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는 누나-19화 (19/98)

〈 19화 〉 19. 네가 제일 맛있어.

* * *

물리치료사인 은아가 방에 들어오더니 화들짝 놀랐다.

엎드려 누워있는 정우의 등이 벌겋게 달아 올라 있었다.

“어머, 어떡해! 환자분 괜찮으세요?”

무슨 일인가 싶어 정우가 돌아보니 등이 벌겋게 달아오른 게 보였다.

은아가 황급히 기계를 정지시켰다.

“어머. 제가 열을 너무 높게 맞춰 놨나 봐요. 어떡해.”

미안함에 은아는 발을 동동 굴렀다.

벌겋게 달아오른 정우 등은 좀처럼 제상태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화상을 입은 게 아닌가 싶어 이번만큼은 정우도 놀랐다.

그러면서도 방 밖에 들리면 은아가 곤란해질지도 몰라서 굳이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잠시 후 은아가 찬찬히 살펴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조용히 말했다.

“휴. 다행이다. 다행히 화상은 아닌 거 같아요. 정말 다행이에요. 아휴”

그제야 정우는 손을 등 뒤로 돌려 뜨거운 부분을 만졌다.

등은 뜨거울 뿐 따갑거나 상하지는 않은 듯 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정우는 은아의 계속된 실수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화상의 위험에 놀랐기에 조금 기분이 상하려 했다.

하지만 안절부절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은아의 표정을 보니 어딘가 딱해 보여 화내기도 마땅치 않았다.

정우는 은아가 충격받은 것 같아 놀라지 않도록 오히려 다독여 주었다.

“다행이네요, 정말. 저는 안 다친 것 같으니 너무 놀라지 마세요.”

은아는 계속된 자신의 실수에도 한번도 탓하지 않고 오히려 위로해 오는 정우가 너무나도 고마웠다.

“제가 신입이라 아직 서투르다 보니 실수를 계속하네요. 정말 죄송해요. ”

앳된 얼굴만큼이나 경력이 짧은 초짜 물리치료사였던 것이다.

이제야 그걸 깨달은 정우는 아차 싶었다.

군생활의 경험도 있는 터라 정우는 초짜의 실수가 때로는 큰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은아의 외모만 보구서 만족했던 게 후회되었다.

“괜찮아요. 할 수 없죠 뭐. 근데, 치료 받을게 또 남아있나요?”

은아는 우물쭈물하며 답했다.

“열찜질 받으실 게 있어요.”

정우는 긴장했다.

열찜질이 뭐를 하는 건지는 몰랐지만,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 생길 지 겁이 조금 나기도 했다.

물리치료고 뭐고 중단하고 그냥 병실로 돌아가고만 싶었다

그러나 은아의 곤란해 하는 표정을 보니 그냥 나가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혹시라도 자기가 은아로부터 입은 피해를 티낸다면, 은아가 윗사람에게 혼나게 될지도 몰랐다.

방금 전 바깥에서 봤던 배현주 실장이라는 사람의 깐깐해 보이던 얼굴이 생각나자 은아가 더 걱정되었다.

사실 비록 은아가 실수를 여러 번 하긴 했지만, 정우 자신이 별다른 피해를 입은 건 아니었다.

그렇기에 은아에게 책임을 묻거나 또는 책임질 일이 생기게 하고 싶진 않았다.

정우는 은아에게서 치료를 받는 게 겁이 나서 그냥 나가고 최선일 듯 싶긴 했다.

그래도 은아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나갈 수 있는 지에 관해 은아의 의견을 물어보고는 싶었다.

바깥으로 들리지 않게 조용하게 속삭이며 물었다.

“제가 그냥 나가면 조은아씨, 아니 조은아 선생님이 곤란해 지시나요 혹시?”

그 말을 들은 은아의 그 큰 눈에 눈물이 맺히려 하고 있었다.

그러잖아도 정우에 대한 미안함과 거듭된 실수로 인해 당황하던 터였다.

정우가 치료를 중단한다고 하니 왈칵 겁이 났다.

“저도 잘 모르.. 겠어요.”

사실 은아도 지금 정우가 그냥 가게 되면 그 후에 상황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환자가 바쁘면 남은 치료를 건너 뛰고 그냥 가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지금은 경우가 달랐다.

자신이 몇 번 호들갑 떠는 소리가 바깥의 직원들, 특히 실장에게도 들렸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정우가 치료를 중단하고 나가면 직원들의 이목이 환자에게 실수를 거듭한 자신에게 쏠릴 거였다.

그렇게 되었을 때 얼마나 혼이 날지 아직 신입인 은아는 예상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이 불안해할 게 뻔한 이 환자를 보내 주는 게 맞을 것도 같았다.

