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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286화 (331/334)

〈 286화 〉 온천 (2)

* * *

[ 한스 맥그리거 ]

Lv : 161

종족 : 인간

속성 : 불, 물

위험도 : X

[ 반 맥그리거 ]

Lv : 162

종족 : 인간

속성 : 물, 불

위험도 : X

맥그리거 형제.

<메르헨의 마법 기사> 「제11막」에 처음 나오는 녀석들로, 딱히 시나리오에서 비중이 큰 편은 아니었다.

단지 아카데미 대항전 파트에서 다른 아카데미 측의 강한 전력이 궁금하면 자연스레 외워지는 등장인물에 불과했지.

자기들끼리 ‘우리 형제가 뭉치면 최강이다’라는 마인드를 고수했던가?

그들만의 사연이 있어서 그리 된 거지만, 대충 누구나 상상할 수 있을 법한 흔해 빠진 사연이었던 기억이 났다.

“메르헨 아카데미에서 왔는데.”

선한 얼굴로 담담하게 대답했다.

힐드와 이든은 온천물에 푹 빠진 상태였기에, 나와 도로시만이 맥그리거 형제와 마주보고 있었다.

적색 머리의 한스 맥그리거는 박수를 짝 치며 감탄했다.

“캬, 역시! 여기 있는 거 보면 내일 아카데미 대항전의 참가자겠고…. 적이군?”

“그렇겠네. 잘 부탁….”

“불쌍하네, 불쌍해~.”

늘어지는 투로 말하는 한스.

“뭐가?”

“나한테 기억돼 버렸잖냐? 그래서 불쌍하다는 거야.”

그게 왜 불쌍하단 거냐?

한스는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오른쪽 검지로 나를 가리켰다.

“난 미인들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기둥서방 같은 놈들이 제일 마음에 안 들거든. 특히, 넌 못 잊을 얼굴이야.”

한스는 뒤로 등을 기대며 등받이에 양팔을 올렸다. 그의 떡 벌어진 어깨가 부각되었다. 위압감을 흘리려는 의도였다.

이후, 젖은 머리칼을 쓸어올리는 한스. 스스로 치명적인 매력을 뽐내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았다.

‘얘…, 나르시시즘이 심했지?’

오랜만이라 바로 안 떠올랐네.

맞다. 자존감도 굉장히 높았었어.

‘내가 누군지는 모르는 것 같고.’

날 단순히 극 중의 엑스트라 A 같은 느낌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메르헨 아카데미에 빙제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세간에 퍼졌어도 내 명확한 신상 정보까지 드러나진 않았다.

초면에 날 보자마자 빙제라고 바로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몇 없을 것이었다.

“아까부터 시비조 같은데. 자신 있어?”

“그렇다마다. 아카데미 대항전에서 우릴 이길 놈은 없어. 우리 형제는 누구한테도 지지 않으니까.”

한스는 시시덕거리며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흑심 어린 그의 손이 자연스럽게 도로시의 어깨에 얹어지려 했다.

“이봐, 예쁜아. 너도 들어봤지? 맥그리거….”

턱.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한스의 팔을 붙잡았다.

“…뭐냐?”

한스의 매서운 눈이 나를 노렸고, 그의 이마에 십자 핏줄이 불쑥 돋아났다.

“너야말로.”

이놈은 상대가 애인이 있든 말든, 마음에 드는 여자를 찾았으면 반드시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경향이 있었다. 협박, 유혹, 억압. 수단은 상관없었다.

그렇게 여자친구를 뺏긴 남학생만 라이젤 아카데미 내에서 십수 명은 될 것이었다. 아카데미 밖까지 합치면 수십 명일 터.

고위 귀족 가문의 자제. 뛰어난 재능을 타고나 뛰어난 인재로 평가 받는 이놈들에게 거역할 수 있는 강단 있는 학생들은 라이젤 아카데미 내에서 몇 없었겠지.

그러니 라이젤 아카데미의 최대 전력이자 호색한인 한스는, 누군가가 자기에게 반항하는 이런 상황이 익숙지 않을 것이었다.

“누구한테 손대려는 거야?”

나도 모르게 냉담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한스는 도로시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이런저런 작업을 치려 했다. 애당초 도로시라면 신체 접촉을 허용하지 않았겠지만.

단지, 나는 이놈이 불순한 의도로 도로시에게 손대려 했다는 사실 자체가 굉장히 거슬렸다.

“오….”

도로시는 나를 보며 태평하게 감탄했다. 일말의 긴장감도 없는 태도.

이해는 간다. 도로시한테나 나한테나, 맥그리거 형제는 만만한 상대였기 때문이었다.

한스는 실소를 터뜨렸다.

“재미없는 놈 같더니만 눈빛은 볼 만해졌네. 그런데, 네가 지금 주제넘게 누굴 건드린 건진 아…, 으윽?”

한스의 팔을 잡은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핏줄이 굵직하게 튀어나온 한스의 두꺼운 팔이 서서히 어그러져 갔다.

짧은 신음이 한스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이 새끼가…?”

마력이 느껴졌다.

한스는 신체에 둘렀던 [기초 보호 마법]을 강화했고, 팔에 신체 강화 마법까지 걸었다. 놈의 팔은 경도를 높이며 내 악력에 대항했다.

우리는 서로를 노려보았고, 싸움이 났다는 걸 짐작한 주위 손님들은 긴장한 얼굴로 이쪽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수 초 후.

스륵.

우리가 입은 가운에서, 허리에 묶는 끈이 저절로 풀리며 몸의 중요 부위가 드러났다.

미처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어…?”

나와 한스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한스는 두 눈을 부릅떴다.

…이겼군.

“칫!”

