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2화 〉 이브와 동생
* * *
몸을 일으켰다.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긁적였다. 창밖 참새의 지저귐이 아침을 알렸다.
햇볕이 창문을 투과하며 방안을 환히 비추었다. 방 벽면엔 교복 차림의 아이작 그림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이브 로펜하임은 한숨을 푹 내뱉었다. 몸은 개운했지만, 마음은 심란했다.
‘학기가 시작돼 버렸다….’
로펜하임 남작가 사건 이후로 아이작과 아무 말도 섞지 못했는데.
어느새 방학이 끝나 있었다.
……
“오랜만이다! 살 빠졌네?”
“방학 때 뭐 했어?”
“안녕!”
메르헨 아카데미는 등교하는 학생들로 북적였다.
학생들 입에선 방학 동안 벌어졌던 일들이 이야깃거리로 오르내렸다. 그중 단연 가장 큰 화제는 로펜하임 남작가 사건이었다.
이곳은 명문 아카데미인 만큼 귀족의 비율이 높은 편. 귀족 사회에 널리 퍼진 로펜하임 남작가 사건의 전말도 자연스레 귀에 들어오기 마련이었다.
“로펜하임 남작이 아이들 대상으로 인신매매하고 있었다는 거, 들었어?”
“응. 듣고 깜짝 놀란 거 있지. 또 그걸 아이작 선배님이 해결해줬다잖아.”
“어쩜. 흐으, 아이작 선배님…. 또 반할 것 같아….”
그리 되니 아이작이 활약했다는 소식이 뒤따르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아이작 자신은 크게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그는 아카데미에서 인기가 굉장히 많았다. 단지 루체의 살기가 그의 주위를 에워싸고 있어 여학생들이 차마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
한편, 여학생들끼리 주고받는 이야기를 엿들으며 의기소침하게 걷고 있는 3학년생이 있었다. 아이작의 누나, 이브 로펜하임이었다.
“이브으으으!!”
“크학!”
짧은 단발머리의 3학년 여학생, 알리샤가 달려와 이브를 뒤에서 확 껴안았다. 깜짝 놀란 이브는 괴상한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오랜만, 이브!”
“오랜만이야, 알리샤….”
“아무리 개강했다지만 기운이 너무 없는 거 아니야? 또 마족 튀어나올까 봐 그래?”
“아니, 그건 아닌….”
“괜찮아! 빙제님이 이제 그런 사건은 없을 거라 했잖아! 여태 큰 사건들도 무사히 넘겨 왔는데, 이젠 뭐 우리 졸업할 때까지 별일 없지 않겠어?!”
숱한 사건들로 시작된 시위는 여전히 끊이지 않았고, 황실 기사단의 보호 체계는 더욱 강해졌다.
아카데미 밖의 혹자는 아카데미가 왜 폐교하지 않는지 묻는다. 당연하다. 여러 사건 때문에 메르헨 아카데미의 교육 체계를 버리고 폐교한다는 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기 때문. 애당초 황국에서 보호 중인 탓에 아카데미를 폐교한다는 선택지 자체가 존재할 수는 없었다.
아카데미는 어떻게든 존속해야 한다는 선택지만이 존재했고, 학생들도 이를 바랐다.
다만, 이브가 기운이 없는 건 알리샤가 말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게 아니야. 아이작이랑 아직도 말 한번 못 섞어봐서 그런 거라고….’
이브는 방학이 끝날 때까지 아이작에게 말을 걸지 못한 자기 자신에게 강한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당장 저기 등교 중인 모르는 여학생들의 토크에 끼고 싶다. 자기 동생이 얼마나 잘생겼고 멋있으며, 어디가 어떻게 섹시한지 설파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바로 그 아이작의 누나다’라고 완벽한 못 박음까지 하고 싶다…!
상상만 해도 흥분된다. 만족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로펜하임 남작가 사건 이후로 아이작에게 말을 걸지 못했으니.
이래선 아이작과의 문제가 그 무엇도 해결되었다고 볼 수 없었다. 즉, 자신이 아이작의 누나라고 마음껏 떠들고 다니는 건 동생을 배려하지 않은 염치 없는 짓이 되고 말 터였다.