그러나 막상 보낼 것을 생각하니 병원에서 자신에게 문책을 하게 될까 겁이 났다.

은아는 머리 속이 복잡해지고 무척이나 혼란스러워졌다.

눈이 커서 그런지 눈물이 많이도 고이고 있었다.

은아의 눈에 고인 눈물을 보게 된 정우가 놀랐다.

황급히 침대에서 내려와서는 티슈를 뽑아 은아에게 얼른 건넸다.

정우는 은아를 조용히 다독여 주면서도 내심 괜한 걸 물어봤나 후회했다.

“왜 그래요. 그만한 일로 왜 눈물까지 흘려요.”

‘정작 피해 입은 건 난데’

은아를 바라보던 정우의 눈에 조용히 훌쩍이는 은아의 자태가 들어왔다.

예쁜 외모의 은아가 다소곳이 안아 정우에게서 건네 받은 티슈로 눈물을 닦고 있었다.

일순간이지만 사랑스러운 그 모습에 정우는 심장이 멎는 듯했다.

남자로서 이런 상황에서 은아를 버려두고 물리치료실을 나설 수는 없었다.

“알았어요. 열찜질이라고 했죠? 그거 받을께요.”

“정말요?”

은아의 표정이 금새 밝아졌다.

“이번에는 정말 실수없이 잘 해 드릴께요.”

불안하긴 했지만 이렇게 된거 어쩔 수 없었다.

열찜질까지 받게 된 정우는 은아가 시키는 대로 천장을 보고 누웠다.

은아는 뜨거운 팩을 정우 허리 아래에 받치고는 많이 뜨거우면 부르라는 말을 남기고는 방을 나갔다.

다행히 팩의 온도는 견딜만 했고, 이번에 받는 열찜질은 아무리 초짜래도 실수할 여지 자체가 없어 보였다.

정우는 그제야 마음을 놓고 다시 잠이 들었다.

이십분 정도 지났을까, 타이머가 울리는 소리에 정우가 잠이 깼다.

아직 눈을 채 뜨지 못하는 가운데, 은아가 커튼을 젖히고는 이제 끝났다고 말을 하고서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서는 정우는 바지를 올려 입은 후 방을 나섰다.

나가는 중에 은아를 한번 더 만나고 싶어 둘러보았지만, 은아는 다른 커튼 안으로 들어간 듯 보이지 않았다.

아직 6시가 되기 전이었다.

정우는 은아를 보지 못해 아쉬웠다.

그러나 병실로 돌아가서 해야 할 게 있었기에 엘리베이터로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얼른 가서 소희가 퇴근하기 전에 만나서 소희의 불쾌해진 기분을 풀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저녁에 온다던 세나의 말도 생각났다.

정우의 손이 5층의 버튼을 경쾌하게 눌렀다.

한편 정우가 물리치료를 받고 있는 동안 소희는 여러 방으로부터 호출해 오는 환자들을 케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는 중에 물리치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정우도 마주 쳤다.

정우는 소희를 보고 반가워했지만, 소희는 반가워하는 정우를 못본 척 지나칠 뿐이었다.

너무 바빴기도 했고, 아직 마음의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 왔다.

어느 정도 일들을 수습한 소희는 이제야 데스크로 돌아와 앉아서 다시 금속 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보고 있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 소희에게 가장 중요한 건, 남자친구인 정우가 자기도 모르게 세나와 바람을 폈는지의 여부였다.

세나의 것으로 추정되는 귀걸이 실이 정우 침대의 머리맡에 있었다는 건 세나가 그 자리에 누웠다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그 자리에 누웠다는 건 남녀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다는 것 외에는 정상적인 상황으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세나에게 찾아가 금속 실을 보여줬다가 세나의 것이 맞다고 하면 그냥 줘야 될 거였다.

그렇게 되면 바람 핀 증거를 꼼짝없이 잃어버리게 될 것이었다.

그렇다고 정우에게 찾아가 따지기에는 지금 타이밍이 맞지 않는 듯도 싶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금속 실을 발견하자마자 그 자리에서 정우에게 따질 걸 싶었다.

지금 가서 따지자니, 좀 늦은 듯도 싶었다.

게다가 아까 일방적으로 관계를 중단한 자기에게 영문도 모르고 사과해 오던 정우의 모습이 생각나서 망설여지기도 했다.

만일 정우가 억울한 상황에 놓여 있는 거라면 자기가 또 다시 실수하는 것만 같았다.

지금 상태로는 아무 판단도 못할 듯 싶었다.

