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2화 〉 미첼 (2)
* * *
“한 수 부탁해도 될까? 보여줄 것도, 할 얘기도 있는데.”
심리를 읽었다. 미첼은 내게 자기 실력을 보여주고 싶은 듯했다.
뭐, 나도 이 애의 실력이 궁금하긴 했다. 할 얘기가 있는 것도 마찬가지고.
“모르칸, 이안. 미안한데 잠깐 관중석으로 가줘.”
“어? 응….”
이안은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대답했고, 모르칸은 내게 경례했다. 둘은 에이미 옆으로 발을 옮겼다.
대련장 위엔 나와 미첼만이 남았다.
안경을 한 차례 들치고 선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이렇게 보게 될 줄 몰랐네. 입학 시험은 어떻게 통과했어?”
내가 여기 있다는 건 화신의 가호 덕분에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굳이 그 부분은 묻지 않았다.
“공부는 원래 자신 있었어. 실기도 능력이 따라줘서 통과했고. 오빠랑 다르게 기사학부지만.”
기사학부 실기라면 운동신경과 무기술을 평가 받았을 것이다.
신체 능력이 탁월한 편인가.
“그러냐. 잘됐네. 나도 너랑 하고 싶은 얘기 있었는데.”
“우리 좀 통했네?”
미첼은 웃는 얼굴로 발걸음을 옮겨 나와 적절한 거리를 두었다.
“선공 양보할게.”
“좋아.”
미첼은 휙 치마를 들쳤고, 양쪽 허벅지 혁대에 고정시킨 두 자루의 손도끼를 빼냈다.
‘저건…?’
미첼에게서 여러 명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렇구나. 내 상대는 한 명이 아닌 모양이다.
일단 이야기가 우선이었다.
대련장에 방음 결계를 전개했다. 우리의 대화 소리는 관중석에 닿지 않을 것이다.
“나 먼저 묻자. 넌 어떻게 화신이랑 아는 사이가 된 거냐?”
“역시 아는 눈치네. 오빠라면 그럴 것 같았어.”
미첼은 신발 끝으로 바닥을 툭툭 쳤다.
“별로 재미없는 이야기일 텐데.”
“말해 봐.”
“그건 대련하면서 얘기해줄게.”
“지금 와서 묻긴 좀 그런데, 왜 굳이 나랑 붙으려 하냐?”
“순수한 궁금증이야. 오빠가 얼마나 강한지 궁금하니까.”
같은 심정이었다. 나도 미첼의 실력이 궁금했다.
게다가 미첼은 화신의 선택을 받았던 소녀다. 어쩌면 내게 이용 가치가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 그럼 와봐.”
미첼은 히힛, 하고 웃더니 날 향해 도약했다.
심리를 읽을 것도 없었다. 준비 동작을 보고 곧바로 고개를 뒤로 뺐다.
스릉! 날이 퍼런 도끼가 내 눈앞을 지나쳐 허공에 실선을 그었다.
연이어 도끼날의 연격이 내게 쇄도했으나, 나는 뒤로 빠지면서 가볍게 피하거나 손가락으로 툭툭 막아내며 공격을 흘려보냈다.
‘기본적인 실력은 있네.’
다만, 내 아카데미 친구들이 보여왔던 강함과는 결이 다르다.
수많은 살인을 벌여온 인간의 무자비함이 엿보였으니.
“마법사 답지 않게 날렵하네!”
미첼은 즐거운 얼굴로 소리쳤다.
가뿐히 뒤로 빠져 순식간에 거리를 벌렸다.
“그것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언제였더라. 꽤 어렸을 때, 내 부모가 날 할머니 댁에 보낸 적이 있어.”
터벅터벅. 내게 다가오는 미첼.
두 자루의 손도끼가 그녀의 손을 타고 곡예를 벌이듯 화려한 춤사위를 벌였다.
도끼를 다루는 데 굉장히 능숙해 보였다.
“그런데 할머니 댁에 가 보니까 웃기는 일이 벌어져 있더라.”
“웃기는 일?”
“늑대 마수가 할머니를 잡아먹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할머니 흉내를 내고 있었어. 정말 웃기지 않아?”
미첼은 날렵한 몸놀림으로 다시 내게 짓쳐들어 연신 공격을 퍼부었다. 그 또한 가볍게 피하거나 흘려내길 반복했다.
휘익! 미첼은 가볍게 몸을 띄워 내게 돌려차기를 날렸다.
가볍게 팔로 막았으나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이 밀려났다.
체격 차이도 무시하는 괴력. 비록 내 상대는 안 되지만, 역시 보기와는 다르다.
미첼은 다시 지면에 착지해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결국 자기 정체 들키니까 날 잡아먹으려 했어. 그때, 사냥꾼이 나타나 날 구해준 거야.”
사냥꾼.
그게 누군지 단숨에 짐작이 갔다.
