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23. 소원들어주기
* * *
세나는 침대 위에 누운채 정우의 팔에 안겨 있었다.
정우는 그런 세나를 아쉬워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에 쫓긴 듯 급하게 섹스를 마무리 했던 세나였다.
아마도 세나가 곧 자기 병실로 돌아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정우는 내일 퇴원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세나를 보는게 어쩌면 오늘 저녁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일이었다.
정우는 조금 전에 세나가 아파하던 표정이 생각나 신경쓰였다.
“아팠죠? 천천히 해도 되는데. 괜찮아요?”
정우의 위로가 따뜻했다.
정우는 이제껏 세나가 접했던 남자들과 달랐다.
세나 역시 정우를 그냥 놓치기가 아까웠다.
“괜찮아. 할 만했어. 넌 안 피곤해?”
정우는 조금 피곤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끄떡 없어요, 난.”
정우가 미소에 세나가 미소지었다.
잠시 정우를 바라보던 세나의 눈이 빛났다.
시간이 많이 지나 있었다.
이제는 계획한 걸 실행으로 옮겨야 했다.
세나의 시선이 정우의 페니스를 향했다.
“너도 괜찮니?”
세나가 페니스에 말을 건 듯했다.
정우는 대답하지 못하는 페니스 대신 아래에 힘을 줬다.
녀석이 움찔했다.
정우가 웃으며 녀석을 대신해서 답했다.
“걔도 괜찮고 끄떡없어요. 하하”
다행히도 정우는 힘이 남아 있었다.
“그럼 난 됐고 너만 한번 더 할래?”
세나의 말은 또 다시 정우를 자극했다.
정우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세나가 고개를 돌리며 정우에게 입을 맞춰왔다.
좀 더 쉬다가 가겠거니 싶던 세나가 적극적으로 키스해오자, 내심 반가웠던지 정우도 격정적으로 입을 맞췄다.
세나의 왼손이 미끄러지듯이 내려오더니 정우의 페니스를 부드럽게 잡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우가 왼손으로 세나의 가슴을 만지려 하자 세나가 거부했다.
“괜찮아. 넌 움직이지마.”
“나도 만져 줄께요.”
세나는 미소를 지으며 정우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나는 충분히 좋았어. 너만 해도 돼.”
정우는 어쩔 수 없이 세나의 말을 따랐다.
세나의 왼손이 정우의 페니스를 여전히 계속 자극하는 느낌이 좋았기에 거절할 수 없었다.
사실 가만히 집중하면서 애무를 받는다면 무척이나 편안하고 또한 황홀할 거였다.
“눈감아. 이제부터 움직이면, 다신 나 못 보는거야. 알았지?”
세나는 은근한 미소로 강요 아닌 강요를 했다.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나의 요구대로 누운 채로 눈을 감았다.
세나는 이번에는 양 손으로 페니스를 번갈아가며 홅어주는 느낌이 들며 흥분이 고조되었다.
세나가 가만히 있으라고는 했지만 정우의 허리가 위아래로 들썩이기 시작했다.
정우가 눈감고 누운 채로 세나의 손길을 즐기고 있는데, 세나가 물어왔다.
“나도 하나 물어봐도 돼?”
정우는 흥분을 즐기느라 대답할 여력조차 없었다.
세나의 손길에 맞춰 계속 허리를 조금씩 움직이며 가까스로 대답했다.
“네”
세나는 부드럽게 물어왔다.
“너 류소희한테서 전화랑 메시지 온 거 잊고 있었지?”
정우는 정신이 번득 들었다.
허리의 움직임이 멈췄다.
소희로부터의 전화와 메시지가 온 것을 깜박한 것이다.
정우는 급하게 핸드폰을 찾아서 베게로 손을 향했다.
그러나 베개 아래 있는 줄 알았던 핸드폰은 어느새 세나의 오른손에 쥐여 있었다.
세나가 부드럽게 말하며 정우를 자제시켰다.
왼손은 페니스를 만지고 있는 채였다.
“움직이면 나 그냥 간다니까? 대답만 해. “
정우는 난감해졌다.