퇴근하는대로 어서 빨리 집에 가서 샤워하고 쉬고만 싶었다.

퇴근시간이 되자 소희는 정우에게 인사 없이 그대로 집으로 향했다.

*****

소희의 기분을 풀어주고 싶었던 정우는 막상 복도에서 마주친 소희가 못 본 척 지나치자 상처를 받게 되었다.

병실로 돌아와 누워있는데 도무지 무슨 일인지 말을 하지 않는 소희에 대해 답답할 뿐이었다.

시간은 점차 흘렀고, 병원에서 제공하는 저녁식사가 나왔다.

정우는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간호사실에 찾아가 봤으나 이미 소희는 퇴근하고 없었다.

허탈한 마음에 돌아와 있는데 핸드폰의 메신저가 울렸다.

혹시 소희인가 싶어 반가운 마음에 보니 핸드폰에 뜬 이름은 소희가 아닌 낯선 이름이었다.

­ 오빠. 나 나연이. 몸 좀 괜찮아?

누군가 싶어 잠시 생각해보니 아침에 만났던, 하얀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던 나연이었다.

잊고 있던 나연이 메시지를 보내온 거였다.

반가웠다.

­ 응 좀 괜찮아지고 있어. 저녁 먹었어?

­ 난 아직. 오빠 혹시 오늘 저녁 시간 돼? 아침의 일도 있고 해서 내가 밥 사려구.

­ 응 사실 나 입원해 있어.

나연의 메시지가 잠시 멈췄다.

놀란 듯 했다.

­ 헉? 어째? 많이 다친 거 아니야?

­ 아니야. 빠르면 내일 퇴원할 거 같아. 심한건 아니래.

­ 어느 병원이야? 내가 지금 갈까?

나연에게 환자복 입은 초췌한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았다.

­ 고맙지만, 안와도 될 것 같아. 그냥 퇴원하고 나중에 밖에서 보자. 나 초췌해서 그래.

­ 알았어. 오빠. 몸조리 잘해.

나연과의 메시지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잠시 나연과 대화를 하느라 잊고 있던 소희에 대한 고민이 다시 찾아올 무렵이었다.

병실 문이 조용히 열리더니 세나가 들어왔다.

“저녁 먹었니?”

정우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혹시나 하며 소희를 기대했던 터였다.

소희가 아닌 세나가 들어오자 다소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세나 역시 자기가 은근히 기다리던 사람이었기에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했다.

하지만, 소희의 일에 신경이 많이 써지다 보니 아직은 데면데면하기만 했다.

정우는 건성으로 물었다.

“네. 누나는요?”

“나는 조금 먹었지.”

세나가 경쾌하게 걸어오더니 익숙한 듯이 정우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걸터 앉았다.

세나는 심심한지 왼손을 뻗어 침상을 스치듯 부드럽게 쓸었다.

손끝의 화려한 네일이 정우의 시선을 끌었다.

마치 일부러 정우의 시선을 유혹하려는 듯이.

저녁을 조금 먹었다는 말에 정우가 무심코 물었다.

“조금 먹어도 괜찮아요?”

세나가 빙긋 웃으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더 맛있는 게 있어서.”

“맛있는 거라뇨?”

정우의 눈이 커졌다.

직감적으로 자신을 향한 도발 같이 들리긴 했지만, 낮부터 반복되던 세나의 장난일 수도 있었다.

“이거.”

침상을 만지던 세나의 왼손이 침대바닥을 스치며 정우 가까이로 왔다.

손은 다리를 지나 누워있는 정우의 페니스 위로 올라왔다.

네일 끝으로 스치는 느낌은 간지러우면서도 자극적이었다.

정우의 페니스는 금새 반응해서 부풀기 시작했다.

세나의 도발은 정우에게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생긴 일이라 정우는 아직 당황하고 있었다.

그저 아무 말도 못하고 눈을 크게 뜨고 있는데, 세나가 몸을 기울이더니 귀에 속삭여 왔다.

“병원에서 네가 제일 맛있어.”

세나는 그대로 정우에게 키스해왔다.

신을 벗으며 침대로 올라온 세나가 정우의 팔을 이끌어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다 댔다.

정우의 손은 세나가 이끄는 대로 세나의 가슴으로 가더니 환자복 위로 부드러운 살을 움켜쥐었다.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지만, 앙증맞은 가슴살을 만지자마자 정우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일어서는 듯 했다.

어느새 두 사람은 입을 맞추고 부둥켜 안은 채 서로를 만지고 있었다.

정우의 페니스는 세나의 계속된 자극에 점점 커져갔고,

정우의 머리 속에서 소희의 존재는 점차 사라져 갔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