“사냥꾼은, 화신이 살아 있을 적의 별명이야?”
“맞아. 아이들 위해 나쁜 놈들 사냥하던 사냥꾼으로 유명했어.”
미첼은 고개를 끄덕이고 손도끼로 자기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그런 사람이 소식을 접했다나 봐. 부모들을 꼬드겨 자식들의 목숨을 바치게 하는, 변태적인 늑대 마수가 있다는 소식을. 그리고 숲을 돌아다니다 늑대 마수의 마력을 느꼈대. 그렇게 난 사냥꾼에게 구해졌고, 부모를 추궁했어. 그제야 뒷사정을 알게 됐어. 부모가 고작 고기 몇 덩이에 날 팔았다더라. 그딴 늑대의 먹이로 말이야.”
어느 세상이든 가난한 가족의 생활은 비극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
헨젤과 그레텔이 부모에게 버림 받았듯. 미첼도 마찬가지였던 모양.
다시 미첼이 나를 향해 달려들어 도끼를 휘둘렀다.
“부모를 어떻게 했는지는 안 말할게! 어쨌든! 그 후로 기분도 꿀꿀해졌고, 화도 많이 났어! 그래서 화신을 찾아가 물었어. 당신이 날 구해줬듯, 나도 그렇게 살아도 되겠냐고!”
턱, 턱. 도끼를 휘두르던 미첼의 양팔을 모두 붙잡았다.
힘은 내 쪽이 비교도 안 되게 우세했다. 그러나 미첼은 당황하지 않고 내 사타구니를 걷어차려 했다.
진작 그 심리를 읽고서 그녀의 발까지 짓밟았다.
“윽!”
미첼은 눈살을 찌푸리고 신음했으나, 이내 키득거렸다.
“굉장하네, 오빠. 마법을 안 써도 이 정도 수준이구나….”
“그래서? 화신은 뭐라 했는데?”
“…내가 무슨 선택을 하든 내 몫이지만, 만약 그렇게 살겠다면 자신이 도와주겠다고 했어. 덕분에 공부할 책도 잔뜩 선물 받았고, 최소한 인간 답게 살아갈 수 있었어. 은인이지.”
선후 관계는 그런 것이었나.
과자집 마녀는 줄곧 혼자였고, 어린아이들을 구원할 연구에 매진해야 했을 테니.
계속 사냥꾼 일을 하면서 아이들을 구하는 생활을 지속하긴 어려웠으리라.
‘그래서 미첼에게 그 역할을 맡겼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는 편이 앞뒤가 맞았다.
“결국, 네가 대신 사냥꾼이 됐다?”
“응. 그러다 언제인가, 빌어먹을 어른들을 죽이려다 되려 내가 죽을 뻔했던 적이 있었어. 그때… 되게 밝은 세상에서 오랜만에 화신을 만났어. 오빠는 아마 이해 못 하겠지만.”
이해한다. 중천 세계겠지.
헨젤과 과자집 마녀가 죽은 이후였으리라.
“그분이 사람이 아니게 됐다는 건 단번에 알아차렸어. 이제 당신을 뭐라고 부르면 되겠느냐고 물으니까, 자신을 ‘화신’이라고 부르랬어. 그때부터 화신을 화신이라 부르게 된 거야. 원랜 그냥 매부리코 마녀라고 불렀었거든.”
미첼은 추억을 상기하듯 아련한 눈이 되었다.
“그렇게 된 거야. 화신은 내게 단죄자 역할을 맡겼고 가호를 내릴 힘을 줬어. 그리고 난 가까스로 살아나서, 마저 어른들을 죽일 수 있었어.”
과자집 마녀는 스스로 단죄자가 되겠다고 다짐한 미첼에게 제 의지를 맡겼다.
명왕에게 소멸 당하던 과자집 마녀의 뒷모습이 선명히 떠올랐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게 되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오빠 차례야. 화신이 갑자기 가호를 끊은 이유, 뭔지 알아?”
“…….”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로 했다.
화신의 의지를 이어 제 손에 피를 묻혀온 미첼에게까지 진실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그분은 소멸했어. 날 지키려다.”
미첼은 두 눈을 부릅떴다.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야.”
“말도 안 되잖아!”
미첼이 내게서 벗어나려 하자 일부러 놓아주었다. 그녀는 곧바로 거리를 벌렸다.
미첼은 충격에 빠진 얼굴로 손도끼를 꽉 쥐었다.
“무슨 그런 말 같지도 않은 거짓말을…! 오빠 같은 사람을 지키려 했다는 건 뭔데? 오빠는 인류 중에서 제일 강한 사람 아니었어? 유명해서 다 안다고, 나 같은 것도!”
“피할 수 없는 일이 있었어. 그것까진 못 말해주겠다.”
모든 걸 포기하려고 했을 때 과자집 마녀는 내 등을 떠밀어주었다.
그녀의 희생은 내겐 너무도 무거운 것이었다.