소희를 더 좋아하긴 했지만, 세나 역시 놓치고 싶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굳이 강제로 핸드폰을 빼앗으며 세나를 돌아서게 하고 싶진 않았다.
지금으로서는 말로 정중하게 부탁할 수 밖에 없었다.
“알고 있었어요. 핸드폰 줘요.”
세나가 싱긋 웃었다.
세나의 손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정우의 페니스를 자극하고 있었다.
“메시지 받은거 보고 싶어?”
“네.”
정우는 세나가 메시지를 본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긴 했다.
그러나 패스워드가 걸려있다는 생각에 이내 걱정을 접었다.
세나의 말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그럼 말해줘. 류소희가 네 여친이야?”
정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뭐라 대답해야 할 지 고민스러웠다.
정우의 페니스는 세나가 소희의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시들어 버렸다.
지금은 허리아래 흥미거리보다 머리 속 고민거리가 더 컸다.
페니스는 무척이나 솔직했다.
비록 정우는 낮에 여자친구가 아니라고 했지만, 세나는 직감적으로 둘이 예사롭지 않은 사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내일이면 정우가 퇴원할지도 몰랐기에 무리를 해서라도 오늘 꼭 여부를 알고 싶었다.
그렇기에 정우의 육체를 사로잡고서 차근차근 알아내려던 거였다.
그런데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정우의 몸이 식어버리자 일이 틀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정우에게 자리잡은 소희의 존재감은 생각했던 것 보다 큰거 같았다.
씁쓸했다.
세나는 계획을 바꿔 플랜B로 가기로 했다.
잠시 세나가 방심한 것 같았다.
정우는 재빨리 세나의 손에 있던 핸드폰을 낚아채려 했다.
[휙]
정우의 손이 세나의 손을 스치려 했다.
그러나 세나가 좀 더 빨랐다.
세나는 정우가 채 움직이기도 전에 핸드폰을 가지고 바닥에 내려섰다.
정우는 뒤따라 침대에서 뒤늦게 일어났다.
나신인 채로 재빨리 창가로 다가선 세나가 창을 열었다.
세나는 상체를 돌려 정우를 째려보며 강짜를 부렸다.
“움직이면 나 이거 밖으로 던져 버린다?”
세나의 발가벗은 뒷모습은 눈부시게 예뻤다.
작은 키였지만 귀여운 얼굴로부터 내려와 앙증맞은 가슴을 지나 허리 아래 힙, 그 아래 다리까지 이어지는 라인은 훌륭했다.
정우는 속으로 감탄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넋 놓고 구경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세나는 한다면 할 것 같은 여자였다.
혹시라도 정말 핸드폰을 던질까 싶어 정우는 당황스러웠다.
“알았어요. 안 갈께요.”
세나는 강짜를 계속 부리기로 했다.
정우에 대한 애정이 너무 깊어진 나머지 이제껏 너무 곱게 대해 준 것 같았다.
세나가 앙칼진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네가 말한 여자친구가 류소희 맞지?”
강짜에 순순히 대답할 것 같았으나 정우는 대답을 망설이고 있었다.
정우가 주저하자 세나는 핸드폰을 쥔 손을 창 밖으로 내보냈다.
이럴 땐 더 세게 나가야 했다.
“말해. 얘기 안하면 던질거야. 거짓말이면 나중에라도 던질거야.”
정우가 조용히 대답했다.
“알았어요. 말할테니 비밀 지켜줘요.”
“누구에게 지켜? 류소희에게?”
“소희 누나랑 병원사람 모두 다에게요. 여긴 누나 직장이잖아요.”
그제야 세나는 정우가 소희와의 관계를 숨기려던 이유가 이해가 되었다.
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말을 멈춘 정우가 말을 이었다.
“소희 누나, 내 여자친구 맞아요.”
세나의 직감이 맞았다.
그래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으로는 아니라는 대답을 기대했던 터였다.
세나의 머리가 복잡해지고 있었다.
소희에 대한 열등감이 세나를 더 힘들게 했다.