“이브?”
“그러게…. 우리 졸업할 때까지 별일 없겠지?”
이브는 걱정스러운 척 한숨을 내뱉었다.
……
반 배정 평가는 3일 뒤에 진행된다. 그전까지 학생들은 임시 반에 머물러야 했다.
이브는 음료수 병을 쥔 채 오르핀관 2학년층에 이르렀고, 슬쩍 임시 반 강의실 중 한 곳을 몰려 들여다보았다.
많은 학생 중 유독 찬란한 후광을 내비치는 안경잡이 남학생이 있었다. 아이작이었다.
이브의 표정이 헤벌쭉 풀어졌다.
‘책 정리하는 모습도 어쩜 저리 사랑스러울까….’
남매는 보통 싸우는 일이 잦다지만, 아이작을 사랑하면서도 그와 떨어져야만 했던 이브에겐 누나로서의 알량한 자존심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제 동생의 사랑스러움을 찬미할 뿐이었다.
복도를 지나다니던 학생들은 스토커처럼 몰래 2학년 강의실을 엿보는 이브를 곁눈질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이브가 저번 학기에도 이러는 걸 목격했던 학생이 많았으니. 이브는 상습범인 셈이었다.
그러나 이브는 아이작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행복에 겨워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못했다.
‘슬슬 말 걸어야 하는데….’
오늘은 기필코 아이작에게 말을 걸 작정이었다. 그러기 위해 음료수도 사 왔다. 아이작에게 음료수를 건네며 말을 걸기 위해서였다.
반 배정 평가가 끝나면 아이작은 당연히 A 클래스에 들어갈 테고, 그리되면 아이작 바라기가 아이작에게 붙어 다닐 확률이 높았다.
자, 용기를 내야 한다. 용기를 내라. 이브는 자신을 다독였다.
그때, 아이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흡…!”
이브는 곧바로 벽에 기대어 숨었다. 자동반사적인 회피. 아이작이 자길 발견하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
‘아니, 이게 아닌데. 발견되는 게 좋은 거잖아.’
옛날 일이 자꾸만 떠올라 아이작과 마주치면 반사적으로 심장이 내려앉고 만다. 이브는 으으, 하고 침음을 흘렸다.
다시 용기를 내려 했지만, 이브는 끝내 도망을 선택했다. 두려워졌기 때문이었다.
“…….”
출입문으로 나선 아이작은 떠나가는 이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브가 자길 몰래 훔쳐보고 있었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으니.
‘왜 그냥 가냐.’
아이작은 로펜하임 남작을 쓰러뜨리며 아이작의 가정사를 알게 됐지만.
자기가 이브 누나와 어떤 사이였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여전히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게다가 자신은 단련에 치중해야 하는 처지였기에, 이브 문제에 신경을 기울일 순 없었다.
그래서 이브가 먼저 말을 걸어 주길 여유롭게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자신이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아이작은 발걸음을 옮겼다.
……
오르핀관 뒤편. 벤치에서 이브는 음료수 병을 쥐고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었다.
“뭐라 말 걸지…?”
사람 마음이란 갈대와도 같다. 아무리 굳은 결심을 해도 가볍게 불어오는 바람에 고개가 흔들리고 만다.
아이작에게 다가가기 망설여진다. 스스로가 너무 답답했다.
말을 걸자. 말을 걸면 된다. ‘안녕’이라는 인사말 한 마디만 하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하지만…, 그 한마디가 어려웠다.
이래선 안 된다. 언제까지 망설일 셈인가.
이브의 눈동자에 의지가 깃들었다. 그녀는 허공에 음료수 병을 내밀며 말 걸기를 연습했다.
“‘안녕, 아이작? 이거 마실래? 저기, 그날 일은 고마웠어.’ …아니, 이건 너무 형식적이고. ‘여기, 오다 주웠다. 그리고 그날 일, 보답하게 해주라.’ …이건 괜히 기분 나쁠 것 같잖아. ‘그날 구해줘서 고마웠어. 이건 선물. 가끔 말 걸어도 될까…?’ …사춘기 소녀냐.”