미첼은 내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눈치 챘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화신이 오빠를 그냥 구했을 리 없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지? 오빠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됐을 이유.”
“응.”
“그럼 그 이유에 나도 끼게 해 줘. 나도 분명 해야 할 일일 거야.”
“방금 전까지 보여준 실력이면, 넌 아무 도움 안 돼.”
“그래? 내가 그렇게까지 무시 받을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미첼은 살벌한 눈으로 날 노려보며 손도끼를 휘두를 자세를 취했다.
휘우우우!
돌연 밀도 높은 마력이 미첼을 중심으로 흘러나왔다. 그녀가 입은 빨간 망토가 나부꼈다.
미첼의 마력이 아니었다.
“내가 말했지? 보여줄 게 있다고. 우리의 실력, 제대로 보여줄게.”
마력의 근원지는 손도끼 쪽이었다.
마도 무기는 사용자의 마법을 강화시킬 뿐, 독자적인 마력을 지니는 것 아니다.
즉, 저 손도끼는 마도 무기조차도 아닌 무언가였다.
‘역시.’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미첼의 손도끼에서 생물의 기척이 강렬해졌다.
오즈마가 남긴 상태창을 시야에 띄웠다. 그녀의 지식이라면 저것의 정체도 담고 있을 터.
[ 적서각-라그로스 ]
Lv : 175
종족 : 마수
속성 :확산
위험도 : 하
특이 속성의 고위 마수. 두 자루의 손도끼, 양쪽 다 ‘적서각-라그로스’다. 자신을 이등분해 나눈 것일까.
사역마 계약을 맺은 것도 아니다. 미첼의 능력을 살피건대, 그녀가 저 마수를 사역마로서 감당할 수 있는 마력을 지니고 있을 리 없었다.
즉, 적서각은 단순히 미첼과 협력하고 있을 뿐이었다.
“화신이 준 건가?”
“맞아.”
그렇겠지.
과자집 마녀가 사냥꾼 역할을 맡긴 아이다. 아무것도 쥐여 주지 않았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저 도끼 마수는 저 애만 따르는 것 같고.’
적서각-라그로스 또한 과자집 마녀의 의지를 이어받았을 테니.
“나도 동료로 삼아준다고 할 때까지 물러서지 않을 거야.”
카가가가각!!
손도끼로부터 흘러나온 마력이 고체로 승화된다. 그리 구축된 단단한 진홍색 조각들이 미첼 주위를 메워간다.
날카로운 조각들은 단숨에 크기를 키우더니 미첼을 구심점으로 회전하기 시작해 강력한 회오리를 일으켰다.
평범한 생물이 저 회오리에 맞닿으면 온몸이 갈기갈기 찢길 것이었다.
관중석 쪽. 이안과 에이미는 미첼에게서 예상치 못했던 엄청난 마력을 느끼고 크게 놀란 눈치였다.
“간다!”
날붙이 회오리를 머금은 미첼이 내게 달려들었다.
그녀가 뻗은 손도끼에 마력이 뭉쳤다.
라그로스의 속성은 확산. 그녀가 도끼를 휘두른 순간, 도끼날이 방출하는 마력이 단숨에 길쭉하게 확대되어 나를 노릴 것이다. 날붙이 회오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즉, 적당히 거리 조절을 하며 피했다간 죽음으로 직결된다.
“…….”
저건, 나름 쓸만해 보인다.
미첼이 도끼를 휘두르는 순간, 나는 오른손을 들어 손가락 앞에 가볍게 얼음 마력을 응축시켰다.
그대로 손가락을 딱 튕겼다.
콰아아아!!!
“꺄아악!!”
매서운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라그로스의 회오리를 몰아내고 미첼마저 날려 보냈다.
전신을 파고드는 살인적인 냉기가 미첼을 파고들었다. 그녀는 적사각-라그로스를 놓치고 대련장 바닥을 한참 뒹굴더니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허, 헉…! 으윽!”
미첼은 고통에 신음하면서 흔들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힘 조절은 충분히 했다. 아프긴 하겠지만 목숨에 지장은 없으리라.
미첼에게 다가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안경을 한 차례 들치고 선하게 웃었다.
“나쁘지 않네.”
“뭐…?”
쪼그려 앉아 더욱 가까이서 미첼을 바라보았다.
“좋아, 동료 하자. 오히려 내 쪽에서 환영할게.”
한 명이라도 전력이 더 많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게다가 서로 마음까지 맞으니 더할 나위 없다.
손을 내밀었다.
미첼은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실소를 터뜨렸다.
“…뭐야. 이렇게 허무하게 당했는데, 나 지금 인정받은 거야?”
“왜? 마음 바뀌었냐?”
“전혀. 의욕이 나. 오빠랑 있으면, 분명 즐거울 것 같….”
털썩. 미첼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내 손을 잡으려다 의식이 뚝 끊겼는지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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