한스는 신경질적으로 내 손을 뿌리치고 가운을 갈무리하며 온천에서 벗어났다.

“기분만 잡쳤네. 가자, 반.”

“알았어, 한.”

청색 머리의 쌍둥이 동생, 반 맥그리거는 한스를 따라 나섰다.

“…방금 건 내 전력의 상태가 아니었단 걸 기억해라.”

한스는 짐짓 화난 얼굴로 애써 변명하고는 쌍둥이 동생 반과 함께 자리를 떠나갔다. 변명을 내뱉었다는 건 그가 은근한 패배감을 느꼈다는 방증이었다.

[신체 단련 효율]이 적용되는 범위는 내 전신. 중요 부위도 꽤 강력해진 상태였다. 크기를 키우기 전 상태라고 해도 그것의 비범함은 감춰지지 않았다.

‘잘 넘어가긴 했는데….’

내일부터 중요한 시나리오를 맞이해야만 한다. 이 시점에 쓸데없는 트러블을 일으킬 순 없었다.

다만.

‘생각도 못했던 놈이, 내일이 기대되게 해주네.’

한스는 내 최애캐를 건드리려고 했다. 그 대가는 무거울 것이었다.

나는 가운을 고쳐 입었다.

“음?”

문득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도로시 쪽이었다.

그녀는 바짝 굳어 있었고, 얼굴은 잘 익은 딸기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도로시 선배?”

“왜, 왜…?”

“봤죠?”

“으응? 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아무것도 못 봤는데?!”

도로시는 야단스럽게 반응하더니 어깨를 좌우로 으쓱이길 반복했다.

봤구나.

어차피 언젠가 자랑스럽게 보여 줄 생각이었기에 지금 보여도 딱히 상관없었다.

“그럼 다행이고요.”

힐드와 이든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느긋하게 온천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다시 사역마들 옆에 앉아 따뜻한 온천물에 몸을 맡겼다. 눈을 감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졸졸거리는 물소리. 잠시간의 고요가 지나가고.

“크흠.”

도로시는 연신 헛기침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방금 지켜주는 거…, 멋있더라.”

“저런 놈 상대로 지켜 줄 사람이 어딨습니까….”

“시늉은 아니었잖아? 느흐흐. 너, 남정네가 누나한테 손대려는 게 마음에 안 들었지? 그렇지?”

도로시는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저 선배 팬이잖아요.”

“팬이라…. 이봐, 아직 말할 생각은 없었는데 말이야.”

“네?”

“너 진짜로 내 팬클럽 회장 됐더라?”

알고 있었네.

아까 날 회장이라 부른 게 그래서였구나.

“아, 그거.”

“말해 봐. 어떻게 된 거야?”

“빙제 권위 좀 이용했어요.”

“원왕의 지위를 너무 소박한 데 쓰는 거 아니야…?”

도로시는 진심으로 당황한 것 같았다.

“저한텐 중요한 일이었어요.”

“웃기는 녀석일세….”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실실 웃었다.

* * *

아이작의 말대로였다.

도로시는 온천에서 나온 뒤로 상쾌함을 느꼈다. 몸은 가뜬해졌다.

여태 경험해 왔던 어느 온천보다도 이곳이 가장 효능이 좋은 편이었다.

다만, 아까부터 어째 열이 가라앉지 않았다.

남자의 접근을 일절 차단하며 자신을 지켜주던 아이작의 모습이, 도로시의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귀여운 녀석, 나 좋아하는 거 숨길 생각이 전혀 없구만….”

도로시는 니히히, 하고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숨길 게 뭐 있을까.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가 그러는데 싫어할 여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 옷을 입던 중, 별안간 도로시는 “흠….”하고 침음을 흘렸다.

도로시의 머릿속을 메운 기억이 또 하나 있었다. 그녀는 오른쪽 검지를 뻗어 살짝 굽혔다.

“이건 아니고….”

낭창낭창한 손가락 하나로는 어림도 없었다. 도로시는 아예 손바닥을 펼쳤다. 이 정도면 엇비슷할까.

도로시는 활짝 펼친 손을 아랫배에 가져다 댔다. 순간, 그녀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주, 죽는 거 아니야…?”

저도 모르게 쉰 소리가 흘러나왔다. 막상 크기를 재보니 식겁하고 만다.

주위에 있던 여성 손님들은 도로시를 곁눈질했으나, 그녀의 혼잣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도로시는 처음으로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

깊은 밤. 교직원 숙소, 어느 방.

불이 꺼진 방안에서 론자이너스 강사는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름다운 밤하늘에 휘영청 걸린 커다란 달이 아련한 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내일이군.”

빙제 아이작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 내일 드러날 것이다.

기대감 덕분일까. 론 강사는 오늘따라 술맛이 더욱 감미롭다고 느꼈다.

한편, 참가자 숙박촌.

침대에 앉아 창밖 커다란 달을 바라보던 한 소녀가 있었다.

이지적인 인상과는 대조적으로, 그녀는 제 신장만 한 살벌한 장병기를 품에 안은 채였다.

나풀거리는 남색 머리카락. 일부러 머리카락으로 얼굴의 절반을 가린 채였으나, 신선한 가을 바람은 그녀의 앞머리를 헤치며, 긴 흉터가 새겨진 왼쪽 눈을 어여쁜 달 앞에 드러냈다.

“빙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빙제의 얼굴.

상상 속 휘둘러진 창날이 그의 목에 깊은 자상을 냈고, 붉은 피가 솟구쳤다.

“곧 뵙겠습니다.”

이번 아카데미 대항전에서 그녀의 목적은 단 한 가지.

빙제 아이작을 살해하는 것이었다.

……

이튿날.

올드렉에 성대한 막이 올리며 아카데미 대항전이 시작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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