“누나 뭐 해?”
“……?”
이브가 앉아 있는 벤치 뒤.
청은발의 남학생, 아이작이 나타나 말을 걸었다.
“흐야아아아악!!!”
이브는 혼절할 것처럼 비명을 내질렀다. 아이작은 자연스럽게 두 귀를 막았다.
* * *
“허억, 허억…!”
한동안 이브는 가슴에 손을 얹고 거칠게 심호흡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 데 시간이 들여야만 했다.
나는 이브 옆에 앉아서 그녀가 말문을 열길 기다렸다. 2학기 오리엔테이션이 시작하기까지 앞으로 10분 정도 남아 있었다.
“도도, 동생님께서 무무무, 무슨, 무슨 일로…?”
“동생님?”
이브는 자기 입을 손바닥으로 짝 쳤다. 엄청 긴장했네.
나는 음료수 병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거 나 주려고 산 거야?”
“응? 아, 으응….”
“고마워.”
이브가 음료수 병을 내밀자 그것을 받아 한 모금 마셨다. 혀 끝에 단맛이 맴돌았다.
어색한 침묵. 목각 인형처럼 굳어버린 이브. 머릿속이 혼란스러울 것이었다.
솔직히, 나도 얠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엄밀하게는 모르는 사이니까.
그렇다고 해도, 이 몸의 하나뿐인 혈육이라 더 정감이 가고 마는 건 사실이다. 이젠 내가 아이작이잖아.
하물며 이브는 내게 깊은 애정을 품고 있었다. 이런 사람을 기피하는 건 심리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얘기해줘.”
“응?”
“로펜하임 남작가에서 있었던 일. 옛날 일부터 이번에 있었던 일까지.”
사령의 칼가르트를 잡으러 가느라 못 들었던 이야기.
이브가 내게 미안하다고 했던 이유를 여기서 듣기로 했다.
이브는 “아….”하고 침음을 흘리더니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잠시간의 침묵. 그리고 조심스레 이브는 말문을 열었다.
“응. 우리, 어렸을 때….”
약 5분간 이브는 쉬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예전부터 준비하고 준비해 왔다는 듯, 이야기는 놀라울 정도로 사족 없이 핵심만 짚어 간결하고 조리 있게 이어졌다.
그 언젠가, 아이작에게 어떻게 자기 사정을 이야기하면 좋을지 자주 고민해 왔던 게 분명했다.
처음부터 이브는 아이작에게 돌아갈 생각이었다. 아이작을 책임질 생각이었다.
하지만 집이 너무나도 가난했던 탓에, 이브는 커서 아이작을 먹여 살리기 위해 로펜하임 남작의 제안을 따르기로 결정했고.
메르헨 아카데미의 졸업장만 얻으면 로펜하임 남작을 떠날 계획이었다고 밝혔다.
로펜하임 남작 사건에 관한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어둠 마력에 당해 구속됐던 이야기, 자기가 어떤 의식의 제물로 쓰일 예정이었다던 이야기 따위였다.
“미안해…. 내가 너무 어리석었어…. 모진 말하고 떠나 버려서 미안해….”
이브는 과거의 선택이 원통한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강한 죄책감을 느끼며, 차마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나는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시고서, 조곤조곤 이야기했다.
“그때 우린 서로 어렸잖아. 로펜하임 남작 손에서 놀아나기도 했고. 우리가 무슨 힘이 있었겠어. 울지 마. 무슨 기분이었는지 알겠으니까.”
“왜 네가 더 어른스러운 건데….”
이브는 잠깐 훌쩍이고선 눈물을 닦고 감정을 갈무리했다.
“옛날의 너 답지 않아서 아직도 낯설다고…. 너, 언제부터 정체를 숨겼던 거야?”
정체라. 무슨 의미인진 뻔했다.
마법에 재능도 없는 아이작이 지금은 대마법사로 인정받고 있다. 왜 그런 힘을 진작 밝히지 않고 가족에게마저 숨겨 왔느냔 이야기였다.
“잠재력 같은 게 있었나 봐. 엄마 돌아가신 뒤로 어느 날 갑자기 깨우친 거라서. 설명은 어렵네. 나도 무슨 원리인지 모르겠어서.”