“그랬구나.”
세나는 순순히 창 밖에서 팔을 거두더니 바로 옆의 비어있던 빈 침대에 핸드폰을 뒀다.
원하던 걸 알게 된 터라서 굳이 몽니를 더 부릴 이유가 없었다.
이제는 어떻게 소희로부터 정우를 빼앗을지 고민해야 했다.
쉽지 않아 보였다.
정우는 시트를 가지고 다가와서 세나의 몸에 둘렀다.
“저녁 바람이 아직 차요.”
시트로 세나를 감싸안고 정우가 침대로 돌아와서 앉혔다.
세나는 서운한 가운데에도 핸드폰이 아닌 자신부터 챙겨주는 정우의 모습에 포근함이 느껴졌다.
“류소희랑 헤어지고 그냥 나랑 사귀자.”
세나답지 않게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정우는 세나가 진심임을 알 수 있었다.
세나의 성격이 좀 별나기는 했지만 맞춰줄 만하긴 했다.
외모도 예쁠뿐더러 무엇보다도 세나와의 섹스는 환상적이었다.
세나의 제안에 정우는 마음이 흔들렸다.
사실 소희와 사귄지도 아직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을 뿐이었다.
깊게 사귀는 거라 할 수도 없는 사이였다.
그러나 소희와 이렇게 헤어질 수는 없었다.
정우와 소희는 이웃에서 십수년을 함께 자란 정이 있었다.
정우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미안해요. 내 여자친구는 소희누나에요.”
세나는 시작하자마자 져버린 느낌에 씁쓸해졌다.
그러면서도 지금껏 보지 못한 정우의 단호함에 색다른 매력이 느껴졌다.
따지고 보면 여자친구가 있는 걸 알고 시작한 관계였다.
그게 단지 소희라는 것 뿐이지 지금에 와서 달라진 건 없었다.
아쉬운건 이제까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우의 마음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 뿐이었다.
정우의 마음을 당장 바꾸기는 힘들어 보였다.
지금 승부를 볼 필요는 없었다.
계속 관계만 유지할 수 있다면 시간은 자신의 편일 듯 했다.
정우 정도의 애송이를 유혹하는 건 자신있었다.
세나는 마음이 상하려 했지만 쿨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정우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세나는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장난스레 정우의 페니스를 쓰다듬었다.
“우리 다음에 또 숙제 검사하자.”
정우는 세나의 손을 피하지 않았다.
세나가 싫어서 거절한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직 기회가 남아 있네.'
세나의 맘 속에서 다시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세나의 태도가 누그러지자 정우는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야 세나의 모습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하얀 시트를 두른 세나의 자태는 마치 유럽의 신화 속 여신같이 아름다웠다.
안아주고 싶었다.
본의 아니게 자신으로부터 상처받은 세나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잠시 세나를 바라보던 정우는 불현듯 핸드폰이 생각나 확인했다.
메시지의 발신자는 소희가 맞았다.
나 집인데, 조금 이따 갈께. 잠깐 봐. 물어볼 게 있어.
큰 일이었다.
언제 소희가 방에 들어설지 알 수 없었다.
정우는 당황해하며 세나를 바라봤다.
정우의 표정을 살핀 세나가 다가와서 메시지를 읽었다.
언제 진지했냐는 듯 정우는 허둥댔다.
자기도 옷을 입어야 했지만, 무엇보다도 세나를 입히고 내보내야 했다.
“빨리 옷 입어요.”
그러나 세나로서는 급할게 없었다.
세나는 벗은 채로 침대에 걸터 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왜?”
“소희 누나 온대잖아요.”
세나는 의연했다.
“걔가 네 여자친구지 내 여자친구냐?”
정우는 간절했다.
세나가 다 벗고 있는 상태에서 소희가 들어오기라도 한다면 끝장이었다.
소희는 영원히 자기를 떠날 것이었다.
세나가 옷을 입도록 할 어떤 설득할 말도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제발 도와줘요.”
간절한 정우를 잠시 바라보던 세나가 말했다.
