기가 세고 유명한 강자, 강자뿐이니…. 화이트는 몸을 덜덜 떨며 눈가에 눈물까지 맺힐 만큼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연적 등장! 연적 등장! 주인보다 예쁘다고 공인된 연적 등자앙! 주인, 경계 태세 발동!]
빠악!
[으악! 벨로, 충격! 폭력 반대! 폭력 반대!]
루체가 싸늘한 표정으로 벨로에게 꿀밤을 때리자, 벨로는 허공을 둥글게 휘저으며 시위했다. 뇌신조는 [진정해라, 벨로.]하고 벨로를 다그쳤다.
“문제 될 건 없단다. 어서 오렴.”
먼저 상냥하게 웃으며 화이트를 반긴 사람은 앨리스였다.
그 천사 같은 미소에 화이트는 상어 무리 속에서 제 편을 들어 주는 든든한 범고래라도 만난 것 같은 안도감을 느꼈다.
연이어 다른 여학생들도 나섰다.
“니히히, 뭘 그렇게 겁먹었어? 이리 와. 회장 걱정하는 사람을 우리가 내칠까 봐?”
“어서 오십시오, 화이트 황녀님. 이쪽으로.”
도로시도 웃는 얼굴로 화이트를 반겼고, 카야는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 바르게 인사하며 그녀를 반겼다.
루체는 화이트를 인형처럼 무감정하게 바라보다 다시 아이작을 쳐다보았다.
메를린은 다시 고개를 숙였고, 안심한 화이트는 미소를 머금었다.
“그럼 감사히…!”
화이트는 메를린과 함께 도로시 옆으로 가서 아이작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아이작 선배….”
한동안 가만히 의식 불명 상태의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점차 화이트는 코를 훌쩍였고,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병실 안의 여학생들과 사역마들은 루체를 제외하고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화이트를 지켜보았다.
“걱정했잖아요오….”
화이트는 볼품 없이 흐느끼며 아이작을 향한 걱정 어린 마음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모두가 그리 아이작에게 마음을 쏟는 동안, 복도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트리스탄 님! 아직 움직이시면 안 돼요!”
“트리스탄 님, 일단 안정을 취하셔야…!”
학생들의 목소리였다.
“하!”
돌연 출입문이 쾅 열리며 목발을 짚은 금발의 소년이 나타났다. 전신 대부분이 붕대로 감긴 그 소년은 자신감 넘치는 실소 소리를 내뱉었다.
“아직도 깨어나지 못했느냐, 아이작! 안타깝구나! 이 몸이 먼저 깨어나고 말았으니! 정신력 승부는 이 몸의 승리다!”
뜬금없이 제 승리를 선언하고는 호쾌하게 웃는 그 소년은 아이작의 동기, 트리스탄 험프레이였다.
그의 패거리 학생들은 아이작의 병실 내부를 채운 엄청난 강자들을 바라보며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병실 안의 모두는 당황했다.
[저 또라이는 뭐야?]
벨로조차 당황했다.
“저쪽이다!”
“응…? 으헉!”
잇달아 복도가 어수선해지더니, 많은 학생이 복도를 가로질러 트리스탄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서려 했다.
호위병들이 일제히 그들을 막아섰다.
“아이작! 나 왔어! 이안!”
“아이작, 안에 있나?!”
“저, 저기에! 친구야, 죽지 마! 으앙!”
“따, 딱히 걱정돼서 찾아온 건 아니지만 말이다…!”
“내 인맥…, 아니, 아이작은 괜찮은 거지?!”
“유혈의 흔적은 없군.”
이안 페어리테일, 마테오 조르다나, 에이미 할로웨이, 리제타 라이온하트, 케리드나 화이트클락, 시엘 카르네다스, 한때 마테오 패거리였던 학생들, 그 외에도 아이작과 친분을 쌓은 학생들.
“아이작 선배님…!”
무녀 미야, 타린 바르탕 같은 견학생들도.
오늘부터 아이작의 병문안이 가능해진 까닭에, 모두 학사 커리큘럼에 따라 시간이 나자마자 병원에 몰려온 것이었다.
복도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완전 난리네….”
도로시는 감탄했다.
“다들 질서를 지켜주십시오! 병실 앞에서 소란을 피우시면 안 됩…, 헉!”
호위병들은 복도를 메운 학생들의 출입을 자제했으나, 별안간 분홍 머리의 여학생이 호위 신자를 대동하고 나타나자 상체를 휙 숙였다.
학생들도 모두 뒤를 돌아봤다가 흠칫 놀랐다.
“성녀님을 뵙습니다!”
“빙제님은 괜찮으신가요?”
“예, 치료는 잘 마쳤다고 합니다! 다만, 아직은 의식 불명 상태입니다.”
성녀 비앙카 앙투라제는 학생들 뒤에서 병실 안을 살폈다.
“우리 성국 바르디오는 빙제님을 위해 얼마든지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크흠, 그나저나 병문안 온 사람이 많네요.”
비앙카는 어수선한 학생들을 바라보며 헛기침 소리를 냈다.
비키라고 눈치를 준 것이었으나, 학생들은 그 헛기침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이것들, 전부 시끄럽다! 아이작의 절대 안정을 위해 소음을 자제할 것을 요구한다!]
“네가 제일 시끄럽잖냐.”
[헉.]
벨로가 출입문 쪽에 이르러 학생들을 다그치려 하자 리제타가 냉정하게 일침을 가했다. 벨로는 헛숨을 집어삼키고는 꼬리를 내리고 의기소침해졌다.
한바탕 벌어진 소란 속에서도 아이작은 미동도 없이 무의식 속을 헤맸다.
많은 사람이 병문안을 오길 반복하고, 카야나 루체, 도로시, 앨리스, 화이트가 병실을 지키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그리 시간이 흐르며.
한 달 뒤, 창밖에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일 무렵.
아이작의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