“…숨겼던 게 아니야?”
“응, 아니야. 그보다, 옛날의 난 어땠는데?”
“응? 어렸을 때 기억 안 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재력이 깨어난 부작용 같은데, 부분 부분 기억을 잃어 버렸어. 특히 옛날 기억일수록 많이 까먹어 버린 것 같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단지 이브와 어떻게 지내 왔는지 전혀 몰랐기에 하는 말이었다.
지금처럼 말하는 편이 가장 좋겠다고 판단했다.
정신적 충격을 받아 기억을 잃었다고 한다면 이브는 더한 죄책감을 느낄 테고.
빙의해서 모른다고 솔직히 밝힌다면 이브는 큰 충격에 빠지거나 믿을 수 없다고 반응할 게 분명했다.
그런 건 내 죄책감만 키울 뿐이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글쎄다.”
“…….”
내가 음료수를 마시는 동안, 이브는 생각을 정리하곤 “크흠.”하고 헛기침하더니 내게서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매일 아침이랑 밤마다 나랑 키스했어.”
굿모닝 키스, 굿나잇 키스 같은 거 말하는 건가. 외국 영화에서 자주 봤던 거네.
“그리고?”
“자주 같이 목욕하기도 했고….”
어렸을 때라면 그럴 만도 하지. 성적 지식을 전혀 몰랐을 때일 테니까.
그런데… 점점 뭔가 이상해졌다.
“무슨 일만 있으면 내게 안기려 했고, 애교 부렸고, 항상 손잡고 걸으려 했어. 그리고 맨날 그랬어. 커서 누나처럼 될 거라고. 누나랑 결혼할 거라고. 누나 말곤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누나 사랑해’만 입에 달고 살던 철부지였지. 매일 자기 전엔 내 얼굴을 10분만 구경하고 가겠다고 했고, 네 눈동자엔 항상 내가 비쳐 보였어.”
“…….”
아이작이 시스콘이었나?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브의 이야기엔 거짓이 섞여 있었다.
[심리 간파]로 살펴서 알았다. 이브는 몇 마디씩 거짓말을 섞고 있었다.
다만, 이브가 거짓을 말할 때마다 그녀에겐 자신이 말한 것이 점차 진실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자기 심리를 스스로 속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 결과, 이브는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닌 것처럼 비쳐졌다.
이브는 허공을 응시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녀의 얼굴은 점차 차분해졌고, 그녀의 입꼬리는 비죽 올라갔다.
나는 그대로 멈춰 버렸고, 이브의 말을 잠자코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말은 마치 소설 속 내용을 이야기하듯 점점 서정적으로 변해갔다.
“점점 나이를 먹어가도, 넌 나만 바라봐줬어. 서로 껴안고 자는 날이 태반이었어. 네 숨결의 온기도 기억나. 그 귀여웠던 숨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해. 내가 네 머리를 쓰다듬을 때면, 넌 항상 싱그럽게 웃으면서 내가 좋다고 해줬어. 우리 서로 손잡고 꽃밭에 갔을 때도. 기억 안 나겠지? 네가 내 머리에 꽃 화관을 씌워줬거든. 내가 널 지켜줘 왔듯, 나중에 크면 네가 날 평생 지켜 주겠다고 했어. 넌 봄바람처럼 자상했고, 대낮의 햇처럼 밝은 아이였어.”
“누나.”
“그리고 또….”
“누나.”
“응…, 응?”
자기만의 세상에 몰입해 있던 이브를 현실로 불러왔다.
“종 쳤어. 다음에 얘기하자.”
“아.”
수업 종이 울리고 있었다. 어서 돌아가야 했다.
“그러네…. 응, 돌아가자.”
우리는 오르핀관으로 들어갔다.
“저기, 아이작.”
“어.”
“우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걸까?”
“…어려울 것 같은데.”
“응…, 그렇겠네. 조심히 들어가.”
이브는 내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곤 3학년층으로 향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알 수 없게 되었다.
방금 전, 이브가 품고 있던 추억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거짓이었는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