“너 그럼, 내가 지금 도와주면 걔랑 헤어지고 나랑 사귈래?”
정우는 대번에 거절했다.
“아니오.”
정우가 말을 이었다.
“만일 누나 때문에 세나 누나랑 헤어지게 된다면 누나도 다신 안 볼 거에요.”
정우의 대답에 세나의 가슴이 쓰라렸다.
세나는 괜한걸 물어봤나 싶었다.
“그게 싫다면...”
초조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정우를 빤히 바라보다가 세나가 제안을 변경했다.
“내가 도와주면 나중에 내 소원 들어주기 어때?”
소원들어주기.
정우라면 약속을 꼭 지킬 것 같았다.
밑도 끝도 없는 요구에 정우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한 거 시키는 거 아녜요?”
세나가 웃었다.
저런 대답을 한다는 말은, 요구를 수락하겠다는 말과 같았다.
그저 수락 전에 세부사항을 조율하는 것일 뿐이었다.
“걱정마. 네게 불가능하거나 억지스러운 소원은 안 바랄께.”
정우는 잠시 생각했다.
지금이라도 받아 들여서 일단 지금의 위기는 모면해야 했다.
“소희 누나랑 헤어지라는 거나 그 비슷한 것도 안 되요.”
세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 한 구석은 씁쓸했다.
가장 적절한 소원이 원천봉쇄 당한 거였다.
이제야 세나가 동의해주자 정우의 마음이 놓였다.
“좋아요. 소원들어주기.”
세나는 정우에게 눈을 흘겼다.
"나중에 딴 말하면, 그땐 정말 저주할거야."
세나는 걸치고 있던 시트를 내리고 벗어둔 환자복을 입었다.
정우도 재빨리 옷을 입고 세나가 방을 나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세나가 병실에서 나가기만 하면 됐다.
모든게 완벽했다.
갑자기 세나가 정우의 손에서 핸드폰을 낚아채갔다.
“번호 달랬지 아까?”
세나는 자신의 핸드폰이 울리는 걸 확인하고선 전화를 끊었다.
어제는 도도하게 번호를 주지 않던 세나가 이제는 스스로 번호를 주고 있었다.
세나가 많이 달라진 걸 느낀 정우의 마음이 흔들렸다.
“나 갈께.”
정우와 인사를 나누고 세나가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병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드르륵
정우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문을 열고 뚜벅뚜벅 걸어들어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소희였다.
눈 부시게 사랑스러운 복장이었다.
그러나 그런 복장과는 대조적으로 소희의 표정은 싸늘히 식어 있었다.
세나가 나가지 않은 상태에서 소희가 병실에 들어오자 정우는 몹시 놀랐다.
병실에 나타난 소희는 정우와 세나가 함께 있는 걸 보게 되자 몹시 불쾌해졌다.
둘이 왜 함께 있는지도 불쾌했지만 무엇보다도 은색 금속 실부터 따지고 싶어졌다.
사실 소희는 정우에게 추궁하러 온 길이었다.
그러나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게 되자 화가 나서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눈 앞의 세나에게 확인부터 받고 싶어졌다.
소희는 전에 없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
평소의 자상하던 말투가 아니었다.
분노로 인해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마침 잘되었네요. 두 분이 함께 계시니."
핸드백에서 은색 실을 꺼낸 소희가 세나에게 보이며 물었다.
"이거 최세나 환자분이 잃어버렸다던 그거 맞죠?"
세나 역시 정우와 마찬가지로 놀라긴 했지만 태연한 척하고 있었다.
세나가 살펴보더니 답했다.
"그런데요?"
일단 세나의 물건은 맞는 셈이었다.
이번에는 정우에게 따질 차례였다.
두 사람 모두를 꼼짝 못하게 하고 싶었다.
소희는 정우에게 다가가 따져 말했다.
"근데 이게 왜 정우 네 침대 머리맡에 있었던거야?"
안 그래도 당황하고 있던 정우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정우는 아무 대답 하지 못했다.
그저 은색 실과 소희를 번갈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